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죽으신 이유
지난가을에 몇 분 성도들과 여행하며 교제하던 중에, 한 분이 취미로 마라톤 동호회 활동을 하고 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코로나19 기간에 치과 의사인 아내가 먼저 그 클럽에 가입했고, 얼마 후에 본인도 합류했답니다. 그 형제님은 마라톤을 뛰면서 그토록 안 빠지던 뱃살도 쏙 들어갔고, 콜레스테롤과 혈압도 정상이 되었답니다. 그분은 지금처럼 단축 마라톤 단계에 머물지 않고, 기회가 되면 마라톤 풀 코스인 LA 마라톤과 보스턴 마라톤에도 참가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사실 명실상부한 마라톤은 단축(미니) 마라톤이 아니라 42.195Km 전체를 뛰는 풀 코스 마라톤일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하신 일이나 우리의 신앙 여정도 이 마라톤과 닮은 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적지 않은 분들이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를 구속, 즉 죄들을 용서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런 답변은 이를테면 위 ‘단축 마라톤’ 정도의 단계에 해당하나, 아침에 누린 아래 말씀은 그분께서 죽으신 더 전진된 이유를 제시합니다.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더 이상 자신을 향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대신하여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분을 향하여 살도록 하려는 것입니다(고후 5:15).
위 본문을 읽을 때, 우리가 거듭난 후에 자신이 아니라 주님을 향해 살아야 하는 이유가 주님께서 바로 이것을 위해 죽으셨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새로웠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향하여 산다는 것’(live to Him)이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는지를 좀 더 묵상해 보았습니다. 아래 내용은 그 결과입니다.
첫째, 누가 다른 이를 위해(향하여) 살고자 할 때, 제일 먼저 필요한 일은 그가 무엇을 하기 원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입니다. 한 예로, 공사장의 일용직 노동자는 작업 반장의 지시대로 일을 해야 합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이 땅에 보내어지신 일종의 ‘작업 반장’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그분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들어진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하여 “(장성한) 하나님의 아들들(휘오데시아)”로 만드시는 것입니다(엡 1:4-5).
둘째, 주 예수님의 죽음도 이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즉 그분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1) 죄와 2) 죄들과 3) 사탄과 4) 세상과 5) 옛 창조물과 6) 옛사람과 7) 규례들을 끝내셨고 8) 그분의 인성 안에 갇혀 있던 신성한 생명을 해방하셨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객관적이고 위치적인 ‘거룩과 흠이 없게 함(칭의)’은 그분의 죽으심으로 이미 성취되었습니다.
셋째, 그러나 우리가 주관적이고 체험적으로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되는 것은 주님께서 부활 후에 생명 주시는 영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영에서 혼으로 또 몸으로 자라가심으로 이뤄집니다(롬 8:10, 6, 11). 이것을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 부인과 영적인 생명이 자라게 하는 우리의 믿음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관련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 안에 있는 씻는 물로 교회(우리)를 깨끗이 하여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며”(엡 5:26).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거룩함에 동참하는 데 유익하도록 징계하십니다”(히 12:10). “여러분은 … 거룩하게 되도록 추구하십시오(14절). “여러분 자신도 모든 생활 방식에서 거룩하게 되십시오”(벧전 1:15)
넷째, 사도 바울은 위 말씀대로 살려고 자기에게 유익한 것, 심지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그리스도를 (더) 얻는 믿음의 경주(마라톤)를 했고, 마침내 그가 살아 있는 동안 경주를 완주했습니다(빌 3장, 딤후 4:7). 따라서 위 본문의 “주님을 향하여 산다”는 것은 한 마디로 말한다면 우리가 바울처럼 사는 것입니다.
이 글을 마치려 할 때, 조심스러우나 꼭 다뤄야 할 것만 같은 한 가지가 제 안에 부담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의 주류 교단이 성경 다음으로 존중하는 웨스트민스터소요리문답의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37. 신자가 죽을 때에 그리스도에게서 무슨 유익을 받습니까? 신자는 죽을 때에 그의 영혼이 완전히 거룩하게 되어 즉시 영광에 들어가고.” 아마도 이런 교리 때문에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새 찬송가, 606장)라는 찬송가 가사도 나오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만일 위 요리문답 내용 대로 신자가 죽는 순간에 완전히 거룩하게 된다면, 위 성경 본문이나 사도 바울처럼 살아 있는 동안 거룩하게 되기를 힘쓸 것이 아니라 차라리 믿은 후에 빨리 죽으면 된다는 역설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 비유는 장차 예비된 처녀들만 신랑과 함께 결혼 잔치에 들어가고, 어리석은 처녀들은 참여가 거부되니 깨어 있으라고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참고로 위의 결혼 잔치 참여가 거부된 처녀들이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8절)라고 말한 것을 볼 때, 그들은 불신자가 아닙니다. 불신자는 주님을 신랑으로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거듭나서 그들의 영에는 기름이 있었지만, 그들의 혼(생각, 감정, 의지) 안에 여분의 기름이 없었을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거듭난 후에 살아 있는 동안 우리의 혼 안에도 기름을 채우는 것이 어떤 봉사 보다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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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렇습니다. 죽음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그때에 지옥에 가서는 안 된다고 예수님이 반복해서 경고하셨습니다.
아마 예수님 가르침 중에 가장 많이 반복하신 말씀일 겁니다.
지옥에 가지 않는 방법을 여러가지로 표현할 수 있을 텐데, 그중 하나가 본문에 말씀하신대로 거룩하게 사는 것일 겁니다.
바울만이 아니라 성경의 많은 모델들이 있지요.
회원정보를 운영자 공개로 다시 변경해주시기 바랍니다.
잘 알겠습니다.~
방금 확인했는데, 이미 운영진 공개로 되어 있네요.
참고로 처음 가입 이후로 이 부분은 제가 다시 수정한 적이 없습니다.
@김바울7 답 주셔서 감사합니다. 방금 다시 확인했는데 역시 성별 나이 정보 없음으로 나옵니다. 가능하시면 조치 부탁드립니다.
@스콜라 제가 방금 확인한 내용입니다.
이미 운영진 공개로 되어 있습니다.
김바울7 (운영진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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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1 운영진 공개 운영진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