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과학 놀이터 성장기 : 국립부산과학관 “살아 있네”
허남영 국립부산과학관 전시교육본부장
한 연구에 따르면, 프랑스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진로 선택의 계기를 물었더니 ‘과학관 경험’이 80%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대덕연구단지 과학자들에게 조사해보면 10%가 안 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 과학관은 1990년 개관한 국립중앙과학관만 오래됐고, 국립과천과학관 2008년, 국립대구과학관과 국립광주과학관 2013년, 국립부산과학관이 2015년에 개관해서 9~16년째다. 그러니 지금 30대 중후반의 과학자들은 학창 시절에 가까이 자주 가볼 과학관이 없었다.
이후 정부는 과학관 육성계획을 수립해 전국 곳곳에 과학관 건립을 추진했고, 한국과학관협회에 등록된 국·공·사립 과학관은 155개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면 문제가 해결되었을까? 아니다. 과학관 역사가 짧으면 과학관의 역할인 전시와 교육 전문성이 축적될 시간이 짧다. 국립부산과학관의 경우 2015년 개관 당시 25명이 입사했는데, 현재 본부장인 필자의 경력도 10년, 당시 입사한 대졸 직원도 경력 10년이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과학관 역사가 100년이 넘어가면 30~40년 근무한 전시기획 베테랑이 신참 직원에게 노하우를 전수해줄 수 있지만, 우리는 아직 시간과 경험을 통해 축적되는 전문성을 쌓기에 부족하다. 앞으로 더 커나가야 하겠지만, 지금까지 개최한 특별전시를 통해 국립부산과학관(이하 부산과학관)의 좌충우돌 성장기를 다뤄본다.
등잔 밑이 어두웠던 전시물 제작 노하우
부산과학관은 미국 익스플로라토리움과 호주 퀘스타콘을 롤모델로 한다. 오래된 과학박물관은 역사적 가치가 높은 유물을 보유하고 전시하는 데 반해, 두 기관은 비교적 역사가 짧고(익스플로라토리움은 영화 〈오펜하이머〉의 주인공 로버트의 동생인 프랭크 오펜하이머가 1969년 설립했고, 퀘스타콘은 1975년 익스플로라토리움을 모방해서 만듦), 과학원리를 체험할 수 있도록 전시물을 제작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2016년 첫 특별전으로서 퀘스타콘의 이동형 전시물을 가져와 과학체험전 전시를 열었다. 전시를 여는 것도 중요했지만 과학원리를 어떻게 전시물로 표현하는지, 안전하고 재미있게 체험하도록 어떤 조치들을 취했는지 자세히 살폈다. 퀘스타콘의 이동형 전시물들은 먼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 가볍고 튼튼하게 만들어졌는데, 특히 높은 내구성이 필요한 체험교구 표면에 어떤 방법을 썼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나중에 퀘스타콘과 교류가 잦아지고 전시개발자와 많이 친해졌을 때 비로소 듣게 되었는데, 선박용 도료를 칠해 내구성을 높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그 작업은, 한국이 제일 잘하는데! 도시 이름이 뭐더라… 푸산?”이라고 했다. 이런! 바로 옆에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두고도 몰라서 못 쓰는 격이었다.
과학관 전시라고 과학만 할 필요 있나
첫 전시는 외국 과학관에서 가져왔지만, 두 번째 전시는 부족하더라도 자체 전시를 기획하고 전시물을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준비된 전시가 ‘영화 더하기 과학’이다. 부산에서 국제영화제를 개최하기도 하고, 영화 속 과학원리를 체험으로 구성하기에도 좋았다. 전시장 가운데에 오래된 스포츠카를 놓고 뒷면에 스크린을 설치한 다음, 과학관 연구원들이 자동차 뒤쪽으로 카메라를 달고 송정해수욕장 해안가를 달리면서 촬영한 영상을 재생했다. 자동차 앞에서 자동차와 배경을 함께 찍으면 어색하긴 해도 차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리는 장면이 만들어진다. 단순하고 당연한 결과라 생각되지만, 직접 이런 과정을 수행하면서 관람객이 좋아하는 전시기획 방향과 전시물 제작 방법들을 하나씩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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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메트릭스에서 사용 된 타임슬라이스 기법을 체험해 보는 아버지와 딸 ⓒ국립부산과학관 |
‘과학관은 과학전시’라고만 생각하다가 전시 주제를 확대하는 계기가 된 것이 ‘몽골 대초원의 동물특별전’과 ‘RGB 빛의 축제’다. 몽골과 각별한 인연이 있던 중앙과학관이 기획을 해서 부산과학관에서도 순회 전시를 했다. 과학원리를 접목하기는 어려웠으나 박제된 동물 자체가 관람객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부산과학관은 바닷가에 가까워 습하다. 박제가 상할까 걱정도 되고, 냄새도 심해서 공기 순환 장치를 수시로 가동했다.
RGB 빛의 축제는 미디어아트인데, 기획 단계에서 과학과 거리가 있는 전시를 해도 될까 하는 고민이 무색하도록 역대 최고의 흥행을 거두었다. 두 전시는 전시에서 과학을 조금 덜어내고 다른 관람 흥미 요소를 추가하는 것이 가능함을 알게 된 계기였다.
한편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는 예상보다 길었고, 사람들은 점점 원격과 온라인에 익숙해졌다. 관람객을 다시 과학관으로 오게 할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고, 그렇게 기획된 전시가 ‘헬로 로봇’과 ‘다이노소어’다. 아이들에게 로봇과 공룡은 흥행 보증수표인데, 이 둘을 연속으로 투입한 것은 당시 시급성을 나타낸다. 코로나도 점점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과학 놀이터는 어떤 곳인가?
중앙과학관과 대구·광주과학관은 옆에 과학기술원이 있다. 그래서 과학관 주변 공기도 왠지 과학을 공부해야 할 것 같다. 반면, 부산과학관은 기장에 있는 오시리아관광단지 안에 있어 가볍게 놀러 가는 느낌이다. 과학관들은 대부분 관람객들이 쉽게 과학을 경험할 수 있는 ‘과학 놀이터’를 표방하고 있어서, 과학관이 관광단지에 있는 것은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과학관 바로 앞에 ○○월드가 문을 열기 전까진 말이다.
놀이터 앞에 최강 놀이터가 들어왔으니 어떻게 할 것인가? 과학관이 놀이터를 표방한다고 해서 재미만을 추구할 수는 없다. 과학관을 찾는 궁극적인 이유는 과학학습에 도움이 되는 경험지식을 얻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어쩌다 한번 해보는 과학체험으로 과학학습에 도움이 되긴 어렵다. 그래서 주목한 것이 놀이였다. 놀이는 경쟁, 우연, 모의, 스릴의 네 요소를 가지며, 인간의 자발적인 행동을 일으킨다. 과학원리를 나타내는 전시물에 어떻게 놀이 요소를 접목할 것인가? 과학관 전시물이 오락실의 격투 게임처럼 승패를 나눠 경쟁을 유도하는가? 마치 과학자나 의사가 된 것처럼 모의체험을 하게 하는가? 그것은 모두 놀이의 요소를 접목한 전시물이다. 이렇게 과학관 연구원들이 초기부터 가져온 문제의식을 담아 기획한 ‘놀이의 탐구’ 특별전은 관람객과 과학전시 전문가들의 호평 속에 다른 과학관으로 이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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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부산과학관이 진행한 특별전 포스터 ⓒ국립부산과학관 |
앞으로 과학관이 추구해야 할 방향
당장은 과학관으로서 현재 사회가 요구하는 기능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학교 밖 교육기관으로서 단체관람과 교육을 운영하고, 과학전시를 안전하고 재미있게 기획, 제작, 운영해야 한다. 그러면서 추가로 과학관이 지향할 바는 다음과 같다.
먼저 목표 관람객을 다양화하는 것이다. 과학관 방문객은 성인 51%, 청소년 49%이다. 그런데 성인은 관람객이라기보다는 대부분 인솔자로서 방문한다. 성인 관람객을 확대하는 방안으로서 성인 전용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다. 익스플로라토리움은 매주 목요일 저녁 ‘After Dark’라는 성인만 입장할 수 있는 야간 개장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주제도 성인에 맞춰 건강, 식품, 운동 등 다양하다. 부산과학관도 2017년부터 성인 전용 프로그램(앳나잇, science@NIGHT)을 운영하고 있으나, 연 1~4회로 제한적이다. 성인을 관람객으로 만드는 다른 방법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도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는 전시물을 만드는 것이다. 익스플로라토리움 야간 개장에 참여했을 때, 손에 와인과 맥주를 들고 아인슈타인의 광전효과 전시물 앞에 앉아 30분간 전시물에 관해 이야기하던 커플을 잊을 수가 없다.
둘째, 현재 우리 과학관에는 과학자가 없다. 일본의 과학미래관(Miraikan)의 초대관장 모리 마모루는 일본인 최초의 우주인이었고, 21년부터 관장직을 이어받은 아사카와 치에코는 IBM 과학자 중 최고 영예라는 IBM펠로다. 몇몇 직원이 과학자인 것을 넘어 과학미래관에는 외부 프로젝트팀과 협업해 관내에서 첨단연구를 수행하며, 관람객들이 연구실을 견학하고 연구자와 소통하는 기회를 정기적으로 갖는다. 또 정기적으로 저녁 시간에 첨단연구 성과를 성인 관람객을 대상으로 공유하는 세미나도 개최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관람객은 실제 과학연구를 접하고 과학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마지막으로, 과학관이 엄두도 못 내고 있지만 해야 하는 것 중 하나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과학적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과학관이 제공하는 정보를 뉴스나 책보다 신뢰한다는 놀라운 조사 결과가 있다. 과학관에서 과학토론을 개최하면 특정 성향의 단체나 언론사가 개최하는 것보다 시민들에게 알리는 효과가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부산과학관이 있는 기장군에는 해수담수화 시설이 있는데, 근처에 고리 원자력발전소가 있어서 사람들이 그 물을 마시기를 꺼린다. 과학관에서 이에 대한 과학적 토론을 개최하고 시민들의 궁금증을 듣고 해소하면 어떨까? 이런 토론을 진행하는 것도 어렵겠지만, 현재로선 이런 토론을 개최했을 때 (정치적이 아닌) 과학적인 것이라고 인식되는 것이 더 어려운 현실이다. 우리가 과학기술문화를 확산하고 사회의 과학적 소양을 신장시키는 데 더 노력해야 할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