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2024, AI 대전환 시작을 알리다
손재권 더밀크 대표
“우리가 왜 CES에서 아름다움을 말하고자 하는지 궁금할 것입니다”
지난 1월 9일(현지 시간). 이날 개막한 CES 2024 기조연설 무대에 니콜라 이에로니무스 로레알 최고경영자(CEO)가 나왔다. 화장품 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기술전시회에 선 것이다. 로레알은 인공지능(AI) 기반의 뷰티앱 ‘뷰티 지니어스’를 공개하고, 다이슨에 대적할 헤어드라이어 ‘에어라이트 프로’도 공개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
이에로니무스 대표의 이날 발표는 생성 AI가 비즈니스의 근간을 뒤흔든 이후 완전히 바뀐 산업 지형을 상징한다. 이제 뷰티 산업뿐만 아니라 중공업, 중장비 등 산업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기업은 테크 기업이며, 앞으로 모든 기업은 ‘AI 기업’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AI에 초점… 지속가능성 중심으로 산업 대전환 노려
이번 CES는 AI 기술과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중심으로 한 ‘산업 대전환(Great Transformation)’이 진행 중임을 그대로 드러낸 이벤트였다.
CES 2024에서 삼성전자, LG전자, 소니, 에릭슨, 인텔, 퀄컴, 월마트, HD현대 등 대부분의 글로벌 기업들이 AI 트랜스포메이션, 모빌리티 트랜스포메이션, 그린(지속가능성) 트랜스포메이션을 외쳤다. 2024년 이후 기업 운영의 방향성과 미래 전략이 정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석한 기업들은 업종을 가리지 않고 모두 AI에 초점을 맞췄다. 반도체, 가전, 모빌리티, 뷰티, 중공업 등 거의 모든 기업이 ‘AI 트랜스포메이션’을 화두로 내세우고 관련 제품을 쏟아냈다.
온디바이스 AI 시대 예고…AI PC도 머지않아
AI 기술이 고도화하고 전체 영역에 적용되면서 앞으로 ‘온디바이스 AI’ 시대가 예고된 것도 CES 2024의 큰 특징이었다. 온디바이스 AI는 스마트폰, TV, 자동차 등 기기 자체에 AI가 장착된 것을 말한다. 지금까지 AI는 ‘챗GPT’ 등의 사이트에 연결해서 사용할 수 있었지만 온디바이스 AI는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고도 기기에서 명령하고 실행할 수 있다.
팻 갤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CES 2024 기조연설에서 “앞으로 클라우드를 이용하지 않고, AI PC를 통해 내 컴퓨터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라며, 앞으로 AI PC가 시중에 나올 것임을 예고했다. 삼성전자가 CES 2024 직후 출시한 갤럭시S24가 대표적인 온디바이스 AI 사례다. 자체 개발한 갤럭시 AI를 탑재해 통화 중 실시간 통역, 카메라, 사진 편집 기능 등을 구현했다.
대전환 중인 자동차 산업, 맞춤형 소프트웨어 중심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로의 트랜스포메이션도 주목받았다. “자동차 산업이 1913년 핸리 포드가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을 도입한 이후 100년 만의 대전환을 이루고 있다”라는 평가는 과언이 아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를 가득 메운 700여 개 자동차 기업들은 한목소리로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로 전환해야 한다”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 CES 2020 이후 트렌드가 된 ‘전기차 전환’은 이제 기본이 됐고, SDV가 트렌드가 됐다.
실제 현대자동차는 SDV를 미래 모빌리티의 핵심으로 보고, 더 큰 범위로 확장되는 SDx라는 개념까지 제시했다. 현대차는 오는 2025년까지 SDV 운영체제(OS) 개발을 완료하고 2026년부터 모든 신차에 시스템을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소프트웨어센터인 포티투닷(42dot)도 삼성전자와 SDV 플랫폼 개발을 위해 손을 잡는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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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의 신개념차량(PBV)은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 다양한 용도로 차량을 제공해 큰 관심을 모았다. ⓒ더밀크 |
자동차 시장에 ‘맞춤형’ 트렌드가 나타날 조짐이 보인 것도 CES 2024의 특징이었다. 기아차는 CES 2024에서 모빌리티 시장의 이 같은 개인화 실현을 위해 신개념 차량(목적 기반 차량, PBV)을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PBV는 개인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 다양한 용도로 차량을 제공할 수 있다. 기아는 하나의 차량을 원하는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모듈화 설계 방식을 적용했다. 운전석 등 차량이 달리는 데 필요한 ‘드라이버 모듈’만 두고,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듈’은 계속 바꿀 수 있다. 차량 뒤의 변동부만 갈아 끼우면 사무실이나 고급 리무진, 캠핑카 등으로 용도 변경이 가능하다.
지속가능한 미래 위한 ‘그린 트랜스포메이션’
세 번째는 ‘그린 트랜스포메이션’ 이다. 기업들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제품(서비스) 개발을 경쟁적으로 약속했다. ‘기술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기술이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이유를 밝힌 것이다.
CES 2024의 슬로건인 “올 투게더 올 온(All Together, All On)”이 결국 ‘지속가능한 미래’가 기술의 존재 이유임을 밝힌 것이다. 이 같은 기조는 CES를 주최한 전미기술협회(CTA)의 ‘최고 혁신상’ 선정에도 반영돼 있었다. 한국 스타트업 미드바르의 ‘에어팜’은 이번 CES 2024에서 최고 혁신상을 수상한 데 이어 전시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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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는 CES 2024에서 ‘사이트(Xite) 트랜스포메이션’을 주제로 전시를 했다. ⓒ더밀크 |
CES 2024에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대전환의 선두에 선 것은 놀랍게도 한국의 1위 중공업 기업 HD현대였다.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은 기조연설 무대에 올라 “건설산업은 인류의 모든 기반을 마련해왔지만 기술과 혁신에서 가장 느린 행보를 보였다. 이를 혁신하지 않으면 미래를 바꿀 수 없다. 사이트(Xite) 혁신을 통해 인류가 미래를 건설하는 근원적 방식을 변화시킬 것이다”라며 HD 현대가 주창한 ‘사이트 트랜스포메이션(Xite Transformation)’ 비전을 설명했다.
그는 “(건설 및 중공업) 사업의 본질이 하드웨어 기반 장비 제조업에서 소프트웨어 기반 솔루션 제공 업체로 진화했음을 의미한다. 개방형 혁신 생태계를 구축해 역사적인 변화에 앞장서겠다”라고 강조했다.
수소에너지와 로봇 트랜스포메이션도 주목
CES 2024에서 의외의 등장은 바로 ‘수소에너지’였다. 독일의 보쉬는 전시의 중심을 ‘지속가능성’에 맞춰 잡으면서 지속가능한 에너지 사용을 위해 기술과 솔루션의 전기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히고, 앞으로 ‘수소’가 기후 중립적인 방식으로 전 세계 에너지 수요를 충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현대차도 이번 CES에서 수소 소비량을 2035년까지 약300만 t까지 늘리는 등의 내용을 담은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기도 했다.
CES 2024에서 보여준 ‘대전환’의 마지막 트렌드로는 ‘로봇 트랜스포메이션’을 꼽을 수 있다.로봇이 부상하는 이유는 각 기업이 생산성을 높이려는 시도와 일맥상통한다. 높은 인건비와 물가 상승, 잦은 파업으로 인해 기업들은 단순 업무를 ‘로봇’으로 대체하려는 것이다. 또 세계 각국이 고령사회로 진입함에 따라 ‘반려 봇’이나 ‘엑소스켈레톤’ 등을 통해 고령화의 문제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로봇’을 중점적으로 전시했다. AI 로봇이 가전을 아우를 수 있으며, 자동차 기업도 ‘로봇’ 제조에 뛰어든다는 점에서 로봇은 2024년 이후 개최될 모든 CES에서 주력 제품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전쇼’였던 CES가 2020년 이후 ‘모빌리티쇼’가 된 데 이어 2020년대 중후반부터는 ‘로봇쇼’, ‘에너지쇼’가 될 것임을 예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