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bvWkZL6UhVY
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따르니라. 2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 5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6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7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8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9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10 또 이르시되 어디서든지 누구의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11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12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13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오늘 금년도 세 번째 성찬식을 가집니다. 이 성찬예식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와 메시지는 무궁무진 하지요. 그 중 하나가 예수님은 언제나 어느 때에나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생명의 양식으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양식은 심한 흉년이 들거나, 가진 돈이 다 떨어지면 양식을 걱정을 해야 하지만 예수님에게 생명의 양식이 떨어져서 우리를 더 이상 구원시키지 못하실 일이 있겠습니까? 내가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죽음의 상황 앞에서도 예수님은 여전히 나의 생명의 양식이 되셔서 육신의 죽음을 뛰어넘어 부활의 새생명으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그러니 어떤 최악의 상황에 있더라도 변함없는 생명의 양식이신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자유롭게 살아가라는 메시지가 성찬예식에 담겨져 있는 거죠.
오늘 우리가 봉독한 말씀은 두 가지 내용을 말해줍니다. 먼저 1~6절까지의 말씀은 예수께서 갈릴리 여러 지역을 순회하시다가 예수님께서 자라나셨던 고향인 나사렛에 가셨는데 거기에서 배척당하시는 장면입니다. 2절에 의하면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지혜와 또 행하시는 권능을 보고 놀랐다고 하지요. 예수님에게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지혜와 능력을 보고 알았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절에 의하면 예수님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라는 미천한 신분이었다는 것과 평범했던 예수님의 형제와 자매들을 언급하면서 오히려 배척해 버렸지요. 얼마 전까지 동네 청년에 불과했던 자가 갑자기 랍비 스승을 자처하는 게 기분이 나빴을 수도 있겠고, 예수님의 지혜와 능력에 질투도 났을겁니다. 이로 인해 예수님은 자기 고향임에도 많은 일을 못하시고 5절에 의하면 소수의 병자만 고치시고 떠나셔야 했지요.
이렇게 자기 고향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배척을 당한 게 예수님에게 마음의 상처가 되었을까요? 내 고향에서도 인정 못받는데 내가 다른 데서 무슨 일을 하겠는가 실망하면서 하시던 일을 다 그만두셨을까요? 6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셨더라.’ 예수님은 전혀 영향받지 않으셨지요. 고향에서 못한 것만큼 다른 곳에 두루 다니시면서 여전히 얽매임 없이 자유롭게 활동을 이어가셨다고 본문은 말씀합니다.
두 번째 내용은 7~13절까지인데 7절 말씀에서처럼 예수께서 열두 제자들을 둘씩 짝을 지어 동네에 보내셔서 회개의 복음을 전파하게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는 일을 하게 하신 겁니다. 그런데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가게 하셨지요. 8절에 보면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9절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그리고 동네 사람들 중에는 제자들을 영접해 주는 사람도 있겠지만 거절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래서 11절에서는 이렇게도 말씀하십니다.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는 것은 재물과 소유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하라는 것이겠고, 너희를 거부하는 자에게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리라는 것은 인정 받지 못하고 외면당했다고 해서 상처받지 말고 자유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런 자유함이 우리에게 가능할까요? 지금처럼 물질만능주의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물에 대해 자유함을 가진다는 게 가능할까요? 가정이든, 직장이든, 교회이든, 어느 곳에서든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가 그 모든 인간관계를 초월해 자유함을 얻는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단지 인간의 능력과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과연 예수님께서 인간에게 불가능한 것을 명령하실 분이시겠습니까? 그리고 마가복음 10:27절에 보면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는 예수님의 말씀도 있지요. 여기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즉 예수께서 언제 어느 때나 어떤 상황에서든지 우리에게 풍족하고 넉넉하고 완전한 생명의 양식이 되어 주신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이지요.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이해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명령을 따라 가진 것이 없이도, 그리고 사람들이 자기들을 영접해주던 거부하고 쫓아내던 상관없이 12절과 13절에 의하면 당당하게 동네에 들어가서 회개하라 전파했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는 일을 행했던 것이지요.
예수님도 고향에서 배척을 당했지만 예수님에게는 언제나 아버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있으셨기에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거부하고 배척하는 것에 상처받을 일도, 분노하실 일도, 섭섭해 하실 일도 없으셨습니다. 나사렛에서 거부당해 할 수 없으면 다른 지역에 두루 다니시면서 변함없이 예수님께서 하셔야 할 생명의 사역을 자유롭게 펼쳐가셨던 거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예수님의 몸과 보혈을 성찬으로 받으면서 언제 어느 때나, 특히 내가 아픔과 고통과 외로움과 두려움과 억울함과 분노의 상황에서도 변함없는 생명의 양식으로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이심을 확신하면서 예수님의 자유로움, 그리고 예수님에게서 자유로움을 배워서 실천해 가고 있는 제자들의 자유로움을 온전히 지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의 현실은 예수님께서 자기 고향에서도 무시당하고 외면과 배척당하시는 것과 같은 일들을 겪게 되기도 하고, 제자들이 주의 일을 행하면서 어떤 사람에게서는 환영받지만 어떤 사람에게서는 쫓겨나게 되는 것과 같은 일들을 겪게 되기도 하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언제나 나의 참된 생명의 양식이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상처도 분노도 억울함도 자존심 상하는 아픔도 그리고 내가 내 자신에 대해 실망해 버리는 것들까지도 능히 치유하시면서 모든 상황에서 우리가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하는 생명의 힘, 그리고 삶의 능력을 주시는 소중한 생명의 양식, 그 분이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