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오래 내 곁에 더 있어 주오” 노(老) 가수가 절규한다. ‘원로’나 ‘레전드’란 어휘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이 순간 자신의 모든 걸 내려놓고 어린애처럼 울부짖는다. 치매를 앓고 있는 아내 앞에서 무릎 꿇고 절규한다. 어제 방송을 보고서야 알았다. 태진아 씨가 5년 전부터 치매를 앓고 있는 아내를 케어하고 있다는 걸. ‘케어’라는 말도 사치스럽다. 모든 걸 내려놓고 아내에게 헌신하는 모습을 보았다. 아내의 병을 숨기고 싶을 만도 한데, 그는 아내를 ‘옥경이’로 다시 소환해 노래하며 절규한다. ‘옥경이’는 그만의 옥경이가 아닐 정도로 잘 알려진 이름이다.
희미한 불빛 아래 마주 앉은 당신은 언젠가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인데
고향을 물어보고 이름을 물어봐도 잃어버린 이야긴가 대답하지 않네요.
마치 아내의 치매를 예견이라도 한 듯한 노랫말이다. 아내의 잃어버린 이야기를 다시 찾아주려고 애를 쓰는 남편의 헌신에 고개를 떨군다. 남편의 ‘데뷔 50주년 기념 디너쇼’에서 아내는 남편의 노래만은 잊지 않고 따라 부른다. 손을 꼭 잡고 따라 부르는 아내의 모습이 보기 좋을 정도로 애처롭다. 아내의 입에서 또렷하게 들리는 ‘옥경이’란 말마디에 행복해하는 남편의 모습이다. 어렵게 살아온 부부의 삶이 ‘옥경이’란 어휘로 소환되는 순간, 모든 관객이 같이 운다. 이 프로의 제목인 〈***사랑꾼〉에 손색없는 남편이다. 나도 보면서 눈물을 훔쳤다.
방송을 보는 내내 태진아 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본인이나 아들 문제로 한때 그늘이 졌었던 삶의 궤적 때문에 그에 대해 가졌던 나의 막연한 편견이 있었던 거 같다. 우린 누군가에 대해 이유 없이 막연한 선입견을 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난 그 역시 또한 그렇고 그런 한 명의 연예인 정도로 여겼었다. 내 생각이 한참 잘못되었다는 걸 오늘 크게 깨달았다. 선입견(先入見)은 말 그대로 미리 입장을 세워 놓고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다.
난 평생을 철학을 공부했다. 철학은 선입견 내려놓기이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나만의 특정한 입장(立場)을 미리 세워 놓고 보지 말아야 한다. 입장을 중립화(中立化)해야 한다. 중립화는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특정한 입장을 괄호 속에 넣어 두어 작용하지 못하게 한 채, 사물이나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는 태도이다. 이게 중립적 태도다. 철학은 결국 세상을 편견 없이 바라보는 눈을 갖는 일이다. 그걸 통해 사랑의 공동체를 일구어 가는 게 바로 철학의 궁극목표다.
우린 가끔 태도의 차이 때문에 세상을 잘못 보거나 다른 사람과 갈등을 빚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의 태도를 바꾸어 세상을 바라보는 건 쉽지 않다. 자신의 주장을 잠시 유보하기가 쉽지 않다. 섣불리 단정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 단정(斷定)은 딱 잘라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단정한 것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나의 막연한 선입견이 마냥 부끄럽다. 그의 입장을 헤아려보지도 않은 채 너무나 당연한 듯 단정한 게 부끄럽다. 치매 환자 간병하기가 가장 어렵다고 들었다. 그 어려운 일을 묵묵히 감당해 나가는 노(老)가수의 모습을 보면서 잠시나마 그에 대해 가졌던 짧은 생각을 내려놓고 싶은 오늘이다.
첫댓글 감사히 읽어 봅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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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그랬군요~
인생에 불가항력의 비애가 얼마나 많은지요.
태진아에게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
-()-
😊
고맙습니다. ()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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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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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