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투어
창경궁은 중종과 대장금의 이야기, 사도세자의 출생과 죽음, 인현왕후와 장희빈에 대한 사건, 일제강점기의 수난을 간직한 궁궐이다.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나가보자.
일제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었던 창경궁 동영상(런닝타임 약 7분)
창덕궁투어가 끝난 후 창경궁으로 향하게 되는데, 창덕궁 내부에서 창경궁으로 들어가는 곳이 있었으나 해설사는 정문에서 출발을 하는 관계로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으로 가기위해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을 나와 창경궁 돌담길을 빙 돌아갔다.
관람안내
궁궐은 대개 풍수지리에 의해 남향에 배산임수(背山臨水)를 기본으로 하나 창경궁은 특이하게도 동향으로 지어져 대문도 동향을 하고 있다.
창경궁(昌慶宮)의 처음 이름은 수강궁(壽康宮)으로, 1418년 왕위에 오른 세종이 생존한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해 지은 궁이었다.
창경궁은 궁궐로서 독립적인 규모를 갖추기는 했으나 당시에 왕이 기거하면서 정사를 보는 궁궐로는 거의 쓰이지 않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창경궁 (답사여행의 길잡이 15 - 서울, 초판 2004, 5쇄 2009, 돌베개)
홍화문 - 창경궁의 정문
옥천교
배산임수의 풀수지리에 따라 궁궐에는 정전의 앞쪽에 개천을 만들고 금천교를 만들게 된다.
다른 궁궐은 모두 물이 말라 흐르지 않지만 창경궁의 금천은 맑은 물이 흐른다.
홍화문을 들어서면 바로 금천이 흐르고 그 위로 옥천교(玉川橋)가 있다. 성종 14년(1483)에 만들어진 옥천교는 창경궁에서 가장 오래된 건조물이다. 두 개의 홍예로 이루어졌으며 두 홍예 사이의 공간에 귀면을 조각해 넣고 다리 위에는 아름다운 돌난간을 설치한 뛰어난 석조 미술품이다.[네이버 지식백과] 창경궁 (답사여행의 길잡이 15 - 서울, 초판 2004, 5쇄 2009, 돌베개)
명정문을 들어서면 명정전이 나온다.
창경궁의 정전인 명정전은 조선 궁궐의 전각중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숭문당 - 창경궁 명정전(明政殿) 좌측에 있는 전각이며 전각의 이름은 학문을 숭상한다는 의미이다. 광해군(光海君) 때 창경궁이 건립되면서 만들어진 전각으로 추정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창경궁 숭문당 [昌慶宮 崇文堂] (두산백과)
문정전 - 대비들의 혼전(魂殿)으로 활용되다.
문정전은 왕비의 국상이 끝나고 종묘에 모셔질 때까지 신위를 모시는 공간으로 주로 사용되었다. 또한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참극이 있던 공간이다.
문화유산채널 7분 다큐 "창경궁 2부 문정전 앞뜰은 알고 있다" 편 동영상감상 [출처원문보기]
http://www.k-heritage.tv/hp/hpContents/vod/view.do?contentsSeq=7660&categoryType=2
동영상 사이트 링크 : 사이트가 연결되면 동영상 아래의 다운로드 버튼을 클릭하셔서 다운받으신 후에 시청하세요..(문화유산채널, 한국문화재재단)
장헌세자(莊獻世子 = 사도세자)가 죽은 문정전 앞마당
문정전 내부
함인정 - 창경궁에 있는 전각이며 임금들이 편전으로 즐겨 사용하던 곳이다
환경전 - 창경궁이 건립되면서 만들어진 내전이며 임금의 침전으로 사용되었다.
원래는 담장이 쳐 있던 건물이었으나 본채만 남아있다.
환경전은 중중이 대장금에게 진료를 받던 곳이다.
궁중음식은 3~5첩이 기본이었고, 특별한 날에만 12첩 정도 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궁중음식은 남자가 다 하였고, 여자는 극히 일부분이었다.(출처 : 위키백과)
경춘전 - 침전이었고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광해군때 복권되었으나 내부의 바닥이 민족항일기에 온돌이던 것이 마루인 상태로 변형되었다고 한다.
통명전 - 창경궁 내전이며 왕실의 대비(大妃)들이 거주했던 공간이다. 내전을 이루는 전각 중에서 가장 상징적인 건축물이며 규모가 크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용마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현판은 순조의 어필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창경궁 통명전 [昌慶宮 通明殿] (두산백과)
양화당
통명전과 양화당은 나란히 붙어있다.
이 곳은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궁중암투 현장이다.
통명전에는 인현왕후, 양화당에는 장희빈이 거처했으며, 갑술환국으로 인현왕후가 복위되고 장희빈이 빈으로 강등되자, 죽은 새나 쥐등을 통명전 주변에 묻어 저주를 하는 것이 숙빈최씨에 의해 숙종이 알게됨으로써 장희빈은 사약을 받게된다.
장희빈의 아들은 경종, 숙빈최씨(사극 장희빈에서 최무수리라고 불리던 인물)의 아들은 영조대왕이다.
장희빈
어려서 나인으로 궁중에 들어와 생활을 하다가 숙종의 총애를 받았으나 숙종의 생모인 명성왕후(明聖王后)에 의해 궁에서 쫓겨났다가 명성왕후 사후 환궁하고 이후 숙원(淑媛), 소의(昭儀)로 승격되었다가 아들 윤(훗날의 경종)을 낳고 아들이 원자로 책봉되면서 희빈(禧嬪)이 되었다.
당시 송시열(宋時烈) 등의 서인(西人)은 희빈 장씨의 아들을 원자로 삼으려는 숙종의 뜻에 반대하다가 정권을 남인(南人)에게 넘겨주었다. 결국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서인이 몰락하면서 숙종의 계비인 인현왕후(仁顯王后, 1667∼1701) 민씨가 폐비되고, 희빈 장씨가 1689년(숙종 15) 음력 10월 22일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甲戌換局)으로 남인이 실각하고 서인이 다시 집권하면서 인현왕후 민씨가 복위되었고, 희빈 장씨는 그해 음력 4월 12일에 왕후(王后)의 자리에서 쫓겨나 다시 희빈의 작호를 받았다. 그리고 1701년(숙종 27) 인현왕후가 죽은 뒤에 영조(英祖, 재위 1724∼1776)의 생모인 숙빈 최씨(淑嬪崔氏)의 발고로 거처인 취선당(就善堂)에 신당(神堂)을 차려 놓고 인현왕후를 저주해 죽게 했다는 혐의를 받아 사사(賜死)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희빈장씨 [禧嬪張氏] (두산백과)
집복헌
내전에 위치한 ㅁ자형태의 집복헌은 후궁들의 처소로 사용되던 곳이고 비운의 왕자 장헌세자(사도세자)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였다
풍기대와 앙부일구
풍기대는 바람의 세기를 추정하는 깃발이 있는 대이고, 앙부일구는 세종 16년(1634년)에 처음 만들어진 천문의기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던 해시계이다.
오늘날에도 시간은 정확히 맞는데 다만 비오는 날과 흐린 날은 시간을 알 수가 없는 것이 단점이다.
성종 태실 및 태실비
성종의 태를 모신 태실과 태실비가 있는데 왕실의 자손이 태어나면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그 태를 단지에 넣어 명당자리에 묻었다.
일제시대에 전국에 있는 조선역대왕의 태실을 대부분 경기도 서삼릉으로 옮겼으나 이 것만은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다.
춘당지 - 종로구 와룡동 창경궁 내에 있는 연못으로서, 1909년에 춘당대 앞 귄농장 자리에 연못을 파고, 춘당대 앞이 되므로 춘당지라고 이름 붙여졌다. 연못가에 수정을 짓고 궁원을 일본식으로 변모시켰으나, 창경궁이 복원되면서 연못으로만 정비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춘당지 [春塘池] (서울지명사전, 2009.2.13,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백송나무
창경궁은 순종이 즉위하고 나서부터 변형이 되기시작하여 일제 강점기에 결정적으로 훼손이 되었다.
1909년 일본 제국이 대한제국 순종 황제의 마음을 달랜다는 이유로 강제로 창경궁 내부 궁문, 담장, 많은 전각들을 훼손하고 궁 안에 일본식 건물을 세우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어 유원지로 조성하였다.
임금이 친히 농사를 짖던 내농포(권농장) 자리에는 연못을 파서 춘당지라 불렀으며, 연못가에 정자를 짓고 궁원을 일본식으로 바꾸었다. 그 뒤쪽에는 식물관을 짓고, 동쪽에는 배양당을 지었으며, 통명전 뒤 언덕에는 일본식 건물을 세워 박물관 본관으로 삼았다.
또한 일제는 남아있는 건물들도 개조하여 박물관의 진열실로 만들었다.
1911년에는 자경전터에 2층 규모의 박물관을 세우고 창경궁의 명칭을 ‘창경원’으로 바꾸어 격하하였으며, 1912년에는 창경궁과 종묘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절단하고 도로를 내어 주변 환경을 파괴하였다.
1915년에는 문정전 남서쪽 언덕 위에 장서각을 건립하였고, 1922년에는 벚꽃을 수천 그루 심어 벚꽃숲을 만드는가 하면 1924년부터 밤 벚꽃놀이를 열었다.
참고문헌 : 위키백과
유리로 지어진 대온실은 일제에 의해 만들어 졌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대형 유리온실이라는 이유로 복원보다는 보존의 가치가 있다고 하여 보존하고 있고 춘당지라는 연못은 원래 권농장이라하여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논이었는데 원형복원이 불가능하다는 판단하에 보존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현재 복원계획이 모두 잡혀 있기는 하지만 예산등의 문제도 있고 경복궁등 규모가 큰 궁궐에 밀려 언제 완성이 될지는 미지수라고 한다.
첫댓글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