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과학계, “필수의료 정상화·국민 신뢰 해결방안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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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3월 13일(수)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제220회 한림원탁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두고 의·정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과학기술 및 의학계 석학들과 정부 관계자가 모여 논의의 장을 열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3월 13일 ‘필수의료 해결을 위한 제도적 방안’을 주제로 제220회 한림원탁토론회를 개최, 국민이 신뢰하고 의료계가 공감할 수 있는 의료 생태계 조성을 위한 방향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정부, “의료개혁(필수의료) 4대 과제 강조”
첫 순서로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의료개혁(필수의료) 4대 과제'에 대해 발표했다. 이 과제는 의료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공정보상을 포함한다. 먼저, 박 차관은 의료인력 확충과 지역의료 강화에 대해 언급하며 “2035년까지 최소 1만 5천 명의 의사가 부족하기 때문에 2025년부터 2천 명씩 늘려야 수요를 감당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서울과 비수도권의 지역 의료 격차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에서 믿고 찾을 수 있는 지역의 의료기관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지역 의료 강화 대책도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의료사고 안전망과 관련하여 박 차관은 '의료사고 처리를 소송에만 의존하는 현실이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불안함을 준다'라며, '의료 소송이 평균 26개월이 걸리는 반면 민사 소송은 5개월이 걸린다'라고 비교하였다. 의료인들이 좀 더 안정적인 환경에서 진료에 전념하고, 환자들은 불필요한 소송을 통하지 않고도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해 적절하게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자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을 제정했다고 설명했다. 이 법은 해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시도로, 환자 권리를 보장하고 의료 현장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의료계와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공정한 보상에 대해 박 차관은 “개별 행위마다 보상하는 행위별 수가제는 필수의료의 난이도와 위험도, 24시간 대기 필요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라며, '의료 행위의 난이도와 위험도, 대기 시간 등을 고려하여 추가 보상하는 보완형 공공정책 수가를 도입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수요 급감에 따른 인프라 붕괴를 막기 위해 분만 수가를 3배 이상 인상하고, 중증 소아 분야에서의 고난도 수술에 대한 추가 보상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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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의료개혁 4대 과제'에 대해 발표했다. (사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클릭 시 이동) |
의료계, “의료수가 정상화·법적 부담 완화·인력확보가 선결조건”
두 번째 순서로 김성근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 ‘필수의료 해결을 위한 선결 조건’을 주제로 발표했다. 김 교수는 “필수의료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지만,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면 응급의학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등으로 생명과 직결되고, 환자도 많다. 현재는 필수의료 과목이 전공의들의 기피 과목이 됐다. 특히 소아과 전공의는 서울 외 지역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요즘처럼 고령 임신과 고위험 임신이 많은 경우에는 신생아 중환자실이 없으면 분만을 받을 수 없다. 작년에 무과실 분만 사고에 대해 국가보상으로 법안이 통과됐지만, 보상 범위가 3천만 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젊은 의사들이 야간 분만을 기피하고 있다”고 필수의료의 현실을 지적했다.
올해 초 정부가 발표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대해 김 교수는 “의료수가 정상화, 법적 부담 완화, 인력확보 정책, 취약지 의료기관 지원 확대 순으로 우선순위를 바로잡는 것이 선결과제”라며 “수가 개선에서 단순히 수술료를 올리게 되면 일부 수술을 많이 하는 병원만 이득을 얻고, 그쪽에만 의사가 몰리게 될 수가 있다. 특히 소아과의 경우는 95%가 외래 진찰료이기 때문에 이것을 해결해야 한다. 분만 수가도 지금은 초산 연령이 30대 후반으로 대부분 고위험 산모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조정이 있어야 한다.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에서 피해자 권리 구제에 국가 책임 부담제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가: 보상으로 주는 대가(네이버 사전)
김 교수는 “지방 소멸 시대에는 학교가 가장 먼저 없어지고 그 다음에 의료기관이 없어진다고 한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지역에 의사가 가기는 어렵다. 결국 공공의료 강화를 위해 시설과 인력에 대한 투자가 있어야 된다. 예전에 있었던 의료권역을 되살려서 서울 병원 쏠림 현상을 막는 정책적인 조정도 필요하다”라며 “지금 시끄러운 의대 정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필수의료 인력이 늘어나기보다 점점 더 없어질 것이다. 그러면 이번 증원으로 의사 수가 늘어났다는 2030년대 초반이 되어도 그다지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면서도 “적정한 보상, 제도 개선이 순차적으로 이뤄져서 필수의료에 지원하는 인력이 많아지고, 일하고 싶은 병원 환경이 된다면 충분히 필수의료의 미래는 밝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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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근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 ‘필수의료문제 해결을 위한 선결 조건’에 대해 발표했다. (사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클릭 시 이동) |
의사 수급 문제, 강력한 제도 변화 필요
세 번째 순서로 홍윤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 ‘필수의료 해결 방안’을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가치 기반 의료 제도를 소개하며 “이는 의료 성과를 판단하기 때문에 사망률이 줄어들고 치료 비율이 높아지며 후유증이 적다. 팀 기반 협력으로 성과가 좋으면 보상을 더 많이 해주기 때문에 행위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과 경쟁을 하게 된다. 즉, 엑스레이를 찍는 행위를 많이 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치료 성과를 좋게 하기 위한 경쟁을 하게 된다”라며 “그 혜택이 온전히 국민에게 돌아가게 되기 때문에 이 제도가 현재 미국에서 상당히 성공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 의료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홍 교수는 의료서비스 제공체계와 의료서비스 지불 보상제도의 혁신을 주장했다. 그는 “현재의 의료시스템에서 의사 수급 총 추계는 2023년에 부족한 것이 맞다. 하지만 2050년 이후에는 부족이 완화되거나 과잉 공급으로 변하게 된다. 의사 수급 부족은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에서 나타나며 수도권은 과잉 공급이 심화된다”라며 “주치의 제도의 도입과 같은 강력한 제도 변화로 의사 공급 부족을 크게 완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수급 추계를 기반으로 홍 교수는 “의사 수급 부족 지역은 비수도권이므로 의대 정원 확대도 비수도권에 국한해야 한다. 향후 과잉 공급을 고려해 탄력적 조정도 필요하다. 또한, 의료 제도의 변화가 선행되면 의사 공급 부족을 완화할 수 있으므로 의료서비스 제공체계와 지불보상 제도의 변화가 추진되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을 바탕으로 국민과 정부, 의료계가 합의를 해야 한다”고 정책적 제안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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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윤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 ‘필수의료 해결 방안’을 주제로 발표했다. (사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클릭 시 이동) |
“정부와 의료계, 대표 선정하여 마주 앉는 것부터 시작해야”
발표 후에는 정필훈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부원장이 좌장을 맡고, 한희철 대한민국의학한림원 부원장, 조동찬 SBS 의학전문기자, 신현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정선양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책연구소장이 패널로 참여한 가운데 토론이 진행됐다.
한희철 부원장은 “55~63년생 베이비붐 세대의 고령화로 의료 이용량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즉 미래에 필요한 의사 수에 대한 정밀한 추계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초고령화 사회에서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가 필요한지, 아니면 노인을 돌볼 사회적 케어가 필요한지, 의대 정원 증원으로 필수의료가 살아날 것인지 등 좀 더 시간을 가지고 다양한 연구할 필요가 있다”며 “2025년 정원 증원 규모에 대해서도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연착륙할 수 있도록 의학교육을 담당하는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라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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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동찬 SBS 의학전문기자가 지정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클릭 시 이동) |
조동찬 의학전문 기자는 “우리나라가 OECD 평균보다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데 신경외과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OECD health data에 따르면 신경외과 전문의 수는 OECD 평균 대비 2배가 넘는다. 그런데도 부족한 인력 때문에 아산 병원 간호사가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것은 수가에 문제가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정원을 늘려도 의사 부족 사태 는 지속될 수도 있다”라며 “현재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혜와 인내가 있는 중재자를 선택하고 정부나 의료계 모두 권한이 있는 대표를 선정하여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도록 마주 앉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신현웅 선임연구위원은 “정부의 필수의료 개혁 패키지를 보면 1년 안에 하나도 개선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있다. 의료개혁을 하겠다는 의지가 있으니까 그동안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던 개혁들이 이젠 정말 논의가 되고 있다”라며 “현재는 의료수급 문제에 매몰되어 있어서 이런 개혁 성과들이 눈에 보이지 않고 있다. 지금 의대 정원이 3천 명인데 2천 명을 더 늘린다니까 더 크게 보이는 거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에게는 12만 명의 현직 의사들이 있다. 앞으로 정원을 늘려도 10년 후에나 전문의가 될 수 있다. 의사 몇백 명을 더 늘린다고 해서 10년 후 의료계 문제들이 모두 해결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기 때문에 의료개혁과 함께 의료수급 문제도 좀 더 적극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선양 정책연구소장은 “과학기술계 입장에서는 의대 정원이 확대되면 인재들이 모두 의료계 쪽으로 빠져나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된다. 그래서 의사 과학자 육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번 개혁을 통해 최근에 서울대 의대에서 의과학과를 신설하겠다고 해서 상당히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일반 의대뿐만 아니라 KAIST, UNIST와 같은 소위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에서도 의사 과학자 육성에 관심이 높다. 또 KIST의 의과학센터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같은 출연연에서도 비슷한 프로그램이 있기때문에 이들에 대한 세심한 지원과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