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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도봉산 시산제 후기
일시: 2024. 02. 18
참석: 203명 (25회 13명)
산행: 4Km (2시간)
시산제와 장소
산악인들에게 시산제란 무엇일까? 한마디로 ‘새해에 산신령에게 올리는 제사’이다.
산악인들은 산신령을 산의 영혼이자 산의 주인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시산제를 통해 산신령에게 경외와 보살펴 줌에 대한 감사를 표하면서 새로운 한 해 동안의 무사산행을 기원하는 것이다.
시산제는 우리나라만이 가지는 샤머니즘적인 독특한 행사이다. 수천년에 걸쳐 우리민족의 정신세계 속에 DNA로 형성된 산신신앙에서 생겨났다. 국토의 70%가 산이라, 산은 우리민족에겐 늘 기도의 대상이면서 또한 생활의 터전이었다. 정성으로 조상을 모시듯 산을 모셨고, 마을마다 산제를 지내며 산신을 숭배하였다.
국민 태반이 산을 찾는 오늘날, 사고 없는 산행을 바라게 되면서 산제는 자연스럽게 모든 산악회의 시산제로 이어졌다. 산 정상이건 산자락 혹은 산밑이건, 1월에 드리던 3월에 드리던, 종교가 있던 없던 간에, 시산제는 산악인의 단결과 산행 안전을 기원하는 산악인들의 축제마당이다.
그런데, 최근 산악회마다 시산제 장소를 선정하는데 문제가 생겼다.
몇 년 전까지 시산제 장소로 산악회가 기반을 두고 있는 지역의 명산이나 원정 명산에서 아무런 문제없이 잘 지냈었지만, 최근에 규제가 강화되면서 국립공원이나 도립공원 등 공원법으로 관리되는 산에서는 지낼 수 없게 되었다.
법규상 ‘시산제’가 금지항목에 명시된 것은 아니지만 금지항목인 ‘술’이 문제가 된다. 제상에 ‘막걸리’를 빼고는 참다운 제사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작년에 어느 산악회가 북한산에서 4년간 같은 장소에서 시산제를 지내는 중에 관리공단의 제지를 받고, 술 대신 맹물을 놓고 시산제를 지낸 일도 있었다. 우리는 광륜사 앞 좁은 소나무 숲속에서 지내서 공단에서 보지를 못해 그냥 지나 갔나 보다.
작년에 스리슬쩍 치른 곳은 공사중이고, 다른 곳은 국립공원 관리공단의 불허가로 올해야 어쩔 수 없다만 식당 안에서 계속 치룰 수도 없고, 내년 이후 지낼만한 새로운 장소를 물색해야 하겠다. 200여명이나 되는 인원이 한 곳에 모여서 시산제를 지낼만한 곳이 그리 많지 않을지라도 우리 천하부고의 산신령이 반드시 점지해 주실 것이라 믿는다. 굽어 살펴 주시옵소서!
도봉산 시산제 산행길
작년 시산제 산행이후 1년만의 도봉산 산행길이다.
입춘 지난지는 2주가 되었고, 내일이 우수라 날씨는 흐리지만 엄청 포근하였다. 제주 유채꽃, 통도사 홍매화 등 아랫말 꽃소식은 봄바람 타고 계속 올라오고, 윗말 홍릉수목원의 복수초는 벌써 피었지만 풍년화는 이제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하였다.
멀다고 일찍 나서도 마을버스, 두 번의 지하철 환승이 바로바로 안 되니 2시간 도봉산 산행길은 항상 아슬아슬하였다! 그래서, 오늘은 지하철 4호선 쌍문역에서 141번 버스로 갈아타고 만남의 광장 가까이 도봉산 버스종점으로 왔더니, 지하철을 환승하며 도봉산역으로 오는 것보다 일찍 20분 전에 만남의 광장에 도착하였다.
버스종점에서 만남의 광장까지는 여전히 번잡한 시골장터 같다. 1986년부터 노점상을 하는 등산용품점도 있다. 광장옆 새로운 건물 ‘도봉제빵소 카페도영’ 대형 베이커리 카페도 보인다. 만남의 광장 데크안으로 들어가니, 일찍 나온 동문들이 10명도 안되었다. 총동산악회 프랭카드 앞에서 31회 김기운과 32회 김영준이 커피를 마시고 있어 인사를 나누고 한 잔 얻어 마셨다.
시산제 짧은 산행
시산제 날, 짧은 산행은 오래된 관행이다.
술을 핑계로 북한산국립공원 관리공단이 북한산과 도봉산에서 일체의 시산제 행사를 불허하면서
올해의 시산제는 빫은 산행 후에 도봉산역앞 단골식당인 '옛골토성' 안에서 12시에 치룬다.
총동산악회에서 도봉산 만남의 광장에서의 모임은 4년만이다. 올해는 눈도 없었고 칼날같이 춥지도 않았다.
간식으로 나누어 주는 떡과 물병은 없지만 회비를 내느라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다.
9시 15분, 산행 출발시간이 되어서 모두 만남의 광장에 빙둘러 서서
산악회장의 간단한 인사말을 듣고, 단체사진 한 장 찍고, 산행 구호를 외친 후 짧은 산행에 나섰다.
25회가 작년엔 자연관찰로를 한바퀴 돌며 사찰순례를 하였지만, 올해는 무수골까지 도봉옛길 도봉산둘레길이다.
만남의 광장을 나와 카페 도영제빵소를 지나고, 아웃도어 골목을 지났다. 작년엔 코로나 팬데믹이 끝난 직후라 점포정리나 대폭 할인 광고가 많이 붙어있어 황량했었는데, 올해는 골목 가게마다 물건도 많고 쌔일광고도 별로 없고 아침부터 활기차 보였다.
치마만 입고 와도 순식간에 등산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던 그 시절로 되돌아 가는 것인가?
탐방지원센터를 지나 ‘북한산국립공원’ 표지석에서 왼쪽으로 통일교 다리를 건너 도봉옛길 쪽으로 줄지어 올라갔다.
서울둘레길, 북한산둘레길과 도봉산 자연관찰로가 겹치는 구간이라 사람의 왕래가 많았다.
동네방네 소문 내며 올라가려니 웬지 계면쩍어서 그런가? 올해는 동문들 모두가 개목걸이 같은 명찰을 안달고 있다.
완만하게 경사진 넓은 흙길로 걸어가다 보면 우측에 미륵사찰 능원사가 있다.
지나치며 담장 위나 일주문에서 볼 때마다 커다란 절 건물만 보이지 사람의 냄새를 전혀 느낄 수 없어 조용하기만 하다. 그래도, 도봉산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황금빛 찬란한 능원사는 한 폭의 동양화다.
지붕의 양쪽 끝, 동자승을 태우고 용을 밟고 있는 ‘가루라’ 조각이 항상 눈길을 끈다. 가루라는 인도 신화 속의 용을 잡아먹는 큰 새로 독수리 머리, 금빛 봉황 날개의 모습인데, 날개를 펴면 336만리나 펼쳐진다고 한다. 도저히 상상이 안되는 모습이다.
어느 종파에도 속해 있지 않아 일주문에 ‘한국불교 도봉산능원사’ 라고 써 붙여 놓았다.
능원사를 150 M 지나면 우측에 도봉사가 있다. 고려시대 혜거국사가 창건했다고 하는 천년고찰이다.
천년고찰이라지만 일주문도 없고, 포대화상을 문지기로 좌우에 문패 걸 듯 ‘도봉사’라 써 붙였다. 능원사와는 또다른 모습이다. 작년에 안에 들어가 경내에 있는 불상, 탑, 전각들을 자세히 살펴 보았는데, 올해는 그것들을 사진으로 찍어 절 앞에 세워 놓아서 또 들어가서 본 거나 다름없었다.
정문에도 세워져 있듯이 도봉사에서 가장 많은 불상은 포대화상이다. 포대화상은 중국 당나라 때 실존하였던 스님이다. 올챙이배 뚱뚱한 몸집으로 포대를 메고 호탕하게 웃으며 중생들에게 재물을 나눠 주었기에 중국에서는 미륵보살의 화현이라 믿고 숭배한다. 그 익살스러운 모습들이 보는 사람들을 절로 미소 짓게 한다.
도봉사를 지나 담장의 심우도(尋牛圖)를 보며, ‘도봉옛길’의 입구로 걸어갔다.
도봉옛길과 자연관찰로의 갈림길, 장애인도 편히 이용할 수 있도록 지어진 화장실 들렸다가 맨 뒤에서 무수골 가는 길인 도봉옛길을 뒤쫒아갔다. 굽이굽이 능선 마루 전망쉼터까지 무장애 산책데크가 설치되어 있는 걷기 좋은 길이다.
다른 도로와 길들이 많이 생겨나며 이젠 사람들의 산책길로 이용되지만 과거엔 도봉동 다락원과 방학동 무수골을 연결했던 옛길이었다. 지금은 전국에서 최고로 많은 탐방객이 몰리는 구간 중 한 곳이다.
낮은 보문능선 마루에 요란하게 좌우로 팔을 벌린 이정표가 서있다. 무수골로 내려갔다.
능선 아래 전주유씨 문중묘 근처를 지났다. 연이은 가파른 계단길이다.
계단길 내려가서 길은 크게 넓어지고 완만하여 경관을 즐기고 사색하며 걷기에 좋은 숲길이다. 옛 대감님들과 유명 정치인의 무덤, 기념 비석과 시비를 보며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덤이다.
어느 정도 내려가니 아치로 만들어진 '도봉옛길' 문이 나오고, 곧이어 윗무수골이다. 이곳에서 산자락 길따라 내려가다 오른쪽으로 돌아 내려가면 교회, 카페가 있는 마을이 나타난다. 계속 잎으로 더 내려가면 도봉 마을버스 8번 종점이 있는 도봉역으로 가는 길과 세월교가 있는 무수골이다.
세월교를 건너자마자 왼쪽 좁은 길이 북한산둘레길 19구간인 방학동길 구간 시작이고, 길을 계속 올라가면 만세교와 성신여자대학교 난향별원이란 생활관으로 이어진다.
시산제 시간에 맞추려고 세월교에서 되돌아 왔다.
도봉옛길 끝자락 무수골은 아름다운 숲과 계곡, 바위만이 아니라 도봉산 자락에서 유일하게 논과 밭이 있는 마을이다.
세종 임금이 재위 당시 이곳의 원터약수터를 찾았다가 '물 좋고 풍광이 좋아 아무런 근심이 없는 곳'이라 한 것에서 '무수골'이란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세종의 아홉째 아들인 영해군의 묘가 이동네에 있으니 이래저래 세종의 그림자가 짙은 곳이다!
합쳐진 무수골 개울 물은 수량도 많고 참 깨끗하다.
마을을 다시 거꾸로 지나서 도봉옛길 입구로 돌아와 입구의 쉼터에서 간식과 차를 마시며 잠시 쉬었다.
간식을 먹고는 단숨에 숲길을 지나고, 계단을 올라 능선 마루에 올랐다.
참 많기도 하다! 북한산 둘레길 도봉옛길 구간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시산제 시작시각에 맞추려 시간을 조절하며 능선 마루에서 한참을 또 쉬었다.
그리고는 산길로 바로 만남의 광장쪽으로 걸어 내려와 먹자골목을 지나 옛골토성에 11시 30분에 도착하였다.
2024 시산제 행사
옛골토성 식당 안에 제단을 차리고 순서에 맞추어 시산제를 거행하였다.
개회선언 후에 식전행사로 30회 임승호 산악회장의 인사말, 48회 막내들의 산악인의 선서가 이루어졌다.
"산악인은 무궁한 세계를 탐색한다.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정열과 협동으로 온갖 고난을 극복할 뿐 언제나 절망도 포기도 없다.
산악인은 대자연에 동화되어야 한다. 아무런 속임도 꾸밈도 없이 다만 자유와 평화 사랑의 참 세계를 향한 행진이 있을 따름이다." (노산 이은상)
이어 전대 산악회장인 35회 차승환 회장에 대해 감사장을 전달하고, 고문인 5회 임공빈 초대회장의 격려사와 총동창회장인 27회 심상인 회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시산제 본행사로 분향, 강신, 참신, 초헌이 있은 후, 31회 김기운의 축문 낭독의 독촉이 있었다.
그리고, 기수 순서대로 단정하고 엄숙한 자세로 헌작이 이루어졌다.
산을 찾는 산악인들의 가장 큰 바램은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도 사고 없는 산행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모든 산악회는 규모가 크건 작건 새해를 맞으면 그 한 해의 무사고 산행을 기원하는 시산제를 지낸다.
1971년 서울연맹의 ‘설제’ 로부터 시작되었으니 역사가 50년이 넘었다.
절을 할 때마다 하얀 봉투는 점점 늘어나, 어느 순간 복돼지의 입은 더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꽉 차서 바닥에 흘렸다.
산신령께 무사고 산행이 되도록 잘 말씀드려 달라는 의미로 중재자인 돼지의 주둥이에 돈을 꽂는 것이니, 오늘은 돼지가 입이 찢어지도록 잘 먹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올 해의 산행이 행복해지니까.
공식행사가 끝나고 준비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친목을 다지고 서로서로 올해의 무사산행을 빌었다.
동기들과 2차를 하느라 동네 커피점, 통닭집과 술집들은 선후배들로 넘쳐났다.
25회도 간신히 자리를 잡고, 삶은 꼬막을 안주로 술 한 잔 더하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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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시산제를 상기하면서 잘
읽었습니다
선배님, 고맙습니다.
항상 좋은 후기와 멋진 사진.
참석 못한 사람들도 참석한 듯. 느낌적인 느낌입니다.
항상 느끼지만 선배님, 기억력과 필력
대단하십니다!! 25회 멋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