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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동설의 믿음
우리는 매일 아침이면 동쪽에서 해가 뜨고, 저녁이 되면 서쪽으로 해가 지는 것을 보며 살아가고 있다.
과연 태양이 지구의 둘레를 돌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는 것일까?
지금의 우리도 지구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태양이 지구의 둘레를 돌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지혜로운 왕으로 이름이 높은 이스라엘의 솔로몬도
"해는 떴다가 떴던 자리로 다시 돌아가기를 서두른다."
라고 했으며, 그리스 사람들은
"태양을 아폴로 신이 불 마차를 끌고 간다."
고 이야기 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모든 사람들은 태양이 움직이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그리고 그 당시 크리스토교를 믿는 모든 사람들도 태양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둘레를 돈다고 생각하였다.
만일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돈다고 생각을 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면 이단자 즉 나쁜 종교를 믿는 나쁜 사람으로 처리되어 처벌을 받도록 되어있었다.
또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지구는 움직이지 않고 태양과 별들이 지구의 둘레를 돈다고 하였다.
이러한 영향을 받아 먼 훗날까지 모든 사람들은 태양이 지구의 둘레를 돌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와같이 생각하는 것을 천동설이라 하였다. 천(天) 은 하늘 '천'자이고 동(動)은 움직일 '동'자 이다.
지구는 움직이지 않고 하늘이 움직인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다.
왜 기독교에서는 천동설을 주장하였나?
첫째날 : 하나님께서 빛과 어둠을 만들었다.
둘째날 : 푸른 하늘을 만들었다.
셋째날 : 하늘 아래 있는 물을 한 곳에 모아 육지와 바다를 만들었다.
그리고 땅에 는 온갖 풀과 과일나무가 돋아나게 하였다.
넷째날 : 하늘에 큰 빛인 태양과 별들도 만들었다.
다섯째날 : 온갖 고기과 날아 다니는 온갖 새들을 만들었다.
여섯째날 : 들짐승과 집짐승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길짐승을 만드셨다.
사람을 지어 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 내시고 땅 위의 모
든 것을 다스리게 하였다.
일곱째날 :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새로 지으시고 7일째는 쉬는 거룩한
날로 정하였다.
위 글은 성경 내용을 요약한 것으로 이미 지구가 있는 곳에, 우주를 만들고 생물과 사람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로 지구를 가장 으뜸이 되는 곳이라고 여겼다.
그러므로 중심이되는 지구는 제자리에 있고 모든 천체가 움직이는 사상인 천동설로 발전하였다.
특히 일곱째 날의 이야기로 인해 바로 일요일이면 모두가 일을 하지 않는 쉬는 날로 정해졌다.
천동설을 주장한 학자들
그리스의 학자들
'토레미,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기원전 2세기경 히파르코스, 140년경 프톨레마이오스
케플러의 발견
케플러
옛날에는 땅위의 물체를 가만히 놓아두면 그 자리에 정지하지 않고 밑으로 떨어지고, 하늘의 태양, 달, 별 등이 계속 움직이는 이유를 몰랐다.
그래서 어떤 물체라도 신이 계속 움직이게 하고 있으며, 하늘의 태양이나 달, 별들은 천사들이 밀어 준다고 생각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은 150년경의 그리스의 프톨레마이오스도 지구는 움직이지 않고 모든 하늘의 별이 움직인다고 하는 천동설을 주장했으나, 아르스타르코스라는 사람은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움직이고 있다는 지동설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그 시대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지구는 움직이지 않고 하늘이 움직이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한 때 케플러라는 과학자가 지동설이 맞다고 주장하였다.
케플러는 1473년 군인의 아들로 태어나 4세 때에 천연두를 앓아 얼굴이 못생겼고, 몸이 허약하고 가정이 가난하였지만, 이것을 이겨내고 유명한 천문학자가 되었다.
케플러는 접촉한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힘을 접촉 힘이라고 하고 멀리 떨어져 연결이 되어있지 않으면서도 두 물체 사이에 힘이 있다고 믿고 이 힘을 원격힘이라고 정의하였다. 예를 들면 타자가 야구방망이로 공을 친다던가, 당구공을 당구막대(큐)로 칠 때 작용하는 힘이 접촉 힘이고, 자석은 떨어져 있으면서 서로 당기거나 서로 미는 것이 바로 원격힘이며 지구와 달도 서로 당기는 힘을 원격힘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연구를 거듭하여 케플러는 행성의 운동에 관하 세 가지 법칙을 발견하였다.
첫째, 지구는 태양 주위를 타원 궤도를 따라 공전을 하고 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 때 동그란 원모양으로 도는 것이 아니라 달걀처럼 생긴 타원 운동을 한다는 말이다.
둘째, 일정한 시간 동안 휩쓸고 지나간 면적은 항상 일정하다.
멀리 있는 행성이나 가까이 있는 행성이 한 시간동안 지나간 흔적의 넓이를 계산하면 넓이가 같다는 뜻이다. 즉 태양에 가까이 있는 행성은 빨리 가고 먼거리에 있는 행성은 천천히 가기 때문에 그 넓이가 같다.
셋째, 공전하는 시간은 돌고 있는 거리와 비례한다.
태양에서 먼 별은 천천히 가고 태양에 가까운 별은 빨리 간다는 말로 지구보다 목성은 더 천천히 운동한다. 즉 태양 주위를 한바퀴 도는 시간은 태양에서 거리가 먼 행성이 오래 걸린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케플러가 발견한 것은 참으로 위대하다.
지구가 움직인다고 한것과 행성이 지나간 넓이와 행성의 운동 속도를 말한 것이 지금의 발전된 과학으로 관찰한 결과와 같기 때문이다.
이 세가지 법칙은 훗날 뉴턴의 만유인력에 큰 도움을 주었다.
케플러의 생애
케플러는 1473년 2월 19일, 독일의 작은 도시인 바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장교였으나, 어머니는 술집 딸이 었고, 몸이 약하고 못생긴 아이로 태어났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기구한 운명의 소유자였다.
아버지는 전쟁터를 돌아다니다가 제대했고, 그 후 빚 보증을 잘못 서서 교수형을 선고 받았으나, 간신히 처형을 면했고 케플러가 17세가 되던 해에 다시 군대에 나가 집을 떠난 후 소식이 끊겼다.
신교도였던 케플러는 수도원 학교에 들어갔지만, 학교 생활은 별로 즐겁지 않았다. 비록 성적은 우수했지만, 못생겼고, 고자질을 잘할 뿐만 아니라, 기회주의자이고, 책벌레인 케플러를 친구들은 모두 멀리하였기 때문이다.
케플러는 수학과 천문학에 몰두하였다.
당시 귀족들은 신교의 성직자를 양성하고자 고등 교육기관을 만들어 영리한 학생들을 뽑았다. 케플러도 선발이 되어 신학교로 진학했다.
그가 코페르니쿠스의 학설을 알게된 것도 바로 이 시절이었다.
케플러는 1596년에 우주론에 관한 최초의 저서인 '우주의 신비'를 저술하였다. 이 책은 그의 스승인 메스트린의 감수 하에 모교인 튀빙겐 대학에서 출판되었다. 이 책으로 그는 일약 유럽 학계에서 유명한 인사가 되었다. 이 책을 받아 본 많은 과학자들이 흥분을 하였고, 특히 티코 브라헤라는 유명한 천문학자가 케플러의 생각을 높이 사서 그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그리하여 역사적인 스승과 제자의 만남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스승이된 티코 브라헤가 지금까지 연구하고 관찰한 내용을 제자인 케플러에게 물려주어 지동설의 정확한 이론을 세우도록 하였다.
천동설과 지동설의 비교
우리나라 지동설
"지구가 하루 한 번씩 자전한다."
고 했다.
그 나름대로 상당히 깊게 지구의 모양과 운동에 대해 생각한 끝에 지구의 자전을 주장했던 것이며 그런 생각을 글로 써서 남겼다.
그는 '의산문답' 이라는 상당히 긴 글을 남겼는데 말하자면 자연과학에 관한 그의 생각을 정리한 책이다.
홍대용은
"지구 둘레의 먼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별들이 하루 한 번씩 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지구만 해도 아주 큰데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별들이 하루 한 번씩
돌기 위해서는 별들이 그야말로 총알처럼 빨리 돌아야 할 것인데 어떻게
별들이 그리 빨리 돌 수 있느냐?"
라고 말하였다.
만일 빛을 내는 물체가 그렇게 빨리 달린다면 별로 보이지 않고 흰 줄로 보일 것이다.
그는 지구가 자전하는 것만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지구는 우주의 중심에 있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어서
"지구가 우주의 가운데에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우주는 무한하다."
고 말했다. 무한한 우주 가운데 지구는 그저 한 개의 별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기록했다.
그렇다면 그 무한한 우주 가운데에는 지구와 조건이 비슷한 별도 여럿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런 별들에는 사람과 비슷한 존재가 있는지도 모르지 않는가?"
홍대용은 역시 동양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과학적인 근거에서 우주인의 존재를 예측한것이다.
아직 우주 저쪽 어디에 우주인이 있는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그런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생각이다.
이티(ET)라는 영화가 유명해지고 온갖 우주인에 관한 공상과학영화와 소설이 유행하는 요즈음이다.
말하자면 홍대용은 이미 200년도 더 전에 이티의 존재를 예언한 것이었다.
천동설은 서양에서는 1530년에 코페리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했으므로 홍대용은 그보다 늦은 250여년 뒤에 지동설을 주장하였고 우주관을 이야기 하였다.
그 시대는 서로 소식을 전하기 어려워 서양의 지동설을 알지 못하고 자기의 생각을 정리하였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홍대용은 위대한 과학자임에 틀림없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코페르니쿠스
모든 사람이 지구는 제자리에 있고 해와 달, 별이 움직인다는 천동설을 믿고 있던 시대에
'태양은 한자리에 머물러 있고,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돈다.'
는 것을 주장하는 천체회전에 관하여 라는 책이 1545년에 코페리니쿠스에 의해 출판되었다. 또 어떤 곳에는 15년이 빠른 1530년에 나왔다고도 한다.
폴란드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중심설 즉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프톨레마이오스나 그리스의 아르스타르코스 등이 주장한 지동설에 관한 옛날 책을 읽고, 지동설이 맞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별을 관측하기 위해 만든 관망성대에서 직접 만든 측각기(오늘의 망원경)를 사용하여 천체관측을 해본 결과 지구가 움직이고 있음을 확신하여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책을 만들었다.
그러나 지구가 움직인다는 지동설의 이론은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로부터 심한 욕설을 듣는 것은 물론이고, 교황청
에서 무서 운 형벌이 내려질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페르니쿠스는 그것이 두려워서 살아 있는 동안은 비밀로 하다가 그가 죽은 후에 책이 세상에 알려 지도록 하여, 그것을 읽은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다른 이야기는 죽기 바로 전에 책이 발간되었다고도 전해진다.
'아니, 그 사람 미친 사람 아니야,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다니 말
도 안 되는 소리지'
'그럴 수도 있어.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을 거야.'
사람들은 두 쪽으로 나누어져 생각은 하였지만, 지구가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수가 매우 적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사실을 믿으려하지 않았고, 설령 믿음이 간다고 해도 기독교의 처벌이 두려워 말을 못하였다.
그런 시대에도 용감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이탈리아의 부르노(1548 ~ 1600)라는 사람으로 죽음이 두렵다고 해서 진리를 틀리게 말할 수는 없다는 굳은 신념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여러가지의 연구 끝에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은 맞은 것이다. 더 나아가 우주는 끝이 없으며,
지구는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으며, 태양과 같은 많은 별들이 우주에
많이 존재한다."
라는 말을 모든 사람에게 하였다.
이러한 부르노를 교황청에서 그냥 둘 리가 없었다.
그는 1592년 체포되었고 8년 간에 걸친 설득에도 굽히지 않자 교회측
에서
"당신의 말이 틀렸다고 하면 살려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당신을 죽이
겠다."
라고 하며 위협하였지만
"죽는 한이 있드라도 엄연한 진리를 다르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라고 대답하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아 1600년에 화형을 당했다.
브루노는 자신이 죽을 것을 두려워 하지 않고 지구가 움직이고 있다는 지동설을 끝까지 주장했던 것이다.
갈릴레오의 지동설
갈릴레오 첨성대
우리나라에서도 신라 시대에 이미 별을 관측하기 위해 첨성대를 만들어 활용하였듯이 옛날 사람들은 별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한 해 농사를 점치기도 했고, 유명한 사람은 반드시 하늘에도 그 사람의 별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 별이 떨어지면 그 사람도 망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별의 움직임을 보고 점을 치는 점성술이 발달하였다.
그러나 1609년까지는 천체 관측을 눈으로만 하였다고 하지만, 또 다른 이야기는 1545년 경에 이미 케플러가 사용했다고도 전해 온다.
갈릴레오가 망원경을 사용하여 목성의 위성을 관찰한 결과 코페리니쿠스의 지동설이 맞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갈릴레오는 1616년
'지구는 움직이지 않고 천체가 움직인다'
라는 천동설은 틀린 진리라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렇게되자 기독교의 지도급 인사와 신자들은 깜짝 놀랐다.
"아니, 갈릴레오가 그런 말을 하다니? 천동설이 틀리다고 하면 우리 기독교의 체면이 말도 아니지,"
이틀 후 교황청에서 갈릴레오를 불러와 추기경 회의를 하면서, 앞으로는 지동설을 주장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고 그에 따를 것을 약속하였다.
"앞으로는 지구가 움직인다는 말은 하지 말아라."
"알겠습니다."
라고 대답은 하였지만, 갈릴레오는 그의 학문적 양심을 속이지 못했다.
1622년 과학 문제에 관심이 크고 친교가 있었던 우르반 2세가 새 교황이 되자 그는 교황청을 설득해
지동설을 정식으로 받아들이도록 노력하였다.
"지동설이 맞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책으로 만들고자 하오니 허가해 주십시오."
"나도 평소에 지동설이 맞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다른 파의 반대가 너무 심해서……."
"그렇지만 진리를 그대로 묻어 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지동설은 예상이
지만 천동설과 비교하는 글을 쓰겠습니다."
"그럼 책을 만들어 보시오."
하고 허가를 받고 1630년에 천문대화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그 내용은 코페리니쿠스의 지동설이 맞다는 것을 강하게 주장한 것이었다.
그랬더니 기독교의 다른 파인 이메수스, 도미니코라는 두 단체는 이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갈릴레오의 지동설을 일반 대중들이 믿는다면
"지금까지의 기독교 교리가 잘못되었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요?"
"참 큰 일입니다."
라는 걱정으로 교황청에서는 갈릴레오가 지은 천문대화의 책을 조사하는 위원회를 조직하고 갈릴레오를 불러 들였다.
그 때 갈릴레오는 일흔살로 늙었으며, 더구나 병까지 걸려 있었으나 어쩔 수 없이 재판정에 다시 서게 되었다.
갖은 협박을 당한 갈릴레오는 자기의 지동설은 틀렸음을 시인하는 선서를 하였다.
이와 같은 사실을 많은 사람이 보는 곳에서 알릴 필요가 있음을 인식한 종교인들은 공개 재판을 할 것을 결의하였다.
1633년 6월 22일 싼타마리아 한 수도원에서 종교 재판이 열리게 되었다.
추기경들과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교외에서 갈릴레오는
"제가 주장한 지동설이 잘못되었습니다. 신이 이 지구를 만들었기 때문
에 ……."
하고 횡설수설 장황하게 이야기하고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돌지 않는 것이 진리입니다."
라는 것을 선서한 뒤 양심의 가책을 받아
"신이시여! 나를 도와주십시오."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음을 말하지 못한 갈릴레오는 슬픈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고 한다.
6년 동안이나 재판소에 감금당하였다가 선서를 마치고 풀려 나오면서, 그래도 진리를 거짓으로 말한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해 하늘을 쳐다보고, 땅을 내려다 본 뒤
'그래도 지구는 움직인다.'
라고 혼자 중얼거렸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브루노는 진리인 지동설을 끝까지 주장하다 사형을 당한 것과 갈릴레오가 종교재판에서 보여주었던 모습과는 상당히 대조적이었다.
과학적으로 맞는 말인 지구가 돈다는 것을 끝까지 주장하다 죽은 부르노의 행동이 맞은 것일까? 아니면 갈릴레오가 한 것처럼 거짓말을 하고 일단 목숨을 구하는 것이 맞을까?
어느 행동이 인간으로서 해야될 바른 행동일까?
그 뒤 교회는 지동설이 맞다는지 틀리다는 말이 없다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종교재판을 받은 갈릴레오를 1992년 죄인이 아님을 말하고 겨우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조국을 방문하는 길에 교황이 코페르니쿠스의 고향인 토루노를 방문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뛰어난 업적이다.”
라고 요한 바오르 2세가 말하였다.
코페르니쿠스가 죽은 뒤 456년 만에 지동설이 맞는 것으로 공식적으로 인정되었고 갈릴레오에게도 억울함을 풀어 주었다.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새삼 깊이 생각해 보게 한다.
또 다른 이야기
-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 고 말하지 않았다 -
갈릴레이가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한 우주론인 지동설을 믿을 수 있는 증거를 말할 수 있는 완전한 이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은 로마 교황청에서도 잘 알고 있었다고 한다. 또 그가 하는 일에 대해 반대하지도 않았다. 다만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주장하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교황청에서 바라지 않던 지동설을 갈릴레이는 증명도 하지 않은 채 주장해 버렸다.
누가 보아도 지구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증거를 제시할 수 있었으면 1633년의 재판은 열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때의 재판 기록은 지금도 남아 있는데 갈릴레이는 공정하고도 좋은 대접을 받았다고 하며
"그래도 지구는 돈다"
라는 말은 한 적이 없다. 그리고 기록을 보아도 분명하지만, 갈릴레이는 교황청에서 압력을 받기 전에 먼저 자기 주장을 없던 것으로 했다.
갈릴레이가 유죄가 된 것은 교황청의 명령을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죄를 받은 것이지 나쁜 종교를 믿는 이단이라는 죄목은 아니었다.
이단자로 몰리면 그 시대에 얼마든지 갈릴레오를 죽일 수도 있다.
또한 갈릴레이는 앞으로 태양 중심의 우주론을 우주의 현실이라고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금지당하기는 했으나
"연구를 더 많이 할 수 있는 길은 오히려 의도적으로 열려 있었다."
라고 교회역사를 연구하는 학자인 발터 브란트뮐러는 말하고 있다('갈릴레이와 교회. 오류의 권리', 레겐스부르크, 1982).
갈릴레이가 재판 기간 중에 감옥에 있었고 고문을 받았다는 따위의 말은 다 후세에 만들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
갈릴레이는 재판받는 동안에도 바티칸 궁전 안에 생활했으며, 자기 하인의 시중까지 받을 수 있었다.
법정은 갈릴레이에게 형식적인 금고형을 선고했지만, 갈릴레이는 실제로 감옥에 들어갈 필요 없이 재판이 끝나자마자 로마를 떠날 수 있었다. 그로부터 한 동안 시에나 대주교 밑에서 지내다가 몇 년은 피렌체 근교의 알체체트리 촌에 살면서 연구를 계속했다.
그 곳에서 집필한 최후의 대저작이 '두 개의 과학에 관한 대화' 또는 '천문 대화'라고도 불리우는 책을 만들었고 갈릴레이는 기계물리학의 기초를 세웠다.
더생각하기 : 지동설을 주앙한 학자들
필롤라오스(BC 5세기) 아리스타르코스(BC 3세기) N. 쿠자누스(15세기) 레오나르도 다 빈치(15세기) 코페르니쿠스(16세기 초) G. 갈릴레이(1609년) J. 케플러(1619년) 뉴턴의 (1687년)
더 생각하기 : 천문대화란?
천문대화란 하늘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내용으로 심플리치오, 사그레도, 살비아티라는 세 사람의 등장 인물이 천동설과 지동설에 관한 문제를 토론해 가는 대화체로 쓰여져있다.
실제있었던 이야기가 아니고 갈릴레오가 만든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 내용 중에는 천동설이나 지동설 어느 한쪽이 맞는 이야기란 말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지구가 돌지 않는다는 교황청과의 약속을 지킨 것으로 보지만 누가 옳은지를 대화의 태도로 보면 금방 알 수 있게 되어 있게 만들었다.
천동설을 주장하는 인물인 심플리치오는 우둔하고 고집 센 노인으로 묘사되어 있어서 천동설이 잘못 되었음을 비꼬아 나타내었다.
더군다나 심플리치오는 천동설을 믿는 교황을 모델로 한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이 내용을 보고 지동설을 주장한 내용임을 알아차리고 교황청은 갈릴레이가 1616년의 약속한 천동설이 맞다는 말을 뒤집은 것이란 판정을 내려 1633년 6월 22일 이탈리아 로마의 산타 마리아 소프라미네르바의 수도원에서 엄숙한 재판이 열리게 되었다.
이 재판에서 갈릴레이는 죄가 있다고 판결을 받았다고 하나, 다른 이야기는 다시 천동설이 맞다고 말하여 풀려 나왔다고도 전해 온다.
지구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큰 우주에 비하면 지구는 보잘것 없이 작은 행성이지만 인간에게는 매우 중요한 천체이다.
이 지구가 없었다면, 생물이 살 수가 없다. 그러므로 당연히 우리 인간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구는 태양에서부터 수성, 금성 다음으로 세번째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간은 태양계 내의 다른 수성, 금성, 화성등의 행성에도 생명체가 존재하고 있는지를 여러 가지로 탐험하고 조사했지만, 지구 이외에는 아직 생명체를 발견하지 못했다.
화성에는 생물체가 있고 우리 지구 사람처럼 지능이 발달한 동물이 있으리란 생각으로 옛날 사람들은 외계인을 화성인이란 말을 자주 썼다. 화성인이란 화성에 사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나 인공위성을 화성에 보내어 조사한 결과 지구만이 태양계에서 유일하게 생명체가 존재하는 행성일 것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지구에서는 사막이나 햇볕이 전혀 들지 않는 동굴 속에서도 개미나 박쥐, 풀 등이 살고 있으나, 화성에는 생물의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다고 한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참 지구는 소중한 것이다.
지구는 태양에서 약 1억 5000만 km 떨어저 약 1년(365일)을 주기로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다. 1년 동안에 태양을 한 바퀴 돌기 위해서 태양은 매우 빠른 속도로 달려야 한다. 지구의 공전속도는 약 1초에 30 km 정도로 달리며 기울어져서 하루에 한바퀴씩 도는 자전을 하고 있다.
지구 위의 각 부분에서 계절의 변화가 나타나는 것은 공전면과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어서 태양의 빛을 받는 각도에 따라 계절이 바뀐다. 태양 빛을 수직으로 받는곳은 열대 지방이고 비스듬하게 받는 곳은 남극이나 북극 지방이다.
지구에 밤과 낮이 생기는 것은 지구의 자전으로 인해 태양을 향하고 있을 때는 낮이고 바깥쪽으로 향하고 있을 때 밤이 된다.
지구의 반지름은 약 6,300 km 정도이나 정확히는 극 반지름은 약 6356.8 km이고, 적도 반지름은 6378.2 km 이다. 적도 반지름이 극 반지름보다 크므로 지구는 아주 둥근 공 모양은 아니다.
그 이유는 지구가 자전축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어서 적도 부분에서는 원심력으로 인해 부풀어 올라 있기 때문이다.
또 지구의 무게는 6,588,000,000,000,000,000,000(육십오해팔천찰백경) kg으로 행성 중에서 작은 편에 속한다. 지구의 크기는 크지 않지만 크기에 비해 무게는 제법 무거운 행성이라고 할 수 있다.
더생각하기 : 1. 지구의 무게. 2. 사철이 생기는 이유
3. 태양의 빛과 시각
1. 지구의 무게
지구의 무게는 어느 정도인가?
10톤(10,000kg)을 실을 수 있는 아주 큰 트럭으로 몇대나 될까? 계산해 보자.
1초에 1,000대가 지구의 흙을 싣고 출발한다면 1년에는 몇kg의 흙을 실을 수 있을까?
31,536,000,000,000(31조5360만)kg
식 : 1,000,000kg(1,000대)×3600초(1시간)×24시간(1일)×365일(1년)
1초에 1,000대의 트럭으로 지구 흙을 다 실어내는 데는 몇년이 걸릴까?
약 2억1000만년이 걸린다.
식 : 6,588,000,000,000,000,000,000 kg(지구의 무게)÷ 31,536,000,000,000kg(1초에 큰 트럭 1,000대가 1년동안 실을 수 있는 흙의 양)
2, 사철이 생기는 이유
여름은 지구가 태양에 가까워 지고 겨울에는 멀리 떨어져서 추울까?
그것은 아니다.
위 그림을 자세히 보자
태양과 지구는 1년 동안 거의 같은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북쪽에 있기 때문에 북쪽에 햇빛이 비취는 각도를 겨울과 여름을 비교해 보자.
여름에는 북쪽에 수직에가까울 정도로 햇빛이 비취지만 겨울에는 남쪽에는 수직에 가깝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북쪽에는 햇빛이 비스듬하게 비췬다. 그러므로 사철이 생기며 남쪽나라 즉 호주나 뉴질렌드는 사철이 우리와는 정반대이다.
믿기지 않으면 다음의 실험을 해 보자.
태양이 비치는 곳에 종이를 1장은 비스듬히 놓고 다른 1장은 태양빛이 바로 들도록 직각으로 놓고 잠시 후 만져 보면 수직으로 놓은 쪽이 훨씬 따뜻한 것을 알 수 있을 겄이다. 위 오른 쪽 사진에 비취는 햇빛을 보고 사철 중 어느 계절일까?
겨울이다. 그 이유를 알아보자.
다음의 사진을 보고 우리나라의 시간에 따른 태양의 움직임을 관찰해 보자.
8시 10시 1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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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천동설은 별로 믿기지 않은데 ㅋ"
저는 믿어요..ㅋ-ㅋ
허것쓰~ ㅋ 천동설을 믿는 사람도 잇구낫! 머,, 그건 다 사람들 마다의 취향이니깐 ㅋㄷ
믿습니다! 믿고요~^^*
j
무슨말인지 모르겠어요
무슨말입니까 ?
어휴 교장선생님 대단하시다 증말 ㅋ 이런걸 다 하시다니
어 위에 영미 ?
천동설 믿는사람 상식 이 덜되있네 ㅋ
천동설믿는분 지구가 돌지않나요?
숙제로 읽어봤는데 넘 좋네염^^
ㅋㅋ 아리스토 텔레스 때매 천동설도 믿고 4차원 소설도 믿는 연금술사들이 불쌍하다 ㅋㅋ
그런데무슨 뜻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