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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고구려 토론방 고구려사초 - 시조 추모대제기
정성일 추천 0 조회 899 09.11.16 19:47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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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11.16 23:56

    첫댓글 진위 여부를 떠나 참 재미있네요.

  • 09.11.17 00:02

    남당유고상 을음은 우태의 모친이 샛서방과의 관계로 인해 태어난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인지요?

  • 작성자 09.11.17 09:05

    님이 본 것은 남당유고 백제왕기의 기록일 것입니다. 남당유고끼리도 생몰년의 차이가 많습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소서노, 비류, 온조의 출생과 사망의 기록에서 큰 차이를 보이며, 추모왕의 사망시기에 대해서도 서로 다르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의 기록을 살펴보면 온조는 해부루의 서손인 구태의 아들이다 혹은 이설로 주몽의 아들이다라고 하였는데 남당유고에는 서로 다른 기록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른 말로 김부식이 본 고기의 기록에 충실한 사서가 남당 유고의 기록이라 할 수 있지요. 백제왕기는 백제토론방으로 가야할 내용이나 주몽의 기록분을 고구려토론방으로 옮기니 비교 검토바랍니다.

  • 09.11.17 11:37

    잠깐 덧글 하나. 남당유고 (백제왕기 뒷부분에 붙어있는) 백제서기에는 을음에 대해 아래와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乙音者優台母乙氏通其私夫而生者也. / 남당유고 추모경에는 을음에 대하여 아래와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처음 졸본후 을족이 그 숙부 곤연백 을송의 딸 [을]유씨를 취하여 아들 을음을 낳고 죽었는데, 그 국상 연타발이 7국의 난에 사직에 공이 있었던 까닭에 처자를 연타발에게 맡기니, 연타발이 유씨를 취하여 처로 삼아 딸 관패와 소서노를 낳았다[初卒本候乙足娶其叔鯤淵伯乙宋之女旒氏生子乙音而卒國相延陀勃七國之亂有功於社稷故委以妻子陀勃遂娶旒爲妻而生女貫貝召西奴].

  • 09.11.17 11:50

    합쳐놓고 보면, 을유씨[婦]가 낳은 자식들 가운데, 을족[夫1]의 아들이 을음, 금와[夫2]의 아들이 우태, 연타발[夫3]의 딸이 소서노와 관패라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금와가 정식(?) 남편이라는 입장에서는 을족이 私夫, 을족이 정식 남편이라는 입장에서는 금와가 私夫. 연타발은... :-)

  • 작성자 09.11.17 14:16

    남당유고의 일부인 고구려사초, 고구려사략, 추모경을 지은 주체와 백제왕기를 지은 주체가 다르다고 판단됩니다. 판단의 이유는 백제의 시조인 온조를 주몽의 아들인지 우태의 아들인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자신의 국익에 비추어 기록하였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므로 고구려사초를 해석하면서 백제왕기에 나와 있는 을음과 우태가 동모형제라는 기록을 반영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는 부분이죠. 그런점은 밝은눈님과 명치호태왕님께서도 양지하여 주셨으면 합니다. 또한 밝은눈님이 명확하게 밝혀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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