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책을 읽다가 머리를 쿵 하고 맞은 듯 정신이 깨어나는 글을 읽은 적 있나요? 잘 없지요? 기억이 자꾸 달음질 쳐서 책도 읽을 때뿐이죠? 나이 드니 시력은 자꾸 떨어지죠? 저도 그래요. 그런데 이번에 읽은 책은 마치 깨달음을 얻은 원효대사처럼 쿵 하고 내 머리를 때립니다.
옛날에 사공이 나룻배를 타고 노를 저어 강을 건너려는데 어디선가 빈 배가 떠밀려 오더니 내가 탄 배에 쿵 하고 부딪히는 거예요. 그런데 빈 배라서 욕도 못하고 ‘ 거 참…….’ 이러고 있었답니다.
‘만약에 내 마음이 텅 비어있으면 누가 나에게 욕을 하겠는가?’ 사공은 그제야 큰 깨달음을 얻었어요. 인생은 빈 배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을요. 바로 장자의 책에 나오는 일화입니다.
정신없이 살다보니 나를 뒤돌아볼 여유도 없지요? 저도 그렇게 살았어요. ‘몇 년 만 더 일해서 노후 대비를 끝내자. 그 다음에 놀자!’ 라고 생각하며 살았어요.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그게 아닌 듯합니다. 그래서 다짐해봅니다.
“남은 인생은 빈 배처럼 살자” 라고요.
꽉 채운 스케줄은 사람을 지치게 하죠? 그래서 쉬어가야 하는데 쉽지 않죠? 저도 날마다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 쉽지 않는데 어제는 비를 핑계 삼아 쉬었어요. 넘어진 김에 쉬어가라는 말도 있잖아요. 아내에게 물어봅니다.
“당신 꽃 좋아하잖아. 샤스타데이지 보러갈까? 지금 아니면 꽃 다 질 텐데.....” 우리가 사는 용인에서 가까운 샤스타데이지가 많은 곳이 어딜까 찾아보니 파주와 강화도가 나오네요. 차로 두 시간 거리네요. 결코 가깝지 않은 거리죠?
수년전 어느 새벽에 혼자 부안 마실 길을 걷다가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샤스타테이지꽃에 반해 두고두고 사람들에게 자랑을 한 기억이 있어요. 지금도 그때생각하면 가슴이 벅찹니다. 부안 마실 길 왼쪽은 바다이고 오른쪽은 들입니다. 마치 하얀 융단을 깔아놓은 듯 샤스타데이지가 만발한 겁니다. 작은 오솔길을 걷는데 꽃이 내 무릎을 자꾸 간질이는 거예요. 내 지나간 자리는 어느새 다시 꽃으로 가득차고, 가슴이 벅차다는 심정이 바로 그때였습니다.
이번엔 오랜만에 강화도로 향합니다. 오후에 비가 내린다고 해서 아침 일찍 출발합니다. 휴일이라고 늦장을 부리면 차가 막힐게 뻔 하거든요. 아내가 말합니다.
“차가 막힐 텐데 뭐좀 먹고 갈까?” “아니야. 초지대교 건너 강화도 들어가서 먹자고, 차 막히기 전에 강화도 들어가는 게 먼저야.” 우리는 작은 편의점에 앉아 컵라면을 먹습니다. 항상 둘이 외출을 하면 한 끼는 풍성하게 나머지는 대충, 이런 식으로 식사를 해결합니다. 꼭 음식이 비싸서라기보다는 분수껏 살자는 거지요. 빈 배의 깨우침을 읽고 나왔는데 뱃속을 꽉 채우면 안 될 것 같았거든요.
가다가 동막 해변에 잠시 차를 세웁니다. 해변을 한 바퀴 걸으려했는데 바람이 엄청 심합니다. 날은 우중충하고요. 곧 비가 내릴 듯 하늘은 무겁게 내려앉습니다. 조금 걷다가 바로 오늘의 목적지인 샤스타데이지가 많은 카페로 향합니다. 이른 시간인데도 벌써 손님들이 많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니 세상이 갑자기 환합니다. 온 천지가 샤스타데이지꽃 물결입니다. 같은 꽃 수만송이를 한꺼번에 보면 착시현상이 일어나지요. 꽃 한 송이 한 송이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꽃 천지가 시야에 퍼지는 거지요. 둘레에 심은 커다란 낙엽송도 아마존의 어느 요새를 방불케 하네요. 요리 찍어보고 조리 찍어보고 정성껏 찍어주었더니 아내의 미소가 환합니다. 이미 주름살투성이인 내 모습은 감히 화폭에 담지 못합니다. 몇장 담아보니 역시 아니 담는 게 낫네요.
커피 잔 마주하며 꽃에 취해 잠시 세월을 낚습니다. 바람은 시원하고 날은 흐리고 꽃은 환하고 이보다 더 충만한 아름다움은 사치이겠지요. 적당히 머물다 다른 이에게 자리를 건네주고 우리는 풍물시장으로 향합니다.
중간에 스페인마을이 보이기에 가봅니다. 해변 따라 한 시간여를 걷고 스페인마을을 산책하는데 너무 아름답습니다. 커피는 이미 마셨기에 경치만 구경합니다. 아기자기 꾸며놓았는데 연인들이 머물다 가기에 딱 좋은 맛집뷰가 아닌가 싶네요.
드디어 한 시간여를 달려 강화 풍물시장에 도착합니다. 장날이 아닌데도 차가 많네요. 푸성귀를 한보따리 삽니다. 물가가 너무 쌉니다. 2층으로 올라가니 ‘콩 삼형제’라는 옛날 빵집이 보입니다. 사전 정보 없이 마주한 첫 집인데 빵이 너무 맛있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샀어요. 바로 옆집에선 밴댕이 회 정식을 파는데 세상에 놋그릇에 한상을 차려주는 거예요. 그거 있잖아요. 손님이 대접을 받는 기분요.
식당에 앉아 주문을 하고 방금 사온 빵을 먹어봅니다. 순간 아내의 눈이 동그랗게 커집니다. “와! 너무 맛있는데? 팥도 이렇게도 싱싱할 수가 있어? 막걸리 빵의 어릴 적 추억에 콩 세 개와 팥앙금의 앙상블이 어쩜 이렇게도 잘 어울리지?” “그래? 나도 줘 봐!” 빵을 먹어보고선 깜짝 놀랍니다. 그 어느 찐빵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네요. 나중에 검색해 보니 줄을 서서 먹는 빵집이라 하네요. 밴댕이 회집 식당도 사전 정보 없이 들어가 먹는데 밴댕이회무침이 너무 맛있습니다. 회에 무침에 구이까지 한상 거하에 먹습니다. 밴댕이구이는 잔가시가 많아서 호불호가 갈릴 듯합니다.
식당을 나오는 데 비가 퍼붓습니다. 좀 이른 시간이라 아쉬운데 저녁에 차가 밀릴 것을 생각해서 일찍 돌아옵니다. 돌아오는데 빗길이라 역시나 차는 밀리고 졸음은 오고……. 그래도 오랜만의 외출이라 즐겁네요.
저녁은 빵의 여운을 잊지 못해 빵과 강화도에서 사온 미나리 전으로 해결합니다. 얼마나 맛있는지 모릅니다. 물론 아내가 요리를 했습니다.
첫댓글 모든 길은 노래가 된다
보여지는 것은 꽃이 되고
먹는것 중 하나 빵이니
배부른 봄날 늘건필 하소서
콩빵 맛있겠다 ㅎ
강화가면 먹어봐 ㅎ강추
모든 순간을 즐기는 그리운섬 부부 덕에 여행 잘 떠났어 ^^
ㅎ고마워
당장 달려가고 싶어지네...
내일 근무만 아니라면
지금 교회 갈 시간이 아니라면
여기가 거창만 아니라면....
거~~~참~~~
덕분에 간접힐링 잘했네~~
거 참 거시기허네,ㅎ
원뮨을 야금야금 잘 읽고는 사진보고 "앗 코스모스"
수국을 깻잎으로 아는 참 무식한 1인
잘 보고갑니다 휴일 잘 보내시오
그럴수 있당ㅋ 뭔들 어뗘 이쁨되지 ㅋ
전라도 내륙에 있다 보니 간혹 바다가 생각나는데
그 바다는 동해의 짙푸르고 깊은 바다가 아닌
강화도 바다라는 거.
강화도에서 봤던 일몰의 한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명해.
비움에 대한 이야기, 강화도에 대한 이야기...고마워~
나도 정읍이 고향,,
격포 바다의 백사장에 새긴 물이랑이 생각나네 켜켜이 물결따라 만든 빨래판같던 그곳
시간나면 신도 시도 모도 추천 섬이 연결되어있어서 스쿠터 빌려 놀기좋은곳 ㅎ
강화도가 참 좋네 볼거리 먹을거리도 많고~
샤스타데이지는 낯익은 꽃인데 군락을 이루니 참 보기좋다🌻
모여있으면 꽃도 군중심리가 있나봐
당당하게 보란듯이 뻗어 있더라 ㅎ
오늘 아침에 출근 하면서 글 읽고 지금 댓글 단다.
글에 쓰인 대로 두 부부의 동선을 머리속에 그리며 읽었어.
참 잘 어울리는 두 부부의 일상 속 외출이 좋다. ㅎ
평범하게 사는거 ㅎ
그리운섬 덕분에 나도..사무실에 앉아서 강화도 여행을 해봤네..^^
강화도는 가끔 가보긴했는데...너의 코스도 색달라서 좋았어..
고맙네 강화도 풍물시장 채소가 용인보다 반값이라고 옆지기가 말한당 ㅎ
그림을 그려가며 읽어 내렸다ㅎ
저 꽃이 데이지였구나
이름도 모르고 예쁘다 감탄만 했는데 저 꽃을 만나면 '안녕, 데이지'하고 인사를 해줘야 할 것 같아.
강화여행 잘 하고 가요^^
아, 그리고 빈 배에 대한 이야기
깨달음이 있는 이야기야^^
제인 심오한 해석이 좋당 내 마음이 빈배면 누가 날 탓할텐가 ,,제인오스틴도 나도 빈배처럼 살자구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