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청과 불면이 흔해진 시대... '소리'로 치료한다!
[류준영의 사이-코노믹스] #3. 벨테라퓨틱스의 청력재활 솔루션
잘 듣게 만들어주고 잘 자게 만들어주는, 완전 색다른 소리의 기능
베토벤 음악도 소음일 뿐이에요... 난청인들의 귀를 이해하다!
20개 주파수만 들을 수 있는 인공와우 환자들의 귀 매커니즘
MC스퀘어에서 K-POP 불면 디지털 치료제까지 거침없는 상상력
"실명(失明)은 우리를 사물과 분리시키지만, 귀먹음은 우리를 사람과 분리시킵니다." 청각과 시각을 모두 잃은 채로 평생을 사회복지와 저술, 강연활동에 나섰던 헬렌 켈러의 말입니다. 딥테크(첨단기술) 스타트업을 분석하면서, 기술이 연구실을 벗어나 실생활의 제품·서비스로 바뀌는 과정을 보여주는 '류준영의 사이-코노믹스’ 세번째는 난청인의 청력재활을 위한 특별한 음악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청력재활·불면증 디지털치료제를 만드는 기업 벨테라퓨틱스 이야기입니다. 스마트폰 등 휴대기기로 음악 듣기가 쉬워지고 패션 등의 목적까지 더해져 이어폰과 헤드셋 사용이 빈번해지면서 노인성 난청 외에 청소년 난청 인구가 늘고 있다고 하지요. 이런 난청 인구를 위해 음악 솔루션을 치료방법으로 선택한 참신한 아이디어를 만나보세요. [편집자 주]
벨테라퓨틱스 홈페이지에 게시된 인공와우를 착용한 소년의 모습. 보이는 부분은 외부의 소리를 모아 인공와우에 전달하는 어음처리기이다. / 사진=벨테라퓨틱스
MC스퀘어가 던진 영감: 소리에 기능이 있다!
1876년, 역사상 최초로 전화기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그는 전화기 외에도 많은 것을 발명하거나 연구했다. 그중 벨이 전화기 외에도 큰 관심을 기울인 분야가 ‘청각장애 관련 연구’로, 청각 장애인에게 교육이 가능하도록 여러 연구를 진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어머니도 청각 장애를 앓았다고 한다.
요즈음 노인성 난청보다 더 심각한 게 ‘청소년 난청’이다. 지하철, 버스를 탈 때 귀에 이어폰이나 헤드셋를 쓴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되는데, 바로 그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업무 혹은 공부할 때도 이어폰·헤드셋을 귀에 걸고 산다. 이렇게 장시간 소음에 노출되면 ‘경도 난청(일상대화 불편 수준)→중도 난청(이때부턴 보청기 착용 수준)→중고도 난청→고도 난청(이때부턴 인공와우 삽입 수준)→심도 난청’ 등으로 악화될 수 있다.
특히 최근엔 ‘돌발성 난청’으로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 이는 3일 이내 3개 이상의 연속된 주파수에서 30㏈(데시벨) 이상 청력 저하 현상이 갑자기 발생하는 질병을 말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돌발성 난청 환자수는 10만 3474명으로 2016년(7만5937명)에 비해 36%나 늘었다.
옛날에 ‘MC스퀘어’란 제품을 써본 경험이 있다. ‘뚜뚜뚜...’라는 소리를 들으면 집중력이 올라가 공부를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믿고 거금을 들여서 샀다. 값도 값이지만 이 기기로 주변에 효과를 봤다는 이를 단 한명도 본 적 없는 데 아직도 잘 팔린다고 한다.
그런데 이 제품, 즉 소리에 ‘기능’을 불어넣는 것에서 비즈니스 모델의 단서를 찾은 이들이 있다. 전화기 발명가 ‘벨’에 테라퓨틱스(Therapeutics·치료법)를 합쳐 지은 ‘벨테라퓨틱스’가 주인공이다. 이들은 일종의 ‘주파수 레시피’를 새롭게 하면 예상 못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가설을 제시해 관심을 모았다. 이재은 공동 대표는 돌발성 난청 원인에 ‘3개 이상의 연속된 주파수’란 조건이 붙듯, “주파수 응용을 통해 원하는 기능을 가진 소리를 디자인하면 되레 청각에 도움이 되는 소음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이한 발상에서 개발을 시작했다.
벨테라퓨틱스가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인공와우 사용자들의 청력재활을 돕는 음악 플레이리스트. 인공와우를 사용하는 이들에게는 우리가 듣는 음악이 소음이자 청각적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 사진=벨테라퓨틱스
'플리'가 치료와 재활에 도움이 돼요!
벨테라퓨틱스는 최근 이비인후과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학회인 미국 이비인후과학회에 참가해 ‘인공와우 사용자들의 청력재활을 돕는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선보여 주목을 끌었다.
양측 70dB 이상의 고도난청이라면 보청기를 사용하더라도 도움을 받을 수 없어 인공와우 이식수술이 필요하다. 인공와우는 달팽이관에 전극을 삽입해 청신경을 직접 자극하는 의료기기다. 인공와우는 60년 전 발명돼 그동안 기술 발전을 거듭해 안정성을 갖췄다. 다른 수술에 비해 비싸지도 않다. 그런데도 인공와우 수술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이재은 대표에 따르면 낮은 청지각(귀로 듣고 이해한 정도) 해상도와 청력 재활의 불편이 원인이라고 한다. 현재 청력재활 방식인 언어치료는 말 소리를 듣는 훈련과 말하는 훈련을 반복적으로 시행하며, 수술 후 통상 1~2년의 재활기간이 걸린다.
벨테라퓨틱스의 핵심 연구원 박정미 박사는 “말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하는 훈련(언어치료)을 한 후 언어평가와 청력검사를 받는 사이클을 1~2년간 지속 반복하는데, 기간이 길고 무엇보다 말소리는 정보량이 많고 복잡한 차원으로 구성돼 있어 재활을 위한 소리로는 부적절하다”고 평했다.
의료계에선 청력재활의 일환으로 음악 감상을 권장하고 있지만 그동안 청력재활에 도움이 되는 적합한 음악에 대한 구체적인 추천이나 근거 지침이 없었다. 의료진과 환자 모두에게 음악 선택이 큰 고민이었던 것이다.
벨테라퓨틱스는 인공와우 환자의 주요 페인포인트를 여기서 찾았다. 기간을 단축하고, 청력 한계를 확장할 ‘음악 기반 청력재활 디지털치료제’를 개발해보자는 게 기획 아이디어였다. 그 결과물이 ‘인공와우 사용자들을 위한 맞춤형 음악 플레이리스트’다. 작년 설립된 벨테라퓨틱스와 이비인후과, 음악치료, 의공학, 뇌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력해 만들었다.
이번 플레이리스트는 인공와우 사용자들의 청각 메커니즘을 고려해 특별히 프로듀싱 됐다. 이 대표는 “언어재활 방식에서 사용하지 않는 특수한 사운드를 통해 청각장애인의 취약한 음역을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특수 사우를 제작하고 두뇌 청각피질 영역을 단시간에 재정렬 시켜주는 기법을 쓴 것”이라며 “재활기간을 2배 이상 단축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벨테라퓨틱스는 현재 분당 서울대병원 이빈인후과에서 효과성 임상을 진행 중이다. 이 대표는 “청각장애 환자를 대상으로 파일롯 테스트를 실시한 결과 재활 전 언어지각 점수 6%에서 재활 후 87%로 올라 유익한 수준으로 개선됨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인공와우 구성도. 인공와우는 귀의 손상된 부분을 우회하여 청신경을 직접 자극하여 소리를 인지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고도 난청 또는 심각한 청력 손실이 있는 사람들에게 혁신적인 솔루션을 제공한다. / 사진 제공=류준영
베토벤의 '꽝꽝꽝꽝'은 정말 '쾅쾅쾅'으로 들린다: 음악과 소음, 한끗 차이
이번 프로젝트를 주도한 박정미 박사는 서울대학교에서 음악신경과학을 가르치고 있고, 브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도 역임하고 있다. 박 박사는 "음악신경과학 분야에서 수십 년에 걸쳐 밝혀온 청지각 메커니즘의 원리를 의료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사용할 수 있어 연구자로서 의미 있는 프로젝트였다"고 밝혔다.
벨테라퓨틱스 구성원의 특징 중 하나는 음악 전공 자들이 꽤 있다는 점이다. 공동창업자인 박종화 공동대표도 서울대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석사는 전기·정보공학부를 나왔다. 석사 과정 중 그가 몸담았던 실험실이 인공와우용 반도체를 제작하는 곳이었다.
박 공동대표는 “교수님이 음대생이 왔다니까 뭔가 재밌는 얘기를 하나 들려주겠다면서 인공와우 사용자들에게 음악은 ‘쾅쾅쾅’ 거리는 소음처럼 들린다고 했던 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사업 아이디어를 얻게 된 순간이었다.
박 대표는 이때부터 청지각과 뇌 매커니즘을 깊게 팠다. 그는 "우리가 듣는 음악은 흔히 작곡한다고 표현하지만, 인간이 들을 수 있는 3500개의 주파수를 이용해 프로그램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정상인의 귀에 맞춰 프로그램된 음악이 고장난 귀를 가진 청각 장애자에겐 그저 소음인 게 당연한 이치였다.
'난청을 지닌 사람들에 맞춰 음악을 재프로그래밍하자!' 그러려면 인공와우 사용자가 들을 수 있는 주파수가 고작 20개 뿐인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 박 대표는 “기존 음악시스템 자체를 난청환자의 귀 매커니즘을 고려해 음악을 만들면 그들에게 음악 다운 음악이 되지 않을까, 이런 접근이 통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세계적으로 인공와우 수술이 필요한 고도 난청 환자는 60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들에게 벨테라퓨틱스의 새로운 접근은 반가운 소식일 것이다.
벨테라퓨틱스 홈페이지에서 'Products' 항목에는 'aural rehab'과 'insomnia' 두 가지가 안내되어 있다. 청각재활과 불면증. 현재는 수술 직전 환자를 대상으로 한 불면증 디지털치료제만 시도중이지만, 더 큰 시장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 사진=벨테라퓨틱스
어쩌면 K-POP과도 손잡을 불면증 디지털치료제도 개발중
한편 벨테라퓨틱스는 이 같은 소리 아키텍처를 고려한 프로그램을 더욱 확장해 ‘불면증 디지털치료제’ 시장에도 도전장을 던졌다. 타깃팅이 독특한데 수술을 앞두고 병원에 갓 입원한 환자를 대상으로 했다.
“내일 큰 수술을 앞둔 A씨에게 가장 큰 일은 숙면을 취하는 것이다. 수면의 질은 다음날 수술과 직결된다. 수면마취 등 고려되는 부분이 많다. 잠을 못 이뤄 몸 상태가 평소보다 떨어지면 수술 중 애를 먹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대부분 환자들이 수술 전날 바뀐 환경 탓에 잠을 설치기 일쑤다.” 이재은 대표의 개발 취지다.
벨테라퓨틱스가 개발한 불면증 디지털치료제는 이 같은 환자의 생체신호를 체크해 이를 기반으로 실시간 바이오 피드백 사운드를 생성해 제공하는 방식이다. 몸 상태에 맞는 소리를 실시간 맞춤형으로 제작한다는 것이다. 벨테라퓨틱스가 제공한 수면뇌파를 이용한 파일럿 임상 결과 그래프를 보니 수면 유도제 복용시 뇌파에서 나타나는 변화 양상이 벨테라퓨틱스의 불면증 디지털치료제를 사용하는 중에도 유사하게 관찰됐다. 또 입면 부문에서 수면유도제는 27분, 벨테라퓨틱스의 불면증 디지털치료제는 5분 걸렸다는 결과표가 눈에 들어왔다. 이 대표는 “경구복용 수면제의 부작용 문제를 해소함과 동시에 CBT(불면증 인지행동 치료법)의 긴 치료기간의 부담을 덜 수 있는 즉각적인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벨테라퓨틱스의 ‘소리 방정식’은 다양한 파이프라인과 연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지녔다. 예컨대 최근 성장 둔화로 위기감이 감도는 K팝 시장에서 ‘기능성 K팝’처럼 이전 글로벌 시장에 없던 콘셉트로 새 시장 개척도 가능할 것이다.
들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차분해지는 효과 또는 불안감과 우울증을 줄여주는 소위 MZ세대들이 흔히 겪는 심리적 아픔을 보듬을 ‘약과 같은 음악’으로 리포지셔닝 한다면 어떨까. 1석2조 효과를 얻게 될 K-아이돌의 새 앨범에 기꺼이 지갑을 열 가능성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