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도 1노3김(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 시대인 88년 총선 때부터 소선거구제를 채택해 왔다. 소선거구제는 ‘3김 시대’를 확대 재생산한 버팀목이었다. 영·호남 지역대결 구도와 맞물려 정파 대립을 확대시켰고 이는 선거전의 동력으로 활용됐다.
요즘도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 심지어 기초의회 의원까지 공천권을 쥔 계파 보스에게 줄을 서는 것은 기본이고, 밤낮 없이 지역구를 누비는 골목정치에 허덕이는 게 현실이다. 지방 출신 의원들은 ‘금귀월래(金歸月來·금요일부터 지역구를 뛰다 월요일엔 여의도로 돌아온다는 뜻)’를 금과옥조로 삼는다.
그들이 국가 차원에서 정책비전을 갖고 ‘큰 정치’를 구상하고 있는지 걱정스러울 때가 많다. 경제 회생, 복지 확대, 교육 개혁, 남북 문제 등 워낙 시급한 현안이 산적해 있어서다. 각 분야에서 기대를 받고 정계에 들어간 전문가 그룹조차 무기력하다. 툭하면 ‘돌격대원’이 돼 전투력을 과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선거의 공천에서 물 먹기 십상이다.
‘귀태’ 막말 파문의 주인공인 홍익표 의원은 요즘 득실 계산이 한창일지 모른다. 초선 의원임에도 막말 한 방으로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었으니 말이다. 어느 야당 정치인이 일찍이 “부고(訃告)가 아니라면 내 이름이 나오는 어떤 기사도 환영”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여야 정쟁의 한복판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격분케 할 발언을 했으니 잘하면 ‘저격수’라는 별명도 얻음직하다.
그러나 거기까지일 것이다. 말의 품격에 따라 후대의 평가를 받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전두환 군사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86년 10월 “대한민국의 국시(國是)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유성환 당시 신민당 의원이 좋은 사례다. 그는 면책특권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9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하지만 ‘유성환’이란 이름은 지금도 용기 있는 정치인의 상징처럼 남아 있다. 한 나라의 국회의원이라면 그런 수준의 발언 한마디쯤 남겨야 할 것 아닌가.
제65주년 제헌절을 계기로 곳곳에서 개헌론이 무성하다. 대통령 5년 단임제와 함께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를 손봐야 한다는 여론도 거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 골목정치에 목을 매는 현실에서, 국가 경영을 맡을 거물 정치인이 나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역대결 구도의 단맛을 25년간 즐겼으면 이쯤 해서 선거구제를 바꿔 보는 게 어떨까. 정치권에 남아 있는 ‘함량 미달자’들의 교체를 위해서.
이양수 중앙SUNDAY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