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들어가보니
초등학교 이야기죠
담임선생님이 가정방문
꼭 하도록 교육청에서
박지만이 1971년 배문중학교1학년 다닐적였죠
박지만 담임선생님
그리고 당시 교무주임
은 청와대 가정방문차
육영수 여사를 만난게다
당시 교무주임 김영철
선생님이 나영재 사촌
매형였으니
당시 저는 원효로 도독촌
김계원 육군참모총장
(10.26청와대 비서실장)
2층집을 부친이 사서
살고있어 배문중을
잘알고있었죠
매형이야기를 듣노라니
당시 70년도 박지만도
가정방문을 해야옳다고
육여사께서 먼저 요청
학부모입장에 저의
매형과 담임선생님은
청와대 특급호텔주방장
요리로 마음껏 먹고
나가면서 촌지로
금일봉 당시30만원씩
받았다니
그돈은 당시 금반지1돈
2천원 한달하숙비4천원
그걸 요즘 금값환산
해보니 금150돈
×34만원 =5.100만원
와우!
암튼 당시 시세와
현재시세는 다르더라도
대동소이한건 유추해석들
하시소서
사실이니요
제이야긴 모두 경험글
이니 애독하시는 지방
회원들 독려도 많쵸
키티공주님
채령님도 댓글만 안달고
나영재글 다들 본다고
하더군요.
1971년 유명가수 출연료
나훈아3만원
배호3만원
남진3만원
이미자3만원
펄시스터즈3만원
현미2만원
김세레나2만원
문주란1만2천원
정훈희1만2천원 등등
사즐모 총회장님도
우리댄스카페 회원업소
또는 집을 방문한다고
하면 무지 재미있으리라
사료됩니다.
오늘엔님의 직장은
낙원 콜라텍이니
웃겨 디비진다요.
앙마님도 나도요
푸후하하
사실 북부고문 성철님
자택은 창동쪽 글구
의정부집 저는 방문을
하였드랬죠
후덕하게도 부산이나
대구 심지어 제주회원
그들모두 성철고문님
자택을 방문하였지
싶군요.
사실 나영재 회사가
짓는 대명항은
대곶을 지나 연립이죠
알게모르게 멕버드님
직장에는 엔카잘부른
바람돌님 퇴근길 자주
만난다고 이야길해서
알게되었죠
바람돌님 하고 나영재
서울엔카 회원들입죠
저도 일본노래70여곡
알고있고 카페에도
우수회원였으니요
바람돌님은 매번모임
참석 높은 수준의 임원
한달에 한번씩 매월
토요일오후12시
종각역11번창구70m
인천모임 충남모임
그때 바람돌님이
안보이거든 엔카모임
올인한다고 보면 오케
그냥 저냥 쓰는글도
남의 글 베껴온게 아닌
순수한 오리지널글
오늘도 좋은일들
많으시길요 ㅡ끝 ㅡ
사진)1971년 당시
청진동해장국120원
오늘 청진동해장국1만5천원
무려122배 올랐으니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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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지금 그렇게 주었다간
큰일 납니다
당시는 금일봉였다고
지금김영란법
지금 청와대 알기를
개코 같이 압니다
대통령 욕해도 안 잡아
가는 나라 대한민국
뿐입니다
많이들 좋아졌죠
예전같으면
남산정보부에
끌려가죠
1980년대 초 저가 병사로 군대 생활할 때...
(도서실 사병으로 근무하여 내무반 생활하지 않고
도서관에서 취침...ㅎ
보안부대 헌병부대 파견 병사들 모두 저를 엄청 부러워 했는디...)
박지만 생도가 4년생일 때
점호 끝나고 취침시간에 살짝 빠져 나와
도서관에 와서 놀고 가곤 했더랬죠...
와우!태릉에 근무했으니
특과병 였네요
당시 전방후방 모두 힘든시기
서울에서 근무는
고관대작 친인척
아니면 배치도 힘든시기였드랬죠
@나영재(온라인) .
그 중에서도 No.1 보직인 도서관 병사...~
저는 고관대작 친인척과는 상관 없었어요. ㅎ
훈련도 없고 점호도 없고 유격훈련 한번 받지 않고....ㅎ헤
M16 분해 결합을 잘 못해요.
"결합은 분해의 역순" 이라는 말만 기억나네요.
@스마트k 그럼 앞뒤군번이
높은빽이면 그냥저냥 저인망식으로
101보ㅡ103보에선 그런일 자주있거든요
내빽아닌
남의빽으로요
암튼 도서관에서
공부도 열공했으니
최고네요
기억력은 타의추종을 불하합니다요
그 시절의 것을 알고 계시니
제가 당시 대학다닐적
였으니 신탄진60원
청자100원
@나영재(온라인) 전 담배를 평생 입에 대지
않았기에 담배 이름 가격을
모르는 천연기념물이네요 ㅎ
@비수리(중앙고문) 당시 대신 출석대리
대답에 신탄진
한갑사주곤
명동으로 땡땡이
까는게 일상였드랬죠
@나영재(온라인) 담배 내기 노름도
많이 했잖아요 ㅎ
@비수리(중앙고문) 가치담배내기
맞아요
동전던지기로
한가치씩
따먹기요
@나영재(온라인) 담배 인심이 가장 후한
우리나라였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들도 사라지고
꽁초 주워서 피던 사람들도
이제 눈에 안 보이고
제비들도 돈 떨어지면 몰래
주워서 피웠는데
@비수리(중앙고문) 예전엔 담배인심 후했는데
요ㅡ즘 담배한대만
얻어피울려고하면
모두들 전 담배안해요 쯔쯔 쯔
@나영재(온라인) 카바레서 제비들이 사모님 형님 부르면서
담배가 떨어져서 그런데요
하면 담배값을 주곤 했었고
@비수리(중앙고문) 그당시는 제비들
세상였고 그들이
빤짝이 구두신고
특히 백구두도 인기였으니
마나님들 줄서
기둘렸드랬죠
@나영재(온라인) 사모님들이 제비를 키우며
누가 잘 키웠냐
서로 자랑질 하던 시절
@비수리(중앙고문) 당시는 여성들이
많았고
남자들 가족들
먹여살리기 위해
직장으로 일터로
매진할때였으니
맞습니다 ㅎ
대신
돈쓰고 노는
인생직장. 놀이터. ㅎ
그당시는
남자들이 댄스많이들
할여력과 시간이
흔치않고
여인들천국
저희집 아침 식탁에서 보는 일출입니다
저의집 방문 된거죠?
좋은곳에서
희망이 싹트
시길요
일부러 일출보러
안가도 매일이
부러워요
77년도 짜장면 한그릇
70원 받더니?
어느날 갑자기 200원으로 인상을~~~~~~
시내버스 40원 토큰으로
토큰이 40원 현금 동정과 같은 용도로 사용되기도.
와우!짜장값
대폭인상 였네요
동네 야단들 났겠군요
글을 볼수록 옛날 비사도
슬슬 알게되고
많은걸 알게되서
너무 나영재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하루 되세요
2월1일 알차게
보내시소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