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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올려요. 스크랩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 전혜린
귀여운 여인 추천 0 조회 22 11.03.22 08:57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1965.1.8

몹시 괴로워지거든 어느 일요일에 죽어버리자.
그때 당신이 돌아온다해도 나는 이미 살아있지 않으리라.
당신의 여인이여, 무서워할 것은 없노라.
다시는 당신을 볼 수 없을 지라도 나의 혼은 당신과 함께 있노라.
다시 사랑하면서 촛불은 거세게 희망과도 같이 타오르고 있으리라.
당신을 보기위해 나의 눈은 멍하니 떠 있을지도 모른다.


무제

모든 것은 그렇게 무의미하다.
나는 내 자신과 분노를 중요시해서는 안 된다.
나는 어느 책으로 인해 죽지 않는다. 그러나 누가 알겠는가.
바로 이와 같은 무의미한 감정으로 인해 헐값으로 죽을지도 모른다.
나는 죽음조차도 기뻐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여러 번 그것을 갈망했다.
모든 것이 그렇게 무의미하고 진부하기 때문에..


어떤 날

나의 운명이 고독이라면,
그렇다, 그것도 좋다.
이 거대한 도회의 기구 속에서
나는 허무를 뼛속까지 씹어보자.
몇 번씩 몇 번씩
나는 죽고 죽음 속에서,
또 새로운 누에게 눈뜨듯
또 한번,
또 한번!
하면서
나는 고쳐 사는 것이다.
다시 더!
하고 소리치며
나는 웃고 다시 사는 것이다.
과거는 그림자 같은 것, 창백한 것,
본질은 나이고
현실은, 태양은 나인 것이다.
모든 것은 나의 분신,
자아의 반사에 불과했던 것이다.

저녁 기도


조용하거라, 공포여, 고통이여.
곧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다.
눈만 감고 가만히 있으면
너는 반드시 가루가 되어 부서질 터이니,
기다리거라, 분노여, 불안이여.
세계가 끝났다고 네가 생각하는 날,

참으로 끝나는 것은 다만 너의
작디작은 심장의 움직임뿐일 것이니,
나를 떠나거라, 애정이여, 동정이여.
네가 집착한 온갖 대상은
손가락으로 흘러 떨어지는 모래보다
더 순간만의 것이고 더 무(無)인 것이니,
잠자자, 내 감각, 내 피부......
우주의, 신의, 사람들의 고통을
인공적으로라도 덜 느낄 수 있도록!




마치 현실에서의
나의 무용성(無用性)을
반증하려고
내 잠재 의식이
기를 쓰고 활동하는 것같이
내 수면은 반드시 꿈을,
그것도 특이한,찬란한,
무서운, 달콤한, 뜻밖의,
무수한 에피소드를 담은
총 천연색 대형 스크린의 꿈을,
수반하는 것이다.


대상에의 기도

앞으로 네가 있을지 나는 모른다.
다만 네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나는 너의 존재를 알고 있고, 내가
너의 존재에 무한한 감사를 빚지고 있음을
네가 있었으므로 해서 알고 있는 것이다.




나르시스가 죽은 뒤, 님프들처럼,
당신이 없음을,
없는 존재 세계의 무목적성과
절망을 견디지 못하고 머리를 풀고 울며 외친다.
우리는(신이여! 신이여!) 심연에서부터,
신이여, 우리를
이 뼈를 깎는 공포로부터 놓여 나게 해 주실 수 있는 유일한 신이여.
당신이 없다면 우리는 옛날에
기절했을 것입니다.


그리움


거리만이 그리움을 낳는 건 아니다.
아무리 네가 가까이 있어도 너는
충분히, 실컷 가깝지 않았었다.
더욱 더욱 가깝게, 거리만이
아니라 모든 게, 의식까지도 가깝게
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움은.


배반

내 눈처럼 마음속처럼
암담했던 저녁
내 생각은 줄달음질쳤다.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없다.'
기정 사실인데도
'그럴 리가 없다.'
확증된 일인데도
'그럴 리가 없다.'
그때 나는 내 의식이
내 옆에서 소리를 죽이면서
우는 것을 들었던 것이다.
어떤 저녁에.



형제

너희도 나를 선택하지 않았고,
나도 너희를 선택하지 않았고,
내 부모도 우리를,
우리도 부모를 각각 선택하지 않았다.
단편적인,
엄연한 사실만의 집합체가 우리다.
체계 없는......아마 의미도!
그럼 누가 우리를 모아 놓은 것인가?
묻지를 말라.



무제

정말로,
'이 무서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허공에 꽃씨를 뿌리듯
내 속에서 번식하는 의식.'
'한 사람 한 사람씩
커다란 죽음 앞에 향불을 피워 놓고
얼굴을 가리고 돌아서는 것은 왠일일까?'
'땅에서 하늘로 뚫린 비밀의 운하엔
지금은 물이 없고
물이 차기엔
만 년을, 억 년을 기다려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무제

몇 방울의 알코올......
그리고 내 세계는 새로워진다.
확 트이는 지평선, 흰 새벽, 닭 우는 소리,
솟아 흐르는 샘의 물소리로 그것은 가득 채워진다.
갑자기 눈이 부시도록 강렬하게 내 시야에 들어오는 녹음, 대낮.
나는 나와 전 세계에 악수를 한다.
아무것도 나에게 불만이 없다.
마치 이 새 주정(酒精)을 담는 주머니가 낡은 것임을 잊은 듯.
아무 어둠도, 회의도 없이 피어나는 마음의 오후다.



밤안개

밤안개가 가득히 흐르는 밤거리
밤이 새도록 가득히 무심한 밤안개
님 생각에 그림자 찾아 헤매는 마음
밤이 새도록 가득히
하염없이 간다.
님 생각에 그림자 찾아
헤매는 마음
밤이 새도록 하염 없이
나는 간다.



스리나


희고 작은 알약을 먹는다
30분
아무 일도 없다
30분
정신에 불이 켜진 듯
내면 생활이 휘황찬란해지고
신경이 끝까지 확 깬다
위트,에스프리,아이러니
......더 있으면 더 주문해라
얼마든지 튀어나오니까!
보통 때의 내가 아니니까!

30분
어쩐지 좀 이상하다

30분
손이 무겁다
팔이, 목이, 머리가
눈이,
아, 전등이 부셔서
눈이 아프다
불을 끄자



볼가강..루안드레아스 살로메


너 비록 멀리 있어도 난 너를 볼 수 있다.
너 비록 멀리 있어도 넌 내게 머물러 있다.
표백될 수 없는 현재처럼, 나의 풍경(風景)처럼,
내 생명을 감싸고 있구나.
네 기슭에서 내 한번도 쉬지 않았더라도
네 광막함을 난 알 것만 같다.
꿈결(Traumeflut)은 항상 네 거대한 고독에
날 상륙시킬 것만 같다.
울기는 쉽지..루이스 훼른베르크
울기는 쉽지, 눈물을 흘리기야
날아서 달아나는 시간처럼 쉽지.
그러나 웃기는 어려운 것.
찢어지는 가슴 속에 웃음을 짓고
이를 꼭꼭 악물고
그리고 돌과 먼지와 벽돌 조각과
끝없이 넘쳐나는 눈물의 바다 속에서
웃음 짓고 믿으며
우리가 짓는 집에 방을 만들어 나가면,
그리고 남을 믿으면,
주위에서 지옥은 사라진다.
웃음은 어려운 것.
그러나 웃음은 삶.
그리고 우리의 삶은 그처럼 위대한 것.



무제..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모든 일에서
극단에까지 가고 싶다.
일에서나, 길에서나,
마음의 혼란에서나.
재빠른 나날의 핵심에까지
그것들의 원인과
근원과 뿌리
본질에까지.
운명과 우연의 끈을 항상 잡고서
살고, 생각하고, 느끼고, 사랑하고,
발견하고 싶다.
아, 만약 부분적으로라도
나에게 그것이 가능하다면
나는 여덟 줄의 시를 쓰겠네.
정열의 본질에 대해서
오만과 원죄에 대해서
도주나 박해,
사업상의 우연과
척골(尺骨 Elle)과 손에 대해서도.
그것들의 법칙을 나는 찾아 내겠네.
그 본질과
이니셜(Initial)을
나는 다시금 반복하겠네.

 

 

 

무제..파스테르나크

나는 망실(忘失)되었다.
우리 안의 한 마리 야수처럼
어딘가에 있을 인간과 자유와 빛
내 뒤에는 추적자가 고함을 지르고
내 출구(出口)는 봉쇄되었다.



이별의시..마야코프스키

사람들이 말하듯
사건은 끝났다.
사랑의 범선(帆船)은
인생에 좌초(坐礁)했다.
인생에 아무런 책임도 묻지 말자.
하나 하나 헤기엔
너무도 많아
고뇌와
고통,
존재의 괴로움......
안녕히!


무제..막스 르네 헤세

피와 본능과 뜨거운 생식을
우리는 심각하게 검은 모성에 맡기자
그리고 무리들의 혼돈한 탄생 앞에
다만 외경(畏敬)의 마음을 안고 머리 숙이자.
그들은 어둠 속에 얽힌 뿌리
그러나 우리는 밝음 속으로 올라가련다.
정신과 목표를 별 속에 지시하고
저 습기 있는 심층을 두렵게 증오하자.
전투 속에서 나는 다만 한 전우를 발견한다.
희귀한 친구, 노력 속의 다정한 지주(支柱)를.
그리고 너는 그를 너의 곁에 행복히 느낀다.
이 고통의 생(生)이 나에게 무엇이랴
이제 내가 고독하게 너의 안내 없이
계획과 광기와 의욕을 짜내어야 한다면!


여행..고트프리드 벤

취리히는 뭐 특별한 도시인 줄 아시나요?
경이와 성스러움만을 언제나 내용으로 가진?
정거장 앞길들과 Rue,Boulvard,Lido,Lann,
5번가에서도 공허는 닥쳐오는 법.
아! 여행이란 헛수고!
너무 늦게야 우리는 깨닫는다.
가능한 것은 머무를 것,
그리고 제한된 자아를 고요히 유지할 것 뿐이라는 것을......



취하라..샤를르 보들레르

취하게 하라. 언제나 너희는 취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은 거기에 있다. 그것이 유일의 문제다.
너희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너희를 지상으로 누르고 있는
시간이라는 끔찍한 짐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너희는 여지 없이 취해야 한다.
그러나 무얼 가지고 취하는가?
술로, 또는 시로, 또는 당신의 미덕으로, 그건 좋을 대로 하시오.
그러나 하여간 취하여야 한다.
덫에 걸린 쥐에게..에리히케스트너
원을 긋고 달리면서 너는 빠져 나갈 구멍을 찾느냐?
알겠느냐? 네가 달리는 것은 헛일이라는 것을.
정신을 차려. 열린 출구는 단 하나밖에 없다.
네 속으로 파고 들어가거라.


무제..리카르다 후흐

온갖 나무로부터 봄이 떨어져 버리면
내 심장은 환희에 떨린다.
지상의 공간에 산 모든 것은
지나가 버린다.
그러나 나에게는 네가 있다.
지나가 버리지 않는
무상의 거친 파도가
사랑의 해안에 높이 부딪친다
우리의 발밑에
세계가 와 부딪친다.
시간의 무덤인 하늘에 비취인 채.

동생의 죽음을 탄함..홀투젠
신의 이름으로 동생이여, 너는 죽었다.
너다. 남이 아니다. 아, 불이 내 옷자락에 붙는다. 몸서리난다.
이것을 말하는 것은 일어나고야 말았다. 내가 두려워하던 일이! 라고.
오 이마를 신에게 내밀고.
큰 입을 한 희랍 가면을 쓰고
사람은 외친다. 너는 나를 망쳤나이다!
깊은 속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은 이 땅의 무관심 위를 범람한다.
오 달콤한, 달콤한 생, 너는 죽었다!

 

 [ 흰 눈발 더 희게 희게 / (김남조)]

그대 꽃다운 나이에
하마 생명의 잔을 비우고 떠나는
허적한 뒷모습이여

간간이 흰 눈발 뿌리고
그대 탄생월의

보석
자홍 자류석에도
눈물이 괴었어라

총명하여 총명하여
불구슬처럼
빛나고 아프던 눈망울이여
그대 눈망울이여

아침 날빛에
저녁 으스름에 되살아나는
영 못잊을 눈망울이여

새삼 사람의 무상을
그대로 해 알겠거늘
고단한 어족 떼처럼 지쳐
흰 목덜미 더욱 외롭던 이여
허지만
유한이야 없으리

그대가 받은 시간과
사랑
남김없이 다 쓰고
첫 새벽 흰 원고지 위에
한 자루 촛불 다 타듯
눈감은 이여

흰 눈발
더 희게 나부낄 저승길을
너그러운 마음씨로
부디 모든 일 다 잊고 가라.

[ 사색과 예지의 양식 / (박인수) ]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얼마나 오래 살면 만족할까?

삶의 욕구는 죽음이 가까이 올수록 더 가해지니까 오래 살고 싶은 욕심도 한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래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할 것이다.
한 겨레가 피압박 민족으로서 모든 악조건에 매여 살다가 해방이 되어

우리 사회에 새로운 정치 이념과 사회 질서와 신생의 문화를 창조하려고 할 때 한 젊은 여인이,

명석한 두뇌와 예리한 감수성을 지닌 한 여인이 처음에는 국내의 우수한 대학에서 법학 공부를 하다가

졸업을 앞두고 방향을 바꾸어 멀리 독일에 가서 문학과 철학을 4년이나 공부하고 돌아와

 대학의 교단에서 후배를 가르치면서 외국 문학 작품을 번역하고 평론을 쓰고 수필도 쓰다가 홀연히 하루 아침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녀는 한편, 주부로서 살림을 하고, 어머니로서 애기를 키우고,

아내로서 남편을 보살피면서, 또 교사요 문인으로서 연구하고 교수하고 집필하고 사교하면서 몹시 분주하게 살았다.

그리고 그녀는 국제 펜클럽 회의에 참석하려 했으며 다시 독일로 가 학위 논문을 써야 하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살았다.

 그러다가 그녀는 갑자기 떠나고 만 것이다.

솔직히 이야기해서 나는 전혜린 여사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적다.

 한 젊은 여성으로서 30여 년 독일어를 해왔다는 나보다 더 유창하게 독일 말을 구사하고

 독일어 편지를 쓰고 독일 작품을 빨리, 그리고 생생한 우리 말로 번역하는 데에 내심 감명을 받기도 했고,

 그 순진하고 개방적인 성격 때문에 학생들이 많이 따르고, 동료 교수들에게 호감을 샀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잡지사나 신문사에서 원고 청탁을 받으면 이것을 거절할 줄 모르는 그녀는

 철야를 예사로 하여 그러지 않아도 유약한 몸이 불면증과 과로로 더욱 쇠약해 간 줄로 알고 있다.

독일에서 그녀를 잘 아는 사람의 말을 들으면 그는 문인으로서

 때로는 염세적인 말도 하고 또 글도 썼으나 실속은 매우 생활 의욕이 강렬했다고 한다.

하여튼 전 여사는 장래를 촉망받는 천재적인 여성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그녀의 부음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았고,

 차차 나의 바른팔을 잃었다는 느낌을 가지기도 했다

. 재녀 박명! 이렇게도 생각해 보았다.

자, 이제 이야기를 처음으로 돌려 보자.

 전 여사는 30년밖에 못살고 떠났지만 그녀는 힘껏 살고 힘껏 일하고 그녀의 생명을 활활 불태웠다.

 이제 전 여사는 가도 그녀가 남긴 글은 오랜 세월을 두고 이 땅의 젊은이들의 사색과 예지의 양식이 될 것이다.

[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이어령) ]

전설이나 신화 속으로 사라져가는 사람들이 있다.

전혜린- 그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어둠이 깔리는 박명의 층계 위에서 그 여자는 기다리듯이 서 있다.

그에게 다가가는 이는 그 여자가 얼마나 낯설은 얼굴 속에서 놀라움의 눈을 뜨는가를 볼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우리들에게 영원한 '손님'인 것이다. 만나는 자리에서 그는 항시 떠날 준비를 한다.

그러나 서서히 친근해지는 그 어둠 속에서 불꽃처럼 무엇인가를 향하여 타고 있는 그의 눈은 모든 의미를 말하려고 한다.

 그는 끊임없이 말한다.

그는 모든 얼굴을 향하여 정면으로 질문한다.

 그는 이미 '손님'이 아니며 낯설지 않다.

 어둠은 경이로 열리고 그의 목소리는 당신의 가슴 속에서 아늑하게 울리며 긴 여운을 남긴다.

 아니다. 그의 목소리는 나직나직하게,

그러나 그 속에는 걷잡을 수 없는 분류를 담고 있다.

그의 내부에서 끈덕진 열을 뿜으며, 모든 습관의 예복과 미지근한 생의 소도구들을 불태워 버리는 그 광기로써 그는 당신을,

 아니 자기 자신을 보석과 같은 순간의 빛 속으로 해방한다.

그의 의식이, 그의 언어가 집요하게 떠밀고 가는 순간의 지속- 그것이 바로 그녀가 우리에게 남겨 준 가장 귀한 선물이다.

그는 끊임없이 동요하며 아무 곳에도 머물지 않는다.

우리는 그가 포도 위에서 먼 곳을 향하여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남몰래 훔쳐 보았다.

그의 눈은 쉬지 않고 인식을 향하여 손짓을 하고 있었다. 그는 세계를 보고 왔다.

그래서 그는 서울의 거리에서도, 뮌헨의 카페 앞에서도 '손님'이었다.

그리하여 그 여자는 행복하기를 거부했다.

 그 여자는 짧은 생애를 가득한 긴장 속에서 살기 위하여 끊임없는 욕망을 불태웠다.

그리하여 그 여자는 누구보다도 가난했다.

그는 하나의 활화산이었다.

이 지상에 살고 간 서른 두 해. 자기의 생을 완전하게 산 여자였다.

 가짜가 아닌 생이었다. 생을 열심히 진지하게 살았다. 정말로 유일한 여자였다.

 그는 오늘의 침묵에 이르기 위하여 언제나 말을 했고 언제나 노상에 있었다

. 당신은 이제 알 것이다. 그가 도달한 침묵의 값을.

그리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나의 언니 전혜린 / (전채린) ]

끈기와 탄력과 집중력과 결단성을 갖고 언니는 생을 긍정했다.

 생의 완벽성을 구했다. 고집에 가까울 만큼 열심히 살았다.

매 순간마다에 포함되어 있는 가장 강렬한 것, 또는 그 어떤 짙은 것을 끄집어 내려 했다.

힘으로, 위험으로, 혹은 욕망이라는 방법으로.

 생의 아주 작은 한 조각도 자기에게서 새어나가지 못하게 했다. 이렇게 쟁취된 매순간을 지속시키려고 애썼다.

또한 언니의 생은 자기의 모든 것을 (지식과 정열과 그리고 사랑을) 모든 이에게 쏟아 부은 일생이며,

꿈과 기쁨과 괴로움이 터질 듯이 팽팽하게 찬 일생이었다.

자기의 생을 완전히 자유롭게 살려고 노력했다. 언니의 생은 자유로우려는 정신과 현실 세계와 대결해 나가는 투쟁 과정이었다.

한 마디로 언니가 살아간 길은 창조적인 땀에 젖은 걸음걸음이였다.

이것은 언니에게 생의 승리를 가져다 주었다. 자유에의 승리인지도 모른다.

언니는 완전한 하나의 세계를 구축했다.

 언니의 세계는 비전을 볼 줄 아는 꿰뚫는 강한 직관력으로 신비한 자연 현상이나 생명 현상에 통해 있는 것 같았다.

이러한 사고는 늘 우리들의 모든 한계를 뛰어넘어 저편의 아득한 경지를 감수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언니의 충만한 생의 알맹이로는 더 이상 이 세상 안에 설 수 없어 이 세상 밖에서 살아가는 시간이 많았던 것 같다.

이렇게 형성된 세계였기 때문에 아무도 언니를 이해하지 못했는지 모른다.

나도 그 몰이해자 중의 하나이다. 헉슬리가 로렌스의 인물과 사상을 말했던 글의 한 구절처럼 나도 말할 수 있으리라.

'마지막 2년 동안의 언니는 이를테면 한 개의 불꽃이었다.

기적과 같은 불꽃이었다. 왜냐하면 이 불꽃은 기름이 완전히 없어진 등잔에서 천연히 타고 있으니까'라고.

언니는 30년 전 1월 1일 일요일에 낳았고, 1965년 1월 10일 같은 일요일 아침에 이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을 떠났다.
지금 언니는 경기도 안양 조남리에 있는 선산에 잠들어 있다.

불꽃처럼 짧게 살고 갔으나 그가 사랑하던 우리들 속에 뿌려 놓은 언어와 고독과 사랑의 씨는

 우리 속에 자라나서 숲을 이루고 그 숲은 우리와 함께 커갈 것이다

 

-= IMAGE 1 =-


1934년 1윌 1일 평안남도 순천 출생.
1953년 경기여중고등학교 졸업.
1955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3학년 재학중 독일 유학.
1959년 독일 뮌헨대학 독문학과 졸업.
뮌헨대학 에카르트 교수 조교.
경기여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이화여자대학교 강사 역임.
성균관대학교 조교수.
펜클럽 한국본부 번역분과위원.
1965년 1월 11일 31세로 요절

주요번역작품

F. 사강의 <어떤 미소>(1956)
E.슈나벨의 <한 소녀의 걸어간 길>(1958)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1959)
E. 캐스트너의 <화비안>(1960)
구드리치, 하케드 공저의 <안테 프랑크의 일기>(1960)(같은해 4월에 {신협}에서 공연)
L.린저의 <생의 한가운데>(1961)
W.게스턴의 <에밀리에>(1963)
H.막시모후의 <그래도 인간은 산다>(1964)
H.뵐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1964)
H.노바크의 <태양병>(1965)


작품집

에세이집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유 작 집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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