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 그리고 베풂의 향기 / 신형호
온누리가 파릇파릇하다. 꽃 진 자리마다 새잎이 간질거리며 돋아난다. 퇴직하고 매화가 피고 진 계절이 다섯 번 지났다. 흔히 말하는 백수 5년 차. 지금 나는 새로운 세상을 탐험하며 살아가는 은퇴 후의 초보 여행자이다. 아침마다 새롭게 눈을 뜨고, 배우고 가르치는 즐거움에 푹 빠져 행복한 하루를 보낸다.
젊은 날 언젠가, 퇴직 후 내 삶을 그려보았다. 몸은 편안하지만, 정신은 낡은 현실이 떠올랐다. 어둠 속 동굴에서 나오고 싶었다. 지금부터라도 준비하지 않으면 인생 이 막은 얼마나 초라할까? 내 정신을 살찌울 활동을 탐색했다. 일상은 언제나 긍정보다 부정적인 일이 많았다. 생활인이 되기 위해서는 생업에 몰입이 우선이었다. 타성에 젖은 일상은 활기가 없다. 누구나 똑같이 보이지만 비슷한 하루가 싫었다. 의미 있는 곳을 찾아 열정을 쏟을 일이 필요했다. 별것 아닌 것 같았지만 배움이 쉽지는 않았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고, 즐거움과 보람으로 혼자 미소 짓는 날도 있었다. 서예 같은 정적인 활동과 테니스 같은 동적인 운동을 넘나들었다. 하나같이 삶에 필요하지 않는 것은 없었다. 문제는 욕심이었다. 버리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늘 잊어먹었다. 종착점은 전공과 관련된 문학공부에 발을 담갔다. 깊이 들어갈수록 어려움과 재미가 교차되었다. 이론과 실기를 접목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시간이 쌓이니 어느새 조금씩 앞서 가고 있었다. 함께 한 세월이 정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숨 가쁘게 달려온 일 막이 끝날 즈음, 먼저 퇴직한 동료 교사와도 이따금 만나 인생 이 막을 위한 정보도 교환했다. 정신과 육체를 단련시킬 일이 필요했고 사회에 보람 있는 봉사 활동도 계획했다. 배움에는 정년이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는 말을 금언으로 삼았다. 그렇다. 즐기리라. 이제 남은 삶에서는 이런 일만 하고 살아가리라 다짐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퇴직을 보름 앞둔 날이었다. 알 수 없는 무기력함에 늘 몸이 가라앉았다. 평생 조직 속에서 움직이던 몸이 시나브로 엇박자를 내기 시작한 모양이다. 종합검진중 경동맥 검사를 하다가 우연히 목 주위에서 이상 징후를 발견했다. 악성종양이다. 암으로 판정되었다. 다행히 수술 후 경과가 좋아 제자리를 잡았지만, 심신은 예전과 같지 않아 종일 멍하게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이 위기에 배움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었다. 문화센터의 하모니카강습은 삶의 참신한 활력소였다. 중급반에 올라가면서 동아리 모임을 만들어 요양병원을 돌며 봉사 활동도 추진하였다. 또 다른 배움은 없을까? 학창시절부터 좋아하던 탁구동호회에 가입했다. 실력이 아마추어 수준이었기에 강습을 받으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 내공이 쌓이니 경기의 참맛을 알게 되었다. 매달 유명 탁구장에서 열리는 ‘리그전’을 찾아다니면서 고수들과의 경기에서 많은 것을 배우는 즐거움도 맛봤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아!’ 비록 학문은 아니지만, 퇴직 후 인생 이 막의 출발에서 배우는 모든 것이 다 학문의 영역에 들지 않을까 생각했다.
배움의 즐거움에다 베풂의 보람도 찾았다. 요즘은 ‘10만 저자설’이란 말이 회자(膾炙) 될 정도로 중년이후 글쓰기 공부에 많이 참여한다. 사춘기를 회상하면 문학소년 소녀의 꿈이 없던 사람은 얼마나 될까? 누구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정리해 자서전 한 권을 남기려는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나는 그들에게 한 글쓰기 단체에서 강의를 맡고 있다. 첫 수업 시간은 늘 이런 말로 시작을 한다. “여러분은 인생 로또에 당첨되셨습니다. 정말 탁월한 선택을 하셨습니다. 미래의 병은 육체보다 정신적인 문제가 많습니다. 그것을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글쓰기입니다.” 그리고 서정시 한편을 암송하면서 글쓰기 수업을 펼친다. 지금까지 350여 명 이상의 성인들이 강의를 듣고 글쓰기에 꿈을 싣고 살아간다. 매주 화요일 저녁에는 ‘심화 토론반’이란 소모임을 만들어 지도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이 또한 재능기부라는 멋진 ‘소확행’을 실천하는 즐겁고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닌가!
이 년 전에 우연한 기회로 시작한 인생에서 가장 기쁘고 보람 있는 일이 또 하나 있다. ‘한글 강습’이다. 그것도 수인 생활하는 분들을 위한 교도소에서의 수업이다. 그들의 평균 연령은 60세 전후이다. 저마다 어린 시절 말 못 할 상처를 가졌기에 학교를 다니지 못한 사람들이다. 매주 월요일 오전, 그들과의 수업에서 나는 이십 대 청년이 된다. 사범대학을 갓 졸업할 당시의 폭풍 같은 열정을 가지고 모든 것을 전해 주려고 노력한다. 한글만이 아니라 조금 더 발전해 한자, 수학 공식, 영어의 기초까지 정열적으로 차근차근 강의한다. “선생님! 일주일 내내 오늘 이시간만 기다립니다.” 얼마나 답답하고 절실했을까? 가슴이 뭉클하다. 그들에게 새로운 영혼을 일깨우는 수업이다. 기울어가는 내 삶에서 이토록 혼신을 바쳐 교감하고 봉사하는 뜻깊은 일이 얼마나 있을까?
나는 ‘교학(敎學)에는 정년(停年)이 없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언제나 배움은 나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었고, 베풂은 모두를 빛나게 하였다. 저물어 가는 삶의 강가에서 내일은 아름답고 참된 배움과 베풂의 날만 이어지길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