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에 관한 시모음 36)
불협(不協) 칠월 /정 선
칠월은 가면을 쓰고
검은 유두를 흔들며 내게로 왔다
나는 칠월에 투자했다
손절매로 가산을 탕진한 후
창틀에 앉은 노란 고양이 자세로
그늘의 유희를 즐겼다
장사꾼과 장인은 가깝기도 멀기도 하여
숭배가 빠지면 제아무리 위대한 도기도
팔아넘길 그릇에 불과한 게지
애증은 때로 한 굴에 살며 으르렁거리는 두 마리 곰 같아서
소모성 사랑을 논하지는 말자
순간은 몰두를 요구하지
난 오늘 기억하고 내일 잊어버릴래
오늘 키스 이상의 뭔가를 기대한다는 건 베르사유의 감정
그런 날엔 일곱 손가락으로 자화상을 그리지
나는 가끔씩 사다리를 갈빗대에 걸치고
오후의 자궁으로 내려가곤 했다
오후의 자궁에 15촉 전구를 켜고 숭배하고 싶어
그러나 곧 취두부 같은 밤이 몰려올 것이다
팔월로 흐르지 않기 위해 프로그램을 수정해야 할 것 같아
칠월에 쓰는 편지 /김미경
가슴 텅 비어
생각이 빛을 바래고
꺼내놓고 담지 못한 마음
더러는 있겠지요.
시간은 바람으로 지우고
바람은 꽃길을 내어
불러보는 이름하나
눈감고도
잘라버린 세월 앞에
비수 들고 있지만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내 것인양 다둑이던 사람
강물에 흘러보내는
기 인 한숨소리 듣지 못했던가
강물에 길을 내어
비로소 바람으로 누워보는
빛바랜 이름이여
칠월 순천만습지 /박 영
가슴 밑에 깔린 진흙이
진흙 밑에 사는 것들이
꿈틀거린다
층층이 겹겹이 깔린
흐르지 못한 세월
가슴 바닥에 깔린 것이
짱뚱어 따라 살짝 나왔다 숨는다
숨은 자리에 숨구멍 드러나고
먹먹한 가슴은 그 구멍으로 운다
흐르지도 뿜지도 못하고
세월을 이고 덮고
장마가 오는 칠월은
다 흘러넘쳐라
그리운 날들
순천만 습지에 드니
설움 같은 것이
그리움 같은 것이
부르지도 않는데
모기같이 따라온다
살아가는 게 그리움 설움의 기피제
인연으로 엮인 날들아
훨훨 날아라 날아서
먼 그곳까지 무사히 잘 가시라
7월 여자 /최호일
이 동네에는 바라볼 때만 지나가는 옥탑방 구름들이 살고
7월의 여자가 있지
그녀는 제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얼굴로 시간을 널고 있지
저 악보는 6월이 찢어 놓은 바람의 달력 같다
빨래는 그녀를 안는 자세로 두 팔을 벌리고
축축해진 그림자를 조금씩 꺼내 먹고 있다
어쩌다 세상을 뒤집어 입고 있는 그림자들
하늘 저쪽을 바라보다 마주치면
동전을 줍는 척 고개를 숙이고
또 마주치면 떨어진 동전을 두 개 줍는 시늉을 한다
난간의 용도는 다양해서
스티로폼 박스가 위험하게 앉아 있기에 적합하다
저곳은 흙냄새를 맡아도 어떤 눈물이 자란다 꽃이 피면
동전이 굴러가는 방향으로
파꽃을 핑계 삼아 어느 날은 오래 어두워질 수 있겠다
아픔은 저마다 색다른 의상을 입고 있지만
푸르게 난간을 넘어오는 저 여자
음악을 크게 틀어 놓았기 때문에
이 계절은 소리가 지워진 채 떠내려가는데, 거기 가면
늦게 도착한 편지처럼
7월의 여자들만 사는 섬이 나올지 모른다.
기우는 칠월 /이원문
그 열흘에 한 이레라
이렇게 빠를 수가
그것도 서너 날이면
다 지난 한 달이 되지 않겠나
한 것 없이 할 것 없이
그럭저럭 보내야 하는 한 달
무덥기도 무더운 하루
얼마나 더 뜨거울까
뜨거운 칠월 기울어진 칠월
며칠 있어 팔월 열흘 그 보름인가
이 칠월 흐지부지 팔월 열흘 보름이면
냉기로 조금씩 아침 저녁으로 다를 것인데
그날을 알리는 듯 참깨 꽃 하얀히
텃밭에 이 일을 언제 다 하지
한 달도 하루도 기우는 하루
열무나 뽑어다 열무 김치나 담가야겠다
칠월의 그림자 /이원문
반 년의 첫 달 이 칠월도 끝자락인가
그렇게 무덥고 비도 많이 내리더니
이제 슬그머니 자리를 떠나는구나
부르는 팔월 팔월에는 괜찮을런지
팔월의 태풍 그것도 만만치 않은데
내린 비 만큼이나 큰 바람이 아닐까
딛어 넘긴 칠월 한 달 딛어야 할 팔월
하늘에 비는 마음 어찌 걱정뿐일까
보내는 칠월 오는 팔월에는 무슨 일이
아무도 모를 일 누가 아는 팔월인가
매미 울음에 가는 세월 칠월 끝자락
기우는 여름 오는 팔월이 가깝구나
7월 /박기숙
아! 세월은 잘도 간다.
세월은 물처럼 흐르고
나의 머리에도 하얀 꽃송이가
살포시 피어 오르네,
내가 기뻐해야 할까?
슬퍼해야 할까?
내 머리에는 하얀 꽃이
피어 오르는데...
왜 내 마음은 갈곳 몰라
방황 할까?
그러나 나는 외롭지 않다.
하얀꽃이 피든. 검은꽃이 피든,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 아니던가?
파랗게 꿈이 익어가는
청포도의 시절에
나의 꿈도 살포시 익어가네
초립동아 함께 가자.
저 꿈이 있는. 7월의 푸른 벌판으로
너와 나 함께 손잡고
7월을 만나러 우리 힘차게 나아가보자.
7월 소묘(素描) /白松 정연석
6월을 버리고
새 살림 차린 7월
장마까지 데려와서
물폭탄을 던진다
비었던 댐(Dam)에
물을 채워줘 고마운데
산사태와 침수(浸水)
마음이 아프다
파란 하늘 아름다운데
갑자기 폭염(暴炎) 선물
변덕(變德)이 심하니
두려움이 다가온다
해질 무렵 산들바람
고향의 흙냄새인가
노을 빛 고운 강변에서
얄미운 7월을 마중한다
창공(蒼空) /윤동주
그 여름날
열정(熱情)의 포플러는
오려는 창공(蒼空)의 푸른 젖가슴을
어루만지려
팔을 펼쳐 흔들거렸다.
끓는 태양(太陽) 그늘 좁다란 지점(地點)에서
천막(天幕) 같은 하늘 밑에서
떠들던 소나기
그리고 번개를,
춤추던 구름은 이끌고
남방(南方)으로 도망하고,
높다랗게 창공(蒼空)은 한 폭으로
가지 위에 퍼지고
둥근달과 기러기를 불러왔다.
푸르른 어린 마음이 이상(理想)에 타고,
그의 동경(憧憬)의 날 가을에
조락(凋落)의 눈물을 비웃다.
7월의 코스모스 /이민숙
기별 없이 불쑥 찾아와
허무한 이에게는
희망이 있다는 것을
가슴이 아픈 이에게는
살아 있다는 것을 말하려
파스 한 장 손에 쥐고
거기 그렇게 서 있구나
오고 가는 때를 잘 알아
묻어가면 좋을 세상인데
어쩌자고 앞자리에서
상처를 받고 있는지
때 이른 꽃송이
새 길 열어가는 개척자의 심정으로
지천에 꽃잎 피워 놓고
숭고한 희생으로
곳곳에 흐드러진 꽃길 열리면
홀연히 사라지겠지
7월의 코스모스여!!
아침 기도 /남정림
7월에는
아침 햇살에 꾸밈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유리창처럼 투명하게 살게 하소서
담장을 뛰어넘는 정오의 빛줄기처럼
싱싱하게 뻗어나가
초록빛 꿈을 활짝 터뜨리게 하소서
낮아지고 작아진 것들 안에서
생명의 씨앗을 발견하고
기쁨의 띠 휘감고 춤추게 하소서
혼돈의 땅에 하늘이 쓰는
핏빛 사랑의 시를
온 맘 다해 찬미하게 하소서.
장마 /김명관
7월은
슬픈 하늘을 품고 산다
너를 사랑하고 부터
누구에게도 줄 수 없는 마음
사랑할수록 커져가는 목마름은
그렁그렁 눈물로 맺히고
눈물방울 떨어진 자리마다
낯선 인연 풀처럼 돋아도
너는 아직도 그 자리
7월 들녘에 누워 /정규훈
– 사랑의 노래를 들으며
7월엔 고향으로 가야지.
늘 푸른 바람이 있는 들녘으로 가야지.
거기서 소나무처럼
의연하게 가을을 지내고,
벅찬 눈보라가 흩날릴 때까지
누워 있어야지.
침묵의 하늘에서 나를 부르는
조용한 음성을 들어야지.
밤이 맞도록 뻐꾸기의 우짖음과
나를 뒤덮는 별 세례와
모두를 포기한 자에게 오는
자유를 마음껏 누려야지.
온 세상이 내 세상 되는
7월 들판엔
풀벌레 팔베개로 잠이 들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