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밤
유미숙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오월의 햇살이 달디달디.
눈길 닿는 곳마다 진초록 잎사귀가 철철 넘치며 마음 주는
곳마다 젊음이 우거진 세상이다.
얇디얇은 푸른 옷감으로 옷을 차려 입은 벚나무 가지에서
한 낮을 보내는 참새들의 수다가 희망가로 들린다.
새 소리에 장단을 맞추듯 화장을 하고 이 옷 저 옷으로
여러번 탈바꿈하는 마음이 설레인다.
거울 앞에 서서 내 모습을 비추어 보았지만 새의 날개처럼
가볍지가 않다. 아마도 기다림에 들뜬 가슴이 자꾸만 새가슴
같이 작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벚나무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하자 참새들은 저녁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 날갯짓을 하고 있다.
저녁 6시, 학교 정문에 들어서니 ‘충북 대학교 사회 교육원
원우회 축제의 밤'이라 쓰인 프랑카드의 큰 글씨가 반짝거린다
먼저 오신 우리 반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기다림에 부풀었던
낮동안의 작아진 가슴을 잔디밭에 편히 풀어놓을 수가
있었다.
깔깔하게 엉덩이에 닿는 잔디가 내 속을 아는지 까르르
웃는 듯 하다. 하얀 프랑카드가 축제속의 주인공들을
환영하며 구역 아래 원우회장님과 간부님들의 정성으로
마련된 저녁 식사를 맛있게 먹으면서, 한잔의 부딪힘으로
300여명이 넘는 우리들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사회 교육원 원장님과 과목별 강사와 지도 교수님 그리고
축제 준비에 수고하신 위원님을 사회자가 차례차례 소개를
한다.
쨔아안~ 하고 반기는 음악 소리보다 더 큰 박수로 모두가
고마움을 나타내었다. 야외 무대장치에서 발하는 조명빛
밝은 곳으로 모여 앉은 원생들은 교양 과정과 전문 교육,
문학과 예술 그리고 스포츠와 건강 과정을 공부하는
사람들이다. 각기 다른 배움의 과정을 선택했지만 이렇게
한자리에 모였다.
사회자의 순서에 따라 노래를 하고, 다같이 합창을 하면서
처음 만난 사람과도 마주 보며 웃는 사람들은 얽히고 설켜진
잔디 뿌리의 인연인 듯 하다.
스포츠 댄싱을 배우는 학생의 화려한 무희를 볼 때에는
밤하늘의 별빛을 무색하게 하는 빛나는 눈빛을 보낸다.
수필 창작반을 소개하는 김정자님의 수필 낭독에 우리 반
학생들은 자기 소개가 나올 때면 무대 위에서 인사를 했다.
아랫배에 을 주면서 훅훅 분 풍선을 하늘로 날려보내는
게임에서는 모두가 동심을 돌아간 소년 소녀의 모습 같았다.
이순을 바라보는 분이 아내를 위해 지은 시낭송을 청취할
때는 옆사람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집안에서 살림을 하는 가정주부들과 직장인 남자들로
이십대에서 고희가 넘은 사람들이 배우고자 사회교육원생이
되어 축제의 밤 주인공이 된 지금은, 어깨를 누르는 고단하고
힘겨운 짐은 먼 달나라로 모두 던져버리고 가벼운 날개를 단
새처럼 자유롭고 평화스러운 모습들이다.
고전 무용을 배우는 학생들이 한복을 입고 춤을 춘다.
손끝에서 얼굴 표정까지 배움의 열매가 맺어진 무희를
보면서, 중년의 아주머니를 생각한다면 늦가을 시골집 뒤뜰
구석에 알몸으로 나뒹구는 호박덩이의 모습이 연상되어지곤
했던 나의 상상이 부끄러워질 정도였다.
춤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는 원생 모두가
그러했나 보다.
사위가 짙어지고 밤이슬이 소리없이 내려와 몸을 눅눅하게
적실 때였다. 날개 접은 새들이 잠들어 있는 고요한 정적을
깨듯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음악 소리에 맞추어 너나 할 것
없이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춘다. 나이의 허리를 분질러
놓은 젊은이가 되고 땀방울을 닦아주는 살닿는 정이
쏟아진다.
사회자의 유머에 폭소를 터뜨리고 박수를 치는 가슴
가슴들이 오월의 신록인양 무성해져 간다.
원우회 회장님의 춤은 흥에 홍을 더해 주고 있었다.
사회자가 마이웨이 노래를 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모두의 고개가 음을 따라 흔들릴 때 나는 나의
지나간 세월이 떠오른다.
십 오 년전 가정학을 선택하여 대학에 입학한 나는 하얀
벚꽃이 피어 있는 교정을 걸으며 내 젊음도 벚꽃 마냥 환하게
피우고 싶었다. 그래서 교보 편집일을 하면서 내안의 정열을
쏟는 학생이 되어 갔다.
오월 축제의 날, 축제 속의 주인공으로 처음 초대받은
가슴이 설레이던 나는 선배가 권하는 술을 마시며 긴장감을
풀어놓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속이 까맣게 타는 고통을
느꼈다.
운동장 한가운데 선 모닥불은 노래하고 춤을 추는
젊은이들을 위하여 자신을 활활 태워 주고 있었다.
불길을 피하여 나무에 몸을 기대고 있던 나는 빨간 열매를
보았다. 추운 겨울의 긴 터널을 강인하게 지나와 마침내
눈부신 꽃송이들을 틔운 벚나무가 꽃이 피었다 진자리마다
소리 없는 향기와 색깔로 자신의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말없는 나무 같이 나도 나만의 열매를 맺겠다며 다짐하던
축제는 모닥불이 꺼져감과 함께 끝이 났다.
다음해 학업을 중단하고 나는 결혼을 하여 두 아이의
얼마가 되었고, 어느새 중년의 여인이 되었다.
학창시절 꿈꾸던 나만의 열매를 맺기 위한 노력을 다
펼치지도 못한 채 이제까지 가슴에만 묻고서 살았다.
텅 빈 마음의 공백을 메우듯 일기를 쓰면서 내 안의 불씨를
키워 가고 있었던 걸까.
꽃이 피고 진자리에 빨간 열매가 맺혀 있음을 볼 때마다
그리움이 맴돌아 한달음 달려온 시간을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해일처럼 일곤 했다.
벚꽃 피던 봄날 수필을 배우고자 발을 내딛었다.
교수님의 가르침을 받을 때의 나는 한 남자의 아내도 두
아이의 엄마도 아닌 학생으로써 공부를 한다.
그리고 오늘 오래 전 학생의 모습과 같은 주인공으로
축제의 밤에 초대되어 있다.
깜짝 놀랄 만큼의 큰 박수 소리가 나고 사회자는 답례의
인사를 한다.
지칠 줄 모르는 기계음의 소리가 하얀 상자에서 미리 받은
행운권 번호를 하나씩 뽑는데 남은 흥을 추켜주고 있다.
당첨이 되면 원생 모두 행운아가 된 듯했다.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 입상자에게 받음과 나눔으로 두배의
기쁨을 던지며 한마음이 되어 자정 가까운 시간까지 축제의
밤 주인공이 되었다.
원장님의 폐회 인사로 축제는 막을 내리고, 서로가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누는 주인공들이 푸른 젊음의 영혼을 되찾은
얼굴빛으로 이 밤을 떠나간다.
단 햇살에 붉어진 열매의 향기를 느낀다.
다시 도전한 배움의 길이 끝없는 수평선일지라도 참새의
부지런함으로 날아간다면 멀지 않은 날 나만의 색깔로 물이
든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만 같은 희망이 생긴다.
하늘에 남아 있는 별빛이 내 가슴속으로 들어오는 축제의
밤이다.
98. 5. 20
첫댓글 주인공들이 푸른 젊음의 영혼을 되찾은
얼굴빛으로 이 밤을 떠나간다.
단 햇살에 붉어진 열매의 향기를 느낀다.
다시 도전한 배움의 길이 끝없는 수평선일지라도 참새의
부지런함으로 날아간다면 멀지 않은 날 나만의 색깔로 물이
든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만 같은 희망이 생긴다.
다시 도전한 배움의 길이 끝없는 수평선일지라도 참새의
부지런함으로 날아간다면 멀지 않은 날 나만의 색깔로 물이
든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만 같은 희망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