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군대귀신과 그리스도인/ 누가복음 8:26-39
올해 6월 25일은 6.25전쟁 발발 74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어렸을 적 학교에서 “동족상잔의 비극”이라고 배웠습니다. 그 “동족”은 지금도 여전히 군사력을 방패삼아 서로 대치하고 있습니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 열심히 “전쟁준비”를 하고 있는 매우 역설적인 현상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멀리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진 전쟁들을 보면서, 군사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군사력을 과시하여 적을 겁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다보니 대화와 평화를 주장하면 “약자” 취급을 받게 됩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해야 한다는 논리가 지배적입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전쟁의 공포는 우리를 더욱 옥죄어 옵니다. 어쩌면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이 그 공포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더욱이 핵무기의 위력 앞에서는 모든 나라가 두려움을 감추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온 지구촌이 핵으로 망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쟁준비로 전쟁을 막으려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대화와 신뢰로 평화를 이루어 나가야 하는데, 성서는 그리고 예수의 가르침은 분명히 평화입니다.
거라사 지방 귀신들린 광인이 예수를 만나서 치유와 회복을 얻었습니다. 사람답지 못한 상태에서 해방되어 다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를 사로잡고 있던 귀신의 이름이 <군대>라고 합니다. 원문에서는 레기온(Region)이라고 하는데, 레기온은 로마제국의 군대 중 6000명 단위의 부대이름입니다. 귀신의 숫자가 무척 많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라고는 하지만, 하필 그 이름을 <레기온>이라고 부른 것을 보면서, 군사력으로 전쟁을 억제하겠다는 집념에 사로잡힌 우리들 모습이 투영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도 군대귀신에게 사로잡힌 것이지요.
우크라이나 정교회도 마찬가지이지만, 러시아 정교회 총대주교는 한 술 더 떠서의 그 전쟁을 “거룩한 투쟁”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종교의 이름을 전쟁에 사용할 때 쓰는 상투적인 표현입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적대관계는 구약성서에 나올 정도로 오래되었습니다. 수천 년 동안 그런 관계가 회복되기는커녕 점점 더 악화되어 완전히 원수관계로 남은 것입니다. 거기서 평화를 이야기 하면 민족의 반역자가 되고 말겠지요.
하지만, 종교는, 특히 그리스도교는 이제 전쟁이 아닌 평화를 세워가기 위한 노력을 진심으로 해야 합니다. 교회가 그 실천의 중심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74년 전 6.25전쟁 때에, 그리스도인과 교회에 대한 공산주의자들의 박해 때문에 수많은 북쪽 그리스도인들이 남쪽으로 피난하였습니다. 그들을 도와주고 살펴준 것이 남쪽의 교회였고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해외에서 보내주는 원조물자들도 대부분 그리스도교 정신에 입각한 것들이었습니다.
오늘날 전쟁뿐만 아니라, 자연재해도 심각합니다. 환경파괴와 지구 온난화의 위력을 우리는 지금 실감하고 있습니다. 식량과 물과 의약품이 부족하여 생명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어 하며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거기에 더해진 내전들을 어찌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평화를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해야할 그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평화를 위한 노력을 실천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고 이미 말씀하신 지도 모릅니다. 처참했던 전쟁을 교훈삼아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도 또 연습하지도 말아야한다고 말씀하셨어도, 우리 인간들은 여전히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을 알아야합니다. 전쟁을 그치고 평화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우리의 사명임을 말입니다. 그래서 그 길을 묵묵히 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2024년 6월 23일
홍지훈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