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에 대한 걱정으로 머릿속이 가득 찬 바람에 엘은 주변의 위화감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정령왕의 감정에 동조하여 아크아돈의 모든 정령들이 동요하며 요동치고 있다는 사실을……. 하급정령들, 중급정령들, 상급정령들 할 것 없이 그들은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나 다름없는 정령왕의 기쁨과 혼란함의 감정이 어지러이 흘러 들어오는 것에 의해 평소와 다른 상태라는 것을……. 정령계에 자기 영역에 있던 엘퀴네스와 미네르바도, 유희를 나가있던 트로웰과 이프리트도, 갑작스럽게 흘러들어오는 10년 전 기억에 기쁨과 동시에 혼란함을 겪고 있었다. 벌꿀이 흘러내릴 것 같은 허니 블론드 머리와 진한 초록색 눈동자를 가지며 항상 웃고다니던 인간의 기억이 그들에게로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물의 영역.
엘퀴네스는 그에게 갑자기 흘러들어오기 시작하는 기억을 느끼며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자신이 어떻게 이 아이를 잊고 있었던 것인지…!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좋아해주고 사랑해 주었던 엘. 자신의 계약자이자 아들의 존재인 그를…. 어째서 엘이 떠난 지 10년 만에 이 기억이 돌아온 것인지는 모르겠다. 분명 10년 전 그 당시 뭔가 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긴 했다. 뭔가 잊어버렸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며 그에게 가장 소중하다고 느끼는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허전한 느낌에 자신이 이상해진것 같은 기분도 들었었다. 엘퀴네스는 헛웃음이 나왔다. 자신에게 처음 다가온 소중한 인연을 잊어버렸다는 사실에 엘퀴네스는 기분이 상당히 나빠졌다. 하지만 지금은 엘에 대한, 제 아들에 대한 기억이 있다. 찾아보면 분명히 그의 아들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계약의 끈이 어쩌다가 끊어졌는지, 그가 어째서 그동안 엘을 잊어버렸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다시 엘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엘퀴네스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풀어지게 만들었다.
웃으면서 아버지를 외치며 그에게 달려오던 아들의 모습이 계속 머릿속을 스쳐가고 있었다. 엘퀴네스, 그 스스로도 모르고 있었지만 그의 입가에는 잔잔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자신의 아들을 생각하는 아버지다운 웃음이…. 그 웃음은 너무나도 자상해보였다. 그의 기분에 동조해 나이아스들은 즐거움을 느끼며 엘퀴네스의 주변을 맴돌았다. 운디네와 시큐엘에게도 자신의 아버지인 엘퀴네스로부터의 기쁜 감정이 전해지자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크아돈에 있는 물들이 기쁨에 젖어 요동치고 있었다. 잔잔하며 부드러운 하지만 약간은 빠른 물의 흐름이 그의 기분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아들. 쯧. 계약의 끈이 끊어진 것 같으면 당장 다시 소환할 생각을 해야지. 아버지한테 반항하는 거냐?"
바람의 영역.
미네르바 또한 엘에 대한 기억이 머릿속에 조금씩 조금씩 들어오고 있었다. 직접적으로 만나보진 않았지만 엘이 자신으로 인해 인간 말살을 계획한 트로웰을 막아준 인간이라는 사실 때문인지 그녀 또한 10년 전 순간적으로 뭔가 허전해지는 듯한 기분이 남았었었다. 트로웰과 화해하고 나서 2차 봉인이 마저 풀리기 전 해주었던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자신을 막아준 사람은 엘이라면서 웃던 트로웰, 그리고 얼핏 펠리온에 의해 폭주를 시작하기 전 괜찮냐고 물어오던 미성의 목소리가. 2차 폭주가 진행되기 전 안된다며 외치던 그 목소리가 떠오르고 있었다.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는 아이. 어둠의 군주라고 알려진 땅의 정령왕의 마음을 달래준 고마운 아이. 봉인이 풀린 후 같이 만나보자고 트로웰과 이야기 했었는데 어느샌가 기억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자신의 기억이 왜 없어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잘하면 그 아이를 만나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해 미네르바는 약간의 기대감이 들었다.
실프, 슈리엘, 진이 약간은 들뜬 자신의 어머니인 미네르바의 감정에 즐겁게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아크아돈에서는 시원하면서 한편으론 부드러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아크아돈에 있는 바람들이 기대감에 젖어 춤추고 있었다. 상쾌하게 느껴지는 바람이 그녀의 기분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날 말려준 그 목소리는 엘, 너겠지?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글모어 마을.
아모르 용병단 소속인 붉은 머리와 눈을 가진 남자의 표정이 순간 놀란 듯 바뀌었다. 해가 져서 피렌체 여관에 쉬러 들어온 동료들을 뒤로 하고 그는 빠른 걸음으로 밖에 나갔다. 자신의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나무에 기대어 앉은 그는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꼬맹이. 그 엘퀴네스의 계약자였던…. 항상 웃고 다녔지만 가끔씩 화나면 엘퀴네스와 판박이었던 그 인간아이. 대체 자신이 왜 그 아이에 대해서 잊고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엘퀴네스도, 트로웰도, 그 아이를 여태까지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어째서였을까. 그토록 즐거웠는데 어째서 그 기억을 잊고 있을 수 있었는지 자신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 그래. 맹목적으로 그 성격 더러운 엘퀴네스를 좋아하고 어둠의 군주인 트로웰을 친절하다고 말하던 독특한 인간아이였지. 그래서인지 흥미가 갔었다. 그래서 엘퀴네스와 계약을 끊고 자신과 계약하자고 말하기도 했었다. 단박에 거절당하긴 했지만…….
자신이 지금까지 보아온 그 어느 인간보다도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웃음을 흘리고 다니는, 허니블론드 머리와 초록색 눈동자를 가진. 계집아이같이 생겨서 많이 놀려먹었는데……. 그 때의 추억에 잠기며 이프리트의 입가에는 웃음이 머물렀다. 그는 알지 못했다. 자신이 그 인간아이를 떠올리며 빙긋 웃을 때 자신이 그렇게 상극처럼 여기는 엘퀴네스가 똑같이 엘을 떠올리며 웃고 있었다는 사실을. 카사, 샐러맨더, 이그니스가 자신의 아버지인 이프리트의 감정에 동조하며 따스한 기운을 내밀었다. 그 때 아크아돈에서는 약간은 시원한 바람과 함께 따스한 기운이 돌고 있었다. 불이 있는 곳에서는 불이 조금씩 조금씩 세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불의 색깔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한 불 색깔을 띄며 아름답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꼬맹아. 지금은 잘 지내고 있는 거냐? 만나길 기대하고 있지. 용병단에 있는 관계로 내쪽에서 찾아가긴 힘드니까 말이야."
리첸 마을.
까무잡잡한 다갈색 피부에 결 좋은 검은색 머리카락. 엘의 도움으로 마음을 정리하고 이제는 침착하고 다정한 빛을 띄는 황금색 눈동자를 가진 트로웰. 그는 자신에게로 흘러들어오는 기억에 가던 길을 멈추고 말았다. 왜인지 모르게 이곳에 오고 싶었다. 10년 전 무언가 순간 잊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면서 자신은 그 기억을 어떻게든 살려보기 위해 혜안도 여러번 열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하지만 그 때 그 허전함이 지금 들어오는 기억에 의해 채워지고 있었다! 말도 안된다. 확실히 엘이 마지막에 자신에게 비밀스럽게 알려준 말 덕분에 타차원에서 온 아이라는 것을 눈치챘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신이 어떻게 엘을 잊을 수 있었는지 믿을 수가 없었다. 인간 말살 계획을 세우며 분노하던 자신를 잠재운 인간이자 자신를 가족이라고 불러주었던 그 아이. 자신이 친절하다고 상냥하다고 말해준 그 아이를… 아무리 차원의 법칙이 적용된다 하더라도 자신만큼은 잊어서는 안되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지나온 경로가 전부 엘과 관련된 곳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트로웰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그 아이와 엘퀴네스와 함께 움직였던 경로 그대로 그는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 리첸은 자신이 엘 때문에 인간 말살을 꺼려할 것 같아 와이번에게 그를 죽이라고 명령했던 장소. 그는 순간 인상을 찡그렸다. 엘을 죽이려고 했던 자신이 떠올라서 심란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기억이 돌아왔다는 것은 아마 엘이 다시 이곳에 왔다는 것. 이번에는 무엇 때문에 이곳으로 다시 왔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순수히 그를 만날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하기로 했다. 트로웰은 아까부터 약간은 강하게 느껴지는 물의 기운의 방향이 맨 처음 그 아이와 만났던 장소에 있음을 깨달았다. 이번에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자신의 검술 제자이기도 한 그이니 당장은 위험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 이곳에 자신이 만들어 놓은 길드부터 처리해야 했다. 그리고선 그를 찾아가야지. 트로웰은 입가에 웃음을 띄며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내가 도와줄께. 엘. 네가 나를 멈춰주었으니… 그 빚은 갚겠어. 제자."
엘을 기억해낸 것은 정령왕들 뿐만이 아니었다. 엘을 특히 맘에 들어했고 자신이 보냈던 유희의 후계자로 삼고 싶었했던 블루 드래곤, 라미아스. 그 또한 엘에 대한 기억을 찾았다. 수면기에 들어가려 했던 그는 엘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자 수면기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그를 만나기 위해 폴리모프한 채로 자신의 레어를 나섰다. 세피온 공작의 양자로 받아들여진 자이자 나이아스의 계약자인 다비안 드 라스포, 아니 이젠 다비안 드 세피온인 그와 황궁에서 상급 정령사로 활약하고 있는 랑시 또한 자신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던 허니블론드 머리에 아름다운 초록색 눈동자를 가진 엘, 그를 떠올리고 감정의 동요를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그 아인 영혼의 보석은 찾은 건가? 10년 동안 대체 왜 그 아이를 잊고 있었는지를 모르겠단 말이야."
"엘. 네 덕분에 이젠 나이아스를 소환했다. 정령왕의 폭주 덕에도 너에 의해 목숨을 건졌는데 어째서 너를 잊고 있었는지 모르겠군. 너에게 고맙다는 인사만큼은 해야겠다. 엘, 기다려라."
"어째서… 난 엘 오빠를 잊고 있었던거지? 엘 오빠와 약속했는데.오빠와… 약속했는데. 꼭 오빠를 찾아가겠다고…!"
첫댓글 다음편엔!!! 모두를 볼 수 있는건가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D
설마요. 그렇게 빨리 작가가 만나게 할 리가 있나요!
꺄아아아아아아-!! 이렇게 콩닥콩닥 두근두근 세근세근 하는 소설이라니!! 기대하겠습니다!
두큰두큰하신가요? :) 앞으로도 같이 달려보아요
후후후 좋습니다 (씨~~익)
찾아가겠다고 했지만 바로 만날 수 없는 것은 작가의 농간입니다. 찡긋
당연하죠!쉽게 만나면 재미없으니까 크크크 10년 동안 변하지 않은 엘을 보고 어떻게 반응할 지 벌써부터 두근두근..!
과연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집중할 만큼 여유로운 상황에서 만날까요? 후훟후후
@EONHA 헐 이 떡밥뭐죠 후덜덜;;저의 심장을 이렇게까지 뛰게 만드시다니...!!!!
검사 완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