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기]/수필·감상문·기타
2006-03-29 09:57:21
시산제에 관하여
[자료출처 : 월간 산]
전국에 산재한 대부분의 산악회에서는 새해가 되면 1월초에서 2월초에 이르는 기간에 한 해의 안전산행을 기원하는 시산제를 올리거나 산악회 창립기념일을 전후해서는 창립기념산제를 올린다. 그런데 연륜이 짧은 산악회에서는 시산제 시즌만 다가오면 어디서 시산제를 올려야 하며 제문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몰라 난처해 하기도 한다.
이럴 경우 산악회에 제례에 밝은 나이 지긋한 산악인이 있으면 모든 것이 간단히 해결되지만,그렇지 못할 때에는 다른 산악회의 시산제에 참석해시산제를 지내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는 것이 시산제를 익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젊은 산악인들은 시산제의 형식과 절차 등을 자세히 알지 못해서 시산제를 적당히 지내기도 하지만 등산을 취미로 삼고 자주 등산을 한다면 시산제의 형식과 절차 등을 확실하게 배워 격식에 맞는 산제를 제대로 올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원래 제례란 고장과 가문에 따라 제수, 축문, 절차, 참가범위 등이 모두 다르다. 하물며 21세기인 요즈음 개성이 강한 산악인들이 모인 산악회의 시산제가 모두 같을 수는 없다. 허나 유교식 제례순서인 강신(降神), 참신(參神), 초헌(初獻), 독축(讀祝), 아헌(亞獻), 종헌(終獻), 음복(飮福)으로 이어지는 대원칙은 어떤 산제에서든 철저하게 지켜져 내려오고 있다.
산제의 제수는 돼지머리와 북어, 시루떡, 3가지 색 이상의 과일, 초 2자루와 향, 술 등이 기본이다. 음식은 원래 우리 것이 아닌 것을 올릴 수도 있으나 술만큼은 반드시 탁주를 써야 한다. 소주가 휴대하기에 편하다고 편법으로 소주를 올리는 사람도 있지만, 소주를 쓰는 산제는 올리지 않는 것만 못하다는 것이 연로한 산악인들의 지적이다. 또 최근 산제에 양주나 포도주 등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런 무지는 피해야 하는 것이 산악인의 상식이다.
최근의 산제는 일종의 축제이므로 남녀노소가 참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높은 산보다는 낮은 산을 택하며, 매년 같은 장소에서 지내는 산악회도 있다. 제를 올리는 시간은 인원이 많으면 먼저 산행을 끝내고 산제를 올리며, 인원이 적을 때는 산제부터 올리고 산에 오르는 것이 합리적이다.
요즈음 각 산에서 열리는 산제를 보면, 대부분의 회원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산제에 참가하고 있는데 그 옆에서 웃고 떠드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의 추태를 방지하기 위해 산제장소 주변에 통제요원을 배치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반적인 산제의 순서를 살펴보자. 먼저 국민의례가 끝나면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우수산악인표창, 격려사, 결산보고나 공지사항 등이 삽입된다. 이러한 순서가 끝나면 산제로 들어간다.
산제도 가정의 제례와 같이 강신에서부터 시작된다. 초혼관이 된 산악인이 산신에게 산제를 지내게 된 연유를 고하고 지상으로 내려오게 한다. "xx산신님 인간세계로 오십시오" 초혼관이 허공에 손짓을 해가며 산신을 모셔오는 시늉을 할 때 산제 참가자들은 탈모하고 옷깃을 여미는 등 예를 갖추어야 하는데 이런 순서가 참신이다.
참신 다음에는 초헌이다. 산신에게 첫 잔을 올리는 이 순서는 대개 제주가 하며 술은 한 잔 올리며 절은 두번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초헌 다음에는 독축이다. 이때 제주는 먼저 지난 한 해동안 사고 없이 산에 다닌 것에 대해 감사함을 표시하고올해도 안전산행을 기원하는 등 소망사항 등을 고한다.
회원이 적은 산악회는 제주가 초헌만 하면 그런대로 격식이 갖춰진 셈이지만 회원이 많은 단체에서는 두번째 잔을 올리는 아헌이나 마지막으로 잔을 올리는 종헌도 중요하게 여긴다.
독축 뒤에는 아헌이다. 이 순서는 대개 부회장이나 열성회원, 유공회원, 고령회원이나 이에 준하는 회원, 초청인사들이 맡고 있다. 종헌은 한 해 산행의 개근회원이나 최연소자가 맡는 경우도 있다. 종헌 후 산제참가자 중 절을 하고 싶은 회원이 있으면 누구라도 잔을 올리고 예를 표하는데 이 순서가 헌작이다. 헌작 뒤 제수를 나누어 먹는 음복을 마지막으로 산제는 끝난다.
산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문이다. 현재 각 산악회에서 사용하는 제문은 한글로 쓴 현대식, 한글과 한문을 혼용한 절충식, 한문으로만 쓴 유교식 등이 있다. 제문에는 산제 시기와 장소, 자연에 대한 감사, 산악인의 소망, 제주가 회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 등이 들어간다. 그리고 제문은 대개 한지에 종서로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는 횡서로도 쓰고 산악회에 따라서는 컴퓨터로 작성한 제문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등산중앙연합회 소속 K산악회는 현대식 제문을 사용하고 있다.
'한배검 나라 세우신지 사천삼백삼십삼년 OO날.
XX산 아래 배달 아들 딸 모여 작은 정성 모두옵고 산신님께 엎드려 비나이다. 뭇 산의 어머니시여! 당신의 가이 없는 지혜와 자비와 힘을 구부려 한마음으로 기리나이다. (...중략...) 산신님, 굽어보시는 하늘 아래 봄빛 어리고 누리에 바람차니 햇살 가득 하오이다. 작은 정성 거두시고 봄, 여름, 가을, 겨울 들거나 나거나 저희 얼과 몸을 부디부디 봄날의 햇살처럼 감싸 보살펴 주소서!
한배검 나라 세우신지 사천삼백삼십삼년 OO날.'
산악인이며 서예가인 정필선씨는 절충식의 제문이 산제의 제문으로 가장 적합하다고 한다. 그가 지은 제문은 다음과 같다.
앞부분은 '維歲次 OO年 X月 X日 X時 OO山岳會 山祭祭主 OOO顯 OO山神'
중간부분은 한글로 자연과 산신에 대한 감사, 그동안 산악회의 활동과 앞으로의 활동상황 등이 들어가며,
마지막으로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들고 술을 따르니 드시옵소서'라는 의미의 謹以淸酌 庶羞恭伸 尊獻尙饗으로 끝난다.
인수산악회는 유교식의 한문 제문을 쓰고 있다.
'維歲次 OO年 X月 X日 朔 XX山岳會 OO會長 敢昭告于 土地之神 OO山岳會 會員一同 合心恭修歲事于 OO道 XX面 XX山 山神 惟時保佑無事山行 日就月長實賴神伏敢以 酒餠脯果敬伸尊獻尙饗'
내용은 'OO년 X월 X일 XX산악회 회장 OOO은 XX토지신께 고합니다. 산악회 회원 일동은 합심하여 OO도 XX면의 산신께 제를 올리니 굽어살피셔서 올해도 무사하게 등산하게 도와주십시오. 여기 술, 떡, 포, 과일 등을 준비했으니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 소개한 세 가지의 제문은 제문 형식을 그런대로 갖추었다. 제문을 마련하지 못한 새로 생긴 산악회는 이 제문 중 하나를 택해도 되고 약간 변형시켜서 써도 좋다.요즈음의 산제는 일종의 축제 성격도 있으므로 오래된 산악회라도 새 제문으로 산제를 지내면 회원 단합에 효과가 있을 것이다.
+++++++++++++++++++++++++++++++
아래 효용 고수가 올려준 댓글을 본문에 올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복사하여 이곳 본문으로 올립니다. (산강 올림)
----
화개모래 2006.03.30 00:35:37
개인일로 자주 산행을 같이 못해 미안하구나.
구덕산우회 시산제 축문을 한번 올려주겠다고 약속한게 생각이나서 지금이나마 올린다.
동두천의 보살형님 작품이다.
----------------------------------------------------------------
維歲次 ~ ~ ~
서기 2006年 (丙戌年) 정월 스물 이틋날, 오늘 ~~~
저희 서울 구덕산우회 회원일동은 이곳 경기도 양평군 소재의 봉미산 정상에 올라, 좌로는 청룡이요, 우로는 백호요, 남으로는 주작이요, 북으로는 현무를 각각 거느리고, 이땅의 모든 산하를 굽어보시며, 그속의 모든 생육들을 지켜주시는 산신령님께 고하나이다.
산을 배우고 산을 닮으며, 그 속에서 하나가 되고자 모인 구덕산우회가 어언 40여년이 되었습니다. 구덕산우회 창립 선배님들께서 청년의 기상으로 산에 오를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듯 40여년 성상이 물 흐르듯 흘러갔으니, 오늘 이곳 봉미산 정상에서 始山祭를 올리는 우리의 가슴에 어찌 감회가 없겠습니까?
돌이켜보면, 매달 한두차례 산을 올라 그 오른 산의 이름만 하여도 엄청 나며, 산에 오른 연인원만 하여도, 무릇 기하에 이르나니 어찌 이것을 작은 일이라 할수 있겠습니까? 특히 산행 하나 하나 마다 산을 배우고, 산과 하나가 되는 기쁨으로 충만하였으며, 무엇보다도 다친 이가 하나 없었고 아무 낙오자가 없었으니, 이는 산신령님의 자애로우신 보살핌의 덕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희가 오늘 이곳을 찾아 감사의 始山祭를 올리는 뜻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산 신령님이시여~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되, 일단 산에 들면 산이 곧 나이고, 내가 곧 물입니다. 구름이며, 나무며, 풀이며, 바위 하나하나가 모두
제각기 모습과 몸짓으로 서로를 소리쳐 부르고 아름다운 조화로 가득찬 계곡과 능선을 걸을 때마다, 조용히 우리의 발걸음을 지켜보시고, 흥에 겨워 질러대는 노래 소리나 왁자지껄한 우리의 경망스러움도 너그러이 들어주시고, 오로지 무사안전한 산행이 되도록 우리의 발걸음을 보살펴 주시옵소서.
산 신령님이시여~~~ 아무쪼록 바라오니, 무거운 배낭을 둘러멘 우리의 어깨에 굳건한 힘을 주시고, 험한 능선과 골짜기를 넘나드는 우리의 두 다리가 지치지 않도록 하여 주시옵고, 험난한 암벽과 빙벽을 할때 무사히 하산을할수 있도록 서원 하나이다.
또한 고 하나이다, ~~~
천지간의 모든 생육들은 저마다 아름다운 뜻이 있으니, 풀 한포기
꽃 한 송이 나무 한그루도 함부로 하지 않으며, 그 터전을 파괴하거나
더럽히지도 않으며, 새 한 마리 다람쥐 한 마리와도 벗하고 지내며,
추한 것은 덮어주고 아름다운 것은 그윽한 마음으로 즐기며 그러한
산행을 하는 "산을 닮아 산처럼 좋은 사람들" 이 되고 싶사오니 항상
그러한 마음을 유지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소서...............
그리고 상호 회원들 간에 우애가 돈독하고, 병마와 싸우는 회원은
조속히 완쾌하고, 세파에 시달리는 회원은 위기를 극복 할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시어, 목표에 도달 성공 할수 있도록 해주시고,
관운이 있어 하는 일마다 잘되고 인정받아 주위에서 존경 받고
승진이 되도록 신령님께서 보살펴 주시옵소서.
또한 먼저 저세상으로 떠난 안타까운 악우회원 들이 있사옵니다.
이승에 남아 있는 우리 회원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그들을 추모하며
모든 애착과 미련을 끊고 저승에서는 편안히 새로운 인연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도록 인도 하여 주소서.......
천지신명, 산신령님 !!!
오늘 우리가 준비한 술과 음식은 적고 간소하지만, 정성껏 준비하여
왔사오니, 부디 흠향 하시옵고, 어여삐 여기시고 즐거이 받아 거두어
주옵소서. 이제 올리는 이 술 한잔 받으시고, 올 한해 우리의 산행
길을 굽어 살펴 주소서.
서울 구덕산우회를 대표하여 회장 이충덕이 절과 함께 한 순배 크게
올리나이다.
서기 2006년 병술년 1월 22일 경기도 양평군 봉미산 정상에서
서울 구덕 산우회 회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