영월의 주천리 일대는 강과 계곡이 유난히 많다. 법흥천을 비롯해 염둔천,
운학천, 황둔천 등이 제각각 위용을 뽐내며 힘차게 흐르고 그 사이사이로
외지인의 발길이 닿지 않은 숨은 계곡들이 모습을 감추고 있다.
그 중 염둔천을 거슬러 올라가며 형성된 도원리, 운학리 일대의 계곡은 가장
빼어난 곳으로 손꼽힌다. 계곡이 크거나 웅장하지는 않지만 6∼7km에 이르는
구간을 유유자적 흐르는 수려한 모습이 일품이다. 물과 바위, 나무의 조화도
보기 좋고 휘감아도는 계곡물의 흐름도 힘차다. 주천리 일대의 강과 계곡이
그렇듯 이곳 역시 피서객들의 발길이 아직 미치지 않은 곳이다.
주천에는 주천면사무소, 주천농고, 지서, 우체국 등 관공서가 많이 있으며,
7개 행정리에 728가구 2,500여명의 주민들이 농업과 상업에 종사하고 있다.
주천면 땅이름의 유래가 되었던 주천샘.
주천교를 지나 신일리 비석거리우측 망산 밑으로 주천면(酒泉面) 땅이름
의 유래가 되는 "주천샘"이 있다. 주천면 남쪽 길가에 술이 나오는 돌이
있으니 그 형상은 반 깨어진 술통과 같다하여 돌술통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세상에 전해 오는 말로는 이 돌술통은 예전에는 서천(西川)에
있었는데 그곳에 있을 때는 술이 많이 나왔다.
그런데 현의 아전이 술을 마시려고 그곳까지 가는 것이 싫어서 현(縣)
안으로 옮겨 놓기 위해 여러 사람이 함께 옮기는데 갑자기 우레와 함께
벼락이 떨어져 술샘이 세 개로 나누어졌다한다. 한 개는 못에 잠기고,
한 개는 지금 남아있는 주천샘이고, 다른 하나는 어디 있는지 알수 없다.
1447년(세종 29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형조, 이조, 공조판서를 지낸 일제
(逸濟) 성임(成任, 1421∼1484)은 주천석(酒泉石)의 샘물을 놓고
다음과 같은 시(時)를 지었다.
술이 있어 샘물처럼 흘렀다네,
똑똑 물방울처럼 떨어져 바윗돌 사이로 흘러드는가 하였더니
어느사이에 철철 넘처셔 한 통이 다 찼다네,
술 빚은 것이 누룩의 힘을 의지한 것도 아니고,
그 맛은 자연 그대로라네.
한번 마시면 그 기분이 맑은 하늘 위에 노니는 것 같고,
두 번 마시면 꿈속에서 봉래산(蓬萊山)의 빈터에 이르게 되니라.
줄줄 흘러 써도 써도 마르지 않으니,
다만 마시고 취하는데로 만족할 뿐 어찌 값을 말하였으랴.
당시에 고을 이름 붙인것도 다 뜻이 있었으리
마침내 산 속의 귀신들이 우레와 폭풍우로
한 밤중에 술샘을 옮겨 버렸네.
옥검(玉檢)을 위하여 깊은 동학(洞壑)에 폐쇄한 것이 아니면,
반드시 금단지에 저축하여 깊고 깊은 연못에 감추었으리라.
감감하고 비어서 나민 자취 다시 볼 수 없게 되었고
오직 끊어진 돌 조각만 길가에 가로놓였네.
내 하늘을 되돌려 옛날 샘의 맥(脈)을 돌려놓고자 하거니와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군침 흘리지 말게 하라.
내가 원하는 것은 천도복숭아를 안주삼아 밝은신 임금께 바치고,
한잔을 올리면 천년의 수(壽)를 하려니,
일만 잔 올린다면 다시 만만세(萬萬歲)를 기약하리니
길이 법궁(法宮)에 납시어 신선과 만나소서.
도천리는 마을의 진산인 비산(694.3m)을
경계로 원주 신림면 송계리와 접하고
강을 사이에 두고 수주면과 이어지는,
행정 2개리 111가구에 377명의 주민들이
벼농사와 콩, 옥수수, 담배, 느타리버섯을
재배하면서 만촌, 벌말, 버들치 등지의
자연 부락에서 생활하고 있다.
도천리의 지명유래는 본래 영월군 우변면(右邊面)에 딸린 지역으로 태기산과
치악산에서 내려오는 섬안이 강이 마을을 돌아서 흐르므로 "도는내→되내→
도천"으로 부르다가 후에 건너 마을인 도원리(桃源里)와같은 의미로 "도천리
(桃川里)"라 하였다. 도원리는 섬안이강 안쪽에 있으므로 "안도내"라 칭하고,
도천리는 바깥쪽에 있으므로 "바깥도내"라 불렀다.
개살이 : 본부락 앞쪽에 있는 마을로 예전에 개가 (改嫁)해온 여자가 이곳에서
살았다고 해서 "개살이 (개살이는 개가의 속된 말이다."라는 지명이
붙었다는 얘기도 있으나, 실제로는 웅덩이(물가) 끝에 붙어 있는 논이
있는 곳이므로 "개살이"라는 지명이 붙게 되었다. 그리고 도천분교
동쪽은 개울건너에 있는 마을이므로 "개건너"라 불렀다.
비산 : 도천리의 남쪽에 있다. 원주군(原州郡) 신림면(神林面) 송계리(松桂里)
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해발 694.3m로 도천리의 진산(鎭山)이다.
산이 금시라도 날아갈 것 같은 형상이므로 "비산"이라고 하는데,
이곳에 검은 구름이 끼면 비가 온다고 하여 일명 "비우산"이라고
부르는데 그 모양도 마치 비가 올 때 쓰는 우산처럼 생겼다.
느지내 : 본부락 북서쪽으로 두마장 거리에 있다. 마을 앞에는 섬안이강이 활
모양으로 굽어져서 느리게 흐르므로 "느린내→느지내"라는 순수한
토박이 땅이름이 붙게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느지내"는 한자식
표기인 만천(滿川), 만촌(滿村)마을로 불리어 졌다. 그 앞에는 비스
듬하게 누운 듯한 "느지벼루"라는 바위도 있다.
주천의 관광명소로는 구봉대산, 사자산, 백덕산, 적멸보궁, 요선정,
운학천, 법흥천, 금마리독립만세상 등이 있다.
주천유래
영월군 서부에 위치한 주천면은 북으로 평창군, 남으로 제천시 송학면, 동으로 영월군 북면 일부와 서면, 수주면, 원주시 신림면과 접하고 있으며 총 면적은 102.7㎢이다.
주천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면사무소에서 서쪽으로 약 0.8㎞ 떨어진 거리에 있는 망산의 바위 틈에서 양반이 마시면 약주가 나오고 상민이 마시면 탁주가 나왔다고 하는데서 酒(주)자와 泉(천)자를 써서 주천이라 한다고 한다.
주천면은 영월,제천,원주, 평창으로 연결되는 교통의 중심지로 월오산, 치악산,백덕산과 같이
전면적의 80%가 산과 하천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80ha의 주천평야에서 영월군 쌀생산량의 상당부분을 생산하고 있는 곡창지대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어제현판시(御製縣板詩'), '빙허루(憑虛樓)'와 '청허루(淸虛樓)'두 누각이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어서 아름다운 풍치를 자랑하였다.
1530년 (중종25)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이곳에는 술이 솟아나는 '주천(酒川)이라는 샘이 있었고 도곡부곡(刀谷部曲, 주천동쪽 20리), 도내부곡(刀乃部曲, 주천 서쪽 15리), 금마곡소(金馬谷所, 주천 남쪽 15리)라는 천민 집단 구역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일리는 교통의 중심지로 원주의 신림역과 연결되는 보안도(保安道)소속의 '신흥역(新興驛)'이 있었고 그 건너편에는 공순원(公順院)이라는 원집이 있어서 길을 떠나는 관리나 길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