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역에 도착하다... 1977년 59명이 사망하고 1158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1647세대 78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이리 역 대형 폭발사건이 생각난다.
한국화약의 화물열차가 다이너마이트용 화약과 뇌관 등 모두 30여t에 이르는
고성능 폭발물을 싣고 이리 역 구내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폭발한 것이다.
화약 호송원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최악의 참사가 발생하였으니 이는 화약
수송 규정을 무시한 안전의식 불감증에서 비롯된 인재(人災)였다. 성수대교,
대구 지하철 참사, 삼풍백화점, 와우아파트 등도 귀에 쟁쟁한 같은 사건이다.
익산역을 떠나 군산방면으로... 지나는 길에 폐역(廢驛)된 임피역... 등록된
문화재로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지키고 있다. 임피 유림들의 풍수 지리적
이유로 철도 개설을 반대하여 현 술산리로 경유시켰다. 길을 따라 사람들이
모여살고 떠나면 없어지니 시골의 폐교된 학교가 생각난다. 1936년 건설된
임피역은 당시 농촌지역 소규모 간이역사의 전형적 건축형식과 기법을 잘
보여주며, 원형 또한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근처에 일제 강점기 사회를
해학과 풍자로 재치가 가득한 소설 ‘탁류’의 저자 채만식 선생의 고향이다.
대야역에서 새로운 철도로 개설되어 옛 군산역은 군산화물역으로 변하고
내흥동에 새 역사가 있다. 가는 길에 발산초등학교에 많은 유물이 있다...
1900년대 농장주인 시마타니... 이 학교 근처의 땅 486정보를 소유하였으며
학교 부지에 쌀 건조장, 미곡 창고, 정미소, 안채 등이 있었다 한다. 그는
많은 문화재를 수집하였으며 해방 후 한국에 귀화를 신청하였으나 거부를
당하고 가방 2개만 들고 떠났다고 전하니 얼마나 허망(虛妄)한 일인가?
버리고 갈 때의 심정,,, 중국음식 울면이 아닌가? 여자의 얼굴을 면(麵)으로
비교 한다면 사랑할 때 온면(溫麵), 버림받을 때 냉면(冷麵)이란다.
고려 초기 작품인 석등과 5층 석탑은 보물이며 육각 부도, 금고 등 문화재가
31점이 있으며 금고 안에는 서화(書畵), 도자기, 불상 등이 많았다고 한다.
커피에 빠진 파리... 죽으면서 한 유언처럼 시마타니는 쓴맛 단맛 다 봤을
것이다. 더 오르면 개정면 발산리에 최호장군 불천지조사당(不遷之位祖祠堂)이
있다. 정유재란 중 충청도 수군절도사로 싸우다가 칠천량해전(漆川梁海戰)에서
원균, 이억기 등과 함께 전사하였다. 漆川梁은 진해 근처란다. 고향이 군산이
라면 복성춘, 빈해원의 중국집과 이성당 빵집은 기어서라도 가는 곳이란다.
첫댓글 모든 화는 조그만 곳에서 시작되는데 그것을 망각하고 살아가고 있는것 같습니다,
그러니 점검 또 점검을 하며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공감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