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자원전쟁 우리는 뭐하나
[헤럴드경제 2006-05-15 14:20]
자원대란의 높은 파도가 이미 지척에 다가와 있다. 정쟁의 소음 때문에 이 엄청난 쓰나미의 내습을 간과하다가는 나라 경제가 큰 화를 입을 것이다. 세계로 번지고 있는 자원대란의 최대 위험요소는 2년 전과 달리 이번에는 유가 폭등과 국제질서의 불안정이 겹쳐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점이다. 세계 경제의 동시회복과 함께 급증한 에너지 수요가 중동 정세 불안과 겹쳐 폭발적인 유가 상승을 촉발했다. 전문가들의 추세적 전망은 배럴당 80달러를 쉽게 넘는다.
이처럼 현재진행형의 유가 파동을 더욱 격화시킨 것은 남미권의 자원민족주의 바람이다. 왼손에는 포퓰리즘, 오른손에는 민족주의를 거머쥔 남미의 좌파적 정권들이 잇따라 집권, 주요 기간산업의 국유화를 발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가스ㆍ석유산업은 국유화의 최우선 순위다.
남미의 자원민족주의 베네수엘라의 석유산업 국유화에 잇따라 볼리비아도 가스ㆍ석유 국유화를 선언했고, 이 같은 바람은 도미노처럼 인근 중남미국들로 번져나갈 태세다. 중남미권의 자원민족주의가 고조될 경우 피해를 가장 심각하게 입는 것은 중남미 진출의 다국적기업보다는 오히려 우리와 같은 자원빈국, 외교력 빈국, 정책빈국들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다국적기업들은 기존의 시장지배력과 가격 상승을 지렛대로 수익보전과 위험분산이 가능, 자원파동에서 그다지 큰 피해를 보지 않는다.
반면 우리 같은 에너지ㆍ원자재 수입의존국들은 각종 파동의 피해를 고스란히 뒤집어 쓸 수밖에 없다. 매번 위기 때마다 허둥대지만 고비만 지나면 무사안일로 복귀하는 낙천주의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파동에 취약한 체질이다. 우리가 겪었던 위기 때마다 순발력과 행운 그리고 국제적 협조 덕분에 그럭저럭 고비를 넘겼지만 앞으로의 파동은 이전과 다를 것이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우리의 대외관계가 이전과 크게 달라진 점이다.
대외관계 변화와 경제안보 미국 일본 EU 등 우리의 최대 시장이자 전통적 경제 파트너들과의 관계가 이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현 정부가 추구해온 자주노선 외교가 향후 어떤 성과를 만들어낼지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나 분명한 것은 자주노선으로 새 친구들이 뚜렷이 부각되지 않은 사이에 전통적 친구들과는 관계가 크게 벌어진 점이다. 이런 대외관계의 변화는 경제안보와 위기관리에도 직결된다. 현재 부닥치고 있는 에너지 위기와 자원대란의 잠재적 위험도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심각한 것도 바로 이런 대외환경과 연관돼 있다.
지금의 국제질서는 매우 불안정한 갈등 국면에 진입해 있기 때문에 지엽적인 자원파동이라도 쉽게 증폭되고 다른 갈등으로 전이되는 위험한 상황이다. 크고 작은 분란들이 겉으로는 에너지나 자원을 빌미 삼고 있지만 근저에는 보다 심각한 불신과 반목, 적대감이 중첩돼 있어 해법이 단순치 않다.
자원대란의 진원지 중 하나인 중동 정세 불안은 단시일 안에 해결될 가망이 전혀 없다. 이를 틈탄 중국의 자원확보 전쟁 또한 쉽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석유자원과 오일달러를 배경으로 한 러시아의 대외 강경노선이 계속 강화될 것이고 중남미의 자원민족주의 바람도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중남미국들의 도미노가 이어진다면 우리의 에너지 안보도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특히 페루와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으로 파급이 확대되면 에너지 개발투자가 큰 타격을 입을 게 분명하다.
전방위 자원외교 시급 우선 중남미의 국유화 도미노에 대응하는 일이 시급하다. 우리 자원개발투자의 21%를 차지하는 중남미권의 자원 국가통제에 대해 민관 합동의 대책반을 만들어 직접 피해를 최소화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우리의 빈약한 외교력을 고려할 때 쌍무협상과 유사 이해국들과의 다자간 협의를 병행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그 동안 소홀했던 중남미권과의 외교접점을 대폭 확대하고 경협 채널을 다양화하는 노력이 긴요하다. 칠레와의 FTA 경험을 살려 다각적인 접근방식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필요하면 개발원조도 늘리고 상호투자도 확대하는 정부 간 또는 민간 교류가 바람직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이번 자원외교는 시의를 잘 맞춘 것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이를 효율적으로 극대화시키는 게 정쟁으로 일삼는 우리 정치현실에서 가능할지 관심사다. 중국발 원자재 대란도 우리 같은 수출경제에는 결정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단기전의 사재기 경쟁은 세계의 공멸을 초래할 뿐이다. 전방위 자원외교와 적극적인 해외자원개발을 바탕으로 중장기 자원수급 안정을 도모하는 기본 구상이 더욱 절실하다.
평택찍고 FTA 돌리는 자본과 국가의 야만
[참세상 2006-05-15 13:48]
[기고] 자본과 국가의 폭력, 평택와 FTA를 통해 본다
배성인(편집위원-명지대 북한학과 교수)
"여명의 황새울” 작전이 평택 대추리 황새울 벌판을 종획으로 가로지르며 초토화시켰다. 그것은 강자의 폭력이 지배하는 야만의 시대가 아닐 수 없다. 정부는 5.4평택 투쟁이 ‘주한미군철수를 위한 정치이념 투쟁’이란다. 민간인 보다 경찰과 군인이 더 다쳤단다. 외부단체가 주민들을 배후조종했단다. 주민들은 보상금을 두둑이 받아 백만장자란다. 역시 대한민국 정부답다.
북한의 사주를 받은 빨갱이가 평택에 나타나서 설쳐 되니 무섭단다. 은혜로운 미국이 아니면 북한의 남침 공포를 누가 식혀줄 것인지 걱정이란다. 꼴 보기 싫은 일본이 미국과 군사동맹을 더욱 강화해서 짜증이 난다고 한다. 그러기에 한미동맹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이런 사람 정말 많다.
"한미동맹을 공고히 유지하는 것은 우리 사회와 국가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일입니다." 5월 12일 한명숙 총리의 말이다. 글쎄, 누가 뭐래나. 우리 사회와 국가의 안정과 발전에 걸림돌이 되니까 문제지. 2006년, 한국 사회의 가장 뜨거운 쟁점은 ‘한미관계’이다. 특히 ‘전략적 유연성’과 한미FTA가 양대 산맥이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전략적 유연성이란 한마디로 말해서 중동지역의 테러조직이나 북한과 같은 ‘불량국가’에게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해외주둔 미군을 좀더 빠르게, 좀더 가볍게, 좀더 정밀하게 만들어서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군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전략이 대테러 전쟁과 공세적인 선제공격 독트린을 정식화하고 효율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것이며, 그 중심에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전략적 유연성은 매우 위험하며 상식의 수준을 넘어 무서운 의도가 도사리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이렇게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 국민들과 한마디 논의 없이 결정해 버렸다. 현실감각이 지나치게 뛰어나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미국을 비롯한 서구 제국주의에 대한 무의식적인 사대주의가 남아있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 이제 입버릇처럼 되뇌이는 “존경하는 국민여러분”은 실종되었다. 존경도 없고 국민도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마디 “미안하다, 사랑한다”고 한다. 정말 미칠 지경이다.
그런데 평택 주한미군기지 확장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직결되어 있다. 한미간 합의는 ‘미국이 중국과의 군사 충돌 시 주한미군을 투입하고, 이에 대응해 중국이 주한 미군기지를 공격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는 것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평택투쟁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문제는 미군기지 전면재편 자체를 한국 정부가 요청한 것으로 호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상은 미국의 GPR(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에 근거한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도 없이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고 있다.
미국이 평택에 집중하는 이유는 해외 군사기지들만으로 작동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 기지들을 통해 세계를 통제하고 석유 등 전략자원과 경제잉여를 무제한으로 빨아 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군사기지 유지에 광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한국 현대사 질곡의 정점에 미국의 정책과 미국 ‘국익’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음을, 그리고 그 토대에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놓여있음을 잘 알고 있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비정규직 노동자는 급증하고 있고, 농촌은 피폐화를 넘어 붕괴 직전 단계에 처했으며, 생태적 토대는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정직하고 소박하게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려는 민중들의 생활 터전을 뿌리째 흔드는 신자유주의 공세의 원천이 미국 자본의 요구라는 것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자본은 쾌락과 안락을 바라는 대중들의 욕구를 부추김으로써 그 영역과 몸집을 불려나가지만, 자본의 뒤를 봐주는 좀더 큰 힘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미국의 군사력이다.
끝이 없는 이야기
비정규직 노동법, 노사관계 로드맵 그리고 전략적 유연성과 한미FTA는 별개의 사안이 아니다. 이는 모두 신자유주의 세계화 전략의 다른 측면들일 뿐이다. 우리는 자본과 국가의 폭력을 평택에서 보고 매일매일 FTA를 통해서 본다.
한·미 FTA 협상 개시 선언 직후 부시는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은 양국 모두에게 중요한 경제적, 정치적, 전략적 혜택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규정하고, “FTA 협상은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개입을 증대시킬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것은 미국이 한·미 FTA 문제를 단순한 경제적 문제로 접근하고 있지 않으며, 한반도와 동북아지역에 대한 미국의 정치군사적 영향력을 증대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미국은 남북관계에서 자신들의 요구를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다. 해서 한·미 FTA를 수단으로 한국 경제를 더욱 철저히 완벽하게 틀어쥐려고 한다.
부시 정권의 대한반도 정책과 동북아 정책이 우리의 국익과 일치한다면 Win-Win 게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천만에 만만에 콩떡, 언감생심이다. 미국에게는 축복이 우리에게는 재앙이 될 것이다. 한미 FTA가 21세기 세계무대에서 한국의 국운을 결정하게 될 세기의 협정이기 때문에 더욱 걱정이다.
혹시나 노무현 정부가 평택을 통해 미국의 개성공단 공세를 피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의심한다면 무책임한 짓일까? 노무현 정부의 개성공단 제품의 원산지 규정과 노동문제에 대한 강한 집착은 북한을 살리고 남한을 죽이는 우를 범하게 되며, 결국 남북한을 공멸의 길로 인도할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한미 FTA 협상 체결에 대한 강한 집념 속에서 그러한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현재 천지사방에서 KORUS(한·미 FTA 영문 공식 명칭)의 감미로운 합창(chorus)이 울려 퍼지고 있다. 미리 축하의 노래를 연습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지배계급은 지금까지 자본과 미국에 대해서 굴욕적이었다. 천박하고 비굴한 삶의 향연이었다. 강자에게는 항상 머리를 조아리며 무릎을 꿇었다. 이들과 함께 우리 민중들도 약자라고 도매금으로 인식되었다. 그것은 거대 자본과 제국주의의 착각이다. 항상 약자만이 강자에게 무릎을 꿇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거칠고 힘있고 큰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실상 가장 두려운 사람은 ‘큰 힘과 목소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자신의 통제 아래 둘 줄 아는 사람’인 것이다. 바로 이 땅의 민중들이다. 세상에는 정해진 것들이 꽤 많다. 하지만 끝없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 민중들의 방식으로.
향약사조에 과실상규라는 덕목이 있다. 잘못을 서로 일깨워 준다는 것이다. 우리가 민중의 이름으로 한국과 미국의 합창단들에게 잘못을 일깨워 줘야 한다. 최근 찰스 달라라 미 국제금융연구소 소장이 “한국의 협상의지에 감동받았”단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충고한다. “달라라 소장 그러다 탈날라, 조심하시오!”
생태주의로 본 한미FTA
[참세상 2006-05-15 13:48]
[한미FTA저지 연구자의편지](3) - 한면희가 환경활동가들에게
한면희(녹색대 교수)
요즈음 한미FTA 사안이 사회적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땅의 농민은 농업시장 개방에 따른 파고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영화 산업계는 스크린쿼터제의 약화 내지 폐지에 따른 할리우드 영화의 범람으로 인해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는 우리나라 영화예술의 위축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미국이라면 무조건 쌍심지를 지피고 나서는 일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미국이 보인 행태, 특히 2001년 9.11테러에 대한 반격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 등에서 보여준 미국의 태도에 비추어볼 때 미국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길 만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런데 일반 국민 다수는 견해를 달리하고 있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습니다. 미국이 다소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6.25 이후 우리의 은인이자 우방이고 또 자유의 본산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미국에 대한 무조건 반대에 대해서도 일정한 정서적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계화에 따라 시장 개방이 불가피하지 않느냐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미FTA도 전반적 대세 흐름에 비추어 어느 시점에서든 결국 타결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겠느냐고 전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환경운동은 기본적으로 시민운동입니다. 그래서 현장서 뛰는 환경활동가는 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다수 시민의 의사를 존중하면서 운동의 방법과 내용을 검토하고자 노력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수 환경단체들은 한미FTA 사안을 보는 시민의 눈을 다소 우호적인 것으로 해석하여 명료하게 한미FTA 체결 반대에 나서기를 주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땅의 환경활동가들은 성숙하고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 왔기 때문에 이 사안에 대해서도 그러리라고 봅니다. 이에 생태주의의 눈으로 한미FTA 사안을 바라보는 견해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잘 알고 계신 것처럼 생태주의를 환경주의와 편의상 구분하겠습니다. 보수적 환경(관리)주의는 주체로서의 인간이 자신의 물질적 행복추구를 위해 대상으로서 자연을 오직 수단으로만 여깁니다. 다만 환경문제를 최소화하도록 노력합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다수에게 이익을 주는 효용성 정책을 채택하고, 시장제도의 비용-이익 분석에 의한 효율화 체계를 구축하여 자원 사용의 최적화를 도모합니다.
물론 돈이 될 경우이지만 과학기술에 의해 오염을 줄이는 데도 적극적입니다. 이와 같은 환경(관리)주의 시각에서 보면, 한미FTA는 한편으로 농업분야에 부정적으로 나타나지만 자동차 및 전자산업 분야에 긍정적으로 나타나는데, 전체의 효용성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시장 개방이 환경 과학기술의 경쟁력도 높일 수 있다고 볼 것입니다. 그러나 보수적 환경주의는 명확한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WTO, FTA의 본질 속에 담긴 자연수탈의 구조적 요인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료와 더불어 UN이 출범했고, 이어서 제국주의 식민지 국가가 독립을 하기 시작합니다. 자원 수탈을 당했던 신생독립국가의 요청에 의해 1960년대부터 UN의 후진국 경제지원 프로그램이 가동되기 시작합니다. 20세기 말 평가에 따르면, UN의 후진국 지원 프로그램은 몇몇 사례를 제외하고 실패한 것으로 드러납니다. 한국,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 아시아 4마리 용의 성장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후진국은 더욱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세 가지 점에서 그렇습니다. 첫째, 빌린 돈도 제대로 갚지 못하는 외채상환 위기에 빠집니다. 둘째, 선진국의 입맛에 맞는 돈벌이 산업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자국의 전통농업은 붕괴되고, 이에 따라 빈곤층은 더욱 생존이 어렵게 됩니다. 셋째 다국적기업의 공해산업 진출에 따른 환경문제와 심각한 수준의 토양침식 등이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1960년대와 70년대부터 선진국의 대기업은 자국에서 환경재난을 극심하게 초래하여 저항을 받게 된 공해다발성 설비를 후진국으로 수출하거나 이전함으로써 다국적기업으로 변신하게 됩니다. 이후 환경 제국주의의 그림자가 전 세계적으로 드리워지게 됩니다.
환경 제국주의는 자연을 한껏 이용하여 누리게 되는 사회적 혜택을 선진국 지배계급이 주로 향유하고, 그런 이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상의 부담을 후진국 일반 민중에게 전가하는 양태를 뜻합니다. 환경 부정의의 대표적 양상입니다. 지금 전개되고 있는 세계화와 무역시장 개방은 신자유주의 이념을 등에 업은 야수적 자본주의의 다국적기업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GATT의 뒤를 이어 1995년에 출범한 WTO가 세계 단일 시장화를 도모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게 되자, 그 틈새를 이용하여 각 나라별로 FTA(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세계 단일 시장화는 기본적으로 환경재앙을 전 지구적 차원으로 더욱 심화시킬 것입니다. 그것이 WTO를 통하든 FTA를 경유하든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물론 어떤 나라도 그리고 어떤 다국적기업도 환경문제를 해결하면서 다가가겠다고 외치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중요한 문제가 남습니다.
몇 가지 이유만 들겠습니다. 첫째, 자본의 이윤추구 성격상 경제성장을 끊임없이 도모하는 과정에서 자연을 결국 희생시킬 것입니다. 둘째, 자연환경도 시장체계에 편입시켜서 자연 이용이나 보존 여부를 비용지불의사에 의해 결정하려고 하기 때문에, 자연이 자본의 손아귀에서 남아날 수 없습니다. 새만금갯벌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한국농촌공사와 관련 대기업들은 수조원의 비용을 들일 의사를 갖고 있습니다. 반면 삼보일배를 한 네 분 성직자와 환경단체는 개발업체와 경합할 만큼의 비용지불의사를 표명할 수 없습니다. 전자 집단은 더 큰 이익을 보고자 달려들 것인 반면, 후자 집단은 이익보자고 자연 보전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환경 관리주의에 따르면,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듯이 자본에게 자연을 맡기게 될 것입니다. 셋째, 현재의 강압적 과학기술의 발전이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데 부분적으로 기여하면서 동시에 또 다른 환경문제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넷째, 자본의 논리가 판을 치는 곳에서는 환경 부정의가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계화와 한미FTA를 다른 시각에서 조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생태주의 시각에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생태주의도 급진적 견해와 온건한 견해로 나뉠 수 있습니다. 급진적 생태주의는 심층 생태주의와 사회 생태주의 그리고 생태 여성주의의 트로이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 입장은 지역 자율성과 자연에 대한 책임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지구상의 민족을 생물권 문화인과 생태계 문화인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급진적 생태주의는 생태계 문화를 선호합니다.
생물권 문화인의 사례로 미국 뉴욕 월가의 샐러리맨 존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서 멕시코산 욕조에서 샤워를 하고 브라질산 모닝커피를 한잔 마신 뒤에, 중국산 프라이팬에 그리스산 올리브유를 두르고 계란 프라이를 만들어 세네갈산 땅콩버터를 바른 샌드위치에 넣어 먹는데, 칠레와 필리핀산 포도와 파인애플을 독일산 냉장고에서 꺼내어 먹습니다. 출근하면서 일본산 자동차를 타고, 중간에 사우디아라비아산 휘발유를 넣으며, 한국산 핸드폰으로 업무연락 전화를 받습니다. 출근해서는 이탈리아산 대리석의 사무실서 일을 하다가 점심때는 아르헨티나산 송아지 고기로 만든 스테이크에 프랑스산 와인을 곁들입니다.
반면 영국의 경제학자 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외친 바 있는데, 그 연유는 미얀마(버마)에서 근무한 경험에서 비롯됩니다. 당시 버마의 경제력은 영국의 100분의 1도 되지 않는 나라였지만, 그 나라 사람들이 영국인에 비해 지극히 초라한 행복만 누리고 있느냐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는 나라였기에 국민 다수는 작은 것을 바라고 그것의 충족만으로도 무척 행복하게 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행복이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차원에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버마의 생활상이나 과거 우리의 생활상이나 엇비슷했을 겁니다.
전통농가 한 가족의 생활상은 생태계 문화인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한 부부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스스로 농사를 지은 쌀과 인근 강에서 잡힌 어제 사온 생선, 엊그제 산에서 직접 캐온 나물로 주식과 반찬을 장만하여 식사를 합니다. 아주머니는 식사를 마친 후 걸어서 시장에 나가 쌀을 내다 판 뒤 아이 신을 신발과 생활필수품 몇 가지를 사 가지고 돌아옵니다. 아저씨는 쟁기류를 챙겨서 밭에 나가 일을 하다가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해질 무렵이면 들에 핀 꽃향기를 맡으며 다시 집으로 되돌아옵니다.
이렇게 생태계 문화의 사람은 스스로의 생활을 거의 대부분 자신이 살아가는 기초 단위 생태계에서 해결합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 신발이나 쟁기류가 자체 생태계 내에서 생산이 안 될 경우,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인근의 다른 생태계 문화로부터 공급을 받기도 합니다. 생태계 문화의 사람은 생존에 필요한 것을 직접적인 생태계에 의존하는 생활양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행위가 초래할 생태적 결과를 이해하고 있고, 그에 따라 생태계가 파괴되지 않도록 하는 데 지대한 관심을 기울일 것입니다. 따라서 생태계 문화의 경제는 생태계에 대해 책임있는 자세를 취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반면 생물권 문화의 사람은 산업 자본주의가 고도로 진행된 상태에서 생활을 영위합니다. 그들의 생활양식은 산업 물품의 생산과 소비, 유통 그리고 폐기 과정에서 자연에 대한 책임을 거의 동반하지 않습니다. 생물권 문화의 사람은 아주 멀리 떨어진 나라의 생태계에서 자원이 채취되거나 상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오염과 공해가 발생하거나 자원이 고갈되는 것은 자신의 생활과 무관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런 곳의 생태계를 보호할 필요를 훨씬 덜 느끼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생물권 문화의 경제는 자연에 대해 책임을 지기보다는 약탈하는 자세를 취하게 될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한미FTA 체결은 생물권 문화를 더욱 확산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에 대해 보다 더 무책임한 단계로 진입함을 뜻합니다. 그래서 급진적 생태주의는 선명하게 세계화 반대를 천명할 것입니다. 저는 생태주의를 꿈꾸는 환경운동가라면 원칙적으로 그래야 한다고 봅니다. 다만 현실은 이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데도 동의합니다. 산업 자본주의를 동반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반대하는 것이지 민족과 나라 간의 교류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제임스 러브록이 가이아 가설에서 드러낸 것처럼 자연의 생명부양 여력을 지나치게 낮춰볼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자연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필요한 산물을 서로 호혜적으로 교환하되, 정신적 문화 산물의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은 수용할 만하고 또 바람직한 측면이 있습니다.
특히 환경과 평화를 사랑하고 사회적 약자(노동자, 농민, 여성, 아동, 후진국 등)를 대변하는 이념은 폭넓게 구현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계로부터 고립될 수 없는 상태에서 어쨌든 세계화가 밀려들기 때문에 이에 대한 현실적 대처가 불가피하다고 봅니다. 이런 경우 온건한 생태주의 시각에서 문제에 현실적으로 접근하는 방도가 닫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가운데 환경정의 접근이 대표적일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1970년대 후반에 러브커넬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습니다. 19세기 말 뉴욕주 북부 두 호수를 잇는 운하가 건설되다가 경제여건 변화로 사업이 중단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한 기업이 파헤쳐진 땅을 매입하여 1940년부터 12년간 다이옥신이 함유된 유해 폐기물을 매립하고 복토를 한 후, 나이아가라 시교육위원회에 기증(1달러 판매)을 했습니다. 영문 모르는 교육위원회는 학교를 짓고 마을을 건설하여 주택이 들어섰습니다. 세월이 수십년 흘러 드럼통이 부식되고 유독가스가 지면으로 올라오면서 변고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유산하는 임산부, 암에 걸린 아동, 그리고 간질환 등 각종 질병을 앓는 사건이 이어졌습니다. 연방 환경청의 조사 결과 사건 전모가 1978년에 알려졌습니다. 시장경제와 최소국가를 주장하는 자유주의 국가정책으로는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울 수 없었습니다. 다만 인도주의 정책을 펼치던 민주당의 카터정부가 자유주의 정신을 초월한 기금, 즉 슈퍼펀드(Super-fund) 법을 만들고 이것으로써 원만하게 사태를 수습했습니다. 환경 부정의 사례에 대해 다소 정의롭게 다가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이 자국 내에서 통용하는 법의 잣대와 남의 나라에 들이대는 잣대를 다르게 운영하는 이중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잘 알려진 것인데, FTA 체결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이미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로 이루어진 NAFTA가 가동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미국은 주로 이익을 보는 반면, 환경상의 덤터기 부담은 주로 멕시코로 전가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한 피해 사례 다수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 정부가 1년이라는 짧은 기간을 설정하여 한미FTA를 졸속으로 타결지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합의문안 하나 잘못 채택되면 그에 따른 후유증은 상당히 클 수 있습니다. 따라서 환경정의의 접근은 나라간의 문제로 확장될 수 있도록 현실적 접근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환경정의는 자연으로부터 누리는 사회적 혜택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환경적 부담이 풀뿌리 민주주의 절차에 의해 공정한 분배로 이어짐으로써 자연과 생태계가 감내 가능한 범위에서 문화를 유지하고, 또 인간 누구나 인간으로서 존엄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접근입니다. 이런 환경정의 정신을 정책의 지침으로 삼아 한미FTA 사안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다루어야 할 내용으로는 GMO 식품과 광우병이 의심되는 소고기 수입 등 식품안전에 관한 사항, 공해산업의 수입 우려 등 많은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환경운동가는 한미FTA 사안에 대해 좀더 깊은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급진적 생태주의 입장에서 원천적 반대를 천명할 수도 있고 또 현실적으로 온건한 생태주의 노선을 견지하여 환경 부정의가 더욱 심화되는 것을 막으면서 최악이 아닌 차선을 위해 노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 경우에도 좋습니다. 진지하게 환경운동을 펼치면서 멀리 미래를 걱정하는 분이라면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한미FTA 체결에 대해 어떤 목소리라도 내면 좋을 것입니다. 그런 소리가 하나하나 모여서 큰 흐름을 형성함으로써 내가 사는 작은 지역에서부터 시작해서 전 지구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정말로 생명과 자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날이 하루 속히 오기를 희망합니다.(2006년 5월 12일)
수능 D-184 대비 핵심 개념 총정리 / 관조적
관조적
우리 학생들이 많이 묻는 것 가운데 하나가
'관조적'이라는 용어입니다.
관조적이라는 말은 대상을 시간을 두고 바라보면서 그 대상을 통해 얻은 느낌이나 감상, 사색의 결과, 깨달음, 자아 성찰 등을 나타낼 때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윤동주의 '또 다른 고향'에서
화자는 고향에 돌아 온 날 밤에 곱게 풍화 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 보며 자신의 모습을 성찰합니다. 그리고 밖에서는 개 울음 소리가 들려 오고 그 소리는 자신을 꾸짖는 소리 같습니다. 그래서 시적 화자는 이러한 현실로부터 벗어나서 새로운 이상향을 추구할 생각을 합니다.
따라서, 관조적이라고 할 수 있지요.
또한, 이육사의 '꽃'에서도 '북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꽃맹아리가 옴작거리는'을 모습을 바라보며, 일제 식민지 치하의 어두운 시대 상황 속에서 사색의 결과로 얻어낸 깨달음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관조적인 것이지요.
이밖에, 이양하의 신록 예찬, 수목송, 김수영의 폭포, 이곡의 차마설 등이 관조적 성격의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기홍샘
☀ 꿈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은 늘 아름답습니다. 자, 이제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