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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1일 오늘의 역사
2022년 호남화력발전소 폐쇄
2022년 충남 아산 보일러 공장 대형화재 발생
2022년 탈북자 김모씨 강원도 고성 철책을 넘어 월북
새해 첫날인 1일 강원도 동부전선 최전방 철책을 넘어 탈북자 김모씨가 월북했다. 군 당국은 3시간가량 월북 사실을 몰라 대북 감시망에 구멍에 뚫렸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합동참모본부는 2일 "어제(1일) 오후 9시 20분께 동부전선 비무장지대(DMZ) 내에서 미상 인원 1명을 감시장비로 포착해 신병 확보 위해 작전 병력 투입해 DMZ 작전 중 해당 인원이 오후 10시 40분께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월북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후 확인 과정에서 같은 날 오후 6시 40분께 해당 인원이 GOP(일반전초) 철책을 넘는 장면이 과학화 경계감시장비에 포착됐다고 합참 관계자는 설명했다.
군은 월북자가 철책을 넘은 뒤 신병확보 작전 돌입하기까지 약 3시간 동안 몰랐고, 신병 확보에도 실패했다.
합참 관계자는 "(과학화 경계감시장비) CCTV에 포착됐는데 당시 CCTV 감시병이 인지하지 못했고 이후 재생 과정에서 월책 모습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현재 월북자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았다.
2020년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 바그다드 주재 미대사관 공습
2020년 근로시간 주52시간 상한제 50~299인 기업으로 확대
2019년 대형마트와 슈퍼마켓에서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 금지
2018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신년사에서 평창 겨울 올림픽 참가의사 밝힘
2017년 터키 이스탄불 나이트클럽에 산타클로스 차림의 괴한 총기난사 39명 사망.
2017년 이라크 남부 나자프 검문소에서 IS 자살폭탄 테러 9명 숨짐.
2015년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 사망(70세)
2014년 미국 콜로라도 주 대마초의 전면유통 허용
2014년 동물등록제 시행, 3개월 이상인 개가 등록대상
2011년 서울동물원 가축질병 위기로 개장 후 첫 관람객 입장 중지
서울동물원이 2011년 1월 1일 구제역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으로 1984년 과천에서 개장 이후 처음으로 잠정 관람 금지 조치를 취했다. 이번 관람금지 조치는 2010년 11월 29일 경북 안동에서 시작된 구제역 확산에 따라 가축질병 위기 경보단계가 최상위 단계인 '심각(Red)' 단계로 격상되고,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에 따른 예방조치이다.
서울동물원이 2011년 1월 현재 보유 중인 동물 중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에 걸릴 수 있는 동물이 60%에 이른다. 만약 동물원 동물이 구제역에 걸리면 다시 청정구역으로 되돌아오는 데 1년, 멸종 위기 희귀동물을 해외에서 다시 구하는 데 1년 등 최소 2년 이상 동물원 재개장이 불가능하다.
관람금지 조치 후 동물원 내 사육사와 청소 용역 직원을 95명씩 2개조로 원내 숙식을 하며 동물을 관리했다. 또한 동물을 직접 관리하는 직원과 일반 직원 사이를 통제하는 등 방역에 만전을 기했다.
2011년 브라질 첫 여성대통령 지우마 호세프 취임
새해 첫날인 1일 브라질 의사당에서 열린 제36대 대통령 취임식에 지우마 호세프(Dilma Rousseff·63)가 우뚝 섰다. 취임식장엔 “올레(Ole), 올레, 올레, 룰라, 지우마”라는 함성이 울려 퍼졌다.
브라질 현대사에서 가장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전임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휘장을 물려받은 호세프는 전임자의 위대한 업적을 계승하겠다고 다짐하는 한편 새로운 개혁을 주창했다. 복잡한 세제 개편과 인플레이션 통제, 교육·보건·안보 개혁, 새로운 석유자원 개발이 핵심 내용이다.
특히 지난 2006년에 발견된 남동부 대서양 쪽 근해의 거대한 해저 유전 개발에 큰 비중을 두었다. 가채(可採) 원유량이 65억배럴로 추정되는 이 유전에 대해 그는 “브라질이 미래로 가는 패스포트(여권)”라며 임기 중 이 자원으로 국가경제의 새로운 도약 발판을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를 천명했다.
룰라 대통령에 의해 지난해 대선 후보로 지명됐던 무명의 호세프는 그해 10월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지지도가 폭발적으로 치솟고 있다. 그가 이날 취임식장으로 가는 연도엔 수많은 시민들이 환호했다. 그의 차량 주위엔 검은 제복의 여성 경호원들이 삼엄한 경비를 펼쳐, 브라질 공화정 122년 만에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음을 알렸다.
불가리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호세프는 좌파 성향이지만 전임 룰라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실용주의자로 돌아섰다. 취임식 때 좌파 지도자로 꼽히는 파라과이 및 우루과이 대통령과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과시했지만, 미국과 EU(유럽연합)와도 강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이날 취임식엔 각국 국가 원수 23명과 부통령 9명, 외무장관 등 장관급 24명, 대사들 76명이 참석했다.
2009년 태국 나이트클럽 화재 최소 59명 사망
2009년 1월 1일 새벽 태국 수도 방콕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화재가 발생, 신년맞이 축제를 즐기던 젊은이 등 최소 59명이 숨지고 212명이 부상했다.
이 화재로 한국인 3명이 가벼운 상처를 입었으나 응급치료를 받은 후 모두 퇴원했다고 방콕주재 한국대사관이 밝혔다.
방콕 통로경찰서는 이날 새벽 에까마이 거리의 산티카 클럽에서 원인 모를 불이 나 최소한 59명이 숨졌으며 212명이 부상했다면서 사상자는 대부분 신년축제를 즐기던 젊은이들이라고 말했다.
일부 언론은 2층 건물 천장에서 불길이 치솟았다는 목격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화재 원인이 전기 누전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2008년 호적(戶籍)을 대신하는 가족관계등록부 도입
호주제 폐지, 부성원칙의 수정, 친양자입양제도, 성·본 변경제도 등이 반영돼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의 헌법이념을 구체화한 새로운 가족관계 등록제도가 2007년 5월 17일 공포돼 1월 1일부터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기존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 단위로 작성됐던 호적제도 방식에서 개인별로 가족관계등록부가 작성되는 가족관계등록제도 운영이 시작되었다.
가족관계등록부는 본인, 부모, 배우자, 자녀의 인적사항이 기재된 ▲가족관계 증명서와 본인의 출생, 사망, 개명 등의 인적사항이 기재된 ▲기본증명서, 배우자 인적사항 및 혼인.이혼에 관한 사항이 표기된 ▲혼인관계 증명서, 양부모 또는 양자 인적사항 및 입양.파양에 관한 사항이 적힌 ▲입양관계 증명서, 친생부모.양부모 또는 친양자 인적사항 및 입양.파양에 관한 사항이 기록된 ▲친양자입양관계 증명서 등 5종이다.
행정자치부는 2007년 12월 말 각 지방자치단체에 지침을 통해 ‘호적’을 일괄 ‘제적’으로 변경할 것과 발급기 적당한 위치에 호적등초본이 제적등초본으로 전환됨에 따른 호적등초본의 서비스가 중지된다는 내용을 게시할 것을 요청했다.
2008년 국민참여재판 도입
2007년 국립공원 입장료 폐지
2007년 루마니아·불가리아 유럽연합 가입
루마니아와 불가리아가 2007년 1월1일 유럽연합(EU)에 가입했다. 이로써 EU회원국은 25개국에서 27개국으로 늘었다.
또 슬로베니아는 이날부터 유로화를 공식 통화로 채택,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나라)도 13개국으로 늘었다.
트라이안 바세스쿠(Basescu) 대통령이 부쿠레슈티 시내 대학 광장에서 “어려움을 이기고 종착지에 도착했다. 우리에게는 미래의 길이자 기쁨의 길” 이라고 연설하자 시민 수만명이 환호했다.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도 불꽃놀이와 레이저쇼 등으로 EU 가입을 축하하며 새해를 맞았다.
2004년 통계에 따르면 불가리아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6300유로(약 772만원)로 유럽연합 평균의 약 3분의 1에 불과하다. 루마니아도 7000유로(약 858만원)로 생활수준은 낮지만 각 나라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각각 5.5%와 4.1%로 유럽연합 평균(1.6%)보다 높다.
2005년 신문법과 언론중재법 개정.
2005년 시(市급) 이상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음식물쓰레기 매립금지
2002년 유럽, 유로화 공식 사용
유럽 12개국의 인구 3억여명이 2002년 1월 1일 0시를 기해 단일 통화인 유로화를 공식 사용하면서 역사적인 유럽 단일 화폐 시대를 열었다.
새해 첫날 금융기관이 휴무일이었지만, 유로화 가입국(유로랜드) 주민들은 현금 인출기를 통해 유로화를 찾았고, 상점에서도 유로화는 통용됐다. 유럽 중앙은행(ECB)은 화폐교환을 대비해 150억장 이상의 유로화 지폐와 510억개 이상의 동전을 배포했고 유로화 동전 세트 1억5천만개도 시중에 깔아놓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벨기에, 오스트리아, 그리스,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포르투갈, 핀란드 등 12개국의 유로랜드는 국가별 차이가 있지만, 최종적으로 2002년 2월 28일까지 기존 화폐와의 통용기간을 거쳤다가 3월 1일부터 유로화만 사용하기 시작했다. 각국 은행들은 구(舊)화폐와 유로화의 환전을 2003년 6월 말에 끝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국민들을 향한 신년 인사를 통해 "우리 모두는 역사 쓰기에 참여할 것"이라며 "우리는 유럽인들이 수세기 동안 꿈꿨던, 국경 없는 여행의 자유와 공동화폐 지불 시대의 여명을 경험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정부는 31일 밤 7시 파리의 퐁뇌프 다리에서 유로화 시대 개막을 알리는 상징적인 조명 행사의 개막식을 가졌다.
2000년 Y2K(컴퓨터 2000년 인식오류) 대란 불발
세기의 전환을 앞두고 전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Y2K(컴퓨터 2000년 인식오류)대란이 현실화되지 않았다. 세계각국은 미사일 오발에 의한 전쟁발발, 원전 방사능 유출 등 ‘밀레니엄 버그’ 로 예상됐던 재앙의 시나리오가 기우였음이 확인되자 안도했다.
Y2K에 대비하기 위한 세계 각국의 노력은 필사적이었다. 미국의 Y2K 대비를 총지휘한 정보협력센터(ICC)는 24시간 가동체제에 들어가, 시시각각 세계 180개국의 Y2K 담당자들과 정보를 교환하며 재난에 대비했다. 미국의 유나이티드항공은 2000년 12월 31일과 1월 1일 양일간 총 4000편의 항공기 운항을 중지했으며 이스라엘은 30년이 넘은 원자력발전소를 일시 폐쇄하기도 했다.
한국도 12월31일부터 1월3일까지 4일간 은행업무를 중단해 Y2K에 대비했다. Y2K 재난을 방지하기 위해 전세계가 들인 돈은 3000억-6000억 달러, 많게는 1조 달러로 추산했다
1999년 유럽 단일통화 유로(EURO) 체제 출범
1998년 쿠르드난민 대탈출
1997년 당산대교 철거 시작
1997년 114 안내전화 유료화
1996년 공공장소 금연 실시.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세계무역기구(WTO)가 1995년 1월 1일 공식 출범했다. 세계무역기구는 1993년 12월 타결된 우루과이라운드 이후의 세계무역질서를 이끌고 갈 다자간 무역기구로, 1947년부터 세계무역질서를 이끌어 온 GATT체제를 대신하게 됐다. WTO는 GATT에는 주어지지 않았던 세계무역분쟁 조정기능과 관세인하요구, 반덤핑규제 등의 법적 권한과 구속력을 행사할 수 있어 세계무역질서를 어지럽히는 국가에 대한 제재조치를 취할 수 있다.
신국제경제질서의 중심체로서 세계무역기구가 설립되고, 무역과 관세를 둘러싼 국제적 문제는 분쟁해결기구(DSB)를 설치, 법적으로 해결하도록 함으로써, 세계무역의 투명성을 제고했다. 그러나 미국에 의해 주로 신경제질서가 형성되고 세계무역기구를 통해 미국과 같은 강대국과의 분쟁은 실제로 공정한 판결로 해결되기 어렵기 때문에 이 기구의 실질적인 존재성에 대한 의문점이 제기됐다.
1995년 쓰레기종량제 전국 실시
쓰레기종량제가 1995년 1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쓰레기의 실제 배출량에 따라 수수료를 차등 부과하므로 쓰레기 감량화를 유도하고 재활용품의 분리배출 관행을 정착시키기 위한 것이 그 목적이었다.
가정과 상가에서 배출되는 모든 폐기물에 종량제가 적용되나 종이류나 빈병, 캔류, 플라스틱류는 분리수거되므로 수수료가 부과되지 않았다. 1994년 4월부터 시범적으로 실시 운영해오다 쓰레기 발생량이 약40% 줄어들고 재활용율이 100% 늘어난 것으로 조사돼 이날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1994년 서울시 ‘서울 정도 600년의 해’ 선포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발족
1992년 미국, 캐나다, 멕시코 3국이 조인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1994년 1월 1일 정식 발족됐다. 이로써 인구 3억7천만명에 GDP 6조8천억달러로 EC를 능가하는 사상 최대규모의 경제블록이 탄생한 셈이다. NAFTA는 국민경제를 전제로 한고 있던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세계가 냉전종식 이후의 혼란에서 벗어나 경제를 축으로 한 질서 재편과정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상징이기도 했다.
NAFTA 출범으로 단기적으론 세계경제가 지역블록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블록간 경쟁을 촉발하고 더 나아가 무역경쟁의 시대로 돌입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러나 미국이 NAFTA를 추진했던 목적이 세계경제의 지역화및 글로벌화라는 상호 모순된 경향속에서 EC와 일본경제에 대응하기 위한 지역화 전략이었기 때문에 NAFTA의 미래를 회의적으로 보는 이들도 적지않았다.
1993년 체코슬로바키아공화국, 체코공화국과 슬로바키아공화국으로 분리
체코슬로바키아 연방공화국이 1993년 1월 1일 해체돼 고유 언어와 정부를 갖고 독자적인 경제-사회적 문제를 담당할 체코공화국과 슬로바키아공화국의 2개 독립국가로 탄생했다.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와해로 건국된 체코슬로바키아를 지금까지 통치해온 것은 체코인이었다. 동부 전원지대에 주로 살고 있는 슬로바키아인은 이 통치를 묵묵히 따랐다. 그러나 동구권의 자유화운동으로 공산화가 무너진 체코슬로바키아 내부에서도 슬로바키아인의 자치확대 요구가 새롭게 시작됐다.
1992년경에는 연방의회내에 슬로바키아 의원이 늘어나 이들이 7월17일 주권선언을 하자 하벨은 대통령직을 사임했고 후임 대통령은 1992년 8월에 연방분리를 결정, 이로써 체코슬로바키아가 74년만에 해체됐다.
1993년 한국-체코 국교 수립
1993년 한국-슬로바키아 국교 수립
1990년 딘킨스, 뉴욕시 최초의 흑인시장으로 취임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전국민으로 확대
1988년 국민연금제, 최저임금제 실시
1988년 김일성 신년사에서 남북연석회의 제안,
쌍방의 당국자 포함한 제정당 사회단체 대표들과 각계 인사 참가하는 남북연석회의에서 팀 스피리트 훈련 중지, 다국적 군축회담, 서울올림픽 공동주최, 상호비방 중지문제 등 논의 제안
1987년 농수산부, 농림수산부로 개편
1984년 브루나이, 영국으로부터 독립
1984년 백남준 연출 전세계 유명예술인들의 공연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서울(한국시간은 1월2일 새벽2시)-뉴욕-파리-베를린-로스엔젤레스 위성으로 연결해 동시중계
1984년 세계최대기업 ATT사(미국전화전신회사), 22개의 지역전화회사(자회사)를 분리 독립
미국 전화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세계최대 기업 미국전화전신회사(ATT)가 1984년 1월 1일 22개의 지역전화회사(자회사)를 분리-독립시켜 사상최대의 기업분할을 실시했다. ATT는 107년의 역사와 100만명의 종업원수 1550억달러의 총자산을 자랑하는 세계 최대 기업으로 규모면에서 IBM의 3배에 달했다.
미국의 전화가입건수 1억8천2백만건 가운데 80% 이상이 ATT를 이용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이 거대기업에 대해 미 사법부는 독과점금지법을 적용, 분할 소송을 진행해 왔고 연방통신위원회(FCC)도 다양한 규제해 분한을 촉진시켰다. 기업분할로 ATT는 장거리전화부문과 제조부문, 연구개발부문만이 남게 됐고, 분리된 22개 자회사는 7개 지역으로 통합된 7개 독립회사로 발족하게 됐다.
1983년 공직자윤리법(고위공직자의 재산등록) 발효
1983년 미터법 사용 의무화
1982년 한국전력공사 발족
1981년 그리스, 10번째로 유럽연합(EC)에 가입
1981년 중앙정보부 명칭을 국가안전기획부로 개칭
1981년 팔라우공화국 독립
1979년 미국-중국, 30년만에 국교 수립
1979년 미국-자유중국 단교, 상호방위조약 파기
1978년 동력자원부 발족
1978년 인도항공 보잉747 폭발 봄베이 근처 바다에 추락 213명 목숨 잃음
1977년 의료보호제도 실시
의료보호제도는 1961년에 제정된 생활보호사업의 일환으로 생활보호대상자에게 국공립의료기관의 무료진료증을 발부하여 진료를 받게 하는 등의 사업이다
그러다가 1977년 12월 의료보호법이 제정되어 현재의 현재의 의료보험제도가 시작 되었다.
의료보호 대상자에는 2가지가 있는데
1종 보호자는 거택보호자와 시설보호자로 근로능력이 없고 정부가 선정하는 극빈자와 양로원 등에 수용된 계층이다.
2종 보호자(자활보호자)는 근로능력은 있으나 생활이 어려운 계층이다.
1종 보호자는 외래와 입원 모두 무료이나,
2종 보호자는 일부금액을 본인부담금으로 하였다
1975년 워터게이트사건 4명 유죄판결
워터게이트사건은 닉슨대통령의 측근이 닉슨의 재선을 위한 공작의 일환으로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본부에 침입하여 도청장치를 하려 했던 미국 역사상 최대의 정치스캔들로 이 사건 관련자 제임스 머코드 등 7명이 체포되고 이들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던 중 미첼 재선위원장, 홀드먼 보좌관 등 닉슨의 측근도 관련되었다는 사실과 백악관의 은폐조작 이전부터 행해진 정적에 대한 불법적 정보활동 등이 밝혀졌다.
닉슨대통령은 1973년 4월 홀드먼, 에릭먼드 두 보좌관, 딘 법률고문, 크라인딘스트 사법장관을 사임하게 하고 자신을 사건을 전혀 몰랐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딘은 그 해 6월 25일 상원조사위원회의 공청회에서 닉슨 대통령도 사건의 은폐공작을 알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닉슨은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녹음테이프와 속기록을 공표했으나 손을 댄 흔적이 발견됨으로써 의혹만 더하게 했다.
게다가 이 사건을 밝히기 위해 임명된 특별검사의 해임, 불성실한 납세신고 등으로 국민의 불신감이 깊어지자 하원 사법위원회는 대통령의 탄핵을 가결했다. 궁지에 몰린 닉슨은 1974년 8월 자발적으로 대통령직을 사임했으며 1975년 1월 1일 이 사건의 관련자 4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1974년 아프가니스탄 남북한과 동시 수교
1973년 영국-에이레-덴마크, EC에 가맹
1972년 프레스카드제 실시
1972년 군사정전위원회 유엔측 수석대표 폴리제독 DMZ 평화이용 4개항 제의
1971년 정부 근대화백서 발표
1971년 남산 1호 터널 개통
1971년 납북어부 출신 간첩 양용수 사건
1970년 IMF 특별인출권 발효
1969년 체코슬로바키아 연방제 발족
1968년 부동산투기억제세법 발효
1967년 대구서문시장에 큰 화재
1967년 미국-영국-프랑스-일본 최초의 4원 TV 중계 성공
1966년 프랑스 제4공화국 초대 대통령 오리올 사망
1966년 험프리 미국 부통령 내한
1966년 초중고 교원들 단일호봉제 실시.
1966년 한국-일본 대사임명 동의(주일한국대사 김동조 주한일본대사 기무라)
1965년 아랍 공동시장 발족
1965년 사병 복무기간 2년10개월에서 2년6개월로 단축
1964년 미터제 실시
1963년 KBS-TV 유료광고방송 실시, 시청료 징수 업무 개시.
1963년 정치활동 금지 해제
5.16군사정부가 들어선 이래 군정이 금지한 정치활동이 1963년 1월 1일을 기해 재개됐다. 최고회의는 12월 31일 일절의 정당 사회단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했던 군사혁명위원회 포고 제4호를 폐기하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과 새 정당법을 제정함으로써 1961년 5.16군사혁명이래 만1년7개월반 만에 정식으로 정치활동재개의 길을 열어놓았다.
이에 따라 5.16 주체세력이 중심이 된 민주공화당은 재야정치인이 새 정당을 창당하기 전인 1월 18일 발기인 78명의 명의로 발기선언문을 내놓고, 당총재에 박정희, 당의장에 김종필, 사무총장에 김동환씨 등을 내정했다. 한편 윤보선 전 대통령은 범야당 형성을 제창한 이래 김도연 신민당위원장과 범야당 결성에 원칙적인 합의를 보았다. 최고회의는 정치활동 재개와 더불어 그동안 정치활동정화법에 묶여 정치활동을 못한 곽상훈 전 민의원의장 등 1백71명에게 정치활동을 허용했다.
1963년 만화영화 아톰 탄생
1963년 1월 1일 일본 후지TV에서 만화영화 아톰이 전파를 탔다. 당시에는 90분 분량의 극장용 만화영화가 주류였고, 매주 30분씩 TV에서 만화영화를 상영하는 것은 일대 사건이었다. 아톰의 등장으로 일본에 TV애니메이션 산업이 시작됐으며, 아톰은 최고시청률을 기록하며 1966년까지 193편이 방영됐다.
데츠카 오사무가 1952년 만화잡지 만화소년에 연재했던 철완 아톰은 만화영화로 제작되어 동양 최초의 만화영화이자 대표작으로 자리잡았고 동양적 캐릭터로 일본 만화계의 전설이 되었다.
데즈카 오사무는 이후 밀름을 뛰어다니는 흰 사자 정글 대제(밀림의 왕자 레오), 모자를 쓴 남장 소녀 사파이어 등의 캐릭터로 300여 편의 만화를 남겼다.
아톰은 일본 어린이들에게 과학기술에 대한 열정을 심어줬으며, 전자산업 강국 일본을 만드는 것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만화영화 아톰은 미국에서 1963년 말부터 NBC TV에서 아스트로 보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됐으며,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에 우주소년 아톰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됐다.
1963년 부산시 정부직할시로 승격
1962년 공용연호를 단기에서 서기로 변경
1962년 서사모아, 뉴질랜드로부터 독립
1961년 원-달러 환율 1,000:1로 인상
1960년 카메룬, 프랑스로부터 독립
1960년 호적법 제정 공포
1959년 카스트로 쿠바혁명 성공
쿠바 대통령 바티스타 독재정권이 1959년 1월 1일 마침내 무너졌다. 1958년 12월 29일 카스트로가 이끄는 반정부군에 의해 산타클라라시가 함락되어 바티스타의 패배가 결정적으로 되어 이날 오전 5시 바티스타는 수상과 함께 수도 하바나를 탈출, 도미니카로 망명했다.
혁명전의 쿠바 국민은 외국자본에 의한 산업지배와 대지주제에 의해 빈곤에 허덕였다.
26세의 젊은 변호사 카스트로가 독재자 바티스타에 대항하는 무력혁명투쟁에 나선 것은 1953년 7월 26일, 135명의 동지와 함께 쿠바 제2의 병영 몬카타를 폭격하면서부터이다. 그후 5년여 동안 싸워온 카스트로는 이날 쿠바의 영웅이 됐다.
1958년 유럽공동체시장(EEC) 발족
1957년 3월 25일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 6개국 대표들이 로마에 모여 유럽경제공동체 창설을 위한 협정에 조인했다.
1958년 1월 1일부터 실행에 들어간 이 조약은 회원국 사이에 자본, 상품, 노동력, 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을 목표로 한 것으로 20세기 들어 두차례 초대형 전쟁을 겪었던 유럽 국가들이 그같은 재앙의 재현을 막기 위해 시작한 장정이 또 한걸음 거보를 내디딘 순간이었다.
1950년 당시 프랑스 외무장관이었던 슈만은 서독에 대해 석탄과 철강의 공동이용을 위한 기구 창설을 제안했다. 1870년 보불전쟁 이후 75년간 세차례나 독일과 대규모 전쟁을 경험한 프랑스로서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슈만은 양국의 경제적 이익을 하나로 묶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독일과 이탈리아, 베네룩스 3국이 슈만의 제의에 호응함으로써 1952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가 출범했다. 이어 원자력의 공동 이용을 위한 유럽원자력공동체(Euratom)가 발족됨으로써 이들 6개국의 경제적 이해가 한층 긴밀해졌다. 유럽경제공동체는 이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경제통합을 지향한 것이었다.
1958년 언론제한을 포함한 선거법 국회 통과
1958년의 민·참의원선거를 앞두고 여당인 자유당과 야당인 민주당은 1957년 4월부터 신경전을 벌여왔다. 자유당은 현 국회의석을 고수하기 위해, 민주당은 의석 확대를 위해 전 당력을 선거법 개정에 쏟고 있었다.
1957년 9월의 여야대표회담과 10월 15일의 여야 10인 선거법협상위원회의 합의를 거쳐 국회에 제출된 협상선거법은 소선거구제, 정당추천위원의 선관위 참가, 기탁금제, 선거공영제 강화, 참관인 권한 확대, 선거사범엄단 등을 규정했다.
그러나 이 법안에 `허위보도를 엄벌한다`는 언론규제조항이 들어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자 언론계는 물론이고 민주당 소장 국회의원들까지 맹렬히 반대하고 나섰다.
1957년 12월 31일 밤을 꼬박 새우며 박영종, 이철승, 민관식 등 민주당 소장파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에서 질문전술로 저지투쟁에 나섰으나 실패하고 1958년 1월 1일 그대로 통과됐다. 언론계에서도 국회출입기자단의 24시간 취재거부, 전국언론인대회 개최 등 적극적인 저지투쟁을 벌였으나 사태를 호전시킬 수는 없었다. 이 사태로 민주당 대표최고의원 조병옥이 인책 사퇴했다.
1957년 현대만화가협회 창설
1956년 수단, 영국으로부터 독립
1956년 영암선 개통
1955년 문교부 외래어표기법통일안 발표
1955년 월간 「현대문학」 창간
1954년 정비석 장편소설 '자유부인', 서울신문 연재 시작
1953년 맬다이브 공화국 수립
1951년 공산군 6개 군단 38선 넘어 남하
1950년 제1회 건국국채 발행
1949년 ECA 원조도입 시작
1949년 미국 한국정부 정식인정(초대대사 무초),
1949년 남북한 우편물교환협정 체결
1948년 전기요금 6배로 인상
1948년 소련, 중국내전 불개입발표
1947년 영국, 통신 국유화 실시
1947년 자유중국 신헌법 공포
1946년 히로히토 일왕 `인간선언` 발표
1945년 프랑스, UN 가입
1942년 2차 대전 중 미국 소련 영국 중국 등 26개국 ‘유엔선언’ 발표, 유엔이란 용어 첫 등장
1938년 전국 1400시장의 장날에 양력 사용
1937년 중국공산당 강서성(江西省)에 정권수립
1934년 독일 소설가 바서만 사망
유대인 태생으로 독일에서 태어나 독일의 문화를 존경하고 사랑하고 또 증오해야 했던 독일 소설가 야콥 바서만. 그가 1934년 1월 1일 세상을 떠났다.
도덕적 열정과 선정주의적 경향을 모두 가진 점에서 도스토예프스키에 비유되곤 하는 그는 독일 바이에른의 퓌르트에서 유대계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실과학교를 졸업한 후 문학에 뜻을 두고 빈으로 가서 잡지 편집에 종사하다 1900년부터 작가로서 독립, 1920~30년대에 인기몰이를 하며 독일 문학계에 나타났다.
초기에는 구츠코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영향을 받이 정신분석에 흥미를 가지고 시대의 위기를 비판적으로 관찰했다. 그러나 점차 독일인이자 유대인인 자신의 불안정한 정체성과 유대인으로서의 고뇌를 체험하면서 모든 사회의 부정을 간취(看取)하여 그것들을 소재로 현대사회를 묘사했다.
자서전 ‘독일인 및 유대인으로서의 나의 길’(1921)은 독일인이면서 유대인인 그의 불행하고 불안했던 유년시절을 그린 것으로 자신이 존경하는 문화를 가진 독일에 대한 애증(愛憎)관계를 잘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독일에 대한 애증관계는 전생애를 걸쳐 그를 갈등하게 했고, 또한 창작의 원동력이 돼주었다.
그 밖에 그는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탐정소설 ‘마우리치우스 사건’(1928)과 보통 세계에 익숙지 않은 한 낯선 소년의 실화를 다룬 ‘카스파르 하우저’(1908), 당시 사회상을 매우 낭만적으로 펼쳐보인 표현주의적 작품 ‘세상의 망상’(1919) 등을 남겼다.
1934년 수필가 전혜린 출생
1931년 염상섭, 장편 `삼대`를 조선일보에 연재 (~9.17)
1928년 조선일보, 한국 최초의 신춘문예작품 입선작 발표
1923년 남대문역, 경성역으로 개칭
1922년 헤이그에 국제재판소 개설
1919년 리히텐슈타인 독립
1919년 독일 스파르스쿠스단 공산노동당 창립
1917년 이광수 매일신보에 `무정` 연재
1913년 어린이 교육잡지 `붉은 저고리` 창간
1912년 중화민국 수립을 선포, 쑨원이 임시대총통에 취임
쑨원이 1912년 1월 1일 오후5시 상해에서 남경으로 들어간 즉시 임시대총통 취임식을 거행한 후 중화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했다.
취임과 함께 이해부터 양력을 채용했고 중화민국 원년으로 삼았다. 국기는 한족,만주족,몽고족,회족(이슬람 교도),장족(티베트족)의 5족을 상징하는 오색기가 제정됐다. 하지만 쑨원은 곧 대총통직을 사임했고 북방 군벌 원세개가 3월 11일 임시대총통에 취임해 수도를 남경에서 북경으로 이전했다.
쑨원은 분명 권위있는 혁명가이자 근대중국의 대표적인 정치가였지만 그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 남방 혁명세력은 원세개를 중심으로 하는 북방의 보수세력에 비해 군사적으로도 재정적으로도 열세에 있어 원세개와 타협할 수 밖에 없었다. 중화민국은 원세개에 의한 독재지배의 길을 걸어 쑨원이 제정한 주권재민,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의 우위 등 민주적인 내용의 임시약법(헌법에 해당)은 폐지됐다
1912년 한국 표준자오선 일본표준시에 맞춰 127도 30분에서 135도로 변경
1911년 105인사건(민족주의자 700여명 피검) 발생
1907년 을사늑약 반대하다 대마도로 끌려간 위정척사 사상가 최익현 세상 떠남
1905년 시베리아 철도 (파리-블라디보스톡 구간) 특급열차 운전 개시
1905년 경부선(서울-부산) 개통
우리나라 두번째 철도선인 경부선이 1905년 1월1일 운행을 개시했다. 1898년 9월 8일 경부철도주식회사를 설립해 조선 정부로부터 정부 철도 부설권을 획득한 일본은 1900년 8월 부터 공사에 들어갔으며, 1901년 서울 영등포(8월20일)와 부산 초량(9월11일)에서 기공식을 가진 지 3년4개월 만이었다.
공사는 관민의 저항과 반대, 용지매수 분쟁, 결빙과 홍수 등으로 많은 난관이 있었지만 조선 정부의 협조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저렴한 비용으로 건설됐다. 개통식은 5월 25일 남대문 정거장(서울역)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경부선에 이어 부산(釜山)과 시모노세키(下關)를 연결하는 최초의 부관(釜關)연락선 `일기환(壹岐丸)`이 취항(1905년9월11일)하고, 경의선(서울~신의주)이 개통(1906년4월3일)됨으로써 섬나라 일본은 사실상 대륙과 연결되는 효과를 보았다.
1913년에는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 각국과 화물운송을 시작해 오랫동안 숙원해 온 대륙진출로의 확실한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첫 열차는 시속 26.5㎞ 속도로 17시간이나 걸려 서울과 부산 간을 운행했지만 5개월 후에는 14시간으로 단축됐고, 1906년에는 다시 11시간으로 단축돼 속도, 기술면에서도 장족의 발전을 이뤘다.
1901년 오스트레일리아 연방 성립
1900년 정부 만국우편연맹 가입
1897년 서울시내에 최초의 석유가로등 등장
1896년 고종 음력폐지 공포 양력쓰기 시작
1895년 태양력을 처음으로 쓰기 시작
1886년 영국, 버마 병합
1883(조선 고종 20) 제물포, 부산항과 원산항 이어 세 번째로 개항, 인천으로 이름 바꿈
1879년 영국 소설가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 출생
1867년 룩셈부르크 독립
1863년 근대올림픽 창시자 쿠베르탱 출생
1863년 링컨 미국 대통령, 노예해방 선언
링컨 미국 대통령이 남북전쟁이 한창인 1863년 1월 1일 노예제를 인정하고 있는 자치주에 대해 흑인 노예의 해방을 선언했다. 링컨은 이 선언을 통해 반란상태에 있는 여러 주의 노예를 전부 해방한다고 밝힌 뒤, 해방된 흑인들에게도 옛 주인들에 대한 폭력을 삼가고 적절한 임금으로 계속 일할 것을 당부했다.
노예해방 선언은 노예제를 인정하고 있는 자치주 즉 남부를 겨냥한 것이었다. 이는 남부의 내분을 노리는 동시에 흑인을 북군의 병력에 흡수하는 효과가 있었다. 노예해방 선언 이후 흑인들이 북군에 입대해 남군과 싸웠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었다.
링컨은 이 선언으로 "자신의 이름이 역사에 남는다면 바로 이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후세의 역사도 링컨의 바람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노예해방의 인도적인 명분이 링컨으로 하여금 남북전쟁을 수행케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미 연방의 대통령으로서 미 연방을 수호한다는 현실적인 목표를 위해 전쟁을 결심했을 뿐이다. 노예해방은 단지 부수적인 산물이었을 뿐이었다.
1861년 모나코 독립
1804년 아이티, 프랑스로부터 독립
1804년 1월 1일, 카리브해의 조그만 섬 아이티에서 세계최초의 흑인공화국이 탄생했다.
1791년 8월 22일, 스페인과 프랑스가 분할 점령하고 있던 아이티에서 봉기의 불길이 처음 타올랐다. 흑인들은 그들의 지도자 프랑수아 도미니크 투생을 따라 그들을 지배하던 프랑스인 관리와 농장주의 저택으로 처들어갔다.
투생은 그의 조상이 아프리카에서 프랑스인들에게 잡혀, 아이티 노예로 팔려온 탓에 태어날 때부터 노예였지만, 독학으로 읽기와 쓰기를 배웠다.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는 서적들을 탐독했으며 특히 볼테르가 쓴 글에 감동했다. 투생은 4천여명이나 되는 병사를 지휘하며 프랑스인을 먼저 몰아냈고 1801년에는 섬의 동부에 있는 스페인 식민지 산토 도밍고를 점령했다.
아이티는 1801년 7월 1일 "노예제를 영원히 폐지하며 피부색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윈칙을 천명한 최초의 흑인 헌법을 선포했지만, 식민지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나폴레옹은 군사 2만명을 보내 아이티를 재점령했다.
이 과정에서 투생은 프랑스군의 기만술책에 속아 체포돼 옥사했다. 그의 죽음에 격분한 아이티 민중들은 프랑스군에 격렬히 저항, 10월에는 프랑스군이 점령하고 있던 포르토 프랭스를 해방시켰고 마침내 11월 25일에는 독립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날 아이티인은 최초의 흑인 국가수립을 세계에 알렸다.
1801년 이탈리아 천문학자 주세페 파이치 화성과 목성 사이에서 소행성(세레스) 처음 발견
1785년 영국 `더 타임스` 창간
1785년 1월 1일 J.월터 1세가 영국의 대표적 신문인 `더 타임스(The Times)`의 효시 `데일리 유니버설 레지스터(Daily Universal Register)`를 창간했다.
1788년, `더타임스 오어 데일리 유니버설 레지스터(The Times or Daily Universal Register)`로 이름을 바꿨고 1803년, J.월터 2세가 `더 타임스`로 다시 개제하고 T.번스와 J.딜레인이 주필을 맡아 오늘날의 `더 타임스`로 성장하게 됐다. 한때 부실경영으로 노스클리경에게 경영권이 넘어가기도 했으나 1922년 월터와 J.J애스터 양가에서 경영권을 다시 찾았다. 그 후 1981년 국제적인 신문왕 R.머독에게 경영권이 넘어가 머독그룹 체제하에 운영되고 있다.
현재, 더 타임스는 조간신문으로써 영국의 모든 일간지 중에서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그 영향력도 막강하다. 더 타임스는 처음으로 투서란을 만들고, 사설을 여론 지도기관으로 만들었으며 기자가 자사의 기사에 서명하지 않는 전통도 남겼다.
1748년 스위스 수학자 베르누이 사망
1574(조선 선조 8) 율곡 이이 임금에게 『만언봉사』 올림
1519년 홀드리히 츠빙글리 취리히의 그로스뮌스터에서 종교개혁 시작함
1430년 경상도·전라도에 지진 발생
1422년 조선, 일식 발생
1413년 조선, 일식 발생
1143년 고려, 일식 발생
1115년 여진족의 아골타 `금`나라
여진족의 아골타가 1115년 1월 1일 나라이름을 `대금`이라 칭하며 왕위에 올랐다. 여진족은 아골타가 금나라를 건국하기 전까지는 거란의 요나라에 복속되어 있었으나 요나라가 해마다 더많은 연공을 요구하자, 참다 못한 아골타가 부족장들을 규합해 요나라와의 전쟁을 준비했다.
이 사실이 요나라에 알려지자 아골타는 기선제압을 위해 먼저 요나라의 동북 관문인 영강주(길림성 동쪽)를 함락했다. 이때 여진족의 병력은 겨우 2천5백에 불과했다. 2개월후 1만명도 채 안되는 병력으로 출하점(흑룡강성 서쪽)에 있던 요의 대군을 격파했다. 이듬해 요의 천조제가 친히 70만의 대군으로 출진했으나 아골타는 겨우 2만의 부대 선두에 서서 이들을 맞아 싸우며 연전연승했다. 요양부에서 황룡부에 이르는 요동땅이 모두 아골타의 수중에 들어오자 요나라에 의해 멸망했던 발해국의 잔당까지도 아골타에게 복속해 아골타의 세력은 점차 확대되어 마침내 이날 `금`을 건국하기에 이르렀다.
아골타는 요나라를 타고하고 금나라를 창업하는 대업을 성취했으나 피로가 원인이 되어 1123년 병상에서 56세를 일기로 타계하고 그의 동생이 뒤를 이었다. 여진족은 오랜 역사를 가진 민족으로 선진 시대에는 `숙신`, 수-당 시대에는 `말갈`이라 불렸고 5대10국 시대부터는 `여진`이라 불리우다 명나라 말기에는 `후금`을 세운 누르하치가 자신들을 `만주족`으로 개칭했다. 만주족은 이후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청나라를 건국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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