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인간이 놀이문화든 전쟁이든 무언가 승리와 쟁취를 놓고 다투기
시작하면서 '누가 먼저 시작하는가?'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되어 지금까지도 많은 논쟁을 낳았습니다. 시작이 반이요 선수 필승이란
말도 있고, 또 바둑이나 오목처럼 먼저 시작하면 반드시 유리한 게임도 얼마든지 있죠.
스피드를 겨루는 경주나 같은 시간 동안 성취한 결과물로 경쟁하는 시험 같은 것은 동시에 진행해도 되지만, 시간을 이산적으로
분할해 페이즈phase, 턴turn, 라운드round라 부르는 보드게임에서 시작 플레이어는 때로는 굉장히 민감한 주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보드게임마다 나름의 방법으로 시작 플레이어를 결정합니다. <티츄 (Tichu)>와
<렉시오 (Lexio)>는 가장 낮은 카드/타일인 새 카드/구름 3 타일을 가진 플레이어가 게임을 시작하죠. 약한 패를
잡은 대신 먼저 할 수 있도록 보상해주는 개념입니다.
<파워 그리드 (Power Grid)>처럼 게임 자체에
게임의 세팅이 포함되었기 때문에 시작 플레이어가 랜덤으로 정해지는 게임도 있고, 또 초기 배치를 잘하는 것도 중요한 <루나
(Luna)>는 무작위로 시작 플레이어를 정하라 합니다.
<카탄의 개척자 (The Settlers of
Catan)>처럼 '가장 나이 많은 플레이어'가 시작하거나, 반대로 '가장 어린 플레이어'가 시작하는 게임도 많습니다.
어린이가 게임에 포함되었을 때 나이에 따른 실력의 차이를 방지하는 용도로 쓰이기도 합니다만, 아무래도 따로 정해주기 귀찮았다는
느낌이 더 강하죠.
이처럼 많은 게임은 게임 내에서 자체적으로 밸런스가 맞게 시작 플레이어를 정하게 하고, 그
외에는 보통은 가위바위보 등의 방법으로 무작위로 시작 플레이어를 정하게 합니다. 하지만 보드게임 룰북을 읽다 보면 정말 가볍게
피식-하고 웃게 만드는, 그런 시작 플레이어 결정법들도 있습니다.
(왼쪽은 25단 가위바위보 룰북. 오른쪽은 참조표.)
어디 갔어요?
데이즈 오브 원더 사의 히트작 <티켓 투 라이드 (Ticket to Ride)>는 가장 최근에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
시작 플레이어입니다. 티투알 시리즈의 다른 게임도 이와 비슷한데, <티켓 투 라이드 유럽 (TtR : Europe)>은
유럽에 있는 나라를 가장 많이 가본 플레이어가, <티켓 투 라이드 북유럽 (TtR : Nordic
Countries)>는 가장 숙련된 여행가가 게임을 시작합니다.
데이즈 오브 원더 사의 다른 게임 중 기차 안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추리하는 게임 <미스터 익스프레스 (Mystery Express)>는 가장 최근에 기차를 탄 적이 있는 플레이어가 시작하고요.
아들롱 사의 팀 카드게임 <악마성의 마차 (Die Kutschfahrt zur Teufelsburg)>는 가장 멀리
여행을 가본 적이 있는 플레이어가 시작 플레이어가 됩니다.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논쟁부터 나겠네요. :)
간단한
협력 게임으로 호평을 받은 <금단의 섬 (Forbidden Island)>는 게임 이름처럼 가장 최근에 섬을 방문한
적이 있는 플레이어가 시작 플레이어가 됩니다. 또 아레아 큰 박스 시리즈 2번 <차이나타운 (Chinatown)>은
최근에 차이나타운에 다녀온 적이 있는 플레이어가 시작하고요.
올해 에센에서 발표된 성당 짓는 게임
<바질리카 (Basilica)>는 최근에 대성당이나 공회당, 중세 교회를 다녀온 적이 있는 사람이 먼저 시작합니다.
그런 사람이 없으면 하다못해 절이나 사원 등지에 다녀온 적이 있는 사람이 먼저 하라 하네요. 비슷하게 가장 최근에 교회에 방문한
플레이어가 시작하는 게임으로 론델 시리즈 중 <함부르굼 (Hamburgun)>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겼어요?
데이즈 오브 원더 사가 최근 가장 밀고 있는 라인업인 <스몰 월드 (Small World)>는 가장 귀가 뾰족한
플레이어가 시작 플레이어가 됩니다. 엘프를 말하는 것 같은데, 판타지 테마와 잘 어울립니다. 또 재밌게도 만약 동점이 발생하면
이번엔 가장 키가 작은 플레이어가 승리합니다. 하플링을 말하는 거겠죠?
F와 녹색으로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한
프리드만 프리제의 <암흑의 복도 (Finstere Flure)>는 가장 괴물처럼 생긴 플레이어가 시작합니다. 괴물을
피해다니는 게임이란 테마완 잘 맞지만, 먼저 시작하면 조금 불리한 판에 괴물같이 생겼다니 좀 억울할지도 모르겠네요.
영향력을 기본으로 하여 다양한 요소를 첨가하여 선택의 폭이 넓어진 <예루살렘 (Jerusalem)>은 키가 가장 큰
사람이 시작 플레이어입니다. 먼저 시작하는 것에 따른 유불리는 못 느끼는 게임이지만 기분은 좋을 것 같습니다.
해적 테마의 게임은 유달리 외모에 집착하는 것 같습니다. 간단한 카드게임 <존 실버 (John Silver)>와
탈옥(!) 게임 <카르타헤나 (Cartagena)>는 가장 해적처럼 생긴 플레이어가 시작합니다. 가장 해적처럼 생겼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테마와 시스템 모두 좋은 점수를 받는 던전 매니지먼트 게임 <던전 로드 (Dungeon Lords)>는 가장 착한
플레이어가 시작 플레이어가 됩니다. 게임 중간에도 착하고 악한 정도를 비교할 때 동점이 발생하면 현재 선 플레이어에 가까울수록
착하고요. 뭐, 처음은 착하고 소심해도 결국은 위대한 데몬이 되면 좋은 게임 아니겠습니까^^
지맨 게임즈를 단숨에
세계에 알린 협력 게임 <팬데믹 (Pandemic)>은 최근에 아팠던 적이 있는 플레이어부터 시작합니다. 이 게임은
CDC(Centers for Disease Control ; 질병 통제 센터)가 있는 애틀랜타가 모든 플레이어 말의 시작 위치란
것도 특이하죠.
<겐지 (Genji)>는 '일본 전국 시대 공주 헌팅'이란 독특한 테마만큼 특이한
방법으로 시작 플레이어를 정합니다. 한 사람씩 자신의 사랑 이야기해서 (뭐, 비상시엔 남의 이야기라도 해야죠.) 가장 눈물나거나
비극적인 이야기를 한 사람부터 시작합니다. 시작 플레이어 정하는 것부터가 이미 하나의 대단한 놀이가 되네요.
막장
RPG란 별명이 손색이 없는 <먼치킨 (Munchkin)>은 주사위를 굴리고, 그 결과와 이 문장의 의미, 그리고
말이란 때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일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충분히 논쟁한 후 시작 플레이어를 결정하라 되어 있습니다. 게임 중
문제가 생기면 목소리 큰 사람, 그래도 문제가 있으면 게임 주인이 해결하라는 것도 그렇고, 참 대단한 게임입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2)
<글룸 (Gloom)>이란 게임도 있습니다. 투명한 카드도 특이하고 최대한 우울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다는
점도 특이한데, 시작 플레이어는 또 가장 우울한 사람입니다. 꼭 한번 해보고 싶은데 아직 못 해봤네요.
플레이어
호구 조사하는 게임도 몇 가지 있습니다. 항구 도시의 발전 과정을 그린, 우베 로젠베르크의 수확 3부작 중 두 번째 게임
<르 아브르 (Le Havre)>는 물에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이 먼저 시작합니다. <그린란드
(greanaland)>는 가장 북쪽에 사는 플레이어가, 플레이어 중 한 명을 시작 플레이어로 지정하고요.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음식도 물어봐야죠? <맘마 미아 (Mamma Mia!)>는 가장 배고픈 사람, <판타지 펍 (Fantasy Pub)>은 가장 목마른 사람이 시작합니다.
귀여운 양들이 무섭게 노는 게임 <쉬어 패닉 (Shear Panic)>에선 가장 최근에 머리를 깎은 사람이 시작 플레이어입니다.
정말 정말 특이한 것들
특이한 걸로 치면 시간 여행 게임 <크로노너츠 (Chrononauts)>를 이길 게임은 얼마 없을 겁니다. 모든 사람이 시계를 보지 않고 현재 시각을 추측합니다. 가장 가까운 시간을 추측한 사람이 먼저 시작합니다!
심지어 시작 플레이어만 정하고 끝나는 게임도 있습니다. 사실 게임이라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시작 플레이어
(Start Players)는 여러 장의 카드가 들어 있습니다. 이 카드 중 무작위로 뽑은 한 장에 써있는 내용에 해당하는 사람이
시작 플레이어가 됩니다. 생일이 앞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 이 카드를 뽑은 사람의 오른쪽에 앉은 사람, 가장 최근에 소설책 한
권을 완전히 읽은 사람, 가장 멋진 휴대전화를 가진 사람 등.
어쨌든 즐기고 봅시다.
사실 몇몇 게임을 제외하면 누가 시작하느냐는 정말로 정말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보통 가위바위보로 해결하죠. (25단 말고
3단이요.) 그렇지만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보드게임 룰북에서 이런 소소한 재미를 발견하는 것도 꽤 즐겁습니다 :)
도움 주신 분들 : 다이브다이스의 파우스트 님, JENSE 님, 그럴때마다 님, 카린 님, 카키보이 님, 아그리콜레 님, 이레파파
님, 로이엔탈 님, 상트매이야~ 님, 오즈 님, 웃는악마 님, 하텔슈리 님, 뱅뱅뱅 님, 밀하 팀, 타락천사 님, Persiko
님, Orthia 님 (보러 가기)
p.s.
왜 이글루스에서 다음 카페로 복사 -> 붙여넣기 하면 띄어쓰기가 이상한 곳에 첨가되어 붙여넣기가 될까요?
첫댓글 ㅋㅋ 카르타제나 시작플레이어가 가장 해적같은 사람이였다는건 몰랐네 ㅋㅋ
꽤 유명한가 보드라구요-ㅁ-
콩이 아니야는 가장 최근에 콩요리 먹은사람이 시작임~ ㅋ
정보는 찾았었는데 글 편집 중 뺐어요 ㅋㅋ
개썰매 게임 그거 이름이 머더라 ...암튼 그건 가장 허스키한 보이스를 가진 사람이었던 듯... 재밌게 잘 읽었어~^^
스노우 테일즈요? 특이하군요 ㅎㅎ
게임 동점시 1등 정하는 방법에서 호스 피버는 나온 주사위에 따라 뚱뚱한 사람, 날씬한 사람, 키 큰 사람, 심지어는 게임 케이스에 있는 제작회사 로고를 가장 빨리 터치하는 사람이 1등인 경우도 있습니다...박손의 가능성을 대폭 높여놓았군요.
나이 어린 사람이 먼저하는 게임이 젤 싫음..ㅋㅋ
괴이해...이상해 ...무서워 ㅋㅋ 암흑의 복도? 에 나오는 눈하나는 뭔가요? 인코그니토 주사위(?)가 가장
이상하다고 생각햇는데..ㅇㅅㅇ
그 눈은 인간을 먹으러 다니는 괴물입니다~
와 ㅋㅋ 이런 순서정하기보드게임도 있네요.. 처음봤음 ㅇㅅㅇ
아 니콩니콩 이런 훌륭한 글을 남겨주다니. 참 잘했어요 칭찬칭찬. 우리 밥이나 먹을까? 내가 쏨 내가 쏨
근데 댓글을 달고보니 이미 한달 전에 작성한거네 크
두 달 전이죵 ㅋㅋ
재미있는 글 잘 봤습니다. ^^
최근에 해 본 Troyes 에서는 최근에 역사책(history book)을 읽은 사람이 시작 플레이어가 됩니다.
ㅋㅋ 나이어린사람이 없으면 갱스터에선 최근에 대부영화를 본사람이 시작이더군요 ㅋㅋ
Stefan Dorra 의 부동산 경매를 테마로 하는 For Sale 에서는 가장 작은 집에 사는 사람부터 시작합니다. (간단하면서도 재미 있는 10분짜리 카드게임으로 참 좋아합니다. ^^)
놀이공원을 테마로 하는 Adlungland 에서는 가장 최근에 놀이공원에 갔다 온 사람이 시작 플레이어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