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서울대 최고 학과는 누에를 길러 실크원단 만드는 잠사학과이다. 그다음이 대한중석ㆍ 석탄공사에 취업할 광산학과이다. 저의 이모부가 당시 서울대 광산학과 학과장 교수였죠 나중 조선대 자원공학과 교수로 정년퇴직요 (김 봉집 교수가 이모부) 경기고 서울고 경복고 용산고 소위 일류고교 1-10등안에든 성적이면 그곳으로 입학을 하였다. 1960년에는 서울대화학공학과 1964년은 서울대약학과 그후엔 서울공대 기계과 순으로 일류고교1위 -10위 상위권 학생들이 응시 의예과는 당시 서울공대 다음인11위 과이다. 지금은 의예과가 최고이고 최고점수야만 들어갈수가 있다. 2009년부터는 로스클25개 학과에서 매년1700명 변호사를 배출한다. 2000명 의과생 모집 한다고 정부와 대척점 지는건 제글에서 언급 자체가 불문으로요. 암튼 댄스계에도 1970년 고고클럽 무교동 산다 나이트 오리엔탈호텔 닐바나 로얄호텔나이트등 남대문옆 지금은 헐어버린 도쿄호텔 나이트였죠 1969년 고교3학년때 나이트출입 했으니 와우 ㅡ대다나다 서대문에서 고교 대학을 다녔으니(법대) 새벽4시까지 춤들추고 명동 사장실 다방에서 모닝커피(계란)등으로 대학 시절보낸 그때가 그립다. 장발단속 그리고 경찰서 마다 풍속계에서 형사들이 나이트새벽4시 까지 못하게 할즈음 인천올림프스 관광나이트 원정을 다니곤 하였다. 인천올림프스만 새벽4시 까지 영업을 하였으니요. 1980년 전두환정권때 통금해제후 나이트크럽은 전성시대지 싶었죠 삼정나이트 남서울나이트 힐튼호텔 조선호텔 소공동 롯데비스트로 나이트는 장안의 최고급 워커힐호텔은 가야금식당 유명했죠 불란서미녀들 깡깡댄스 안심스테이크 당시 1인78000원였죠 퍼시픽호텔 좌측옆길 외인구락부는 정재계VVIP들 왈츠등 댄스를 하는 최고급였고 그밑에 예전 이주일 나오는 홀리데인서울 대표가 제절친 나수팔 리버사이드 나이트와 명동세종호텔 나이트도 그친구가 하였죠 요정은 당시 대하ㆍ 오진암 ㆍ삼청각이 최고였고요 카바레에는 "황궁" "타워" "청록"등 유명한 밴드및 가오급 아다마가수들 진출기회가 1일200만원 나훈아 이미자 남진 조미미 그들은 당시 1주일벌면 아파트한채를 버누나 을지로4가 야전궁카바레 그곳에서 남들 춤들출때 제가 중국노래 원어로 밴드에 맞춰 불렀으니요 웃기는짬뽕 맞죠. 하기사 제호적에 올린 와이프 아들이 검찰에서 높은자리에 있으니 불타는 짬뽕 ㅡ나 영재임 1981년 당시 요정에서 일류영화배우들을 초청 나영재 왼쪽엔 당시 유명배우 유지인 오른쪽은 최선자 제앞에는 서승현배우가 식사와 최고급술을 물론 제가 한턱쏜게죠 대다나다 입니다. 사실이니 괜찮아요. 상봉동 한국관나이트 그곳에서 나영재는 예쁜 여성과 지루박을 추게되니 웨이터가 급히 달려와 사장님! 이곳에선 디스코와 부르스만요. 청량리 시대 무도장 제일무도장 입장당시 야메로 무도장을 열고 한 업소는 허가낸업소 신고로 파출소 순경들 들이닥쳐 아녀자들 사진찍고 도망가고 그게1999년-2000년 까지 그렇게 되었지요. 지금은 댄스스포츠가 대세였지만 호텔 나이트클럽이나 카바레에선 자이브 차차차를 추노라면 웨이터가 급제동을 하죠 오늘날 사즐모카페엔 기라성 같은 선남선녀들 열공댄스로 매주 파티나 모임에서 활약을 하니 얼마나 수고들 하시는지 감잡았다 ㅡ오버 국민의료보험에선 댄스인께 늘 고마움 표해야 할듯요. (앙마님 이슬님께요) 매일 운동으로 의료비 과다지출 방지에 이바지 하니 그공이 엄청나다 이겝니다. 너무긴 글 애독하여 감사드리며 오늘은ㅡ 끝 3월에 저를 뵈는분들 저로 인하여 복많이 받으실겝니다. 제가 그리하게 할겝니다 2024년2월22일(목) 나 영재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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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때만 해도 이과가 인기학과 였네요.
나라의 앞날을 염려하는 분들은
최고 인재들이 의대로만 몰리는 지금의 세태를
걱정합니다.
느닷없이 의대 정원을 2천명이나 늘리겠다니
의료계는 난리고~
젊은시절의 화려한 명성 그대로
여전히 장안의 택들을 휩쓸고 계시니
나영재님 화이팅 입니다.
잠사학과와
광산학과 당시
최고점수야만
들어갔으니요
오늘 눈이 제법 많이 오네요
건강하시소서
상봉동 한국관 나이트
그 자리에 양지카바레가 있어서
서울 사모님들이 많이 애용하였고
저도 단골이였네요. ㅎ
역시 비수리님
제일 노련한
구수한 경험글이
다양하시겠다요
@나영재(온라인) 양지카바레하고
극장이 붙어 있어서
낮에는 영화를 보고
밤에는 카바레로
거기서 망우리 고개를 넘으면 교문리에
카바레들이 주르륵
@비수리(중앙고문) 교문리 무도장
한번 가보았네요
그당시 거의 불법영업
나이트, 캬바레 시절이 그래도
좋았다는? ㅎㅎㅎ
그니깐요
그당시 잘들
놀러 다녔죠
그당시 캬바레 모두
조명이 어두워서
서로 통하면 모텔
갈 필요가 없어묘
역사도 거기서 이루어
졌어요 ㅋ
좋았든 시대 였어요
낮에 웨이트가 청소하면 여자
팬티가 즐비 했다고
합니다
잠시나마 추억
먹고 즐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좋은글
작성에 수고하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카바레 조명없는
그곳은 엄청 흥분하는 여인들
소리에 이곳 저곳
신음소리들 ㅎㅎㅎ
@나영재(온라인) 언제나 생동감 있고
멋진글
너무
고맙습니다
@나영재(온라인) 인생 참깐 입니다
대구에 전 경4방
방장님도 돌아 가셨어요 살아 있을때
인생 입니다
@푸른솔향기( 포항 자문 ) 카바레
구석진 자리 없으면
매상이 오르지 않았데요
@푸른솔향기( 포항 자문 ) 덕분에 기분이
좋아지네요
ㄱㅅ
나영재님께서는 금수저 출신이시네요.ㅎㅎ
항시 건강하셔서 댄스도 오래오래 하시고
여기에 재밋는 글도 많이많이 남겨 주세요^^
하이~
요즘 제가 너무 바쁘네요.ㅎ
오랜만이네요
늘 건승하시고
좋은일 많기를요
@에디(기독교,방장) 바빠도 그렇지...
엥...ㅠ
ㅎㅎ
가는 세월이 아까운 분입니다.
어짜던지
오래오래 건강하셔야 해요.
오늘도 수고하세요
중앙부회장님
대구모임 곧
내려갑니다
계속 좋은일 많으시길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얼마전 지금의 무학자리
나이트 갔었는데
사교춤 못하게 하더라구요.ㅎ
무학성은 성인디스코와
부르스뿐
고3때부터 유명나이트 클럽을 ㅎ~~~
그당시부터
늘 고고장에
다녔으니요
잘계시죠
장안을 휘젓고 사셨네예 ㅎ
명절 잘쉬셨나요
늘 좋은일만
있으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