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신성인(殺身成仁)
자신의 몸을 죽여 인(仁)을 이룬다는 뜻으로, 자기의 몸을 희생하여 옳은 도리를 행함을 이르는 말이다.
殺 : 죽일 살(殳/7)
身 : 몸 신(身/0)
成 : 이룰 성(戈/3)
仁 : 어질 인(亻/2)
(유의어)
사생취의(捨生取義)
살신입절(殺身立節)
출전 : 논어(論語)의 위령공편(衛靈公篇)
자신의 몸을 바쳐 정의를 구한다는 이 성어를 누구나 쉽게 인용하는데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옳은 일을 위해 목숨을 버리면서 해야 한다면 보통 사람들은 모두 외면할 것이다.
그래서 안중근(安重根) 의사나 유관순(柳寬順) 열사를 비롯한 애국선열과 국토수호를 위해 산화한 영령들이 문자 그대로 살신성인(殺身成仁)에 부합한다.
누구나 자신의 목숨은 소중한 것이고 또 그래야 마땅하다. 하지만 의(義)를 따질 겨를도 없이 위급한 상황에 닥칠 때 다른 사람들을 구하고 자신은 스러져가는 의인을 종종 본다.
이런 숭고한 뜻을 가진 말이 논어(論語)에서 왔으니 어울린다. 공자(孔子)가 가장 중요시했던 인(仁)은 이후 유가의 중심사상이 됐다.
仁은 등에 짐을 진 사람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남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에 바탕한 덕으로 가까운 혈연에서 실천하여 사회적 국가적 평화를 얻는다고 가르친다.
위령공(衛靈公)편에 이렇게 나온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뜻있는 선비와 어진 사람은 삶을 구하기 위해 어짊을 해치지 않는다(志士仁人, 無求生以害仁). 오로지 몸을 죽여서라도 어짊을 이룩하는 일이 있을 뿐이다(有殺身以成仁)"고 했다.
도의심이 강하고 의지가 강한 사람이나 인덕을 갖춘 사람은 목숨과 인 모두를 지킬 수 없을 때 생명을 아끼느라 인을 저버리지 않고 오히려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인을 행한다는 것이다.
살신성인(殺身成仁)
살신(殺身)은 '목숨을 버린다'는 말이고, 성인(成仁)은 '인(仁)을 이룬다'는 말이다. 즉, 옳은 일을 위하여 자기 몸을 희생한다는 뜻으로, 주로 다른 사람이나 큰 일을 위해 목숨을 바친 경우에 쓰이는 말이다.
정의(正義)를 위해 인의(仁義)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는 뜻의 고사성어이다. 논어(論語)의 위령공편(衛靈公篇)에 나오는 말이다.
이 성어는 공자(孔子)의 가르침을 일관시키고 있는 정치상, 윤리상의 이상적인 이념이다. 이것은 인(仁)이라는 한 글자로 집약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뜻 있는 선비와 어진 사람은 살기 위하여 인(仁)을 해치는 일이 없고, 오히려 자신의 목숨을 바쳐 인(仁)을 행할 뿐이다(志士仁人, 無求生以害仁, 有殺身以成仁)."
도의심(道義心)이 강하고 의지가 강한 사람이나 인덕(仁德)을 갖춘 사람은 목숨과 仁 모두를 지킬 수 없을 때 생명을 아끼느라 仁을 져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仁을 행한다는 것이다. 仁을 닦는 일은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유가(儒家)의 중심사상은 仁이며, 仁은 공자가 가장 중요시했던 덕목이다. 공자는 仁을 충(忠)과 서(恕)라고 규정하였다. 다시 말해 타인에 대한 자비와 인간애, 동정심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우주만물의 본질인 만큼 군자가 먼저 익혀야 할 덕목이기도 하다.
살신성인은 반드시 목숨을 바치는 것뿐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감수하며 이웃에 봉사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양보하여 남을 위하는 경우에도 사용할 수 있는 말이다.
공자도 살신성인을 접근하기 어려운 이상으로 보았던 것 같다. 위령공편(衛靈公篇) 뒤쪽에서 이런 실토를 하는 걸로 보아 그걸 짐작할 수 있다.
子曰 : 民之於仁也, 甚於水火, 水火, 吾見蹈而死者矣, 未見蹈仁而死者.
공자가 말했다. "백성들의 仁에 대한 필요성은 물과 불보다 절실하건만 물과 불을 건드리고 죽는 사람은 내가 보았지만 仁을 실천하면서 죽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仁은 중국 유교사상에서 가장 중심 덕목이다. 공자가 처음으로 강조한 "효제(孝悌)는 인의 근본이다"는 혈연적인 가족 결합의 윤리를 중시하여 거기에서 찾을 수 있는 자연스런 애정을 전개하는 것이었다.
仁자는 본래 등에 짐을 진 사람을 의미하였다. 따라서 仁이란 남을 사랑하는 것이라 하여 사랑을 바탕으로 삼은 조화된 정감에 의거한 덕이며 그것을 가까운 혈연에서 비롯하여 멀리 미치게 함으로써 사회적, 국가적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맹자(孟子)는 그것을 본래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남의 불행을 좌시하지 못하는 동정심의 발전으로 받아들여 그것을 완성하여 정치에 미치는 왕도론(王道論)을 말하였다.
이와 같이 仁의 德은 원래 정의적이어서 주관적인 성격이 강했으므로 뒤에 이지적인 면을 보충하는 것으로서 의(義), 예(禮), 지(智), 신(信) 등의 덕목이 추가되어 오상(五常)의 德이 되었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仁은 넓은 뜻으로는 그것들을 포섭하는 최고의 德으로 삼고, 좁은 뜻으로는 애정으로서의 성격을 강화하면서 넓은 뜻에서는 유교 윤리의 모두를 포괄하는 왕좌에 앉았다.
한대(漢代)부터 시작한 이 사상은 그대로 후세까지 유지되지만 주자학(朱子學)은 또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인 해석을 가하였다.
즉 '仁은 성(性)이며 사랑은 정(情)이다'고 현실적인 애정과는 구별하여, 정(情)을 낳게 하는 본성(本性)으로서의 고차적(高次的)인 입장에서 고찰하여 '仁이란 사랑을 실현하기 위한 이(理)다'고 하였다. 仁은 여기에서 이념적인 성격을 강화해서 체계적인 유교 윤리 철학의 근본 원리가 되었다.
유가의 중심사상이 仁이며 공자가 가장 중시했던 덕목 또한 바로 그 仁이었음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仁을 한 마디로 규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공자는 충(忠)과 서(恕)라고 해석했다. 쉽게 말해 타인에 대한 자비나 인간애, 동정심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래서 仁은 군자가 먼저 익혀야 할 덕목이기도 했다.
군자가 仁을 버리고 어찌 이름을 이룰 수 있으랴(君子去仁, 惡乎成名)? 곧 仁은 몸소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공자의 가르침 자체가 실천 도덕이 아니었던가.
물론 仁이 최고의 덕목인 만큼 仁 자체에는 대소(大小)의 구별이 있을 수 없으며 그것을 행하는데 있어 경중과 귀천의 구별 또한 있을 수 없음은 자명하다. 심지어 여기에는 생사의 구별조차 무의미한 것이 된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살기를 원하지 죽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도의심이 강하고 의지가 깊은 사람이나, 인덕을 갖춘 사람이라면 목숨과 仁이 양립할 수 없을 때 생명을 아끼느라 仁을 해치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일신을 희생 하면서까지 仁을 실천하지 않을까(成仁)? 그래서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사와 인인은 살기 위해 仁을 해치는 일이 없고 오히려 몸을 죽여 仁을 행할 뿐이다(志士仁人, 無求生以害仁, 有殺身以成仁)."
맹자(孟子) 역시 비슷한 말을 했다. "생선도 내가 원하는 것이고 곰 발바닥도 원하는 것이지만 둘을 함께 추구할 수 없다면 생선보다는 곰 발바닥을 취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생(生)도 원하는 것이고 의(義)도 원하는 것인데 둘 다 취할 수 없다면 생(生)을 버리고 의(義)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
유명한 사생취의(捨生取義)다. 인의(仁義)가 같은 덕목일진대 공자나 맹자는 인의(仁義)를 목숨보다도 더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곧 살신성인이라면 정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는 것을 뜻한다.
비늘만한 자비에도 인색한게 요즘 세태다. 남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그러나 이 사회에는 그래도 그런 분들이 적지 않아 어둠과 각박한 세상에 한 줄기 희망의 등불이 되고 있다. 말이 쉽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그만큼 숭고하다 하겠다.
또한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이라는 말이 있다. 이(利)가 눈앞에 보일 때에는 의(義)로움을 생각하며 남의 위태로움을 보고는 목숨을 내놓는다.
논어(論語) 헌문편(憲問篇)에 나오는 한 대목인데 안중근의사(安重根義士)의 휘호로 널리 알려져 있는 문구다. 말이 쉽지 범인은 흉내내기도 힘든 경지다.
살신성인(殺身成仁)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인(仁)을 이룬다
子曰: 志士仁人은 無求生以害仁이요 有殺身以成仁이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뜻 있는 선비와 인(仁)한 사람은 삶을 구하려고 인을 해치지 않고,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인을 이룸이 있다."
(衛靈公 8)
공자는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이인 16)"고 한다. 의리란 공공의 선(善)이며, 개인적인 이익이 아닌 공공의 이익을 가리킨다. 따라서 군자가 추구하는 의리는 소의(小義)가 아닌 대의(大義)라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대의를 추구하는 사람은 매사에 자신보다 남을 더 배려하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억지로 시키는 법이 없다.
만약 이러한 대의를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함께 실천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갈등과 전쟁이 사라지고 화합과 평화가 넘치는 곳이 될 것이다. 공자는 이러한 공공의 선과 이익을 추구하는 착한 마음을 인(仁)이라고 말했다.
공자는 제자 중궁이 인(仁)에 대해 묻자, "문 밖에 나갔을 때에는 모든 사람을 귀한 손님 대하듯이 하며, 백성에게 일을 시킬 때에는 큰 제사를 받들 듯이 신중하고, 자기가 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나라에 원망함이 없을 것이며, 집안에 원망이 없을 것이다(안연 2)"고 말한다.
인(仁)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리거나 집안을 이끌어 간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공자의 말대로라면 인은 세상을 살아가는 만능키라고 말할 수 있다.
어느 날 제자 자공이 평생 좌우명으로 삼을 만한 교훈을 공자에게 요청했다. 이 때 공자는 "서(恕)이다. 자기가 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위령공 23)"고 말한다. '서(恕)'란, 남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말한다.
그래서 서(恕)란 글자는 '같을 여(如)'와 '마음 심(心)' 두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볼 때, 인(仁)은 공공의 선, 공공의 이익, 대의, 상대방을 내 몸과 같이 생각하는 착한 마음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공자는 지사(志士)를 '도(道)에 뜻을 둔 선비', 인인(仁人)을 '타인을 내 몸처럼 아끼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지사와 인인은 결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지 않으며, 구차하게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공공의 선과 대의를 해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공자는 인을 해치지 않고 자신의 희생을 통해 인을 완성한다고 말한다. 공자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맹자는 재미있는 비유로 이러한 지사와 인인을 묘사하고 있다.
맹자(孟子) 고자장구상(告子章句上)에 말이다. "생선 요리도 내가 원하는 것이며, 곰발바닥 요리도 또한 내가 원하는 것이지만 두 가지를 모두 가질 수 없다면 생선을 버리고 곰발바닥을 가질 것이다. 목숨도 내가 원하는 것이며, 의로움도 내가 원하는 것이지만 두 가지를 모두 가질 수 없다면 목숨을 버리고, 의를 취할 것이다."
이 말은 생선요리보다 더 귀한 곰발바닥 요리를 택하듯이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이 바로 의(義)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유래한 말이 '사생취의(舍生取義)'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공공의 선과 이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 이야기를 종종 들을 수 있다. 이러한 고귀한 희생을 가리켜 '살신성인'이라고 말한다.
특히 큰 재난이나 사고가 발생하면 어김없이 살신성인의 미담을 듣곤 한다. 그들 역시 평상시에는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이다. 그러나 자신의 생명을 걸고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는 데 앞장서는 그들이야 말로 공자가 말하는 지사와 인인의 21세기형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생명은 소중한 것이다.
죽음은 인류를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언젠가는 반드시 한 번은 맞아야 만하는 숙명적인 일이다. 그러나 어느 생명체이고 간에 이를 피하고 싶은 것이 예외없는 본능이다.
인류가 가진 신앙은 궁극적으로 이 숙명적인 일(죽음이란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고 제시하고 이끄는 길이라 할 것이다.
불교도 궁극적으로는 생(生)과 사(死)의 문제에 대한 답에 도달하려는 노력이고, 카톨릭도 영원한 생명을 목적으로 한다.
인명은 소중한 것이다. 어느 철학이나 종교나 간에 인명의 소중함을 말하지 않는 것은 없다.
불가에서는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 했고, 유가에서도 천지지간 만물지중에 유인이 최귀(天地之間 萬物之衆 唯人最貴)라 했고, 카톨릭에서는 ‘하느님이 자신의 모상을 본 따서 사람을 지어셨다’고 했다.
심지어 염세주의(厭世主義) 철학이라 하더라도 세상이 살만한 세상이 못됨을 안타가워 함이지 인명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서정주(徐廷柱)는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 천둥은 먹구름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 노오란 네 곷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라고 노래한 것처럼 미물인 국화꽃 한 송이를 피우는 데에도 이렇게 천지만물의 조화의 기운이 응결되어야 하거늘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에 있어서야 일러 무엇하겠는가?
이렇게 생명은 하늘이 준 것(天賦人命)이니, 이 소중한 생명은 그 생명을 준 이가 거두어 가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이를 훼손해서는 안 되는 절대적으로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죽음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천수(天壽)를 다한 자연사(自然死), 질병사(疾病死), 사고사(事故死), 타살에 의한 죽음, 전사(戰死), 형 집행에 의한 죽음, 이타적(利他的)인 죽음, 조국과 민족 등 대의(大義)를 위한 헌신(殺身成仁), 자살(自殺) 등등이 있을 수 있겠다.
모든 죽음은 슬프다. 지위의 고하나, 재산, 업적의 다소를 막론하고 한결같이 슬프다. 그것은 죽음이 영원한 이별이기 때문이다. 더할 수 없이 소중한 생명이 소멸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죽음이 한결같이 슬프기는 하나, 천수를 다한 자연사 등에는 호상(好喪)이란 말도 있는 것으로 보아 죽음의 내용에 따라, 고인(故人)과의 친소관계 등등에 따라 다소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사고사(事故死)나 질병사(疾病死) 등 천수(天壽)를 다하지 못한 죽음에는 원인이나 나이에 따라 애통함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게 마련일 것이다.
이렇듯 어떤 죽음이나 간에 안타까움과 슬픔은 매 한가지라 할지라도 경우에 따라 정도에 차이가 있듯, 죽음에 부여되는 의미 또한 큰 차이가 있다고 할 것이다.
예부터 병사(病死)나 사고사(事故死)나 간에 부모에 앞서 죽음을 맞게 되면 부모의 가슴을 아프게 한 불효를 했다고 하여 그 장사(葬事)를 간략히 하였다.
살신성인(殺身成仁)이란 말이 있듯, 거룩하고 고귀한 생명을 희생 헌신하여 의(義)를 도모한 죽음은 그 뜻을 높이 기려 숭앙하고 기념한다.
그런가 하면 취중 실수나 사소한 다툼 등으로 인해 그만 불귀의 객이 되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는 참으로 의미없는 죽음이라 할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죽음이 자살(自殺)이다. 오죽했으면 이 세상과도 바꿀 수 없는 하나뿐인 생명을 스스로 끊었을까마는 그 행위 자체는 어떤 변명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는 안타까운 일이다.
그 안타가운 상황들을 상고해 보면, 돌이킬 수 없는 실패에서 오는 좌절로 인해, 자신이 가졌던 재물, 명예, 권세를 모두 잃었을 때,
변절(變節:실연 포함)에 대한 배신감을 견디지 못해, 억울하게 누명을 쓰거나 모욕을 당했는데도 호소나 해명을 할 길이 없을 때,
자기가 한 일로 인해 견딜 수 없는 수치심과 모멸감으로 인해, 참담한 파멸이 눈앞에 닥쳤을 때,
자신의 과오와 실수를 후회하면서, 말과는 달리 자신의 어두운 내면이 탄로가 났을 때,
책임을 다하지 못한 죄책감을 감당하지 못해서 속죄하면서, 자신의 채무를 살아서는 다 변제할 길이 없을 때, 역으로 자신의 재산이 압류되고 나면 빈털터리가 될 것이 우려될 때,
자기에 의하던 타(他)에 의하든 자신의 명예가 회복될 수 없이 실추되었을 때, 자신의 지위가 회복될 수 없이 파멸 되었을 때,
자신에 대한 많은 지지나 성원을 보내던 세력이 사라지고 오히려 지탄하고 규탄하는 세력으로 돌라설 것이 자명할 때,
자신의 과오가 점차 더 밝혀져서 치부가 천하에 더 드러날 것이 두려울 때, 앞에 확실히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이 놓여 있을 때, 조국의 치욕과 멸망을 슬퍼하면서, 정신질환으로 인해 등등 …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그 어떤 명분으로도 위에서 가상해 본 그 어떤 경우라도 소중한 목숨을 스스로 끊는 일이 정당화 될 수는 없다.
설령 을사조약(乙巳條約)으로 국운이 기우는 것을 통분하여 자결로서 백성과 임금의 각성을 촉구한 민영환(閔泳煥)의 우국충정도, 감동적이긴 해도 그 행위가 합당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까닭은 천하도 내가 있은 연후에라야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천하는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아무리 자살(自殺)을 미화해 놓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죽음의 허망함을 강조한 것일 뿐이다.
위에서 가상해 본 경우들을 대별해 본다면 첫째, 직면한 상황이 고통스러운 경우와 둘째, 억울하고 분한 경우와 셋째는 책임 회피나 실상 은폐 및 자기 이권 보전 등으로 대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의 경우는 마음을 바꾸어 죽을 각오로 시련을 극복한다면 극복하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며, 둘째의 경우는 죽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기 보다는 살아서 적극적으로 해명을 하는 것이 옳은 일이며, 세째의 경우는 참으로 비열한 짓이다.
겸허히 자신의 책임을 속죄하고 죄 값을 치르고 회개하는 것이 당당한 자세이다. 견디기는 힘든 일이긴 해도 그러는 것이 사회에 경종을 주어 사회를 바르게 하는 데에 기여하는 길일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난, 치열한 생존경쟁으로 세상살이가 각박해짐으로 해서 스스로 삶을 포기해 버리는 사례가 허다하다. 특히 청소년들이 참으로 사소한 문제 앞에서 순간의 잘못된 생각으로 돌이킬 수 없는 행위를 저질러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참으로 생명은 소중하다. 그 삶이 귀한 삶이었거나 평범한 삶이었거나 욕된 삶이었거나 간에 하늘이 준 그 생명은 꼭 같이 소중한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을 허락한 이가 그 생명을 거두어갈 때까지 그 누구도 그 무엇도 그 생명을 훼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삶에도 귀한 삶, 평범한 삶, 욕된 삶이 있을 수 있듯, 그 죽음도 그 사람의 삶에 따라 평가가 달라 질 수 있을 것이다. 귀한 죽음이 있는가 하면 예사스런 죽음, 욕된 죽음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삶도 잘 살아야겠지만 죽음도 잘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우국충정에서 나온 의로운 희생이 아닌 바에야 자살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욕된 죽음이라 함이 옳을 것이다.
작금의 어떤 사회 현실로 인해 이를 모방하는 이들이 늘어날까가 두렵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안정이 시급하다. 청소년(들에 대한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치는 교육이 시급하다.
살신성인(殺身成仁)
몸을 죽여 인(仁)을 이루다는 뜻으로, 옳은 일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나 사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논어(論語)위령공(衛靈公)편 제8장에, 공자께서 "지사(志士)와 인인(仁人)은 삶을 구하여 인(仁)을 해침이 없고, 몸을 죽여 인(仁)을 이루는 경우는 있다(子曰: 志士仁人, 無求生以害仁, 有殺身成仁)고 가르치고 있다.
주자(朱子)는 "지사(志士)는 뜻이 있는 선비요, 인인(仁人)은 덕(德)을 이룬 사람이다. 의리상 마땅히 죽어야 할 때 (구차하게) 삶을 구한다면 그 마음에 불안한 바가 있을 것이니, 이것은 그 마음의 덕(德)을 해치는 것이다. (그러나) 마땅히 죽어야 할 경우에 죽는다면 마음이 편안하고 덕이 온전할 것이다"고 주석(註釋)을 붙였다
우리나라는 오천 년의 역사 이래 수많은 구국지사(救國志士)들이 나서서 나라를 구했다. 그 중 첫째로 꼽는 분은 아마도 성웅 이순신(李舜臣) 장군임에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아마도 안중근(安重根) 의사와 유관순 열사가 아닌가 싶다.
2022년 오늘이 3.1운동이 일어난지 103주년을 맞는 날이다. 아마도 집집마다 태극기를 게양하며 삼일절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나아가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한 장한 구국투사들의 영령을 위해 묵념할 것이다. 위기의 어둠이 깊을수록 그 길을 비추는 별빛은 더 밝게 빛나 보이게 마련이다.
오늘날 그 빛에 대한 새삼스런 각오는 잊혀져가는 마음 속의 충의(忠義)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 아닐까 한다. 그 그리움 한가운데 우리 가슴 속 깊은 곳엔 안중근 의사가 의연히 빛나고 있다. 올해는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와 집행이 이루어 진지 112년(1910년, 3, 15)이 되는 해이다.
1909년 10월 26일 오전 만주 하얼빈 역에서 그는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해 그의 비서관인 하얼빈 일본총영사 가와카미 도이시코와 비서관 모리 다이지로 만철이사 다나카 세이타로를 저격하고 "꼬레아 우라(대한제국 만세)!"를 외치며 체포되었다.
그런데 이들 중 안중근 의사에 의해 다리에 총상을 입은 다나카 세이타로는 훗날, 생전에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인물이 누구냐는 물음에 조금도 주저함 없이 '안중근'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일본의 영웅으로 추앙받던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고 자신까지 총상을 입힌 적(敵)을 가장 존경한다고 말한 그의 말은 언뜻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당시 다나카 세이타로는 총에 맞으면서 안중근 의사의 눈빛을 보았는데, 그 눈빛에 서린 강한 의기에 정신이 빼앗겨 다리에 총을 맞았다는 사실조차 잊을 정도였다고 한다.
다나카 세이타로의 말이다. "나는 당시 사건현장에서 10여 분간 안중근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가 총을 쏘고 의연(毅然)히 서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마치 신(神)을 보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광명처럼 빛나는 밝은 신(神)이었다. 그는 참으로 태연하고 늠름했다. 그같이 훌륭한 인물을 일찍이 본 적이 없다."
다나카 세이타로만이 아니라 안중근 의사가 여순감옥(旅順監獄)에 수감되어 사형될 때까지 지켜보았던 간수 치바 토시치의 이야기 또한 진한 감동을 전한다.
처음에 그는 증오로 가득 차 안중근 의사를 볼 때마다 욕하고 괴롭히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안중근은 그에게 차분한 어조로 "개인과 민족과 세계는 그 자체로 귀하고 한 울타리가 되어야 하오. 하지만 당신의 영웅은 이 울타리를 파괴하고 해체한 사람이오. 나는 세계평화를 위해 전범(戰犯)을 제거한 것 뿐이외다"라고 말했다.
순결하고 곧은 의지를 담은 이 짧은 말이 치바 토시치를 감동케 했고, 그 후로 치바 토시치는 안중근에게 '의사(義士)'라는 존칭을 썼으며 진심과 의리를 사이에 둔 국적을 넘은 우정을 나누게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이토 히로부미 저격의 배경에 대한 정당한 논리와 안중근 의사의 흔들림 없는 인품과 생사를 초월한 의연한 충의정신은 치바 도시치로 하여금 훗날 안중근 의사의 영정(影幀)을 모시고 명복을 빌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내에게는 자신이 죽은 후에 안중근 의사의 글씨를 소중히 간직하고 자신과 안중근 의사의 위패를 함께 모셔 조석으로 공양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남편의 유언을 받은 아내 기츠요는 1965년 74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남편의 유언을 그대로 이행했고, 1979년에 그들의 유족들이 안중근 의사 탄신 100주년에 그동안 가보(家寶)로 간직해온 안중근 의사의 글씨를 숭모회(崇慕會)에 전달했다.
안중근 의사는 사형집행 날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어머니가 보내준 순백의 명주 한복을 입고 기도를 올렸다. 그 한복에는 어머니의 편지가 함께 들어있었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日帝)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 즉 딴 마음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刑)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大義)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囚衣)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現世)에서 너와 재회(再會)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필자는 이 서신 내용을 보고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을 수 없었다. 안중군 의사와 더불어 참으로 장한 어머니이시기 때문이다. 그 어머니와 그 아들, 두 분 모두 살신성인(殺身成仁)의 표본이 될 분들이다.
사형 집행 시간이 다 되어 안중근 의사는 옥중 문을 나서다가 간수 치바 토시치에게 "전에 내게 부탁한 글씨를 지금 씁시다"라고 말했다. 치바 토시치는 안중근 의사의 죽음을 앞둔 그 순간 슬픔과 감격의 심정으로 비단과 필묵을 준비했다.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 나라를 위하여 몸을 바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다)'
안중근의 거사사건(擧事事件)으로 전 세계인들은 경악했고 안중근을 추앙(推仰)했다고 전한다. 왜 안 그렇겠는가. 구국의 열정이 살신성인(殺身成仁) 정신으로 승화되어 전 세계의 올바름을 추구하는 엘리트들에게 큰 감동을 불러왔는데 말이다.
우리는 안중군의사 외에도 유관순 열사처럼, 젊은 청춘을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수많은 의사(義士)와 열사(烈士)를 포함한 투사(鬪士), 지사(志士) 등 나라사랑의 선열(先烈)들이 많다는 것이 대한민국의 크나큰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다.
혹 지금 이 시간에 이와 반대로 위대한 선열은 까맣게 잊고 공휴일만 생각하고 여행과 먹거리로 즐기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하루 만이라도 살신성인(殺身成仁)을 한 번 생각했으면 한다.
'오대사(五代史)'의 '왕언장전(王彦章傳)'에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虎死留皮, 人死留名)"이라는 말이 있다. 나라사랑이 가장 가치 있는 마음의 밝은 빛이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殺(죽일 살/감할 살, 빠를 쇄, 맴 도는 모양 설, 윗사람 죽일 시)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갖은등글월문(殳; 치다, 날 없는 창)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杀(살)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杀(살; 나무와 풀을 베다)와 때려 잡는다는 殳(수)의 뜻이 합(合)하여 죽이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殺자는 '죽이다'나 '죽다', '없애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殺자는 杀(죽일 살)자와 殳(몽둥이 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杀자는 짐승의 목에 칼이 꽂혀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죽이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래서 본래 '죽이다'라는 뜻은 杀자가 먼저 쓰였었다. 소전에서는 여기에 殳(몽둥이 수)자가 더해지면서 '죽이다'라는 뜻을 더욱 사실적으로 묘사하게 되었다. 그래서 殺(살, 쇄, 설, 시)은 ①죽이다 ②죽다 ③없애다 ④지우다 ⑤감하다 ⑥얻다 ⑦어조사(語助辭) 그리고 ⓐ감하다(쇄) ⓑ내리다(쇄) ⓒ덜다(쇄) ⓓ심하다(정도가 지나치다)(쇄) ⓔ빠르다(쇄) ⓕ매우(쇄) ⓖ대단히(쇄) ⓗ맴 도는 모양(설) ⓘ윗사람 죽일(시)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죽일 도(屠), 윗사람 죽일 시(弑), 죽일 륙/육(戮), 다 죽일 섬(殲),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있을 존(存), 살 활(活), 있을 유(有), 날 생(生)이다. 용례로는 남의 생명을 해침을 살해(殺害), 사람을 죽이거나 상처를 입힘을 살상(殺傷), 사람을 죽임을 살인(殺人), 살해를 당함을 피살(被殺), 자기 목숨을 스스로 끊어서 죽음을 자살(自殺), 있는 것을 아주 없애버림을 말살(抹殺), 때려 죽임을 박살(樸殺), 남에게 당한 죽음을 타살(他殺), 죄다 죽임을 몰살(沒殺), 참혹하게 마구 무찔러 죽임을 학살(虐殺), 보고도 안 본 체, 듣고도 안 들은 체 내버려두고 문제 삼지 않음을 묵살(默殺), 얄망궃고 잔재미가 있는 말씨와 태도를 와살(瓦殺), 낙인을 지워 없앰을 쇄인(殺印), 세차게 몰려듦을 쇄도(殺到), 덜어서 적게 함을 감쇄(減殺), 몹시 괴롭힘을 뇌쇄(惱殺), 수습하여 결말을 지음을 수쇄(收殺), 등급을 아래로 낮춤을 강쇄(降殺), 몹시 놀람을 경쇄(驚殺), 자신의 몸을 죽여 인을 이룬다는 뜻으로 자기의 몸을 희생하여 옳은 도리를 행함을 일컫는 말을 살신성인(殺身成仁), 자기의 몸을 희생하여 절개를 세움을 일컫는 말을 살신입절(殺身立節),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된 화랑의 세속오계의 하나로 산 것을 죽일 때는 가려서 죽일 것을 이르는 말을 살생유택(殺生有擇), 죽여도 아깝지 않다는 뜻으로 죄가 매우 무거움을 이르는 말을 살지무석(殺之無惜), 무엇을 트집잡아 사람을 잔인하게 마구 죽이는 변고를 일컫는 말을 살육지변(殺戮之變), 음악에서 곡조가 거세고 급하여 무시무시한 느낌을 주는 소리를 일컫는 말을 살벌지성(殺伐之聲), 죽여도 아깝지 않다는 뜻으로 죄가 매우 무거움을 이르는 말을 살지무석(殺之無惜), 무엇을 트집잡아 사람을 잔인하게 마구 죽이는 폐단을 일컫는 말을 살육지폐(殺戮之弊),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권리를 일컫는 말을 살활지권(殺活之權), 살기가 얼굴에 잔뜩 올라 있음을 이르는 말을 살기등등(殺氣騰騰), 살기가 있어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살기담성(殺氣膽盛), 쇠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인다는 뜻으로 결점이나 흠을 고치려다 수단이 지나쳐 도리어 일을 그르침을 일컫는 말을 교각살우(矯角殺牛), 한 치밖에 안 되는 칼로 사람을 죽인다는 뜻으로 간단한 경구나 단어로 사람을 감동시킴 또는 사물의 급소를 찌름의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촌철살인(寸鐵殺人), 자기의 몸에 불을 질러 목숨을 스스로 끊음을 일컫는 말을 분신자살(焚身自殺),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인다는 뜻으로 남을 이용하여 사람을 해치는 음험한 수단을 이르는 말을 차도살인(借刀殺人),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는 뜻으로 거짓말도 되풀이 해 들으면 믿어버리게 된다는 말을 증삼살인(曾參殺人), 사람을 죽이기를 꾀하다가 이루지 못한 행위를 일컫는 말을 모살미수(謀殺未遂), 살리든지 죽이든지 마음대로 함 또는 제 마음대로 날뛰는 것을 이르는 말을 활살자재(活殺自在), 살리거나 죽이고 주거나 뺏는다는 뜻으로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생살여탈(生殺與奪) 등에 쓰인다.
▶️ 身(몸 신, 나라 이름 건)은 ❶상형문자이나 형성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아기를 가진 여자의 모습을 본뜬 글자로 몸을 뜻한다. 형성문자로 보면 人(인)과 申(신)의 합자(合字)인데 人(인)은 뜻을 나타내며 부수가 되고 申(신)이 발음을 담당하는 글자로 본 것이다. 부수(部首)로서는 몸에 관계가 있는 뜻을 나타낸다. ❷상형문자로 身자는 ‘몸’이나 ‘신체’를 뜻하는 글자이다. 身자의 갑골문을 보면 배가 볼록한 임신한 여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身자의 본래 의미는 ‘임신하다’였다. 身자에 아직도 ‘(아이를)배다’라는 뜻이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렇게 임신으로 배가 부른 여자를 그린 身자는 후에 ‘몸의 상태’나 ‘몸’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아이를 가진 여자는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 신경을 쓰게 된다는 의미가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身자는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관련된 글자는 없다. 그래서 身(신, 건)은 ①몸, 신체 ②줄기,주된 부분 ③나, 1인칭 대명사 ④자기, 자신 ⑤출신, 신분 ⑥몸소, 친히 ⑦나이 ⑧아이를 배다 ⑨체험하다 그리고 ⓐ나라의 이름(건) ⓑ건독(身毒; 인도의 옛이름)(건)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몸 기(己), 물건 물(物), 고기 육(肉),스스로 자(自), 몸 궁(躬), 몸 구(軀),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마음 심(心)이다. 용례로는 개인의 사회적인 지위 또는 계급을 신분(身分), 일신 상에 관한 일을 신상(身上), 일신 상의 처지와 형편을 신세(身世), 몸과 목숨을 신명(身命), 몸에 생긴 병을 신병(身病), 사람의 얼굴에 나타난 건강 상태의 빛을 신수(身手), 몸과 몸의 주위를 신변(身邊), 사람의 키를 신장(身長), 사람의 몸을 신체(身體), 제 몸으로 딴 말에 붙어서 딴 어떤 것도 아니고 그 스스로임을 강조할 때 쓰는 말을 자신(自身), 어떠한 행위나 현상에 상응하는 것이거나 그의 대가임을 나타내는 말을 대신(代身), 무슨 지방이나 학교나 직업 등으로부터 나온 신분을 출신(出身), 죽은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을 시신(屍身), 신명을 바쳐 일에 진력함을 헌신(獻身), 마음과 몸을 심신(心身),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몸가짐이나 행동을 처신(處身), 악을 물리치고 선을 북돋아서 마음과 행실을 바르게 닦아 수양함을 수신(修身), 몸을 움직임을 운신(運身), 몸을 불사르는 것을 분신(焚身), 모양을 바꾼 몸 또는 몸의 모양을 바꿈을 변신(變身), 사회에 나아가서 자기의 기반을 확립하여 출세함을 입신(立身), 온몸으로 열정을 쏟거나 정신을 집중하는 상태 또는 그때의 온몸을 혼신(渾身), 체면이나 명망을 망침을 만신(亡身), 집이 가난하여 종을 두지 못하고 몸소 종의 일까지 함을 신겸노복(身兼奴僕), 홀로 있는 몸이 아니고 세 식구라는 신겸처자(身兼妻子), 몸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신외무물(身外無物),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의 몸 전체를 신체발부(身體髮膚), 남에게 맡기지 아니하고 몸소 맡아함을 신친당지(身親當之), 몸과 태어난 땅은 하나라는 신토불이(身土不二) 등에 쓰인다.
▶️ 成(이룰 성)은 ❶형성문자이나 회의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뜻을 나타내는 창과(戈; 창, 무기)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丁(정,성)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음(音)을 나타내는 丁(정,성)은 나중에 변한 모양이며, 十(십; 모이다), 午(오; 다지다), 甲(갑; 덮다)이라 썼다. 戊(무)는 무기, 도구의 뜻을 나타낸다. 따라서 도구를 써서 사물을 만들다, 완성되다, 이루어지다의 뜻으로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成자는 ‘이루다’나 ‘갖추어지다’, ‘완성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成자는 戊(창 모)자와 丁(못 정)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戊자는 반달 모양의 날이 달린 창을 그린 것으로 ‘창’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창을 그린 戊자에 丁자가 더해진 成자는 본래는 ‘평정하다’라는 뜻으로 만들어졌었다. 여기서 말하는 ‘평정하다’라는 것은 적을 굴복시킨다는 의미이다. 成자는 후에 적을 굴복시켜 일을 마무리 지었다는 의미가 확대되면서 지금은 ‘이루다’나 ‘완성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成자에 쓰인 丁자는 유래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정→성’으로의 발음역할일 수도 있고 아니면 어떠한 일을 마무리하는 것을 못을 박는 행위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成(성)은 (1)황금(黃金)의 순도(純度)를 나타내는 말. 십성(十成)이 순금(純金)임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이루다 ②이루어지다 ③갖추어지다, 정리되다, 구비되다 ④살찌다, 비대해지다 ⑤우거지다, 무성해지다 ⑥익다, 성숙하다 ⑦일어나다, 흥기하다(세력이 왕성해지다) ⑧다스리다, 평정하다 ⑨나아가다, 진보하다 ⑩가지런하다 ⑪고르게 하다, 균평(均平)하게 하다 ⑫끝나다 ⑬정하여지다 ⑭기대하다 ⑮완성하다 ⑯어른이 되다, 성인(成人)이 되다 ⑰크다 ⑱층계지다 ⑲화해하다 ⑳정성(精誠) ㉑재판(裁判), 심판(審判) ㉒권형(權衡), 균형(均衡) ㉓총계(總計), 셈한 계산(計算) ㉔북두칠성(北斗七星)이 술의 방위(方位)를 가리키는 날 ㉕길제(吉祭: 죽은 지 27개월 만에 지내는 제사) ㉖사방 10리의 땅 ㉗층 ㉘참으로 ㉙큰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통할 통(通), 통달할 달(達)이 있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망할 망(亡), 패할 패(敗), 질 부(負)가 있다. 용례로는 사업이나 일을 한 결과로 얻은 실적 또는 학생들의 학업과 시험의 결과로 얻은 실적을 성적(成績), 초목의 열매가 충분히 여묾 또는 어떤 현상이 충분히 발전하여 무르익은 시기에 달함을 성숙(成熟), 뜻한 것이 이루어짐 또는 사회적 지위를 얻음을 성공(成功), 생물이 자라서 점점 커짐 또는 사물의 규모가 커짐을 성장(成長), 일의 이루어진 결과를 성과(成果), 목적대로 일을 이룸을 성취(成就), 화합물을 조성하는 각 원소 또는 하나의 문장을 구성하는 요소를 성분(成分), 성년이 됨 또는 성년이 된 사람을 성인(成人), 일을 이룸이나 일이 이루어짐을 성사(成事), 성공과 실패를 일컫는 말을 성패(成敗), 사물이 이루어짐을 성립(成立), 자랄 대로 다 자란 나이를 성년(成年), 외과적 수단으로 형체를 고치거나 만드는 것을 성형(成形), 다 자라서 생식 능력이 있는 곤충을 성충(成蟲), 다 발육하여서 생식 능력이 있는 성숙한 동물 또는 그 동물의 몸뚱이를 성체(成體), 말을 이룸이나 이루어진 말 또는 고인들이 만든 말을 성어(成語), 어떤 내용이나 계획이나 방침 등에 관한 초안이나 방안을 작성함을 성안(成案), 어떤 단체를 이루는 사람 또는 회의를 성립시키는 데 필요한 어원을 성원(成員), 샛길이 생긴다는 뜻으로 덕이 높은 사람은 자기 선전을 하지 않아도 자연히 흠모하는 이들이 모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성혜(成蹊), 여러 부분이나 요소들을 모아서 일정한 전체를 짜 이룸을 구성(構成), 옳다고 동의함을 찬성(贊成), 단지나 삼림이나 택지나 녹지 따위를 인공적 인위적으로 이루어 만드는 것 또는 분위기나 상황 따위를 생겨나게 만드는 것을 조성(造成), 엮어서 만드는 일 또는 조직하고 형성하는 일을 편성(編成), 뜻한 바 목적한 바를 이룸을 달성(達成), 어떠한 꼴을 이룸 또는 어떠한 꼴로 이루어짐을 형성(形成), 가르쳐서 유능한 사람을 길러 냄 또는 실력이나 역량 따위를 길러서 발전시킴을 양성(養成), 사람을 가르쳐서 기르는 것 또는 동물이나 식물을 길러 자라게 하는 것을 육성(育成), 어떤 사물을 완전히 이룸을 완성(完成), 두 가지 이상이 합하여 한 가지 상태를 이룸을 합성(合成), 단체를 조직하여 이룸을 결성(結成), 충분하게 이루어짐을 숙성(熟成), 나이는 어리지만 정신적이나 육체적 발육이 빨라 어른스러움을 숙성(夙成), 도와서 이루게 함 또는 힘이 되어 성공 시킴을 조성(助成), 사물이 생겨남이나 자라남 또는 사물이 일정한 상태에서 다른 것으로 변화함을 생성(生成), 크게 이룸이나 이루어짐 또는 큰 인물이 됨을 대성(大成), 사물이 이미 이루어짐 또는 어느 부문에서 이미 이름이 남을 기성(旣成), 다 이루지 못함 또는 아직 혼인한 어른이 되지 못함을 미성(未成), 늦게야 이루어짐을 만성(晩成), 빨리 이루어지거나 이룸을 속성(速成), 섞여서 이루어짐 또는 섞어서 만듦을 혼성(混成), 성공한 사람은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을 성공자퇴(成功者退), 성공과 실패가 판가름 나는 순간을 일컫는 말을 성패지기(成敗之機), 다른 사람의 훌륭하고 아름다운 점을 도와주어 더욱 빛나게 해 줌을 일컫는 말을 성인지미(成人之美), 여러 사람이 모여 패를 지어 무리를 이룸 또는 그 무리를 일컫는 말을 성군작당(成群作黨), 성공의 열매는 부지런함 속에 있다는 뜻을 일컫는 말을 성실재근(成實在勤), 일이 되고 안 됨은 오로지 천운에 달렸다는 말을 성사재천(成事在天), 옛날 있었던 일에서 만들어진 어구를 일컫는 말을 고사성어(故事成語), 아직 성년이 되지 못한 사람을 일컫는 말을 미성년자(未成年者), 발전의 규모나 속도가 높은 수준으로 성장함을 일컫는 말을 고도성장(高度成長), 대문 앞이 저자를 이룬다는 뜻으로 세도가나 부잣집 문 앞이 방문객으로 저자를 이루다시피 함을 이르는 말을 문전성시(門前成市), 자신의 몸을 죽여 인을 이룬다는 뜻으로 자기의 몸을 희생하여 옳은 도리를 행한다는 말을 살신성인(殺身成仁),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크게 될 인물은 오랜 공적을 쌓아 늦게 이루어짐 또는 만년이 되어 성공하는 일을 이룬다는 말을 대기만성(大器晩成), 세 사람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든다는 뜻으로 거짓말이라도 여러 사람이 말하면 남이 참말로 믿기 쉽다는 말을 삼인성호(三人成虎), 물려받은 재산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일가를 이룸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사업을 이룩하거나 큰 일을 이룸을 이르는 말을 자수성가(自手成家), 농담이나 실없이 한일이 나중에 진실로 한 것처럼 됨을 일컫는 말을 가롱성진(假弄成眞), 말이 하나의 일관된 논의로 되지 못함으로 말이 이치에 맞지 않음을 뜻하는 말을 어불성설(語不成說), 흙이 쌓여 산을 이룬다는 뜻으로 작은 것이 쌓여 큰 것이 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토적성산(土積成山), 여러 사람의 마음이 성을 이룬다는 뜻으로 뭇사람의 뜻이 일치하면 성과 같이 굳어짐을 이르는 말을 중심성성(衆心成城), 새의 깃이 덜 자라서 아직 날지 못한다는 뜻으로 사람이 성숙되지 못하고 아직 어림을 이르는 말을 모우미성(毛羽未成), 공을 이루었으면 몸은 후퇴한다는 뜻으로 성공을 이루고 그 공을 자랑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공성신퇴(功成身退) 등에 쓰인다.
▶️ 仁(어질 인)은 ❶형성문자로 忈(인)과 忎(인)은 고자(古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사람인변(亻=人; 사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二(이)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두 사람이 친하게 지냄을 뜻하는 데서 어질다의 뜻으로 쓰인다. 공자(孔子)가 특히 仁(인)을 도덕의 중심으로 삼은 후로는 자기에게는 엄하게 하지만 남에게는 어질게 하는 정신을 인(仁)이라고 설명한다. ❷회의문자로 仁자는 ‘어질다’나 ‘자애롭다’, ‘인자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仁자는 人(사람 인)자와 二(두 이)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仁자에 쓰인 二자는 ‘두 사람’이라는 뜻을 위해 쓰인 것이다. 仁자는 본래 두 사람이 친하게 지냄을 뜻했던 글자였다. 그러나 공자가 仁을 도덕의 중심으로 삼은 후부터는 인간의 근본적인 마음가짐을 대표하는 글자로 쓰이게 되었다. 그래서 仁(인)은 (1)공자가 주장한 유교의 도덕 이념, 또는 정치 이념 오상(五常)의 하나로 모든 덕의 기초로서 공자는 이것을 극기복례(克己復禮)라고 설명하고 일반적으로 사랑 또는 박애가 그 내용으로 됨. 천도(天道)가 발현하여 인이 되고, 이를 실천하면 만사 모두 조화, 발전된다는 사상임 (2)애정(愛情)을 타에 미침. 곧 어짐, 착함, 박애(博愛) (3)식물의 씨에서 껍질을 벗긴 배(胚), 배젖의 통틀어 일컬음 (4)세포(細胞)의 핵(核) 안에 있는 작은 구형(球形)의 구조. 핵 하나에 한 개 또는 몇 개 들어 있고 리보 핵산과 단백질을 함유하여 단백 합성을 하는 것으로 생각됨. 비교적 큰 입상체(粒狀體) (5)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어질다, 자애롭다, 인자하다 ②감각이 있다, 민감하다 ③사랑하다 ④불쌍히 여기다 ⑤어진 이, 현자(賢者) ⑥인, 어진 마음, 박애(博愛) ⑦자네 ⑧씨 ⑨과실(果實) 씨의 흰 알맹이, 속살,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사랑 자(慈), 어질 량/양(良), 어질 현(賢)이다. 용례로는 마음이 어진 사람을 인자(仁者), 어질고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인자(仁慈), 어진 임금을 인군(仁君), 타고난 성질이 어질고 착함을 인선(仁善), 인덕이 있고 수명이 긺을 인수(仁壽), 인덕의 감화를 인화(仁化), 어질고 후덕함을 인후(仁厚), 어진 덕을 인덕(仁德), 어질고 명철함을 인명(仁明), 인자스러운 마음을 인심(仁心), 어질고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인애(仁愛), 어질며 은혜가 있는 일을 인혜(仁惠), 어진 마음으로 사랑을 베풀어 구제함을 인휼(仁恤), 어진 것과 의로운 것을 인의(仁義), 어질고 덕망이 있는 성인을 인성(仁聖), 성질이 어질고 순함을 인순(仁順), 어질고 착하지 아니함을 불인(不仁), 너그럽고 어짊을 관인(寬仁), 어질다고 소문난 명성을 인문(仁聞), 친소의 차별없이 널리 평등하게 사랑하는 일을 동임(同仁), 복숭아씨의 알맹이를 도인(桃仁),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네 가지 마음가짐 곧 어짊과 의로움과 예의와 지혜를 인의예지(仁義禮智), 어진 사람은 널리 사람을 사랑하므로 천하에 적대할 사람이 없음을 인자무적(仁者無敵), 인과 의와의 도를 인의지도(仁義之道), 의를 위하여 나서는 어진 사람의 용기를 인자지용(仁者之勇), 어진 사람은 도리에 따라 행하고 양심에 거리낌이 없으므로 근심을 하지 않는다는 인자불우(仁者不憂), 인자는 의리에 만족하며 생각이 깊고 행동이 신중함이 산과 같으므로 자연히 산을 좋아한다는 인자요산(仁者樂山)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