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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숙녀 시 모음 43 편
《1》
3월의 노래
천숙녀
겨우내
가난했던 침묵 지루하였지만
갈잎이 푸룬 물에 젖는 노래 들으며
수목의 혈관은 거침없이 터졌다
씨앗이 풀려 재잘거리는 골목을 풀고
야산을 풀고 동토마저 풀어
골짜기로 흐르는 물
그의 간지러운 목청까지 튼다
긴 잠 끝에 햇살 털고 일어서
무성하게 돋아나는 갈망의 몸짓
바람 만난 수목들은 어느새
여름 한마당의 황홀한 축제를 그리며
가슴을 태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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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뭄
천숙녀
쩍쩍 갈라진 논바닥은 간절하다
문설주 잡고 기대어선 목마른 아침 달
내 눈물
한 말쯤 쏟아
마른 논 적시고 싶다
지친 몸 헹구어서 푸르게 옷을 입고
헐벗은 맨발들이 고단하게 누워있다
세상 일
마음 돌리니
잔잔한 물무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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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을 빈손
천숙녀
말 한마디 못을 치면 빗장 문 닫아걸고
쓸쓸함이 저벅거려 퉁퉁 부운 발 시렸다
명치끝 투망에 걸려 억누르고 지내 온 날
엇갈린 생채기는 몽당몽당 잘라내고
다문 입술 여는 날엔 흐린 안개 풀어내며
울타리 봄빛 파랗게 물들이고 있는 오월
아직은 큼직한 삶의 무게 남아있어
격랑의 너울쯤은 짠 눈물로 삼키면서
마음 밭 파종하느라 빈 손 뿐인 가을걷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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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가을비
천숙녀
촉촉하게 내려주는 가을비를 맞으며
말갛게 얼굴 씻고 분바르는 무궁화
싱싱하게 물오른 목숨 투망질 하는 아침
무늬 걸치던 어깨 위 겉치레는 벗어놓고
보이지는 않아도 끊이지 않는 길 있으니
모래 늪 아득해 와도 끝내 홀로 걷는 오늘
흔들리다 기울어진 비탈에선 나무들도
풍우에 단련이 된 서로를 보듬으며
가을비 귀하게 받아 알뿌리에 저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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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가을아침
천숙녀
들녘의 풀잎들도 몸 눕히는 가을 아침
코로나 19 폭력에 발목까지 푹푹 빠져
입추에
익사해도 좋을
녹음 숲이 그립다
녹음 꽉 들어 찬 숲 찾아 길을 떠나
무뎌진 쟁기 날 세워 구석배미 도랑치고
물 물려 물꼬를 트고 다시 나를 일으켰다
마음 밭 갈아엎어 물들기 좋은 날에
눈감아 더욱 선명한 깊고 맑은 희망希望의 꽃
말갛게
꽃 물들이며
다복다복 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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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갈래 길
천숙녀
첫새벽 미명 속에 입술을 쏙 빼물고
오늘은 어느 방향 갈래 길 서성이면
풀벌레
울음소리가
수묵水墨처럼 번졌다
차분히 숨 고르며 적막을 우려내도
구겨진 종이처럼 쉬 펴지지 않겠지만
웃으며 너울을 넘는 순서를 기다리면
서두르면 더 엉키어 풀 수 없는 가닥들도
오늘일 잘못되면 수정하여 다시 한 번
현주소
수소문하여
나를 바로 검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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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건강한 인연
천숙녀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인연은 건강합니다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는 인연은 아름답습니다
누군가에게 꿈을 갖게 하는 인연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누군가에게 성장이 되게 하는 인연은 행복합니다
당신은 내게 건강한 인연입니다
한 치 혹은 두 치씩 성장이 되게 하는
행복한 인연입니다
갈증을 목 축이는 한 방울 이슬 같은 인연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쏟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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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고향 길
천숙녀
산등선으로 떠오르는 보름달 마중 간 다
두 손 모아 소원 빌고 소망쪽지 전할테다
맑은 빛 은은한 둘레 끼어있는 풀꽃반지
오늘만 같아 라는 팔월 보름 한가위
둥근 달 그 속에 형제들 마음 채워가니
동생들 움직이지 마라 큰형의 바람이다
햇볕을 가려주는 담장 밑에 쪼그려 앉아
흙으로 밥을 짓고 풀꽃으로 장국 끓이던
유년의 추억길이다 내가나를 만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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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고향 집
천숙녀
고향에서 맞는 아침 양치한 입안처럼
개운한 몸과 마음 들녘만큼 시원했다
구수한 탕국 냄새가 집 안 팍 그득하다
어제 밤엔 실타래 풀고 앉은 귀뚜라미
잠 속으로 들어간 귀 속에까지 따라와
꽉 막힌 귀를 뚫으며 노래를 들려줬다
구순의 시어머니 못 온 자식 언제 보냐며
백신 접종 두 번 맞은 인증 서류 꺼내셨다
여기는 괜찮다 시며 ‘맑은 공기에 코로나 죽어’
과즙 속으로 신선하게 익어가는 꿈이 있네
과실마다 터져 나오는 달디 단 내실의 맛
골고루 풍성해야 할 가을이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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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고향에서
천숙녀
팔월추석 한가위에 맏형 막내 가족들만
입은 꼭 다물고서 가슴으로 전해지는
서로의 비밀코드를 찾아 읽고 들어야했다
아기 타는 유모차를 밀면서 둘러보는
뒷밭에 큰 밤나무 토실한 알밤 줍는 일
고갯길 가을 정원을 가득 채워 놓았다며
‘뭔 놈의 세상이 일 년이 넘도록 고뿔이냐
길가에 자동차들이 꽉 차도록 오던 집에
마당 안 주차한 자동차 집마다 한두 대다’
마음속 상처들 허리 껴안고 재워주는
방마다 어머니 골수 줄줄이 누웠다가
비비추 싱싱한 꽃대를 쑥쑥 밀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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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공존
천숙녀
낮게 낮 게 흐르리라 강물처럼 여 여 히
나뭇가지 후려치니 떨구어져 뒹구는 잎
비 맞은 나무벤치가 푹 젖어 있는 몰골
멈춰선 발걸음 언제까지 제자리걸음일까
코로나 백신 만들어도 변이되는 되돌이표
새롭게 생겨난 이름 베타 델타 알파라고
상처 난 마음 갈피 흥건히 고인 핏물
은닉隱匿하는 육신들 헹굼으로 펼쳐 널고
흑싸리 껍데기 같은 허물쯤은 벗어야지
눈 뜬 채 묻혀있는 정신 줄 다시 세워
언제쯤 종식될지 몰라 치명 율 낮춰가며
속 깊은 많은 사연들 스스로 아물 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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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구월 오면
천숙녀
구김살 펴는 다듬이 소리 밤새 벽을 허물어도
얼마나 구겨졌는지 펴지지 않는 오늘
내 꿈은 잎 넓은 토란
무성한 푸름인데
이제 곧 구월 오면 가을이 익는 계절
빛 바랜 사진첩에서 꿈틀대며 살아나
움츠린 산하 휘젓는
자맥질로 뜨겁겠지
때로는 하얀 마음 치자 빛으로 물들이며
보자기 펼쳐놓고 퍼즐조각 맞추면서
내 몫의 푸른 기둥을
철주로 세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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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그루터기
천숙녀
막다른 골목길에 도시 불빛 다 꺼졌다
깊은 밤 어둠 지난 뒤 새벽이 내려왔다
온몸이
밤새 젖어도
천 갈래 길을 열자
남모르게 곪은 이력은 열판이 눌러준다
뚝 떠낸 그 자리 딱지로 아물기까지
손톱 밑
푸른 물때도
살아온 날 흔적이지
그루터기 모습에도 의연히 서있어 봐
해 저문 나를 불러 혼례를 올리잖아
깨어난
잠든 근육이
명함 한 장을 건네 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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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길
천숙녀
사람의 만남은 등산길이지요
정성으로
성심껏 만나다 보면 길
생기겠지만
만남의 노력에 수고를
더하고 곱하지 않으면
이미 잡풀이 돋아나
걸어온 길마저 덮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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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기다림
천숙녀
초점 잃은 시선, 방향을 잃은 촉각
노을에 밀려 무너져 독백으로 시끄럽다
너와나 유리벽에 부딪쳐 앓고 있는 몸살 중
찢긴 자유는 사하라사막 어느 사구砂丘에서
지금쯤 선인장으로 자라고 있을까
기억을 새롭게 빚는 오늘이란 숱한 허무虛無
뭉개져 몸을 다친, 돌아 휘돌아 저문 길
내 마음 말랑한 속내 편지글로 띄우니
밑창을 뚫고 오르며 타래로 푸는 말씀
늘 푸른 시작은 생기生氣 넘쳐야 사는 길
온 몸으로 받아들여 흔들리지 않는 뿌리로
꽃 물든 가슴을 열어 쨍쨍한 눈물 쏟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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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꽃단장
천숙녀
초점 잃은 시선 방향을 잃은 촉각
한 뼘씩 늘어나는 델타변이 확진 자 수
세상은 유리벽에 부딪쳐 앓고 있는 몸살 중
너무 얇은 생이었나 너무 얇아 터져 버린
푸른 살의殺意 몰매 맞아도 벌떡 다시 일어나는
명줄에 매달린 기도가 저 하늘에 닿았을까?
서산 해 지고 나면 처마 끝에 등불 걸고
명치끝 저리더라도 홀로 깨어 울지 마라
속엣 것 다 비워놓고 달빛 당겨 앉혀라
바싹 마른 풀 더미에 울컥 쏟는 달거리
피돌기가 선명한 초록 꿈 건지러간다
풀 섶에
얼굴 내 밀고
꽃단장 바쁜 쑥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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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꽃씨
천숙녀
꽃씨는
향기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멀리 더 멀리 날아가고 싶은 것이다
윙윙 울어대며
한사코 옷깃 속을 파고드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푸른 그늘을 움틔우려는
꽃씨들의 울음이었다
<바람 불어 좋은 날>
나도 그대에게 날아가는 꽃씨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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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나는 늘
천숙녀
철커덕 철커덕 씨줄과 날줄을 잇는다
침묵이 가슴으로 흐를 때 얇아지는 기억을 들춰
반쪽 잎
부비고 살자
뿌리 서로 옭아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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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나는 지금
천숙녀
삶의 이랑 지나오며 퍼렇게 멍울진 몸
젖은 땀 닦아주며 토닥이고 싶은 밤
밑둥치 뻥 뚫려
허리 꺾여 넘어질라
명치끝 저린 밤 이리 저리 뒤척이고
입안이 소태맛이다 떫은 감씹은 입맛 같은
육모 초 절여서 짜낸
약 한 사발 마셨으니
그어댄 부싯돌은 흐린 시계視界 틔울까
성근 그물 둘러메고 휘덮인 장막 걷어내는
붉은 꽃 인주를 꺼내
낙관落款을 찍는 새벽 3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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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낙엽
천숙녀
가을바람에 우수수지는 일몰日沒의 낙엽들
한 방울 수분까지도 다 쏟아 낸 나무의 살
고춧대 서리 푹 맞아 시들고 앉는 먹먹함도
절묘하게 박혀있던 간절한 토씨들이
세상이 쓰러지며 송두리째 쓸려버려
깊은 밤 들이쉬는 숨 뒤척이며 골몰汨沒이다
수분이 빠져나간 내 몸이 앙상토록
오랜 날 키운 열매 제 갈 길로 굴러가면
기꺼이 밑불 이었다 안으로만 여물인 다
오늘도 지나간 흔적 비빌 숲 열지 못해
묵묵히 찬 겨울 들어 나이테 감다보면
환절기 지나가겠지 아물던 딱지 떨어질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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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낮은 길
천숙녀
기웃거리지 말거라 달콤한 덫 근처에는
허공 길에 매 달려 아픔 먼저 돋아날라
그 눈물 다 지운 줄 알고 할 말 꾹 삼켜왔지
?
스무 계단 지하에도 아랫목은 있을 거야
아랫목 덥혀 놓고 맨발 잠시 묻어 두자
도닥인 숨결을 눕혀 한 숨 푹 잠들어봐
저마다의 골진 사연 구름처럼 밀려와도
흩어져 표류하는 시선들 붙잡으면
산 같은 정형의 법도 배워가며 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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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느티나무
천숙녀
오금한번 펴지 못해 충혈 된 눈 못 감아도
고비마다 불던 돌풍 맨몸으로 부딪히며
잎가지 넉넉히 피워 우화등선羽化登仙 꿈 키웠다
여름날엔 피서처 되어 딛는 걸음 주물리고
벼랑 끝에 와 있어도 낙원의 꿈 영글도록
그 자리 몫이지 싶어 여태껏 버티고서
멎은 숨 안으로 쉬며 눈감아도 보이는지
문 밖에서 앓는 세상 청대 같은 심경으로
몰골이 누렇게 떠도 혼 살라 불 지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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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달하나
천숙녀
목숨의 분량을 재며
한 줄 노래 부르는 여기
온 몸이 골다공증으로
턱뼈만 남아 삭아져도
묵정 밭
마음 언저리
달하나 심는 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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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당신의 당신이기에
천숙녀
당신은 누구시기에
이 가슴 한 구석을 비집고 들어와
지상의 나날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십니까
당신은 누구시기에
손길과 동공의 주시와 포옹까지도
함께이게 하십니까
당신은 누구시기에
하얀 속살 드러내 보이며 함께 먼 곳을 향해
준비하게 하십니까
당신이 누구냐고 묻는 이가 있다면
삶과 죽음까지도
함께하라 하신 말씀
기억하며 실행하는
하나뿐인 부부라고 얘기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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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독도수호 언택트 마라톤대회
천숙녀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변화한 문화생활
13회째 마라톤은 언택트 마라톤이다
런너들 원하는 대로 시간과 장소에서
?
2021년 11월 14일 오전 9시 출정식으로
송파잠실 주경기장에 내빈들만 초청하여
만나서 반가운 이들 눈인사만 나누고서
?
첫 해맞이 독도를 나들이 시켜놓고
독도사랑 5,4km 9시 30분 출발이다
오늘은 독도를 향해 걷거나 달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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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동반
천숙녀
춤을 출 때는 같이 나울거리고
땡볕에서는 같이 땀 흘리고
바람이 불 때에는 함께 시원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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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두엄
천숙녀
시골집 대문 밖에는
두엄자리 봉곳했다
짚과 풀 똥 오줌 부어
쇠스랑이 뒤집었다
태우고
섞히다 보면
씨알하나라도 틔울 수 있을까
☆★☆★☆★☆★☆★☆★☆★☆★☆★☆★☆★☆★
《28》
들꽃
천숙녀
들꽃이고 싶습니다
비바람 천둥 몰아치는 들녘이지만
다소곳이 피어
그대 달려오면 안길 수 있게
오직
그대 위해 미소짓는
오직
그대 위해 하늘거리는
우리강산
고운 들꽃이고 싶습니다
☆★☆★☆★☆★☆★☆★☆★☆★☆★☆★☆★☆★
《29》
등나무
천숙녀
뒤틀면서 꾀고 오른 등나무 손길 보아
밖으로 겉돌면서 십 수 년 지난 세월
아직은 푸른 바람에 실려 오는 등꽃 있다
지난 밤 가위눌린 사연들은 쓸고 싶어
뼈마디 성성하던 바람을 다스리며
덮어 둔 일상의 그늘 차일마저 실어 보냈다
☆★☆★☆★☆★☆★☆★☆★☆★☆★☆★☆★☆★
《30》
등불
천숙녀
산 둘러 병풍 치고
논 밭 두렁 거닐면서
고향집 앞마당에
남은 가을 풀고 싶다
속엣 것
다 비워놓고
달빛 당겨 앉히고 싶어
설핏 지는 해 걸음
고향집에 등불 걸고
밭고랑을 매면서
새벽 별도 만나고 싶다
콩나물
북어 국 끓여
시린 속도 달래가며
☆★☆★☆★☆★☆★☆★☆★☆★☆★☆★☆★☆★
《31》
또 하나의 거울
천숙녀
거울을 본 다 비친 얼굴 저 모습이 나다
여태껏 마주앉은 수많은 사람들 사이
누구는 아주 예쁘게
누구는 조금 예쁘게
누구는 또 하나 거울에 비춰진 모습이다
그들에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비췄을까
한쪽 눈 살짝 감는 다 투영되는 두 모습
입술을 칠하면서 식사를 하고 난 뒤
거울을 봐야하는 그들 중 하나인 나
우리들 마음 비추는 거울은 없을까
열 길 물 속보다 한 길 사람의 깊이
고운 마음 덜 고운 마음 차이를 비춰주는
소중한 사람사이를
아름답게 당겨주는
☆★☆★☆★☆★☆★☆★☆★☆★☆★☆★☆★☆★
《32》
맏형이 동생에게
천숙녀
추석에 고향가야지요?
시동생 목소리다
형제들 다 모이면 열두 명 이상 되니
추석엔 우리 부부만 고향 다녀 올 테다
한가위 둥근달은 휘영청 밝아 와도
하얗게 날 새운 신음 여태껏 앓고 있어
밤이면 강가에 나가 슬픔 헹구며 견디고 있다
코로나 전쟁 중이니 바깥출입 하지 말자
멈춰진 일상에는 다시 능선 일어나고
허망한 집집 마당에 불 밝힐 날 있을 거 다
걱정이 너무 많아 패이는 주름쯤은
닿아가는 관절처럼 깊어 가는 연륜年輪이다
달뜨는 살 부비면서
모여 살자 우리형제
☆★☆★☆★☆★☆★☆★☆★☆★☆★☆★☆★☆★
《33》
머리칼을 자르며
천숙녀
미장원엘 갔다 의자에 앉아 거울을 본다
풍파에 덕지덕지 묻은 욕심欲心이 나를 보네
뿌린 물
미세한 감촉이
이슬처럼 신선하다
미용사의 신중하고 능숙한 가위질은
편안한 상념 속으로 잠시여행 떠나는 일
한 올의 실낱 길에도 긴 사연을 줍는다
머리손질 끝났다 귀를 드러낸 쇼 커트
잡초처럼 무성하고 끈질겼던 욕심덩이
잘려진
머리칼에 엉켜
저희들끼리 밟고 선 다
다시는 달라붙지 못하도록 발끝에 주는 힘
단정한 모습으로 거울 속에 서성이는
배시시 웃던 웃음소리 파문으로 퍼지는 날
☆★☆★☆★☆★☆★☆★☆★☆★☆★☆★☆★☆★
《34》
메타버스 플랫폼
천숙녀
선택한 미래의 기회 내일로 떠나는 길
가슴에서 울어나는 빛의 팬덤 디자인하자
따뜻이 심장 달구는
메타버스 플랫폼 안
뜨겁던 광복의 횃불 희미하게 떠올라
팬덤을 만드는 힘 대한의 모습 그려보면
BTS 세운 탑들이
공감문화로 우뚝하다
실크로드 찾아다녀도 실크로드는 Korea팬덤
점 잇는 도미노현상에 심성心性을 차곡 쌓아
결집된 탄탄한 열정
뉴노멀 비대면 시대
☆★☆★☆★☆★☆★☆★☆★☆★☆★☆★☆★☆★
《35》
무도회舞蹈會
천숙녀
거울에 비친 저 모습 세상사 춤판이다
눈만 빼 꼼 내 놓고 가면을 둘러쓰고
모두가 허우적이며 흔들고 있는 팔다리
얼얼한 날들 속에 더듬이 없이 더듬이며
촉각으로 교신해야하는 암흑시대 사는 오늘
한바탕 벌이는 축제 지나온 날 넋두린가
아프고도 서럽게 풀어내는 몸짓보아
갈 곳 잃은 충혈 된 눈 바닥에 던져지고
천천히 어둠속으로 스며드는 이야기 꽃
☆★☆★☆★☆★☆★☆★☆★☆★☆★☆★☆★☆★
《36》
무탈
천숙녀
날금과 씨금을 묶어 이엉으로 엮어가던
부암리 고향집 향해 푸른 폐 일렁이던
불끈 쥔 두 손은 어디, 묵직한 채 누워있다
두 손을 결연히 잡고 푸른 꿈 수를 놓고
산이 산의 어깨를 잡고 문경새재 넘나들던
우리의 튼실한 울타리 쌓던 담장 멈추었다
주말이면 달려가던 고향 길 접어두고
부모형제 만나지 못해 전화로 안부 묻고
외출도 삼가 해야지 확진자수 1,841명이니
오늘은 신축 년辛丑年 음력칠월 스무하루
지축 울리는 저 소리 황소울음 섞여있어
무탈히 해 뜨고 저물어 하룻길 평안하길
☆★☆★☆★☆★☆★☆★☆★☆★☆★☆★☆★☆★
《37》
묵정밭
천숙녀
옹벽擁壁도 금이 갔고 집은 반쯤 기울어져
내부수리에 들어간 녹아 난 가슴이다
아픈곳 제대로 짚어도 거푸집 차양 치고
어둠의 덫을 열어 몇 점 얼룩만 남겨지길
새 터에 집 짓는 일, 화전민 터 찾아 나선
뒤꿈치 발 시리다고 앙탈부리는 나를 본다
내려놓고 비운 삶 어둠을 걷고 나와
아픈 내부 지켜보다 빈 가지로 올랐지만
목숨은 어디에서나 용수철로 사는 거다
갈퀴 손 훈장으로 햇빛으로 쏟아진 날
묵정밭 일구어서 씨 뿌리고 모종하자
바람도 멈춘 시간 깨워 태엽을 감아준다
☆★☆★☆★☆★☆★☆★☆★☆★☆★☆★☆★☆★
《38》
바닥보기
천숙녀
몸뚱이가 바닥인 넙치 도다리 가오리처럼
바닥만을 고집해야 하루 삶이 무탈하지
후리질
끌어올리면
하얀 배가 눈부시다
오늘하루 버겁다고 깊디깊은 한숨은
내쉬지 말아야해 너나 모두 캄캄해도
바닥만
더듬어 사는
밑바닥생명도 귀한 거야
☆★☆★☆★☆★☆★☆★☆★☆★☆★☆★☆★☆★
《39》
벌거숭이
천숙녀
단풍 한 잎도 짐스럽다 떨구어 내려놓고
할퀴면 할퀸 대로 무언속 의젓했던
채워진 족쇄발목을 쓰다듬는 두 손에게
곪아도 너의 삶이 너무 곪아 터졌으니
어둠 속 지나야만 신 새벽 열릴 거다
언제쯤 새살 돋을까 설렘 안고 기다리자
임기가 끝났으니 소임所任은 다 하였다
미련은 떨구어라 머뭇거리지 말거라
한 계절 조용히 엎디어 숙면 속에 드는 거다
☆★☆★☆★☆★☆★☆★☆★☆★☆★☆★☆★☆★
《40》
벼랑에서
천숙녀
옷고름 풀어 헤치며 빈 가슴을 뒤집는다
벼랑 끝 여기에 서면 무엇이 보일까
마음 다 비우고 나면 벼랑 끝도 안전지대다
비워 내기 비워 내기 비워내기 읊으면서
발길 뜸한 모퉁이 돌아 감긴 세월 풀어 본다
무너진 가슴 켜켜이 탑塔 하나 쌓으면서
☆★☆★☆★☆★☆★☆★☆★☆★☆★☆★☆★☆★
《41》
벽화
천숙녀
큰산을 오르다보면 계곡이 깊어지듯
추석 여파 확산으로 최다 기록 2,300명
코로나 직격탄으로 두 발이 부르트고
이름 모를 수레에 실려 어디로 가는 걸까
땅 밑도 들썩이더니 공기마저 사나워져
아물지 않은 딱지를 자꾸만 뜯고 있다
마음 밭 서성이던 좌표 따라 내딛는 발
강토에 뜨거운 기온 표적(表迹)을 남겨놓고
발자국
짙푸른 인연
벽화로 안고 있다
☆★☆★☆★☆★☆★☆★☆★☆★☆★☆★☆★☆★
《42》
별자리
천숙녀
누구나 태어나면서 저마다의 별자리 하나
고귀하게 받는 선물 받은 이의 몫이라고
만나는 인연 마다에 끈을 이어 엮어 간다
인문人文은 사람의 마음 결 품은 무늬 살펴보기
젊은 날 내 영혼은 어디쯤 물들고 있는지
심장을 일으키는 파문 아랫목이 그립다
사랑의 홀씨 되어 가도 가도 끝이 없어
오지랖 넓은 치마를 둥글게 펼쳐놓고
숨 가쁜 오늘 일들은 잠시만 묻어두자
코로나 팬데믹(pendemic)에 살고 있는 오늘 날
단절된 외벽아래 홀로 누워 잠들어도
별 자리 북두칠성으로 반짝이고 싶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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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복수초
천숙녀
무던히 소란하던
즈믄 해 잔치 끝
뿌리를 못살게 군
모진 바람 폭풍한설
이른 봄
잔설 헤집고
피어나렴, 복수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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