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구두

[로이스]

빨간 구두

오늘 나는 장롱 속 깊이 누워있던 빨간 구두를 다시 한 번 신어 봤다. 도저히 신을 수 있는 용기는 아직도 없는데 분명히 내가 사온 내 구두임에는 틀림없다. 어떻게 해서든 거금을 치르고 가져온 빨간 구두가 신을 때마다 가슴 한 편이 서늘해지기도 한다. 살만큼 살아온 나이인데도 아직도 지혜롭지 못한 바보의 근성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이 마음을 억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며 칠 전 친구와 동네 근처에 있는 L백화점에 갔다. 눈으로만 구경하고 오자던 생각이 한 구두점 앞 에서 머뭇거리게 되었고 나중엔 들어가서 구두를 고르게 되었다. 평소에는 사기 어려운 명품구두를 반값으로 팔고 있다는 것에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했고 마침 신을만한 신발이 없었다. 여성이기를 포기한 신발이라느니 효도 신발이라느니 디자인이 산듯하게 예쁘진 않아도 편안하기만을 위해서 만든 신발이라고 한다. 몇 년 전에 나온 조금은 구식이 되어있다는 신발 몇 족만 남아있어 그것이 반 값 처리되고 있었다.
친구는 3켤레를 샀고 난 청색으로 한 켤레를 샀다. 반값이라 해도 쉽게 구입할 수 없는 고가다. 지금은 싸게 구입할 수 있는 신발들이 많아 오랫동안 그것에 길이 들여진 터라 조금은 부담이 가는 가격이지만 용기를 내어서 결정했다. 정말 편하긴 다른 어떤 것보다 편한데 마음은 그렇지 못 했다.

다음날 친구는 자기의 신 발 중 빨간색 구두를 반품시켜야 하니 같이 가잔다. 그 구두라면 너무 마음에 든다고 집에까지 신고 왔던 신발이다. 내 상식으로는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신어서 바닥에 흠집이 생겼고 한쪽 구석이 닳아있는데 반품을 시키겠단다.
마침 동생한테서 한 켤레 사다달라는 주문도 있고 해서 같이 갔다.
물론 점원 청년은 안 된다 펄쩍 뛰는 것이다. 신어서 닳아진 것을 반품 받으면 자기는 쫒겨날 뿐 아니라 자식이 둘이나 있는데 어떻게 하느냐 도리어 애걸하기까지 한다.
한참이나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데 도움이 된답시고
“아저씨 제가 한 켤레 더 살 테니 웬만하면 그렇게 해 주세요” 한 것이 조건이 되어 친구는 반품을 시켰고 나는 또 한 켤레를 샀다. 홀가분해서 좋아 라 하는 친구를 보면서 덩달아 내 마음도 좋았다.
그런데 그것이 홀가분하게 끝나지가 않았다. 동생역시 마음에 들지 않으니 반품하겠단다. 난 어제 어쩔 수없이 성사된 친구의 반품 행각이 눈앞을 어지럽게 현기증이 났다.. 당당하게 소리 지르는 친구 앞에서 생계를 들춰내면서 가련했던 그 점원청년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역시 내가 조건으로 샀기 때문에 반품이 안 된 단다. 또한번 그 젊은이 앞에서 우리의 무례함이 부끄러웠다.
내게 맞는 것은 빨간 구두 한 개밖에 없었고 여러 점포, 전국을 인터넷으로 물었어도 그것밖에 남아 있는 것은 없다고 한다.
그래서 빨간 구두가 내 것이 되었다. 한 켤레도 망 서렸던 내가 청색 빨강색 두 켤레의 구두를 사게 된 것이다. 물론 내게 그런 화려한 신발을 신고 나설 비위나 용기는 없다. 혹 가을철에 마음이 울적해져서 신게 될지는 모르겠다.
아무나 한쪽에서 손해를 감수해버리면 조용해진다는 진리가 여기에도 이렇게 적용될지는 몰랐다. 지금 그 빨강 구두는 장롱 속 깊은 곳에서 잠자고 있다. 언젠가 바깥 구경을 할 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가을이 되어 담장이 잎에 붉은 물이 드는 날 마음산란해진 주인 덕에 한 번쯤 바깥 구경을 할지도 모른다. 가만히 꺼내어 신어보면서 귀가에 스치는 70년대의 어느 가수의 노래를 듣고 있다.
“또옥또옥 오솔길에 빨간 구두아가씨
또옥 또옥 구둣소리 어딜가시나..
한번쯤 뒤돌아 볼만 도 한데 발소리만 외롭게 혼자서가네“ 확실한지는 모르지만 대충 이런 가사의 노래다.

혼자서 흥얼흥얼 그런대로 유쾌한 오후 다
벌써부터 가을의 소슬바람이 온몸으로 젖어든다. 그래도 은근히 올가을이 기다려지는 것은 왜일까!

[blue3456]

그렇게 막무가내로 이기적인 사람들이 또 어느 때는 한없이 선량한 얼굴로 베풂을 얘기하지요....^^; 자신의 이익 앞에서는 경우를 상실하는.....그 점원이 로이스님을 만나서 '다행'입니다. 로이스님의 빨강 구두가 궁금하네요. 출판기념회 때 신고 오세요. ^0^

[산수유]

신고 오세요. 빨간구두~~~ 또옥 또옥 구둣소리 빨간 구둣소리 .....내 귀에도 들리네요. 로이스니 임,

[지혜]

착한 로이스님, 자주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 나도 덕 좀 보고 살고 싶은데...

[화이트]

빨간 구두 신고 살포시 오세요. 누가 뭐랄까요???? 지는요 예쁘다는 쪽에 손들어 드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