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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성신문 H기자의 논평(해당 언론사의 공식적 입장과 상관없는 사설).
부제:2008~2011년의 교수 임용 전투에서 패배한 오만한 천손 왕족의 추태. 모든 조건을 다 갖추었지만 본인 실력이 너무 안 되어서 패배했다.
우리는 고 길명진군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짧은 인생을 정리한 비극적인 사건의 배경과 원인에는 모친 명소민의 서울대 정교수 임용 심사에서 탈락이 엮여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2008년 1차 심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의문이 한가지 있었다. "교수 임용에 관련된 최종 결정은 2011년인데 고작해야 2008년에 아이를 임신하여 출산하였다고 해도 자그만치 2년 몇개월이란 시간이 충분히 있었음에도 명소민은 어째서 임용에 탈락했을까?" 옳은 지적이다. 2008년에야 탈락한 것이야 임신과 출산,산후조리 과정이 있었다는 - 아이는 봄에 출산했고 1차 심사는 추석 연휴 20일 전이었다 - 합리적인 분석이 가능하지만 2009년부터 상황이 다르다. 명소민이 어디 애를 직접 양육할 사람도 아니고 1년전에 좌절했다고 해도 2009년에 얼마든지 다시 도전할 수 있고 실제로 명소민도 아들 길명진군과 어느 정도 성장한 맏이 길소명양은 가사도우미에게 양육을 맡기고 2008년 여름부터 1차 심사에 매달렸다. 여러가지 준비가 부족하여 가을 1차 심사에서 탈락하였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연말부터 진지하게 논문작성에 열을 올렸다.
그럼에도 명소민은 두번에 걸친 재도전에서 경쟁자들에게 떡실신이 되어서 보기좋게 탈락하였다. 2008년과 다르게 임신과 출산 핑계를 댈수 없었고 남편과 친모에게 방해조차 받지 않았음에도 - 원래 남편은 임신소식을 알기 이전에도 딱히 아내의 논문작성에 아무런 훼방을 놓지 않았다 - 명소민은 참담하게 패배하였다. 은사이며 지도교수인 G교수에게 계승자로 내정받았음에도 아무런 연고 없는 경쟁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묵사발이 난 것이다. 쉽게 말해서 네이처에 제출한 논문의 질에 있어서 다른 경쟁자들. 특히 가장 약한 경쟁자에 비해서 너무 격차가 벌어졌기에 네이처의 심사관들이 "이런 것도 화학 논문이라고 제출했소!"라면서 반사 튕기기,를 한것이다. 심지어는 서울대 총장마저도 임신과 출산을 겪고 나서 재도전을 하는 소민에게 상대적으로 - 경쟁자들은 이의제기 하지 않지 않았다 - 유리한 주제를 슬쩍 던져줬음에도 그녀는 변명의 여지가 없이 패배했다.
이런 결과까지 나왔다면 정교수 임용탈락은 100% 명소민이 실력이 모자란 것이 원인이었으며 그 누구도 탓할수 없음에도 구제불능의 서생원 자제분,명소민은 아무 잘못도 없는 아들 길명진군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며 인류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짓밟고 유린하고 끝내 비극적인 죽음으로 몰아갔다. 명소민은 아들을 간접살인했다. 직접 손을 쓴 것은 아니지만 나이 스무살도 되지 않은 어린 소년이 삶을 포기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로 몰아 붙었다면 그녀는 정말로 사람의 탈을 쓴 악마인가?라는 확신이 들 정도이다. 서울대 총장이나 기타 교수들,네이처 심사관들,그녀를 격퇴해버린 경쟁자들에게는 입도 벙긋 못하면서 만만한 아들에게 화풀이를 한것이다. 본 기자가 "이 여자가 정말로 제 정신인가!!!" 분노가 치밀어 오를 정도였다. 2011년. 최종 심사까지 명소민이 패배한 원인에는 세가지가 있다.
1. 경쟁자들이 너무 강력했다. FACT:경쟁자들은 명소민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있었고 어떻게 해야 명소민과 G교수를 격퇴할 수 있을지 대응책을 여러가지로 구상했다.
2. 은사였던 G교수의 후계자 세습 결정을 너무 맹신하였다. FACT:명소민의 지도교수는 자신의 연구실에서나 절대적이었지만 교내 정치판에서는 아무 힘도 없는 최약체 교수였다. 명소민이 너무 이른 시기에 지도교수 직을 계승하는 과정을 강대한 교내 파벌에게 납득시키고 설득하려고 하지 않았다.
2-1. 학사장,부학사장부터 시작해서 명소민을 지지하는 교내 파벌이 전혀 없었다. FACT:명소민을 고깝게 보는 - 어린 여자가 나이 마흔도 안 되어서 벌써부터 정교수냐고 격분하는 - 정교수,부교수들이 바글바글거렸으며 그들은 교내 정치판에서 강대한 파벌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외에 조교수와포닥들마저도 너무 빨리 하늘로 승천하는 명소민에게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었다.
3. 강자 대 강자의 싸움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고 일본식 표현으로 진검승부를 할줄 몰라서 도륙이 났다. FACT:목숨걸고 논문을 작성해도 제일 약한 경쟁자에게 될까 말까한 암울한 상황에서 주제 파악을 못하고 남편과 빈번하게 잠자리를 가지고 주말여가를 즐겼다.
1의 경우는 명소민의 경쟁자는 모두 여섯명이다. 자산 총금액에서 명씨 일가에 비해서 많이 뒤쳐질뿐이고 집안 배경에서는 크게 불리하지 않았다. 명소민의 부친은 잘나봐야 지역 졸부였을 뿐이다. 국내 대기업에게 하청을 받아서 공장을 운영한다. 급여 받는 인생을 사는 아버지를 뒷배경으로 두었다고 하지만 명소민의 경쟁자들 역시 블랙코미디로 논하자면 최상위 쇠수저~최하위 동수저 등급으로 분류할 수 있다. 최소한 평균 쇠수저는(한성에 자택 보유,채무금 없음,교외 지역에 시골 부동산 소유) 되는 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학력과 지식에 있어서도(교내 정치판의 친목질까지) 명소민보다 더 우월하고 뛰어나다. 오만한 명소민은 경쟁자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지만 -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 경쟁자들은 나를 알고 명소민을 알고 있었다. 경쟁자들은 석사과정이 시작되기 이전,학부생 졸업시기부터 G교수가 분석화학과 차기 정교수로 명소민을 내정할 것이라는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경쟁자들은 일치단결하여 "우선 명소민부터 밟아 뭉개자."라고 신사협정을 맺었다. 경쟁자들은 명소민이 하던 것처럼 네이처 심사관들이 선택한 논문의 저자라면 결과에 승복하겠다고 선언했다. 처음부터 G교수의 선택권을 제외하는 게임판을 벌였다.
경쟁자들은 교내의 여러 지도교수,부교수,연배 높은 조교수들과 학사장,부학사장은 물론이고 서울대 동문회,친인척,지인,당연하게도 서울대 총장까지! 기타 등등의 모든 인맥을 방문하고 발품을 팔면서 지지세력을 모았다. 나쁘게 말하면 야합이고 완곡하게 표현하면 정치적 친목질이다. 그런데 명소민은 이런 낌새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한가하게 백화점 쇼핑을 하고 남편과 성관계 삼매경에 여념이 없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경쟁자들이 여러 인사들에게 비타500상자를 건넸다고 하고 - 하다못해 양주나 화과자,한우갈비라도 선물하는데 - 술자리 모임,점심과 저녁식사 약속,골프 동반을 통하여 친목을 쌓으면 쌓을수록 반 명소민 파벌의 힘은 강해지고 해당 파벌은 명소민이 너무 이른 시기에 챙기는 정교수 임용에 온갖 트집을 다 잡으며 G교수를 규탄하였다. 이러면 G교수는 난감해진다.
=> 재화가 오가는 뇌물 거래가 있었다는 말이 있지만 그럼에도 명소민이 정교수에 취임하는 것보다 백배 나았다. 검경찰에서도 2008년 교수 임용과정에서 거액의 뇌물이 오갔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 필자 역시 서울대 졸업생들에게도 줏서들은 이야기다. 교수들이 뇌물이 필요할만큼 money에 절박하지도 않고 경쟁자들도 비타500 몇상자보다 성의가 오가는 친목질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제아무리 대학교 연구실내의 지도교수 인수인계는 암묵적으로 세습이라고 하나 공식화된 법률이 아니다. 교수가 내정한 후계자 이외에 다른 제자들이 고만고만할때나 원만하게 이루어지는 전개일뿐이다. 교수임용은 대외적으로는 공정한 경쟁과 심사에 의해서 결정되며 이 사실을 강조한다. 경쟁자들은 서울대 막부의 절대권력자,태합 = 총장을 면담하여 네이처에 등재되는 논문의 저자가 차기 화학과 정교수에 임용하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이에 총장은 흔쾌히 수락하고 G교수를 호출하여 이번 교수 임용에서는 네이처의 심사 결과에 절대적으로 승복하라고 압력을 가하고 이를 수락한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여기서 명소민이 얼마나 멍청한 자폭을 저질렀는지 알수 있다.
해당 연구실의 관습대로 다소 시간은 걸리겠지만 G교수가 퇴임하는 2011년까지 바싹 엎드리고 있었으면 알아서 정교수 직위가 굴러 떨어지는데 어리석게도 네이처 논문 등재를 예고하였다. 경쟁자들에게 빌미를 제공하고 95% 지고 들어가는 싸움을 시작했다. 경쟁자들이 지식에 있어서 어느 누구도 명소민을 압도하는데 명소민은 그것도 모른채 자신에게 차려진 밥상을 걷어 찼다. 물론 밥상에서 떨어진 음식은 경쟁자들이 다 챙겨갔고.....(--;) 서울대의 총장 면담을 통하여 G교수를 꼼짝 못하게 쇠사슬로 묶어 놓은 다음에야 경쟁자들은 명소민의 현황을 예의주시하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세계각지의 자료를 수집하고 실험을 하며 명소민과 비교도 될수 없을 정도로 우수한 양질의 논문을 한자한자 서술했다. 비록 G교수가 교내 정치판에서 약해 빠졌다고 해도 그래도 지도교수이기에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르는 변수마저도 차단한 것이다.
잘나고 고귀하신 명소민은 6:1로 싸우고 있다는 심각한 상황을 인지하고 못하고 자신이 네이처에 논문만 발송하면 교내 반발을 다 잠재우고 유유자적하게 분석화학과의 지도교수에 내정될 것이라는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었다. 이거야말로 네이처 심사관들을 얼마나 우습게 보고 있었으면....(0_0) 물론 네이처 심사관들도 "넌 우리에게 모욕감을 주었어."라는 심보로 명소민의 논문을 철저히 논파하여 반송해버렸다. 이 당시에 명소민은 아들을 출산하느라 인하여 지쳐 있었고 네이처 심사관이 발송한 탈락 공지를 해탈한 기분으로 결과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2.의 경우는 교내 정치질을 너무 우습게 본 명소민과 G교수,명씨 가장의 엄청난 착각과 오만이 불러온 패배였다. 쉽게 말해서 사회생활 안 하는 명소민이 사회생활과 위계질서,친목질로 단결된 전임교원 파벌의 뜨거운 맛을 본 것이다. 대학교는 민간기업이나 관공서의 직장은 아니지만 나이 스무살 넘은 어른들이 활동하는 영역이다. 수익창출을 위해서 법치를 어기지 않는 선에서 영업성과를 강조하는 민간 기업에서조차(공기업도 포함한다면) 영업 성과가 좋다고 해서 입사한지 3년도 안 되는 신참을 고속승진을 시킨다면 참으로 말들이 많고 고참 사원들의 반발이 터진다. 능력 위주로 돌아간다는 민간기업에서조차 여러가지로 시끄러운데 하물며 고고한 선비들이 모여서(반어법) 전임교원,이라는 생태계를 형성한 대학교에서 명소민이라는 나이 서른도 안 된 상류층 여자가 너무 빨리 승천하는 꼴을 웃으면서 용인할 사람은 거의 없다. 2002년. 대학원생 제도가 영구히 폐지된 이래 학부생 졸업 이후에 석사+박사 학위를 가지고 포닥부터 시작하는 대학원이다.
요즘 세상에서는 생각도 못할 일이지만 2000년이 되기 이전,구시대 같았으면 고작해야 대학원생 신참 업무나 - 명소민은 94학번이기에 일단 대학원생 과정은 수료했다 - 할 젊은 여자가 벌써 조교수에 임용되면 오랫동안 밑바닥부터 고생하며 (그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거나 개인의 인품이 어떴는가는 별개로 하고) 온갖 역경을 이겨내면서 마침내 전임교원에 임용된 고참 교수들은 격분할수 밖에 없다. 거기에다 교내정치질도 못하는 G교수가 대학교 내부의 관습과 질서를 무시하고 교수 친구 딸내미,라는 이유 하나로 초고속 진급을 시켜주었다. 이건 노골적으로 약해빠진 G교수 따위가 전임교원 카르텔에 대해서 칼을 들이대는 반역이자 도전이었다.
기자는 G교수가 정말로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무리 은퇴가 예정되어 있다고 해도 한달도 안 되어서 은퇴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연구실을 정리하고 후임자에게 인수인계하려면 몇년 남았는데 기득권 파벌에게 다굴당하는 것을 각오하고 명소민의 지도교수 취임을 밀어붙이나 싶을 정도였다. 물론 정치질 못하는 G교수에게 그럴 배짱이 있을리 없었다. 실제로 교수 회의에서 G교수는 모든 지도교수,부교수,연배 높은 조교수들에게 맹비난을 당했다. 그를 제외하면 서울대 전임교원의 그 어느 누구도 나이 마흔도 안 된 명소민의 지도교수 취임을 지지하지 않으며 결사반대였다. 전임교원 만장일치로 명소민을 거부하였다. 상황이 이러한데 서울대 총장이라고 해서 명소민의 승천을 곱게 볼리가 없었다. 이것만 봐도 G교수가 얼마나 생각이 없으며 제 주제를 모르고 공개적으로 분탕질을 해서 다굴을 맞았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명소민의 지도교수 취임을 구상한 계획은 시작부터 암울해졌다.
교수회의에서 총장이 막아줬기에 망정이지 그 시기에 어리석은 명소민은 지도교수 임용이 아니라 당장 서울대에서 쫓겨날지 모를 정도로 최악의 전개였다. G교수조차도 교수회의에서 엄청난 분노를 체험하고 나서야 자신이 폭약창고에서 기름을 붓고 불장난을 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를 한심하고 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서울대 총장은(2000년에 취임했다.)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고 사태를 관망할 뿐이었다. G교수가 비인기 학과든지 인기 학과든지 어느 연구실을 통치하는 봉건제후인지는 상관없었다. 서울대 카르텔의 원칙을 무시하고 감히 새파랗게 어린 여자 조교수가 하늘보다 높은 고참 교수들과 겸상을 하겠다는 것 자체가 용서할수 없는 불경함이었다. 이걸 묵인하게 되면 인맥 있는 상류층 인사들이 너도나도 나이 마흔도 되기 전에 교수 직위를 달겠다고 덤벼들 판국이다. 대학교내에 30대 지도교수. 30대 기수론이 퍼지는 것은 서울대 카르텔이 이를 절대로 용서할수 없다.
옛날 정치판에서는 구 민주당에서 대사 유진산에 맞서서 40대 기수론을 성토한 YS에게 구상유취,라면서 유진산이 즉시 제압하려고 할 정도였다. 구시대에서도 나이 마흔을 넘은 사람이 특정 조직,파벌의 대표자,사장, 기타 높은 직위에 앉으려는 시도 자체를 연장자에 대한 예우를 망각한 무례한 짓으로 여겼는데 정치판에서 노는 특정 정당보다 더 폐쇄적인 대학교에서 40대도 아닌 30대 기수론을 허락할 것 같은가!! 나이 마흔 넘어서야 - 운이 좋다면 - 조교수 직위부터 시작하는 것이 올바른 관례로 여기는 서울대의 정서였다. 그런데 명소민이 나이 서른도 되기 전에 조교도 아니라 조교수 직위를 달았다. 이것만 해도 카르텔이 보기에는 노발대발할 일이었다. 1990년대까지는 교친딸이라도 나이 서른이 안 되어서 조교수 임용은 어림반품어치도 없었던 시절이다. 물론 교친딸은 쾌적하고 여유로운 대학원생,포닥 인생을 즐기겠지만......
하지만 분석화학과 연구실의 제후였던 G교수가 친구 딸내미를 학부생을 졸업하고 3년만에 조교수에 임용되는 것까지야 2000년 이후에 시대가 변했고 G교수가 통치하는 봉토의 내정이기에 - 설마하니 어린 애를 지도교수에 내정하겠나 싶었을 것이다 - 여기까지는 기득권 카르텔이 웃고 넘어가줬다. 그래봤자 경력이 모자란 여자 조교수 따위에게 기득권 파벌과의 겸상을 허락하지도 않지만. 애초에 G교수조차도 기득권 카르텔 내부에서 겸상을 허락받지 못하는 판국이었다. 명색이 지도교수인데 서울대 카르텔 내부에서는 일본식 표현으로 설명하면 말석조차 앉지 못했다. 교내 정치판에서 전혀 힘을 못 쓰는 G교수의 후계자가 되겠다면 명씨 가장과 명소민이 발품을 팔면서 정치질을 해도 될까말까인데 명씨 부녀는 G교수만 바라보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사회생활 자체를 안 하는 명소민이야 답이 없지만 개인사업을 하면서 사회생활 경험이 많은 명씨 가장이 움직이지 않은 것 자체가 의문이었다??
아무리 서울대의 내부 여건에 대해서 무지한다고 한들 야합과 부정한 정치질을 하는 것이야 어느 동네든지 다 똑같았다. 딸내미를 교수임용을 시켜주고 싶었다면 한우갈비 한상자라도 - 현찰 다발을 숨겨서 - 사들고 실세들을 만나서 인사를 하고 다녀야 했다. 그걸 하지 않으니 서울대 카르텔에서 안 그래도 꽤씸한데 더더욱 용서가 안 되는 것이다. 명소민의 경쟁자들이 일부러 나서지 않아도 기득권 파벌에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명소민을 밟아 뭉개버릴 예정이었다. 서울대 카르텔에 소속된 은퇴한 어느 노교수의 증언을 들어보면 기득권 파벌은 명소민에게 심사의 기회조차 주지 않고 트집을 잡아서 서울대에서 해임시키는 방법까지 구상했다고 한다. 서울대 카르텔의 견제는 이 정도로 막강하고 견고했다. 여기에 정면으로 들이박는 명씨 부녀가 얼마나 생각이 없는지 기가 찰 노릇이다. 명소민의 경쟁자들은 이런 유리한 전개를 유연하게 활용했을 뿐이다. 나이 서른여섯에 지도교수 임용!!! 서울대에서 나이 서른을 넘긴 포스트 닥터들이 들고 일어나서 총장에 읍소하며 시위가 일어날 판국이었다.
나이 서른을 넘겨서도 여전히 조교인 사람들도 여기에 합류한다. 나이 서른을 넘긴 조교수들은 부교수 임용도 막막한데 억울해서 잠이 안 온다. 명소민은 서울대를 넘어서 전국의 모든 포닥,조교 역할의 포닥,조교수들의 역린을 건드렸다. 거기에 부교수 과정을 생략하고 지도교수 취임이니 대학교내의 핵심적인 실세라는 부교수들이 가만있지 않는다. 초고속 진급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이러고도 일단 지도교수 임용 심사는 받았으니 카르텔을 통제하고 적당히 원칙을 지키는 서울대 총장이 정말로 공정하고 합리적인 전임교원이었다. 총장마저도 방관했으면 명소민은 곧바로 교직원에서 파면당하는 동시에 전국의 모든 4년제 대학에서 거부당하는 흑색목록에 등재될뻔했다. 총장은 G교수의 은퇴까지는 남았으니 시간을 가지고 충분히 논의를 해보자고 카르텔 노인들은 살살 달래주었다.
서울대 총장이라고 해서 오만방자하게 날뛰는 명소민을 고운 시선으로 보는건 아니지만. 하여튼 총장의 뛰어난 통솔력으로 인하여 교내에서 반 명소민 봉기가 일어날뻔한 사상초유의 사태는 방지할 수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총장은 명소민의 배경을 제외하고 명소민의 정교수 임용을 탐탐치 않게 여겼다. 연구성과나 지식을 제외하고는 모든 조건에서 바닥을 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절대로 교수 직위에 앉혀서는 안 되는 최악의 인사라는 사실을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그야말로 명소민은 수양대군+원균+운동권 주사파,폐급들을 합친 것과 같은 요상한 생명체라고 할까. 명색이 서울대 총장이라는데 과연 통찰력은 비범했다. 어이없게도 명소민의 지도교수 임용을 저지하는 서울대 카르텔 노인들이 소 뒤걸음치다가 쥐 잡는 꼴로 의도치 않게 백번 옳은 일을 하면서 블랙코미디를 보여줬다. 친목과 야합의 부정한 정치질이 1%의 확률로 좋은 전개로 가고 있는 것을 보면 세상에 유일신은 있는 모양이다.
3의 경우는 진검승부를 할줄 몰라서 패배했였다. 이거야말로 명소민이 책상물림 지식은 방대하지만 냉혹한 실전에서는 백번백패하는 헛똑똑이라는 사실이다. 아빠 친구분에게서 매일 칭찬받으면서 쾌적한 여건에서 연구하면서 성과를 낸다. 누구라도 할수 있다. 사실 명소민이 그동안 G교수의 연구실에서 연구용 소재를 낭비하면서 거둔 성과는 중학교 3학년 애들도 쉽게 할수 있는 수준으로 저열하기 짝이 없는 성과였다. 아니 성과라고 하기에도 민망했다. 매일같이 G교수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소작농 취급을 받는 대학원생 선배,동기,후배들은 이보다 더 저렴하게,낭비를 하지 않으면서 뛰어난 성과를 거둔다. 그럼에도 G교수에게 인정도 받지 못하고 약간 예산 초과를 하면서 온갖 쪼인트를 받으면서 모멸감까지 받는다. 명소민이 단 하루라도 그런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최소한의 정당한 지적이라도 받았을까? 그럴리가 있나! 연구용 소재,연구실 예산을 펑펑 쓰면서 같은 연구실이든지 다른 연구실이든지 대학원생들이 보기에도 허접한 결과를 내고서 G교수에게 "아이구 잘했다. 다음에는 더 잘할수 있어."라면서 유치원생에게 해주는 격려를 받는거 보면 여러 대학원생이나 서울대 카르텔 교수들조차도 어이가 없어한다.
G교수와마찬가지로 평소에는 대학원생을 소작농으로 혹사시키는 카르텔 교수들마저도 "야 이건 좀."라며 고개를 저을 정도로 명소민의 연구 성과라는 것을 애들 장난이었다. 어디까지나 G교수의 연구실에서만 평가보고서에 호평일색으로 서술되어 있을 뿐이다. 이는 G교수와친분이 있는 예일 대학의 히브리계 아메리카인 교수. 재커리의 평가보고서도 마찬가지다. 참고로 두 교수는 명소민의 부친,명 사장에게 두둑한 사례금을 받고 있기에 이런 호평이 가능한 것이다. 서울대에서도 이러한데 아메리카의 예일 대학에서는 더 말할것도 없다. 명소민의 국외 유학시절에 은사였던 재커리 교수는 명소민의 평가보고서를 명소민의 아버지에게 그냥 보여주는 용도로 국제발송용 한장만 쓰고 다른 교수들이나 예일 대학교내 심사위원회에는 절대로 보여주지 않았다. 그나마 G교수보다 재커리 교수가 최소한의 양심이 남아 있었다. 재커리는 거액의 사례를 받아 챙기는 것과는 별개로 전임교원으로서 마지막 자존심은 지킨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고 해도 예정대로 2011년에 G교수가 은퇴한다고 해서 억지춘향 격으로 명소민이 지도교수에 임용될수 있을지 모를것이다. 풋!!! 어디까지나 명씨 부녀의 희망사항일뿐이다. 서울대 카르텔이 절대로 인정하기 않기에 2011년에 명소민이 교수임용은 어림반품어치도 없었다. 카르텔의 성벽을 넘을 수 없는 명소민이 어찌 나이 서른여섯에 지도교수에 임용되겠는가! 실제로 명소민은 2010년 연말. 교수임용의 마지막이자 세번째 심사에서 경쟁자들에게 떡실신이 되어서 나가 떨어졌다. 이러한 배경에는 엄청난 변수가 하나 있었다. 2008년 3월초에 명소민의 지도교수였던 G교수가 심근경색으로 갑작스럽게 작고하였다. 나이 환갑을 넘긴 구세대 남성들에게는 흔히 생기는 사망원인중에 하나였다.
사실 그의 죽음은 변수라고 하기에도 뭐했지만 어쨌든 이 사건은 명소민의 지도교수 임용을 바라보고 있던 명씨 부녀를 뒤흔들어 놨다. 서울대 입장에서는 G교수의 이른 작고는 잠시 혼란을 주었지만 이내 사후 수습을 하였다. 서울대 카르텔은 이 기회에 명소민에게 심사기회를 주지 않고 파견근무,라는 방식으로 새학기가 개강하기 전에 명소민을 서울대에서 파면시키려고 했다. 명목상으로는 연구기반이 빈약한 지방 대학을 지원하기 위해서 우수한 전임교원이 교류차원에서 외근을 나가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실상은 카르텔의 마음에 안 드는 인사를 지방대학으로 파견시켜 놓고 기약없이 절대로 복귀시키지 않는다. 당사자의 기분 더러우면 알아서 사표를 제출해라. 그야말로 사직을 권고하는 유배형이었다. 카르텔 기득권자들이 아무리 썩었다고 한들 어지간해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 설령 누군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냥 한성내의 다른 대학으로 인사처리할지언정 - 강경책까지 불사하면서 명소민을 서울대에서 축출하려고 한 것이다. 기자가 확인한 바로는 1980년 이후에 카르텔 파벌이 사임을 유도하는 지방좌천을 사용한 일은 명소민의 경우가 유일했다.
분석화학과의 차기 지도 교수를 내정하는 권한을 가진 학사장과 부학사장은 명소민을 배재하고 곧바로 G교수의 후임자를 임용하려고 했다. 조용히 납작 엎드리고 서울대 카르텔과 친목질을 하면서 점수를 많이 얻은 명소민의 경쟁자중에서 차기 정교수를 임용한다는데. 아니...... 30대 지도교수는 안된다면서 정작 명소민의 경쟁자들도 한참 나이의 30대인데 카르텔 노인들의 기분 내키는대로 임용심사였다. 하긴 눈에 거슬리는 명소민이 아니라면 30살의 연령대라고 해도 카르텔에 순종적인 명소민의 경쟁자들이 카르텔의 기준에 적합할 것이다. 명소민은 학사장으로부터 지방 대학으로 파견을 공지받자 노발대발하면서 펄펄 날뛰었지만 이제 G교수라는 뒷배경이 없어졌으니 교수친구 딸내미에 불과한 명소민은 카르텔에 대항할 수 없었다. 원칙적으로는 명소민도 심사에 참여할 수 있지만 학사장 권한으로 심사 자격이 없다고 판정받았다.
G교수가 장막을 쳐서 대외적으로 안 보였을 뿐이지 명소민의 연구 성과는 포닥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였으니 이번만큼은 부패한 서울대 카르텔의 심사기준이 옳았다. 카르텔의 노교수들은 다른 포닥들의 연구와비교하면서 명소민의 멘탈을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대학교에 입학한 이래에 명소민이 단 한번이라도 엄격한 평가를 받아 본적 있을까?? 학부생 시절은 상관없지만 마지막 대학원생 기수가 된 이후로 아버지의 친구에게 특혜를 받으며 놀자판 기분으로 연구를 했으니 연구 성과는 @판일수 밖에 없었다. 버르장머리 없는 명소민이라고 해도 이 여자는 전형적인 강약약강의 부류였다. 그리고 썩어도 연배 높은 교수들의 정확하고 잔혹한 평가에 한마디 반박조차 할수 없었다. 이렇게 명소민이라는 새로운 거악을 신속하게 서울대 밖으로 방출하나 싶었다. 여기에 진짜 변수가 발생했다.
1년 가까이 사태를 관망만 하던 서울대 총장이 오랫동안 서울대에 봉사해온?? 고인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고인의 원래 퇴임시기인 2011년 교수임용 심사를 할 것을 노교수들에게 제안했다. G교수의 연구실에 있는 포닥들의 진로와연구 과정이 있으니 처음 예정대로 3년후에 신임 정교수를 임용해도 문제 될 것은 없으며 - 해당 연구실의 서열 정리가 복잡했다 - 분석화학과의 정교수 직위를 공석으로 놔둔채 연구실 일정은 학사장이 맡아서 진행하고 학부생을 위한 이론 강의는 부학사장이 분담할 것을 지시했다. 카르텔은 의아했지만 총장은 여성의 임신과 직위 채용에 대해서 명소민의 친구,친척들이나 혹은 여성단체를 통하여 뒷말이 나오면 여론에서 시끄럽다고 카르텔에게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었다. 의외로 서울대 카르텔은 총장의 설득에 순순히 공감했다. 이렇게 해서 서울대 총장의 권한으로 분석화학과 차기 교수직은 2011년에 임용하기로 하고 일곱명의 후보자들에게 모두 3차례의 예비 심사의 기회를 주며 여기서 기준을 통과한 최종 후보자가 총장과의 마지막 심사를 하는 방식으로 전형적인 교수 임용이 공지되었다.
사탄이 장난을 쳤는지 몰라도 명소민은 죽다가 살아났다. 이제 여유롭게 둘째 아이를 출산하고 산후조리 이후에 원기회복하여 가을에 열리는 1차 심사에 도전할 수 있었다. 이것만 봐도 명소민의 임용 탈락은 절대로 길명진군과 아무런 연관이 없으며 길명진군은 0.1%의 원인제공이나 책임조차 없음을 총장이 확인시켜줬다. 명소민의 경쟁자들도 지랄옘병할 명소민과 승부에서 잡음없이 깔끔하게 끝내는 방식을 환영했다. 명소민을 배제해도 너무 빨리 교수임용 심사가 열리면 그녀들도 아직 논문 정리가 더 되어서 좋을 것은 없었다. 어차피 명소민 따위의 @뼉다구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 확인되었고 혹여나 변수가 될지도 모르는 G교수마저 작고했기에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다만 명소민은 이게 자신에게 얼마나 불리한 상황인지 그때까지도 깨닫지 못했다. 지도교수가 생존할 시기에는 최소한의 배후지원이라도 받을 수 있지만 이제 나무 몽둥이 하나만 가지고 콜로세움에 던져진 뒷골목 깡패가 되었으니 피비린내 나는 싸움에서 단련된 진짜 검투사들에게 도륙나게 생겼다. 명소민의 경쟁자들은 냉소를 지으며 첫번째 희생양이 될 명소민의 콜로세움 입장을 박수치면서 맞이해주었다. 등뒤에는 창칼과 철몽둥이,전투 망치를 숨기고 명소민을 밟아 뭉개버릴 준비를 끝냈다. 바로 네이처에 등재할 논문 작성과 제출이었다.
이미 언급했듯이 명소민의 교수임용에 대한 절대적이고 단순명쾌한 조건은 네이처에 논문을 발송하고 등재를 인정받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명소민의 마음대로 일이 수월하게 진행되는 듯 했다. 경쟁자들이 개입해서 명소민을 집단구타로 두들겨 패고 벽에다 처박아 버리기전까지는 말이다. 명소민이 약간이라도 잔머리를 쓸줄 알았다면 "오직 나만이 분석화학과의 대표로서 네이처에 논문을 제출하여 등재한다면 지도교수에 임용해달라." 이런 방식으로 자기 이외에 외부인이 개입할 여지를 막고 서울대 총장에게 못을 박아 놔야 했다. 그런데 이 멍청한 여자는 자기에게 유리한 제한조건 없이 "내가 네이처에 논문을 발송,등재하면 교수에 임용시켜라."라고 타인의 개입을 허락하고 말았다.
=> 길명진 사건이 발발한 이후 곧바로 전임 서울대 총장에게 요청하여 빠른 시일내로 비공식 인터뷰를 가질수 있었다. 전임 총장은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추가로 설명을 해주었다. 설령 명소민이 그녀만이 교수에 임용되게 해달라는 요구를 한다고 해도 기각한다고 교수 임용을 바라는 모두에게 공정한 경쟁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사실 총장의 말이 옳은 것이 교수 직위는 한정되어 있는데 명소민이 혼자만 찬란한 논문을 제출했다고 해도 냉큼 지도교수이에 임용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되었다. 명소민과 고 G교수가 꼼수를 쓴다고 해도 결국 총장이 기각하니 명소민의 탈락은 예정되어 있었다. 의외인데 G교수가 간청한다고 해도 서류를 절대로 수정해주지 않을 것이고 우선적으로 임용 희망자인 명소민과의 면담에서 대부분의 조건이 합의되었으니 G교수가 어떻게 할 여지가 없었다.
여기에는 명소민 혼자만 논문을 발송한다는 제한조건이 없기에 바꾸어 말하면 명소민이 아니더라도 다른 포닥이 분석화학과의 차기 교수에 어울리는 논문을 발송하여 등재된다면 명소민이 아니라 더 뛰어난 논문을 등재하는 사람이 분석화학과의 차기 교수가 되는 것이다. 2006년 1월. 아직 G교수가 살아 있을 시기에 총장 면담에서 명소민의 요청을 들은 서울대 총장은 "정말로 이 조건으로 교수 임용을 허락한다면 명 박사는 괜찮겠소?"라면서 두번이나 확인했다. 멍청하기 짝이 없는 명소민의 명백한 확증을 들은 총장은 악마의 냉소를 띄우면서 차후에 번복하지 않겠다는 그녀의 약속은 물론이고 법적효력이 있는 공식적인 서류를 작성하고 명소민의 서명과 도장을 받아냈다. 이러니까 총장이 카르텔을 설득할수 있었다. 카르텔의 고참 교수들은 관련 서류를 읽고 박장대소하면서 명소민과 고인을 비웃었다고 한다.
어디까지나 서울대 동문모임에서만 들리는 웃기는 썰이 있는데 만에하나 명소민이 공식서류를 작성하고 온 그 날에 이런 조건을 G교수에게 이야기했다면 G교수는 눈알이 튀어나오고 심장마비가 올것처럼 놀라면서 당장 총장 집무실로 빛의 속도로 달려가서 명소민에게 유리한 제한조건으로 서류를 수정했을 것이다. 실제로 서울대 총장은 퇴근시간 30분전까지 G교수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그 무거운 체중으로 힘겹게 총장 집무실로 달려온다면 큰 웃음을 제공한 답례로 명소민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다시 서류를 수정해줬을 것이라고 서울대 동문회원이 기자에게 말했다. 명소민의 서명,도장이 찍혀 있다고 해도 최종적으로 총장의 승인 도장이 찍히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다시 수정이 가능했다. G교수는 해당 연구실의 후임자를 결정하는 사항에서 절대로 빠질수 없는 당사자이기에 G교수가 무언가 오류가 생겼다고 변명한다고 해도 총장은 기꺼이 서류내용을 수정해줬다.
하지만 총장의 퇴근 시간이 다 되도록 명소민의 어리석은 자폭을 수정하려고 지도교수는 달려오지 않았다. 진흙수렁에서 빠져나올 쇠사슬 줄이 내려졌건만(절대로 그럴리가 없지만) 스승과 제자 둘 다 생각이 없었기에 붙잡지 않았다. G교수의 분석화학과에서 근무한 고참 포닥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당시 G교수는 명소민에게 일이 잘 되었느냐고 묻자? 명소민은 그냥 총장이 서류에 승인하는 도장을 찍어줬다. 이런 무성의한 방식으로 대충 넘어갔고 다음날에 서울대에 교수 임용에 관련된 공지가 붙었음에도 명소민과 G교수는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공지 내용을 확인한 카르텔에 물들지 않은 경력이 짧은 신참 포닥들은 차기 교수 임용이 치열한 경쟁이 될 것을 예측했다. 여기에는 명소민이 아니라 명소민의 경쟁자 여섯명을 두고 나오는 논쟁이었다. 경쟁자들도 공지를 확인하고 처음에는 "이거 인쇄가 잘못된거겠지?"라고 의심했지만 각자 총장 면담을 통해서 관련 서류를 확인하자 승리의 미소를 지으면서 명소민과 G교수가 얼마나 생각 없었는지,이게 하늘이 내려준 기회였다고 판단하고 망설임없이 임용전투에 뛰어들었다. 그녀들 각자가 서로에게 경쟁자였지만 명소민은 아니었다. 기자가 최근에 G교수의 부인에게 확인한 사실인데 G교수가 갑작스럽게 졸도하여 응급차를 부르고 병원으로 실려가던 날. G교수는 카르텔을 설득한 방법을 찾는 와중에 명소민의 교수임용 관련 서류를 읽어보자 엄청난 충격을 받고 명소민에게 전화를 걸려다가 심장마비가 와서 쓰려졌다고 한다. 설령 G교수가 졸도하지 않거나 병원에 후송되어도 임종하지 않고 운 좋게 일시적으로 건강을 회복하여 명소민에게 연락을 한다고 해도 바꾸어지는건 아무것도 없다. 서류를 제출한 그날. 총장이 허락한 제한시간내에 다시 서류를 수정하지 않으니 백번 양보해서 G교수가 울며불며 징징거린다고 한들 총장은 서류를 수정해주지 않는다. 거의 10개월전에 교육부에 해당 조건을 알려줬기에 총장의 손을 떠나버렸다.
여기서 또 웃기는 코미디는 명소민이 산후조리를 끝내고서야 자신이 제출한 서류의 오점을 확인하고 뒤로 자빠졌다고 한다. 뒷북을 쳐도 유분수지. 명소민은 그날 바로 총장에게 달려가서 서류를 수정해달라고 매달릴 생각이었는데 이 한심함을 보다 못한 명씨 가장이 만류하여 대학교 내의 웃음거리는 되지 않았다. 애초에 당시의 서울대 총장은 명소민이 원하는 조건을 들어주거나 서류수정을 해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여성이 출산으로 인하여 사회진출과 경력이 단절되는 악순환을 막고자 하는 선한 의도에서 다시 명소민에게 기회는 주어졌다. 명소민 따위를 배려해서가 아니라 진짜로 임신과 출산으로 - 좋은 사례를 남기고자 - 불공정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여성 직장인들을 배려하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여기에 명소민은 겸사겸사 무임승차를 한 것이다. 이래나 저래나 명소민이 아이를 임신하였고 배후지원을 한 지도교수가 너무 일찍 작고한 것은 사실이었다. 2006~2007년. 명소민이 남편과 잠자리 쾌락을 즐기면서 시간낭비를 하고 있을 시기에 명소민의 경쟁자들은 일찌감치 독수공방을 하면서 네이처에 발송할 논문의 80%분량을 서술했다. 이것저것 중요한 실험을 시작하려는 와중에 G교수가 작고하였고 총장의 공지를 통하여 실험을 마무리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명소민 역시 놀고 있지만 않았고 산후조리가 끝나자마자 무거운 몸을 일으켜서 진짜 죽을 각오로 논문 작성과 실험에 임했다. 나름대로의 각오가 있었는지 긴생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투지를 불태웠다.
적어도 이때만큼은 명소민의 두 눈에 총기가 있었다고 그녀의 고교,대학교 동문이었던 B모씨가 진술했다. 하지만 2006~2007년 5월까지 - 임신을 확인하고 중절과 출산 여부를 두고 아버지 어머니,남편과 논쟁을 벌였다 - 시간낭비를 한 타격이 너무 컸다. 임신기간동안 몸 상태가 엉망이라서 연구가 제대로 될리 없고 거기에다 2008년 3월에 둘째 아이 출산. 두달간의 산후조리 과정이 끝나면 초여름에야 명소민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논문 작성에 들어갔다. 결과적으로 3년 가까운 시간을 헛되이 보냈다. 이런 명소민의 움직임은 경쟁자들이 상세히 파악했다. 차기 정교수 임용 공지가 난 2006년부터 경쟁자들은 명씨네 가정,입주 가정부를 매수하여 명소민이 독수공방을 하는가 여부를 확인했다.(매수된 가정부는 그거 하나만 확인해주면 되었다.) 예전에 곧바로 남편과 잠자리에 들었다는 말을 듣고 입가에 미소를 지었지만 이제는 남편과 따로 각방을 쓰면서 퇴근하면 거의 밤늦게 서재에서 불을 켜고 있다는 말을 듣고 경쟁자들도 상당히 긴장했다. 연구성과는 형편없다고 해도 명소민은 G교수가 내정한 정통 계승자였다. 작고한 G교수가 아니라 살아 있는 명소민이 무슨 변수를 일으킬지 장담할 수 없었다. 벼락치기로 네이처에 기준을 통과하는 논문을 쓸지 누가 아는가! 그럼에도 명소민의 경쟁자들은 너무 앞서 가버렸다.
경쟁자들은 독기가 올라서 넓은 대양에서 무섭게 따라오는 명소민 전함의 진로에 기뢰를 부설하고 명소민 전함의 사거리 밖에서 포격을 하면서 항진을 방해했다. 거기에다 카르텔 잠수함이 매복해 있다가 명소민 전함에게 중어뢰를 쏘면서 엄청난 타격을 입혔다. 고참 포닥들의 공대함 공격기까지 떠서 폭탄을 떨어 뜨리고 공대함 로켓탄을 발사했다. 뒤에서는 고참 조교들의 어뢰정이 달라 붙어서 화약을 꾹꾹 눌러 담은 어뢰를 발사하고 얄밉게 명소민의 포격을 회피했다. 명소민 전함은 하늘과 바다,수중에서 작렬하는 대함 공격을 받고 제대로 항진하지 못한채 연쇄폭발을 일으키며 겨우겨우 항진할 뿐이다. 이런 와중에 대폭발과 함께 두 동강이 나고 침몰하지 않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G교수와재커리 교수의 아낌없는 편애로 배수량을 불리고 거대 포탑을 장착했지만 포위공격에는 당해내지 못했다. 결국 1차 심사에서 깔끔하게 탈락함으로서 명소민 전함은 심해 깊숙이 침몰하고 말았지만.(웃음) 아무리 명소민이 잘났다고 해도 2년하고 몇개월의 시간을 낭비했으니 무슨 수를 써도 역전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했다. 명소민이 한달안에 NCS에 등재될 만큼의 논문을 쓰는 최상의 천재이거나 도이칠란트 민담에 등장하는 파우스트와같이 전능한 힘을 가진 악마와계약이라서 하지 않는 이상 명소민의 정교수 임용은 그저 이루어 지지 않은 망상일뿐이다. 이 모양이니까 1,2,3차 심사에서 도전해봤자 경쟁자들이 매설해 놓은 지뢰밭에서 춤이나 추다가 폭사당할뿐이다.
정치질을 못 하는 것이야 차후에 경험으로 익히면 되지만 형편없는 실력과 시간낭비로 생긴 공백은 그 무엇으로도 메꿀수 없다. 명소민의 패망에 가장 핵심적인 원인은 결국 한가지. 시간낭비!!! 이거 하나로 설명이 된다. 스스로 둘째 아이의 임신사실을 알기까지 1년하고 4개월동안 상류층 여자로서의 쾌락을 즐기면서 연구와논문 서술을 소홀히 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승패의 전환점을 놓치고 만 것이다. 지금은 사라진 노량진과 신림동의 공시생 = 서생원처럼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PC방과 당구장에서 시간낭비하는 자폭생쇼와똑같다. 공시생들이야 아이를 임신할 걱정은 없지만 시간낭비를 하니 공시에 합격할리가 없고 부모와보호자를 등쳐먹다가 2002년 공시 제도 폐지로 인하여 심판의 철몽둥이를 맞았다. 공시생들이 신선놀음을 하던 고시촌은 재개발,철거되고 옛날의 공시생들은 각자 직업훈련의 장소로 흩어질 수 밖에 없었다. 명소민은 임신 여부에 상관없이 시간낭비를 했으니 패배할 수 밖에 없었다. 애초에 독수공방을 했으면 원치 않은 임신을 하지 않으니 몸상태가 망가져서 연구를 망칠리가 없었다. 처음부터 총장은 알고 있었다. 면담을 하는 태도에서 독수공방을 하며 목숨 걸고 논문을 쓰는 여자인지 아닌지. 일부러 사생활을 염탐할 것도 없이 인생의 연배를 쌓은 총장이라면 한눈에 보면 다 파악이 된다. 명소민의 경쟁자들은 피곤하면서도 투지로 불타오르지만 명소민은 어디 카리브해에서 잘 놀다 온 한량과 같았다. 인생은 실전이라고 하던가! 명소민이 교수임용을 대하는 준비가 글러먹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총장은 이미 언급했듯이 1차 심사에서 일부러 명소민에게 유리한 주제를 주었다.
정교수 임용 심사에서 완벽한 명분을 만들어 명소민이 불복하여 물고 늘어지며 징징거릴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총장은 차기 정교수로 다른 여섯명중에 누구라도 한명이 낙점될 것을 기대했고 명소민은 아예 논외로 쳤다. 시간낭비로 99% 지고 들어오는 명소민이 삼연패를 당하고 나가 떨어질 것을 다 알고 있으니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결말이야 뻔했고 명소민은 그냥 장외로 밀려났고 패배한 개가 되었다. 이렇게 통쾌할수가 있을까. 백번을 양보하여 명소민 맹신론자들이 박박 우기는 것처럼 2007년 5월에 바로 중절을 했다고 해도 명소민이 승리할 가능성은 고작해야 2%였다. 고 길명진군에게는 안 되었지만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것이 더 행복했을 것이다. 원하는대로 사건을 해결해도 명소민은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논문 서술은 대충대충이고 약간 경각심을 가지고 남편과의 잠자리는 거를 것이다.
실제로는 성관계를 제외한 다른 쾌락은 다 즐길 것이니 이런 상태에서 아무런 대비없이 G교수의 작고를 맞이하면 멘붕이 오고 임용심사에서 참담하게 패배하는건 결말이 똑같다. 경쟁자들을 귀찮게 할 정도이고 전혀 저지하지 못하니 교수 임용은 날아갔다. 아니지. 임신으로 동정표를 못 얻으니 그대로 지방대학으로 파견/좌천을 당해서 심사기회도 얻지 못하고 자발적으로 사표 내고 자빠지는 것이다. 총장이 재심사의 기회를 준 것이야 여성이 임신으로 인하여 사회적 불이익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명분이었다. 명소민이 중절하면 배려해줄 이유가 없으니 명소민은 그대로 자발적 사직이라고 쓰고 서울대 파직이라고 쓰면 된다. 명소민의 교수 임용으로 발발한 사건으로 인하여 한 사람은 실종되고 한 사람은 극단적 선택으로 짧은 인생을 안타깝게 마무리했다. 이제라도 명소민과 같은 사례는 절대로 재발하면 안 되다는 취지에서 이 글을 기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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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명진 사건으로 인하여 전국이 떠들석하고 길명진이 시사유튜버. 타는내의 방송에 3번째로 출연과 극단적 선택을 하고 일주일후. 명성신문에 기고된 논평이었다. 명소민은 글을 쓴 기자에게 "당신 고소!"라면서 소송을 제기했다. 명소민이 살인사건의 명백한 용의자로 발각나고 검경에 구속되기 전까지 명예훼손,허위사실 유포 등으로 민사 재판이 한번 열리기까지 했다. 명소민은 기자의 글을 읽고 나서야 오래전에 자신의 집에서 근무한 이름도 기억나지 않은 가정부가 경쟁자들과 내통한 프락치라는 사실에 격분하면서 펄펄 날뛰었다. 서울대 동문회 모임에 나가서 예전에 경쟁했던 전임교원들에게 "당신들이 이렇수가 있냐고!" 뒤늦게 항의하고 난리였지만 경쟁자들은 '이 병신년이 뭐라는 거냐!'라면서 가식적으로 웃으면서 명소민을 농락할 뿐이었다. 그래봤자 서울대 총장에게는 입도 벙긋 못할 것이고 "총장님이 나에게 그러실리 없다. 기자의 억측이다."라면서 정신승리를 구사할 뿐이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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