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가 수액처럼 흐르던 날
밤늦게 운동을 마치고
방문을 열어 보았다
작은 소쿠리에 고구마가 담겨 있었다
오늘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고구마와는 사뭇 다르게 보였다
모세혈관처럼 갈라진 실금 주름
움푹 패 얽은 상처 자국
낫같이 휘어져 오그라진 등줄기
허물어진 모래성처럼 내려앉은 힘없는 어깨
초가 되어가는 감같이 허물 거리는 속살
마른 껍질 위엔 얼룩져 있는 저승 반점
어린 시절 보았던
홍안의 자색고구마는
생기 있고 윤이 났지만
검은빛 핏기 없는 창백한 고구마는
붉은빛이 바래 있었다
배고프고 잔병 많던 어린 시절
자식을 위해 남겨둔
붉은 보랏빛 머금은
자색고구마는 이젠 볼 수 없었다
줄기의 탯줄로 양수가 수액처럼 흐르던 날,
정성과 따사로움을 잃지 않은
온기만이
눈망울과 뺨을 타고 내려와
내 가슴에 한없이 잠들어 있었다
-시집, 『먼 산 』 (교보문고 퍼플,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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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식 시인
1968년 경북 문경에서 출생
서울교대 초등수학교육 및 동 대학원 졸업
2020년 월간《우리詩》신인상으로 등단
제 20회 공무원문예대전 은상 외 공모전 4회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