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3색 통계사용설명서] #4. AI의 미래는 전기에 달려 있다
김상훈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기 소비량, 세계 10위권 산업국과 맞먹어
태양광이나 풍력 등의 재생에너지는 데이터센터에 맞지 않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는 전기 확보 위해 원전 옆에 데이터센터 건설
AI 개발 경쟁에 이어 전력 확보 경쟁도 치열, 전기 부족 사태 예고....
너무 당연한 말 같지만, AI도 전기차도 '전기'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무용(無用), 곧 쓸모가 없다. AI를 위한 기술개발의 경쟁도 치열하고 첨예하지만, 그에 필요한 전기를 어떻게 얼마나 확보하는지도 그만큼 다급하다. AI에 사용되는 전기만으로도 어지간한 선진 산업국가의 1년 총 전기 사용양에 필적한다. 그런 점에서 전기와 관련된 숫자들을 점검해본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편집자 주]
세계 각국의 데이터센터 설치 개수를 지도에 표시했다. 발표기관에 따라 데이터센터의 개수는 차이가 제법 크지만, 경향성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 사진=Data Center Map
우리에겐 벽이 있어요, 전기라는 이름의 벽
스타게이트. 불과 얼마전까지는 4차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라는, 30여년 전 공상과학(SF) 영화의 제목이었다. 한데 며칠 새 지칭 대상이 바뀌었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오픈AI가 발표한 슈퍼컴퓨터 구축 프로젝트로 말이다. 정말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문을 열겠다는 포부를 담은 것일까?
프로젝트의 골자는 이렇다. 1,000억달러(134조원)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투입한다. 이 돈으로 인공지능(AI) 슈퍼컴퓨터와 데이터센터를 짓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 계획은 샘 올트먼 오픈AI CEO가 그리는 ‘AI 새 세상’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는 지금 7조달러(9,300조원)를 모금하고 있다. AI 전용 칩을 직접 만들겠다는 거다. 세상에나. 도대체 어떤 칩을 만들려는 걸까?
그런데 의외의 복병이 있다. 칩만 있다고, 새 세상으로 가는 문이 자동으로 열리지 않는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말했다. 내년엔 AI와 전기차가 큰 벽에 부닥칠 수 있다고. 그 벽의 이름은 ‘전기’다.
고개가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AI 발목을 잡는 게 전기라니. 제로백 1초의 슈퍼카(테슬라 로드스터가 그렇다고, 머스크는 주장한다)를 1975년생 포니가 따라잡았다는 얘기를 듣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2022년 세계 각국의 전기 소비량을 지도에 표시했다. 색깔이 진할수록 더 많은 전기를 사용한 나라들이다. 오른쪽의 표는 그중 주요 국가들의 전기 소비량을 나타낸다. 한국은 세계 8위를 차지했다. / 사진=Enerdata
데이터센터는 전기 먹는 하마
챗GPT 같은 거대언어모델(LLM), 혹은 생성형 AI는 ‘전기 먹는 하마’다. 이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다만 얼마나 많이 먹는지는 추정치만 있을 뿐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차근차근 따져보자.
먼저 따져봐야 할 건 데이터센터다. AI는 데이터센터가 없으면 안 된다. 데이터도 한곳에 모아야 하고, 대규모 연산도 필요하다. 이미 우리가 사는 지구엔 엄청난 규모의 데이터센터가 들어서 있다. 클라우드 서버용이 대다수다. 이 데이터센터는 전기를 얼마나 먹을까?
미국국제무역위원회(USITC)에 따르면, 2021년 1월 기준 전 세계 데이터센터는 8,000여 개다. 이 중 33%인 2,600여 개가 미국 땅 위에 있다. 지금 얼마나 있는지에 대해서는 추정치가 다 다르다. 데이터센터맵은 현재 8,000여 개가 있다고 추정하고 있고. IT 매체인 브라이트리오는 지난해 말 기준 1만978개로 추산하고 있기도 하다. 몇 개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이 정도 되는 데이터센터가 전기를 얼마나 먹는지를 알아야 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2년 기준 전 세계 데이터센터가 쓴 전기 소비량을 340TWh라고 추산했다. 이게 어느 정도냐. 발전 용량이 1GW인 원전이 있다고 해보자. 이 발전소가 1년 365일 24시간 쉬지 않고 전기를 생산했다고 해보자. 그러면 발전량이 8,760GWh(1×24×365), 그러니까 8.7TWh다. 340TWh는 1GW 원전 39기가 1년 365일 쉬지 않고 발전했을 때 만들 수 있는 발전양이다.
상대적으로도 따져보자. 같은 해 우리나라가 쓴 전체 전기 소비량은 568TWh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8위를 자랑하는(?) 에너지 다소비 국가다. 5,000만명이 1년간 쓰는 전기의 60%가 데이터센터에 들어갔다는 얘기다. 인구 2.8억명이 넘는 인도네시아(316TWh)보다, 데이터센터가 먹는 전기가 더 많다. 클라우드용 데이터센터만 이렇다. 여기에 AI 데이터센터와 암호화폐 채굴까지 더하면, 전기 소비량은 400TWh를 넘긴다. 프랑스 전력 소비량에 맞먹는다.
데이터센터와 암호화폐 채굴, AI 데이터센터 등에 사용된 전기 소비량 비교. 2022년 실제 소비량과 2026년 예상 소비량을 비교했다. 거의 두 배 가까이 전기 소비가 늘어나는 것으로 예측됐다. / 사진=IEA
AI 전용이면 전기 소비량 두 배
챗GPT가 처음 등장한 게 2022년 11월 말이다. 이후로 데이터센터는 더 탐욕스럽게 전기를 먹어 치우고 있다. IEA는 불과 2년 뒤인 2026년 데이터센터가 쓰는 전기 소비량이 600TWh에 육박한다고 내다보고 있다. AI와 암호화폐까지 더하면 800TWh다. 불과 4년 새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 안에 드는 나라 하나가 더 생기는 셈이다.
데이터센터만큼 원가에서 전기요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산업도 없다. 데이터센터 하나를 짓고 운영하는 데 드는 사업비가 100이라고 해보자. 이중 적어도 25, 많게는 40이 전기요금으로 나간다. 지금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주력 칩은 엔비디아의 DGX A100이다. 데이터센터다이나믹스에 따르면, 이 칩은 순간 출력 기준으로 3~6.5kW의 전기가 필요하다. 칩을 식히는 데도 전기가 필요하다. 에어컨을 돌려야 하니까. 그나마 냉각수를 써야 어느 정도 비용을 줄일 수 있다.
AI 전용 데이터센터는 전기를 더 많이 쓴다. 왜냐. 엔비디아가 새롭게 내놓은 새 AI 전용 칩인 DGX H100의 전력 소비량은 10kW로 추정된다. 기존 데이터센터의 칩보다 전기를 대략 두 배는 더 쓴다는 얘기다.
미국 버지니아주에 설치된 데이터센터 현황. 회색 점이 현재 설치된 것이고 노란 것이 이후 건설될 예정인 것들이다. / 사진=뉴욕타임즈
데이터센터 몰린 미국은 벌써 아우성
AI가 전기 먹는 하마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빠르게 덩치를 키우고 있는 AI 산업에 넣어줄 전기가 없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전 세계 데이터의 심장인 미국에선 벌써 아우성이다.
버지나아주에 라우던 카운티란 동네가 있다. 워싱턴D.C. 북서부에 위치한, 인구 45만의 작은 지방 도시다. 이 동네에 ‘데이터센터 골목(Data Center Ally)’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대략 180여 개의 데이터센터가 몰려 있는, 미국 최대 데이터센터 허브 중 하나다. 여기서 쓰는 전력 규모가 이미 2022년에 2.8GW였다. 2.8GW면 원전 3기가 돌아가야 소비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라우던 카운티에 데이터센터가 몰려 있는 이유는 이렇다. ①북미 최초의 인터넷 교환소가 있을 만큼, 통신 인프라가 뛰어나다. ②그리고 평균 전기요금이 전국 평균보다 낮다. ③유망산업인 데이터센터를 키우려는 주 정부의 세금 감면 정책도 큰 역할을 했다. ④인근에 포토맥강 등의 수(水)자원도 풍부하다. 데이터센터 한곳이 쓰는 물은 인구 4~5만의 도시가 소비하는 양에 맞먹는다. 물을 냉각수로 써서 전기를 덜 쓸 수 있다.
그래서 이미 많은 데이터센터가 들어서 있고, 계획 중인 곳은 더 많다. 이미 주정부가 허가한 데이터센터를 포함하면, 2032년 필요한 전력 설비 용량이 7GW다. 발전소가 지금의 세 배는 돼야 한다는 얘기다. 1GW 규모의 원전이 4기는 더 필요하다.
문제는 발전소를 짓기가 쉽지 않다는 거다. 최근 지역 전력 공급업체인 도미니언사(社)가 천연가스 발전소 7곳을 새로 짓고, 이미 폐쇄한 석탄화력 발전소 2곳을 다시 돌리겠다는 계획을 주정부에 제출했다. 당연하게도 지역 주민의 반대에 부닥쳤다.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깨끗한 발전소를 지으라는 게 주민들의 요구다.
주민들 요구대로 지으면 되는 거 아닐까? 아니다. 데이터센터는 1년 365일 24시간 안정적으로 전력이 공급돼야 한다. 태양광이나 풍력은 전력 생산이 들쭉날쭉하다. 데이터센터에는 치명적이다. 현실적인 대안은 천연가스 발전소뿐이다. 하지만 천연가스 발전소도 탄소 배출이 적다 뿐이지, 없는 건 아니다.
라우던 카운티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15년간 미국의 전력 소비는 제자리걸음이었다. 발전소도 딱 거기에 맞춰져 있다. 한데 최근 갑자기 전력 수요가 급증했다. 주범은 전기차, 그리고 AI와 데이터센터다. 그런데 지난 10여년간 새로 지은 건 죄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소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1950년에서 2020년까지 미국에서 전기 생산의 원천이 변화한 것을 나타낸 그림. 맨아래 황갈색이 석유, 푸른색이 천연가스, 붉은색이 원자력, 녹색이 재생에너지, 가장 위의 황토색이 석탄이다. / 사진=EIA
내년 전기 쇼티지, 허황된 얘기 아니다
머스크의 경고가 허황된 게 아니다. 내년에 전기차와 AI 영역은 전력 부족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22년에 미국이 쓴 전기는 4,070TWh였다. 2023년 기준 발전 용량은 4,178T Wh. 이미 공급이 수요를 간신히 맞추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발전소가 부족한 건 아니다. 새로 지어지는 발전소는 많다. 이미 지난해 19GW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가 추가됐다. 원전으로 따지면 19기 분량이다. 올해는 36GW가 더해진다. 신재생과 천연가스는 쌍둥이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소가 전기를 생산하지 못하는 시간에, 천연가스 발전소를 돌린다. 그렇게 시간대별로 필요한 만큼의 전기를 만들어서, 송전선에 태워 보내야 한다. 필요한 것보다 더 보내거나, 덜 보내면 정전이 일어난다.
문제는 송전선로에 쓸 변압기가 없다는 거다.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는 송전망을 타고 수요처까지 보내진다. 이 과정에서 ‘승압(昇壓)’과 ‘강압(降壓)’이 필요하다. 초고압 송전망으로 보내기 위해서 전압을 높이고, 가정이나 공장에서 안전하게 받아쓰려면 다시 전압을 낮춰야 한다. 태양광·풍력 발전소는 계속 들어서는데, 송전망에 쓸 변압기가 없다? 그 발전소는 무용지물이 된다.
변압기를 더 만들면 되지 않냐고? 쉽지 않다. 지금 미국에서 만들 수 있는 변압기는 전체 수요 대비 20%에 불과하다. 지금 주문을 넣으면 4년 뒤에나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값싼 중국산을 수입해서 썼는데, 알다시피 미국은 중국산을 대부분 쳐내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국방물자생산법을 통해서 지원하고 있지만, 생산능력은 크게 늘지 않고 있다.
원자력발전소 옆에 만들어진 데이터센터 모습.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북동쪽 뉴욕주와의 경계에 위치한 서스퀘한나시에 있다. 도시 바로 옆에 서스퀘한나 강이 흘러 용수를 구하기에 좋다. / 사진=Data Center Dynamics Ltd
오죽했으면 ‘원전에 꽂은’ 데이터센터 나올까
그렇다 보니 이런 데이터센터도 나왔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 서스퀘한나 원전이 있다. 발전설비 용량이 2.5GW로, 미국에서 가장 큰 원전이다. 탈렌에너지가 발전소 운영 업체인데, 특이하게도 원전 바로 옆에 48MW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지었다. 최근 아마존웹서비가(AWS)가 이 데이터센터를 6.5억달러(8,000억원)에 샀다. 데이터센터만 산 게 아니다. 탈렌에너지와 전력구매 계약도 맺었다. 원전 옆에 데이터센터의 규모를 지금의 20배인 960MW까지 키우겠다는 거다.
이유는 간단하다. 원전 옆이라 전기 걱정은 전혀 안 해도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송전선로를 깔 필요도 없다. 또 열받은 칩을 식혀 전기요금을 낮출 수 있는 냉각수도 풍부하다. 일석삼조인 셈이다.
아마존뿐만이 아니다. MS나 구글도 아직 상업운전 성공 사례가 없는 소형모듈원전(SMR)을 활용하는 방법을 구상하고 있다. MS는 핵융합 발전소를 개발하고 있는 헬리온이란 회사와 이미 전기구매계약을 맺기도 했다. 일종의 투자인 셈이다. 오픈AI의 창업자인 샘 올트먼도 헬리온에 투자했다. AI 개발 경쟁 못지 않게 전력 확보 경쟁도 치열한 셈이다.
어쩌면 우리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SMR이 상업화에 언제 성공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전기 부족 사태는 그 안에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지구를 살릴 것인가, AI의 발전 속도를 늦출 것인가. 스타게이트를 열기엔, 아직은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다.
글쓴이 김상훈은
유튜브 채널 언더스탠딩의 취재기자다. 2011년 서울경제신문에 입사한 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산업통상자원부, 금융위 등 경제 부처를 두루 출입했다. 2021년 언더스탠딩으로 자리를 옮겨, 경제 전반에 대한 취재와 방송을 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