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최전선의 숨은 개척자들
이태형 충주고구려천문과학관 관장
우주를 다룬 만화나 SF영화 속에서 미국이나 러시아, 일본의 우주인만을 바라보아야 했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기술로 로켓을 만들고, 달 탐사선을 보내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더문〉, 〈승리호〉 같은 우주 영화가 만들어지고, 한국인이 우주에 나가는 날도 멀지 않았음을 기대하게 되었다.
우주 영화를 보고, 우주 SF를 읽던 세대들이 우주에 대한 꿈을 꾸고 우주에 대한 도전을 시작한다. 20대를 갓 넘긴 일론 머스크가 스페이스X를 만들어 우주에 도전하고, 세계 최대의 갑부가 되기까지 불과 20여 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꿈을 꾸지 않았다면, 그리고 꿈으로만 그쳤다면, 오늘의 일론 머스크는 없었을 것이다.
2022년 달 탐사선 다누리호를 무사히 발사한 우리나라는 이제 우주 7대 강국에 우뚝 섰다. 우주에는 주인이 없다. 하지만 누구나 갈 수 있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곳도 아니다. 먼저 가고 먼저 차지하는 자만이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20년 이내 1조 달러 예상되는 우주산업 규모
미국 모건 스탠리의 보고서에 의하면, 앞으로 20년 이내에 우주산업의 규모가 1조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우주산업은 크게 장비와 사람을 우주로 올리는 업스트림(upstream)과 우주에 올려진 장비를 활용해 서비스하는 다운스트림(downstream)으로 나뉜다. 여기에는 인공위성과 우주탐사선, 그리고 이들을 우주로 올리는 발사체를 직접 만드는 사업뿐 아니라 우주에서 얻은 정보나 자료를 이용하는 다양한 사업들이 있다.
인공위성이 없는 삶은 상상하기 어렵다. 자동차의 내비게이션부터 매일 매일 접하는 일기예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그 중요성이 확인됐던 우주인터넷까지, 인공위성의 활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그리고 그 인공위성을 설계하고 제작하는 일에서부터 인공위성에서 얻은 정보를 활용하는 다양한 스타트업들도 등장하고 있다.
인공위성을 올리기 위한 발사체 시장도 엄청나다. 과거에 1㎏의 물체를 우주로 올리기 위해서는 수천만 원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로켓의 재활용이 가능해지고, 로켓의 규모가 거대해지면서 그 비용은 수백만 원까지 낮아지고 있다. 이젠 재활용을 하지 못하는 로켓으로는 우주발사체 시장에 나설 수 없을 정도다.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선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는 2023년 97번의 로켓을 발사하면서 전 세계 로켓 발사의 7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우주발사체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다.
달은 미래 자원의 보고, 우주쓰레기 처리 산업도 각광
달의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도전도 엄청나다.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에 이어 일본도 달 착륙에 성공했고, 올해는 민간 기업들도 달 탐사에 도전장을 내고 있다. 달에 기지를 건설하고, 그곳에 인류가 상주하면서 달 자원을 개발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미국은 달 주위에 ‘루나게이트’라는 우주정거장을 만들어 이를 지원할 계획이다. 달에서 달의 자원으로 직접 건물을 짓고, 달에서 채취한 얼음으로 물과 산소, 연료를 해결한다. 미래의 달은 자원의 보고이자 화성이나 더 먼 우주로 가는 기지가 될 것이다. 또한 우주 관광의 중요한 목적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공위성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지구 대기권에 뿌려지는 우주쓰레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이미 작년 한 해 동안 우주에 올려진 인공위성이 1,000대가 넘었다. 그중 정상적으로 작동을 하지 않는 위성들과 마지막 단계의 로켓이 모두 우주쓰레기로 남게 된다. 2022년 기준 10㎝ 이상의 우주쓰레기는 3만 개가 넘었으며, 1㎝ 미만의 쓰레기까지 합치면 1억 개가 넘는다. 위성 발사가 늘어날수록 우주쓰레기는 더 늘어날 것이다. 이런 쓰레기를 처리하는 산업 또한 앞으로 10년 이내에 수십억 달러 이상의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
민간 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길 열어줘야
우리나라 정부는 2022년 발표한 ‘제4차 우주개발진흥 기본계획’을 통해 2045년까지 우주산업의 글로벌 매출 점유율을 10%까지 올리겠다고 제시했다. 2020년 기준으로 우리의 글로벌 점유율은 1%대 수준에 불과했다. 우주산업은 수요가 급증하는 일반 민간사업과는 결이 다르다. 정부 주도의 사업 모델에 민간 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배경이다.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우주항공청이 힘을 쏟아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도 이 거대한 우주 시장에 도전하고 있는 우주 최전선 개척자들이 많이 있다. 그들을 일일이 다 찾아서 소개할 수는 없지만, 그중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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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호 3차 발사 ⓒ공공누리에 따라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공공저작물 이용 |
한국천문연구원과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등은 지난 2019년부터 미국 NASA와의 협의를 통해 한국의 과학 탑재체 4종을 개발, 이를 미국의 달 탑재체 서비스(CLPS) 업체를 이용해 달 표면에 운송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으며, 그 첫 번째 탑재체인 루셈(LUSEM)이 2023년 9월에 미국에 보내져 현지 테스트를 마치고 올해 발사를 기다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독자적으로 개발해 발사한 달 궤도선 ‘다누리’는 달 극지방의 영구음영지역을 촬영하기 위한 NASA의 탑재체 섀도우캠(Shadow Cam)을 탑재하고 있으며, 현재도 NASA와의 협력으로 과학연구를 꾸준히 수행하고 있다.
발사체 시장에서의 도전도 점점 커지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주축이 되어 2022년에 개발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는 작년부터 민간에 이전되어 차세대 발사체로 개발되고 있다. 그리고 소형 발사체 개발에는 여러 스타트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국내 민간 기업인 이노스페이스는 2023년 3월 브라질 공군기지에서 자체 개발한 ‘한빛-TLV’를 발사했다. 이 로켓은 고체 연료와 액체 연료를 함께 사용하는 15t급 ‘하이브리드 로켓 엔진’을 국내 최초로 장착했는데, 당시 시험 비행에서 4분 30초 정도 우주로 비행했다.
한국판 스페이스X 꿈꾸는 개척자들
세종시에 위치한 이노스페이스는 한국항공대학교 출신 김수종 박사가 2017년 설립한 기업으로, 2023년까지 550억 원이 넘는 투자금을 유치했고, 44명의 연구인력이 로켓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 이노스페이스는 최근 로켓 발사 비용을 줄이기 위해 발사체를 회수해 재사용하는 로켓 재사용 발사 시험에도 성공했다. 하이브리드 엔진을 사용해 부품 수를 줄이면서도 안전성을 확보하고, 재사용 기술을 통해 경제성도 확보하게 된다면 한국의 스페이스X로 거듭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노스페이스 이외에도 한국판 스페이스X를 꿈꾸는 스타트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중 우주발사체 스타트업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페리지)는 KAIST 항공우주공학과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신동윤 대표가 2018년 창업한 회사다. 페리지는 로켓의 3대 핵심 기술인 엔진, 탱크, 제어 기술을 자체 확보했고, 내년에 독자 개발한 소형 로켓 블루웨일1을 발사할 계획이다.
이미 국내 위성 업체와 로켓을 활용한 사업을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페리지는 200 ㎏ 이하 인공위성을 지구 상공 저궤도로 수송하는 것을 목표로 오는 5월 블루웨일1의 준궤도(100㎞) 시험 발사에 나선다. 페리지는 최근 로켓 연료로 새롭게 등장한 메탄 엔진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미국 스페이스X와 중국에서 개발되고 있는 메탄 엔진은 추력 제어가 편하고 연소 효율이 높으며, 연소기 내부에 잔여물이 적게 남아 엔진을 재사용하기에도 좋다. 페리지는 로켓 중량을 줄이기 위해 탱크를 철보다 무게가 1/4이고 강도가 10배 이상 되는 탄소섬유 복합재(CFRP)로 만들어 무게를 획기적으로 줄였다.
한국이 이끄는 인공위성, 달 탐사의 최전선 사업들
1992년 8월 우리별1호가 발사된 이래 우리나라의 우주산업에서 가장 앞서가고 있는 분야가 바로 인공위성 개발 분야일 것이다. 1999년 겨울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발된 다목적실용위성 아리랑1호가 발사된 것을 비롯해 정부 주도로 많은 위성들이 개발되고, 우주로 발사되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위성을 직접 개발해 우주로 쏘아 올리는 스타트업 기업들도 우리나라의 우주 산업을 개척하고 있다.
2023년 가을 미국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을 이용해 자체 개발한 ‘옵저버 1A’를 궤도에 올린 나라스페이스도 그중 하나이다. 60% 정도의 부품을 자체 개발한 ‘옵저버 1A’호는 큰 생수병 4개 정도 크기로, 고도 525 ㎞에서 너비 1.5 m 이상 물체를 식별할 수 있는 해상도로 지구 영상을 촬영할 수 있다. 나라스페이스는 이 위성 개발의 성공을 기반으로 위성을 대량 생산해 지구 관측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형 달 탐사 로버의 개발도 우리나라 우주 개발의 최전선 사업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김순겸 박사팀은 달의 극한 상항에서 주행할 수 있는 한국형 로버를 만들고 검증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진행된 한국형 로버 개발 버전의 무게는 25kg 정도의 경량 로버로, 달 착륙선의 부피와 탑재 하중을 고려해 폴딩/언폴딩 시스템을 구현하고, 언폴딩 시 추가 모터 사용을 피하기 위해 클러치 구조를 채택했다. 달에서의 이동속도는 최대 20 mm/초, 정격 이동속도는 10 mm/초로, 한번 충전으로 3.5시간 정도 연속 주행이 가능하다.
김 박사는 이 개발 버전을 바탕으로 실제 달 탐사에 쓰이게 될 로버의 개발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 로버는 2030년대 초 우리나라의 달 착륙선에 탑재되어 직접 달 탐사를 시도할 예정이다. 우리나라의 최초 달 착륙선에 우리가 개발한 탐사 로버가 탑재되어 달을 탐사할 날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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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벽돌 월면토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우)개발중인 탐사 로버 ⓒ한국과학기술연구원 |
달 기지 건설을 위한 도전에도 우리나라의 연구진들이 뛰어들고 있다. 특히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신휴성 박사 연구진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인공 월면토는 미국 항공우주국에서도 주목하는 기술이다. 달에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달에서 직접 건설 자재를 만들어 사용해야 하는데, 신 박사팀은 마이크로파를 이용해 달의 토양을 녹여 벽돌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다. 마이크로파를 쏘아 달 토양의 입자를 덮고 있는 철과 토양을 녹여 벽돌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다.
연구팀은 3D프린터를 이용해서 월면토를 재료로 원하는 건축 구조물을 만들어내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달에 기지 건설이 본격화되고 달 자원이 개발되는 시점에서는 달에서 시멘트 대신 월면토를 이용한 건설이 본격화될 것이고, 그로 인해 파생되는 수익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것이다. 건설기술연구원의 기술이 민간 기업으로 이전되면 시멘트 시장처럼 월면토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기업이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중동의 건설 붐을 일으키듯 달에서 건설 붐을 일으키고, 이로 인해 막대한 경제적 수익을 올리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이외에도 연구소와 대학, 기업의 많은 연구자들이 우주산업에 도전하고 있다. 그들에게 우주는 단지 꿈을 꾸기 위한 대상이 아니라 도전하고 정복해야 할 무대이다. 우주항공청의 개청과 함께 국가와 민간이 함께 협력해 우리나라도 우주개발의 최첨단에 우뚝 서게 될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