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악의 자리에서 구원(救援)의 조건(條件)
요5:24절, 182.193.194장. 3927 Bible 말씀연구소 카페 박봉웅 목사.
죄 아래 머물고 있는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구원입니다. 아무리 호의 호식을 하고, 사회적 명성을 얻은 자라 할지라도 영혼의 구원을 얻지 못한 자라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이미 죽은 자요, 소망이 없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問題)는 우리가 어떻게 구원(救援)을 얻느냐는 것입니다.
인간(人間)이 아무리 애쓰고 노력(努力)해도 스스로를 구원시킬 수는 없습니다. 오직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 뿐입니다. 다만 인간은 구원의 역사를 주도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그분의 요구에 순응해야 할 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주도하시는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기 위해 우리는 과연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것을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죄(罪)의 회개(悔改)입니다. 행3:19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悔改)하고 돌이켜 너희 죄(罪)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1)지난 허물을 통회(痛悔) 자복(自服)해야 합니다. 초대교회(初代敎會) 당시 성령(聖靈)의 충만(充滿)함을 입은 사도 베드로는 수많은 심령(心靈)들을 향해 마치 불을 토해내듯이 복음(福音)을 전했습니다. 그때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마음이 찔려 도저히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베드로에게 자신(自身)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묻게 됩니다. 이때 베드로는 “회개(悔改)하고 죄(罪)에서 돌이키라”고 요구(要求)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救援)의 은혜(恩惠)를 덧입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죄(罪) 문제(問題)를 해결(解決)해야만 합니다.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모습으로 나아가 자신(自身)의 허물과 죄(罪)를 숨김없이 아뢰고 통회(痛悔) 자복(自服)해야만 합니다.(시51편).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참회(慙悔)자(者)의 심령(心靈)을 붙드시고 구원(救援)의 은총(恩寵)을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2)상(傷)한 심령(心靈)으로 회개(悔改)해야 합니다. 회개(悔改)는 단순히 입술의 고백(告白)이나 혹은 감정상의 후회(後悔)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진정(眞情)한 의미에서 참회라 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그 같은 얄팍한 후회의 감정은 하나님을 속이는 악한 행위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그 중심을 깊이 통찰하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회개를 이루기 위해서는 중심으로 통회해야만 합니다.
그러기에 자신(自身)의 죄로 인해 참회하던 다윗은 시51:17절에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祭祀)는 상한 심령(心靈)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 하시리이다."라고 찬미(讚美)한 바 있습니다.
2.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입니다. 요20:31절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1)자신(自身)을 의지(意志)하거나 자랑치 말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공생애 기간 동안 유대인들의 오만함을 누차 꾸짖으시고, 그들이 구원 얻지 못하는 일에 대한 경고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책망 받은 가장 큰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자신들은 의인이라는 교만한 생각과 자기 의에 가득한 마음 때문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종교적 열심을 자랑하거나 자신의 종교적 기득권을 내세우는 자는 결단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덧입을 수 없습니다. 건강(健康)한 자에게 의사(醫師)가 필요(必要) 없고 오직 연약(煉藥)하고 병든 자에게 의사(醫師)가 필요(必要)치 않는 법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교만(驕慢)하고 자고한 심령(心靈)은 결코 용납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약4:6절에 “그러나 더욱 큰 은혜(恩惠)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驕慢)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謙遜)한 자에게 은혜(恩惠)를 주신다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2)오직 예수를 구주로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를 덧입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이 마련하신 구원(救援)의 도리(道理)를 좇아야만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마련하신 구원(救援)의 도리(道理)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십자가(十字架)의 도입니다.
고전1:18절에 “십자가(十字架)의 도가 멸망(滅亡)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救援)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能力)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通)하지 않고서는 구원 얻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 같은 사실(事實)에 관해 다음과 같이 증거(證據)하고 있습니다.
행4: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정녕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의지할 때 우리는 구원을 얻고 천국의 영원한 기쁨에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14: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3.성결(聖潔)한 삶입니다. 롬8:12,13절에 “그러므로 형제(兄弟)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肉身)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靈)으로써 몸의 행실(行實)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했습니다.
1)옛 죄악(罪惡)된 삶을 청산(淸算)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救援)을 힘입기 위해서 우리 인간(人間)에게 반드시 요구(要求)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난 날 죄악(罪惡)된 옛 삶을 청산(淸算)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둡고 추하고 더러운 지난날의 죄악(罪惡)된 인생(人生)을 모두 떨쳐버리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엡5:5절에서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난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企業)을 얻지 못하리니"라고 가르친바 있습니다. 죄악에 찌든 옷을 입고서는 결단코 천국(天國)의 영광(榮光)스런 잔치(殘置)에 참여(參與)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2)거룩하고 경건(敬虔)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이 우리 각자에게 효과적으로 적용되기 위해서는 단지 지난날의 죄악(罪惡)된 옛 생활(生活)을 청산(淸算)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이 기대(期待)하시고 요구(要求)하시는 거룩하고 경건(敬虔)한 인생(人生)을 살아가는 자리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엡5:8절에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덧입고 구원의 주님을 모시고 살게 된 자는, 필연적으로 그 인격이 변하고 그 삶이 새롭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4.말씀을 정리(整理)합니다. 구원(救援)을 베푸시는 분은 분명(分明)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 구원(救援)에 대해 인간(人間)이 인격적(人格的)으로 반응(反應)하고, 그 삶의 변화(變化)를 통해 응답(應答)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救援)이 효과적(效果的)으로 적용(適用)될 수 는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救援)의 은혜(恩惠)를 덧입기 위해서는 자신(自身)의 모든 죄(罪)를 참회(慙悔) 자복(自服)하고, 오직 하나님이 요구(要求)하시는 거룩하고 온전한 인생(人生)을 새롭게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우리 각자(各自)에게는 구원(救援)받은 자로서의 변화(變化)의 흔적(痕迹)이 있어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청년부 여러분 ! 말로만 회개(悔改)하고 바르게 살겠다고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不足)하다는 것입니다. 진정(眞情)한 회개(悔改)는 생활(生活) 속에 변화(變化)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살았던 잘 못된 것은 이 시간 회개를 통해 용서를 빌고 신앙생활 자체가 변화가 되어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되어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아뢰는 기도의 제목마다 응답받아 간증하는 청년부의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