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여름이라 일찍 깨면 습관적으로 컴을 켜서 뉴스읽고는 이곳 카페등을 검색합니다.
최근 며칠간은 약산님과 논쟁도 이어지고,,,
지금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태극기 게양 협조방송이 나오네요! 저는 일찍 게양했는데,,,
태극기 게양이 애국의 척도는 아니지만 몇집 안하더군요. 어릴적 풍경하고는 큰 변화!
지금의 세태입니다. 국가주의에 반대라기 보다는 무관심입니다.
온고지신의 마음으로 이곳 족보연구소 카페를 방문하시는 회원님들은 역사를 공부하고, 전통 문화를 계승하시려는 뜻 일겁니다.
족보? 보학? 연구할 수록 의문투성입니다.
그러나 폄하해서는 안될 우리민족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특히 안동권씨 성화보와 문화류씨 가정보는 세계기록유산급이지요~
족보란 자기 선조를 현창하고 숭상하려는 후손들의 고귀한 기록입니다.
간혹 믿기 어려운 기록들이 발견되지만 이해하려 합니다.
족보와 성씨에 비판적인 분들은 무슨 김씨가 천만명이며 그중 절반 가까이가 김해김씨냐? 공격적인 언사들을 합니다.
심지어 1894년 갑오개혁의 사노비 해방 이후에 대거 들어왔다는 등,일제시대에 가짜 족보 만들어 투탁했다는 등등.
그런 분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건 김씨만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성씨 문중이나 자유롭지 못합니다.
1637년 인조임금이 청나라에 무릅을 끊고 반식민지 상태라,
남한산성에서 호종한 분들을 정식으로 훈공은 못하고 대규모 무과급제를 실시하여 작게 나마 보상을 해줍니다.
그 인원의 기록이 다행히 남아 있어 당시의 성씨 현황을 알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평민(심지어 면천까지도) 신분의 합격자들도 모두(5506명) '성씨와 본관'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1637년 즈음에 이미 대부분의 인구가 '성씨와 본관'을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양반, 중인, 상민, 면천 등 모든 계층이 섞여있는 이 산성무과의 입격자들이
가진 성씨를 조사해보면 오늘날의 성씨 인구와 상당히 유사한 구성을 보인다.
<인조 15년 무과 합격자 배출 상위 5대 성씨>
김(金) 1252 명 (22.7%) 2000년 현재 김씨 인구 21.6%
이(李) 793 명 (14.4%) 2000년 현재 이씨 인구 14.8%
박(朴) 462 명 (8.4%) 2000년 현재 박씨 인구 8.6%
최(崔) 336 명 (6.1%) 2000년 현재 최씨 인구 4.7%
정(鄭) 179 명 (3.3%) 2000년 현재 정씨 인구 4.4%
한(韓) 132 명 장(張) 121 명 안(安) 120 명 조(趙) 108 명 강(姜) 107 명
홍(洪) 91 명 윤(尹) 81 명 서(徐) 80 명 오(吳) 79 명 신(申) 76 명
임(林) 73 명 송(宋) 67 명 황(黃) 64 명 백(白) 53 명 전(全) 52 명
고(高) 51 명 유(劉) 49 명 양(梁) 48 명 차(車) 47 명 유(柳) 47 명
문(文) 39 명 엄(嚴) 39 명 지(池) 38 명 허(許) 38 명 손(孫) 35 명
권(權) 35 명 조(曺) 35 명 유(兪) 31 명 현(玄) 29 명 심(沈) 27 명
원(元) 26 명 임(任) 25 명 방(方) 24 명 배(裵) 24 명 노(盧) 24 명
하(河) 22 명 함(咸) 21 명 나(羅) 20 명 남(南) 19 명 전(田) 19 명
1630년대에 이미 대부분의 중인과 상민도 성씨가 있었고,
그 인구 비율은 현재의 인구와 비교적 높은 상관성을 보인다.
<인조 15년 무과 합격자 다수 배출 성관>
김해김 390 명 (7.08%)
밀양박 265 명 (4.81%)
경주김 191 명 (3.47%)
전주이 168 명 청주한 89 명 광주이 86 명 (廣州)
경주이 85 명 진주강 84 명 남양홍 75 명 수원최 67 명 수원김 58 명
경주최 51 명 광산김 46 명 순흥안 43 명 안동권 34 명 영월엄 34 명
전주최 31 명 전주김 30 명 파평윤 30 명 평산신 30 명 제주고 29 명
충주지 28 명 해주오 28 명 경주정 27 명 廣州김 27 명 문화류 25 명
남원梁 23 명 안동김 22 명 원주원 22 명 김화김 21 명 선산김 18 명
용인이 18 명 해주최 18 명 의성김 18 명 밀양김 17 명 밀양손 17 명
수원차 17 명 이천서 17 명 진주하 17 명 나주김 16 명 청송심 16 명
초계정 16 명 나주나 15 명 창녕조 15 명 청주김 15 명 등
1위는 김해 김씨 390명, 2위 밀양 박씨 265명 (현재 인구 구성도 1,2위이며 조선시대 정승 한명만 배출했다는 공통점)
1801년 공노비 해방,1894년 사노비 해방과 관련없이 최소한 1637년부터 지금의 성씨 인구구성과 별 차이가 없다는 증거입니다.
1605년 발급된 선무원종공신 녹권도 8954명중 성씨가 없는 천민층이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씨가 1571명으로 압도적입니다.
문제는 녹권에 김막동金莫同이란 분이 여덟명이나 되고, 무과방목에도 김돌쇠,김구두쇠란 특이한 성명이 있는데 족보상에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실록에도 기록된 유명 인물에게 본관까지 다른 후손들이 공존한다는 것은 잘못 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우선 두분을(호성공신 분성군) 먼저 거론하여 제가 속한 김해김문에서부터 정리하고 수정할 계획입니다.
해당 문중분들에게 알려주고 동일인,동명이인 여부를 최종 판단하게 하고 다음 족보 발간부터 시정하면 됩니다.
그러나 백촌의 문제는 사육신 논쟁과 연결되어 있고 쉽지 않을 듯 합니다.
사육신 논쟁은 몇달전 호기심 차원에서 수호회 카페를 방문했다가 듣도 보도 못한 내용들을 읽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표현이 거친 글들은 옮기지도 못하겠더군요!
표현상의 문제만 아니라면 충분히 수긍가는 내용도 많았습니다.
약산님을 비롯한 후손들이 상처를 받을수도 있습니다.
청와대 홍보수석이었던 조기숙교수~ 동학혁명의 시발 원흉이었던 고부군수 조병갑의 증손녀,
대권까지 꿈꾸었던 신기남 국회의원은 일제헌병 오장의 아들로 그들을 지지했던 진보세력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분들은 역사적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백촌은 그냥 삼중신으로 계셨으면 지금도 추앙받고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겁니다.
어떻게든 사육신에 포함시키려는 후손들의 욕심으로, 563년전 사생활까지 파헤쳐져 선데이서울류의 기록들이 난무합니다.
엄연히 사육신인데 수백년만에 바꿀려 하니 유응부장군 후손들이,
무덤이 없어졌다는 성승장군 후손들이 가만히 당하겠습니까?
이백년 안된 족보는 믿을 수 없다는 주장도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더구나 충신의 후손에서 관노로 전락되어 (여자들은 권신들의 사노가 되기도) 수백년간 묻혔다가,
신원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오래된 족보도 없는 집안에서는 더더욱 말입니다.
분자인류학논단이란 카페가 있어 자주 방문합니다.
15만원~20만원 내고 검사하면 수천년전 부계하플로까지 분석되더군요!
남한만 오백만명의 김해김씨, 허씨, 인천이씨가 수로왕후손인지 아닌지 모두 유전자 검사해야 될까요?
저만의 결론이 있습니다.
종가의 정통성을 인정해주는 정도에서, 족보에 등재되어 있고 시제에 참제하시는 분들이 진정한 후손입니다.
설녕 생물학적으로 진짜 후손이라 하드라도 족보에도 없고 제사 한번도 안 온 사람들은 의미가 없습니다.
세태는 변했지만 아직도 온고지신과 숭조사상으로 이곳 카페를 방문하신 분들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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