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의 평균 수명을 알아보던 크로스비 교수는 1917년의 연감을 뒤졌다. 약 51세였다. 다시 1919년 연감을 빼 들었다.
역시 약 51세였다. 이번에는 1918년 연감을 살펴 보았다. 평균 수명이 39세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수명이 50년 전 수준으로 떨어졌잖아."
문득 그것을 설명할 해답이 크로스비 교수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독감 대유행이었다.(독감/지나 콜라타·안정희 옮김)
세계보건기구(WHO)가 오늘 돼지 인플루엔자의 위험 경고 등급을 4단계에서 5단계로 한 단계 높였다.
전염병 대유행(판데믹·pandemic)이 임박했다는 뜻이다. 6단계가 곧 판데믹이다. 판데믹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대규모 집단 전염성 질병을 일컫는 말이다. 'pan'은 그리스어로 '모두'를 뜻하고 'demic'은 '사람'을 일컫는다.
모든 사람이 질병에 걸린다는 뜻이다. 독감에 의한 판데믹은 20세기 들어 모두 4차례 발생해 참혹한 기억으로 남았다.
1차 세계대전 마지막 해인 1918년 발생한 독감으로 전 세계 인구 3천만~4천만명이 숨졌다.
4년간의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 1천500만명의 배를 웃도는 수치였다. 우리나라도 그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조선총독부 통계연감에는 1918년 발생한 독감에 740만명이 감염되고, 그중 14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 세계적인 독감은 1957년 중국, 1968년에는 홍콩, 그리고 1977년 러시아에서 각각 발생해 대륙을 오가며
수십만~수백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미국 마운트시나이대학 에드윈 킬번 박사는 1976년 뉴욕타임스를 통해 대규모
유행성 독감의 주기가 대략 11년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전 세계를 휘젓는 범유행성 독감은 7과 8이 들어간 해가 될 때마다 온다는 설도 나돌았다.
올해는 연도의 마지막이 9로 끝나니 다행일까. 판데믹이 현실화되지 말아야 할 텐데.
이정호 논설위원 lee62@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