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은 바디감을 “주로 와인이나 위스키, 커피 따위를 감별할 때 입 안에서 느껴지는 느낌. 또는 입안에서의 느낌이 무겁거나 묵직한 상태”로 정의한다. 난 외인을 즐겨 마시지는 않는다. 프랑스 파리에 사는 딸이 한국에 올 때마다 와인과 커피를 사 온다. 와인보단 커피에 손이 더 간다. 물론 커피를 좋아하지만, 브랜드를 선택적으로 선호할 정도로 전문적인 식견이 없다. 그러니 ‘바디감’이란 용어에 익숙하지 않다. 하기야 요즘은 이 어휘가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된다. 바디감이 좋다는 건 식감이 무겁다는 의미로 이해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난 바디감이 무거운 걸 좋아한다. 커피도 진한 게 좋다. 추어탕을 즐기지는 않지만, 남원식 진한 국물의 추어탕은 좋아한다. 맑은 추어탕을 좋아하는 사람은 남원식 추어탕은 고유의 맛이 없다고들 한다. 내가 자주 가는 대구 남구 봉덕시장 삼정식당이란 곳이 있다. 대를 이어서 하는 돼지국밥집이다. 이 집 국물은 진하다. 특이하게 일반 양념과 된장 장념이 섞여서 나온다. 그러니 국물이 진할 수밖에 없다. 고기는 주로 머릿고기로 식감은 가볍다. 살코기는 거의 없다. 살코기보단 연한 머릿고기를 사용하는 게 이 집이다. 이 집 맞은편 청도식당은 젊은 층이 많아 어떨 땐 줄을 서기도 한다. 이 집 국물은 라이트하다. 맑고 단백한 국물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안성맞춤이다. 한 번씩 가는 대구 달서구 용산지하도 옆 고령식당은 국물은 맑고 단백한데 비해 살코기가 많아서 고기를 남긴다. 식당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대구엔 50년을 훌쩍 넘긴 오랜 해장국 집이 있다. 소고기 국밥이다. 예전엔 세 집이 모여 있었는데, 그중 하나인 한일 따로는 없어지고, 지금은 국일과 교동 따로 두 집만 남아 있다. 따로는 대구에만 있는 식당 용어이다. 국과 밥이 따로 나온다고 해서 따로다. 돼지국밥집에서는 따로라고 해야 국과 밥이 따로 나오지만, 국일과 교동 따로는 상호가 그렇듯 항상 따로 나온다. 두 집 다 24시 영업이다. 술꾼들에겐 새벽 해장하기 좋은 집이다.
국일따로는 ‘since1946’라 크게 써놓았다. 국이 맑고 단백하다. 바디감이 가볍다. 이에 비해 교동은 간판에 써 붙여 놓은 대로 맛이 깊다. 진한 국물에 잘 익은 파김치가 나온다. 그리고 간 생마늘을 산봉우리처럼 쌓아 국에 얹어 준다. 선지에 대한 호불호가 있어 선지는 별도로 나온다. 국일의 경우는 선지 없이 달라고 하지 않을 땐 선지를 국에 같이 담아 준다. 두 식당의 차이라면 차이다.
가벼운 바이올린도 좋지만 무거운 첼로도 좋다. ‘가볍다’는 말뜻은 그 자체에 있지 않다. 무슨 말인가? ‘무겁다’는 말과의 변별적 차이성에 의해 의미가 발생한다. 어떤 단어도 그 자체에 말뜻을 품고 있지 않다. 전혀 다른 단어와 만나 상관적 관계를 형성하면서 드러나는 차이에 의해 비로소 의미가 발생한다. 남/여, 삶/죽음, 앞/뒤, 위/아래, 낮/밤 등등. 의미는 두 단어 사이의 구조적 차이에서 발생하는 거로 설명하는 스위스 언어학자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1857~1913)의 구조주의다.
‘가볍다’는 단어가 음식이 아닌 다른 단어와 만나면 다른 의미가 발생한다. 예컨대 누군가를 성격이 가벼운 사람이라고 하면, 음식의 바디감과는 다른 의미다. 신체 일부와 관련해 사용될 때마다 의미는 다르다. 손이 가볍다, 입이 가볍다, 발이 가볍다 혹은 몸이 가볍다 등등. 한 단어는 하나의 동일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어느 단어와 만나는가에 따라 그때그때 이미지가 다르다. 아침 이슬이 해가 뜨는 순간 사라지듯이 그렇게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게 단어의 생명이다. 만약 그렇지 많다면 한 단어의 쓰임새의 한계가 뚜렷할 것이다.
난 한 번은 국물의 바디감이 라이트한 집으로, 다른 한 번은 헤비한 집으로 번갈아 간다. 그래야 가벼운 맛과 무거운 맛이 제대로 느껴질 수 있다. 입이 가벼운 친구가 있는가 하면, 무거운 친구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서로 다르면서 같은 좋은 우정을 유지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첫댓글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다
진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부드러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녹차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보이차를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고기를 더 좋아하는 사람 생선 회를 더 좋아하는 사람 나물 야채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듯이
빵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스파게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짜장면과 부침개를 더 찾는 사람도 있다
같은 산을 보더라도 한의사 식물학자 나무꾼 목수 화가나 건축가 부동산업자가
느끼는 것이 다르다
모두가 자기 마음이란 거울을 통해, 자기 안경을 통해, 자기의 관념 지식, 가치에 따라, 온몸이 가지고 있는 느낌과 수용여부에 따라서도 다르다
그러나 딱 잘라서 이것이 맞다 저것이 옳다고 할 수 없다
다만 굶주린 사람에겐 먹는 것만도 감사 감사할 일
없어 보았다면 조금이라도 있는 것에 고맙게 생각할 것이다.
있으면 으례 그려려니 하겠지
사과든 어떤 과일이든 어떤 나물이든 간에 천지의 은혜로 커온 것이기에
온 우주를 먹는 것이기에 축복받은 것
채소든 뭐든 추운 비바람도 이기고 더운 날씨에도 견디고 벌레가 있어도 묵묵히 성장하여
우리의 밥상에 올라온 그 정신 놀랍고 놀라운 일
나도 기억에 남는 곳이 몇 군데 있었지요
서로 다름이 있어야 세상은 더욱
아름답고 풍요로워지겠지요.
단일종의 군락의 꽃도 좋고,
여러가지 꽃들이 모여있는 꽃밭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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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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