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한 수정원고 10월 세미나 발제문 '악령'

[수나]

악령(세미나 발제문 단락추가 수정).hwp

악령의 안개 숲 산책

                                                                                                                       발제자 서순화

  1. 모티브

  도스토옙스키는 1849년 페트라셰프스키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총살 직전에 황제의 특사로 감형되어 시베리아로 추방되었다. 옴스크 감옥에서 보낸 4년은 그에게 러시아 민중의 실체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사회주의 반역자로 오인 받았지만, 무신론에 입각한 혁명사상을 우려했다. 러시아 사회와 역사 속에서 맹위를 떨치던 혁명 사상에 문제의식을 통감한 도스토옙스키는 1869년 네차예프 사건이 일어나자 충격을 받고 악령을 쓰기 시작한다. 네차예프 사건이란 네차예프가 대학동창을 규합하여 5인조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사회전복을 기도했는데, 그중 이바노프가 사상전환의 이유로 탈퇴를 선언하자, 밀고의 우려가 있다 하여 살해했던 사건이다. 처남인 안나 부인의 남동생 이반 스니트킨이 사건의 피해자인 이바노프의 친구인 까닭에 도스토옙스키는 처남에게 사정을 낱낱이 듣게 되었다. 네차예프 사건은 그대로 악령의 배경이 된다. 그는 무신론 혁명사상의 맹점을 폭로하여 신 없는 인간의 극한 사상은 악령이 붙은 돼지떼처럼 결국 호수에 빠지는 참상을 겪는다는 교훈을 역설했다.

  2. 감상

  악령은 『죄와 벌』과는 달랐다. 지루한 장광설과 사상과 관념의 토론 사이로 사건의 실마리를 조금씩 흘려놓았다. 슬쩍 던져놓은 한 줄의 단서는 한참 뒤편에 가서 기억도 가물거릴 즈음 사건과 연결되었다. 사건을 유보하고, 감질나게 한다. 작품론이나 해설을 보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지며 의문을 안은 채 허우적거리며 소설을 읽었는데, 각고의 인내심이 필요했다. 때때로 심리 추리 기법을 사용한 대목에서는 재미를 느끼고 몰입할 수 있었지만, 줄거리가 잡히지 않았다. 사실은 대문호가 쓴 고전이므로 무조건 수용적인 자세로 작품을 대했다. 의혹이 생겨도 꾹꾹 눌러가며 영양제를 삼키듯 읽었다. 3부에 가서야 아, 그랬구나. 하고 사건의 개요가 겨우 잡혔다. 독해력에 개인차가 있겠지만, 작가 이병주 역시 『악령』을 '짙은 안갯속에서 건넌 무서운 수렁'에 비유하면서 단 한 줄의 감상문도 쓸 수 없었고 줄거리를 간추리기에 단서조차 잡히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허망과 진실』) 그는 『죄와 벌』이 산수라면 『악령』은 고등수학이라 했다. 이러한 모호성과 난해성은 무엇이 원인일까. 그럼에도 가장 첨단의 작품이라 극찬하는 근거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먼저 줄거리를 머릿속에 넣어야 함을 통렬하게 느꼈다. 책 3권 분량의 두꺼운 책이었다. 『악령』을 읽지 않고도 세미나 참석자가 줄거리를 알 수 있도록 내용을 요약하는데 고심했다. 줄거리를 알고 난 후에라야 작품의 내용적인 사상과 형식 면에서의 예술성을 논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이다. 다소 긴 줄거리이지만,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읽기를 권한다.

  3. 줄거리로 인물 이해하기

  19세기 러시아의 '빼째르부르그' 라는 도시에서 몇 시간 떨어진 작은 읍 단위의 마을에 지사 '렘프께'가 부인 '율리야'와 함께 부임한다. 이 마을에는 한때 마을의 고위급 위치에 있었으며 율리야 부인과는 친구지간인 '바르바라'라는 미망인이 있다. 그녀 옆에는 '스쩨판 트리피모비치'라는 홀아비가 있다. 과거에 대학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는 스쩨판은 바르바라 부인의 아들 '스타브로긴'의 가정교사를 하면서 상당한 지식과 명성을 유지하였으나 지금은 사향길로 접어들어 바르바라 부인에게 경제적 원조를 받아 겨우 살아간다. 이들은 서로 의지하며 친구처럼 지내며 가끔 사교계에 등장하여 사회의 문제점들과 마을의 대소사에 대하여 의논하기도 하며 생을 나름대로 유익하게 보내고 있었다.

'바르바라' 부인에게는 '스타브로긴' 이라고 하는 신비의 인물로 묘사되는 아들이 있고 '스쩨판' 에게는 '표트르' 라고 하는 무신론적 혁명사상을 지니고 있는 아들이 있다. 이 두 아들은 모두 외국에 체류하고 있었는데 스타브로긴이라고 하는 악령의 존재가 이 마을에 나타난다. 그는 전 지사 노인의 귀를 무는 등 괴상망측한 사건을 일으켜 놓고 정신이상자로 진단을 받아 정신요양을 위하여 외국여행을 떠나게 된다. 자기의 본능과 죄악을 마음껏 펼치는 '스타브로긴'은 여행을 통하여 '표트르'를 만나게 되고 또한 '인신사상(人神思想)'에 심취하여 자살을 준비하고 있는 '끼릴로프'와도 사귀게 된다. 스타브로긴은 몇 년 후에 다시 마을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때 '메시야적 기독교 신앙에 입각한 국민주의'를 추구하는 '샤토프' 라는 청년에게 공개적으로 뺨을 얻어맞는 사건이 발생한다.(여기서 작가는 사건의 상황을 유보시킨다. - 왜 뺨을 맞는지 몹시 궁금했으나 3부에 가서 밝혀진다.)

  이때 조직의 행동대표 격인 '표트르'가 '5인조' 라는 비밀혁명조직을 결성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무신론적 혁명사상'을 이루기 위한 교묘한 작전을 펼쳐가기 시작한다. 일단은 율리야 지사 부인에게 호의를 베풀어 그녀를 매수하고 마을에 불필요한 축제를 벌이게 한다. 자신은 이러한 음모의 표면에 나타나지 않고 배후조종자가 되어 '스타브로긴'을 추종한다. 표트르는 하수인으로 마을에 있는 무식한 건달을 모으고 5인조라는 비밀조직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이 '5인조'를 배반자 없이 하나로 묶으려는 방법으로 자신이 계획한 '샤토프' 살해계획에 5인조가 공범이 되게끔 한다. 평소에 자신의 사상과 반대되어 개인적으로 적대감을 갖고 있던 '샤토프'를 밀고자로 몰아 살해하고 그것으로 5인조를 공범죄인으로 몰아 배반하지 못하게 하는 비열한 작전이었다. 그리고 '인신사상'에 빠져 자살로써 자신이 신임을 입증하려는 '끼릴로프'에게 자살할 때에 이 모든 일의 주모자가 끼릴로프 자신이라는 유서를 쓰라는 간곡한 부탁을 하여 완전범죄로 이끌려고 자살 날짜를 맞춘다.

대중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싶어 안달하는 율리야 지사 부인이 결국 '표트르'의 감언이설에 녹아 음모가 숨겨진 축제를 열게 된다. 렘프께 지사는 표트르와 그 수하의 소행과 방자함을 다그치고 축제를 만류하다 아내 율리아와 다툰다. 심약한 지사 역시 자신이 쓴 편지의 격문 때문에 표트르에게 올가미를 잡히고 정신착란을 일으킨다. 그 상태로 축제가 진행되는데 대문호 까르마지노프와 스쩨판의 연설에 군중의 야유와 난동이 일어난다. 축제는 표트르가 비밀결사조직의 혁명에 방해되는 인물을 제거하기 위해 계획한 음모였다. 축제의 난장판에 공권력이 집중되는 틈을 타 혁명의 전야제 격인 방화와 민심교란, 밀고 방지와 조직 결속을 위한 살인을 감행한다. 연회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엉망진창이 된 상태에서 마을에 방화로 보이는 화재가 일어나며 렘쁘께 지사가 정신착란을 일으키고 노파를 구하다 화재 현장에서 참사를 당한다. 연속적으로 표트르의 끄나풀인 레바드낀과 그 누이 마리야가 살해되어 변사체로 발견될 뿐만 아니라 이 살인사건의 혐의자였던 뻬찌까라는 탈옥수도 역시 살해된 상태로 발견된다. 알고 보니 절름발이 마리야는 스타브로긴이 외지에서 술김에 내기에 져서 결혼한 정식부인이었는데 표트르의 충성심으로 부담스런 정식 부인을 죽여주는 대가로 탈옥수 뻬찌카를 사주, 스타브로긴에게 포상금을 요구했다. 스타브로긴은 포상금 일부를 미리 주었고 표트르가 이들 모두를 제거한 것이다. 그 상황에서 샤토프의 집 나간 아내가 돌아온다. 샤토프는 스타브로긴의 아기를 출산한 자기 부인을 극진히 보살피며 아기에게 사랑과 생명을 느낀다. 그러나 5인조를 만나러 나가 표트르의 손에 의해 바로 사살당한다. 표트르는 다시 끼릴로프에게 자살을 재촉한다. 부탁받은 대로 끼릴로프는 엉터리 조작 유서를 남긴 채 자살하므로 사건은 미궁으로 빠지게 된다. 악령이 판을 치는 중 결국, 5인조 중의 한 명인 럄신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자수함으로써 모든 사건은 폭로된다. 표면상 악령의 영수인 표트르 뒤에서 고문 격으로 존재한 스타브로긴도 목을 맨다.

  사건의 이면에서 각 인물의 영혼을 좌지우지하는 스타브로긴을 집중해서 알아보자. 스타브로긴이라는 신비의 인물은 미남자였지만, 가면을 쓴 듯한 얼굴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에게는 4인의 여자가 있다. 광기가 보이지만, 선하고 순박한 절름발이 마리야 찌모페예브나는 내기에 져서 즉흥 결혼한 법적 부인이다. 귀향 후 어머니 집에서 마리야를 만나지만 스타브로긴은 외면한다. 열정적이고 무분별한 리자 뚜쉬나는 약혼자를 데리고 다니면서도 스타브로긴에게 사로잡힌다. 또한 자기희생의 준비가 된 다샤와 샤토프의 아내가 스타브로긴에게 얽혀있는 여자들이다. 어느 날 스타브로긴은 한 소녀를 강간한다. 소녀의 열정이 자신을 향해 목말라하는 눈초리를 즐기듯 외면하는 스타브로긴은 소녀가 목매달아 죽자 그 사실을 고백하는 편지를 써서 찌혼 신부를 찾아간다. 그러나 참회가 아닌 자기학대의 쾌감에 불과했다. 여기에서 선을 상징하는 찌혼 신부와 신을 떠나 방종한 악의 상징인 스타브로긴의 대결이 대화 속에서 첨예하게 펼쳐진다. 스타브로긴은 본능적인 추악함과 잔인성을 매력적인 얼굴 뒤에 숨겨놓고 파멸을 즐기며 고의로 혐오감을 받을 행동을 자행하는 황폐하고 자학적이고 방종한 인간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신을 떠난 인간으로 샤토프, 표트르, 키릴로프에게 악령을 심어준 인간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남의 아내에게 함부로 난폭한 키스를 퍼붓고 고의로 결투를 즐기며 샤토프의 아내를 범해서 임신시킨다. 샤토프가 사교모임에서 스타브로긴의 뺨을 친 이유는 분명하게 진술하고 있지 않지만, 샤토프는 신과도 같이 숭배했던 스타브로긴의 타락에 환멸을 느낀 것이었다. 거기에는 자신의 아내를 범한 것에 대한 분노가 섞여 있다고 본다. 그뿐만 아니라 스타브로긴은 약혼자가 있는 리자와 밤을 지새우고 리자의 마음에 질투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헌신적인 다샤에게 추근거려 리자를 광분하게 한다. 스타브로긴을 사랑한 리자는 화재현장의 인파 속에서 스타브로긴의 정부다! 라는 군중의 외침을 들으며 누군가에게 머리를 맞고 쓰러져 죽는다.

  한편 스쩨빤은 아들 표트르의 만행에 충격을 받아 후원자인 바르바라 부인을 떠나 정처 없는 길을 떠난다. 방황 중에 복음서를 팔고 있는 한 여인을 만나 그는 신에게 돌아간다. 그는 자신을 비롯한 아들 표트르와 무신론적 혁명주의자를 호수에 뛰어들어 몰사하는 악령이 씐 돼지떼라며 참회한다. 도스토옙스키는 스쩨판의 깨달음을 빌려 무신론 혁명사상의 악령이 러시아 사회를 파멸시킨다는 예언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혁명은 30년 후 실제 이루어졌다.

  4. 구성과 난해성

    악령은 작가가 작품의 줄거리를 표면에 내세우지 않고 내면에 숨기며 시종일관 묵시적인 서술방식을 일관하였기 때문에 더욱더 줄거리의 맥을 잡기가 어렵다. 이 작품은 처음에 읽게 되면 독자로 하여금 혼돈 속에서 질문만 계속 생기다가 마지막 제3부에 가서야 “아! 결국에는 이렇게 되는 것이었다!” 라고 명쾌한 해답이 나오게끔 되어있다. 그 구성법은 계속 산을 올라가 마지막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방법이다. 독자는 심리추리기법에 덧붙여 의문의 독서 여정을 견디지 않으면 완독이 어렵다. 도스토옙스키의 독특한 구성법이라 할 수 있다. 실제적으로 살펴보자.

  1) 제1부에서는 스쩨판 뜨로피모비치 베르호벤스키(이하 스쩨판으로 통칭)의 신세 이야기라는 제목 아래 스쩨판에 대해 장황하게 서술했다. 독자는 스쩨판의 연대기적 서술에서 벌써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화자도 서두의 1부 이야기가 본 사건과 관련 없음을 언급했다. 책 한 권 분량의 1부를 스쩨판의 신세 이야기에 소비한 까닭이 있을 것이다.

작가는 처음에 스쩨판의 아들 표트르를 주인공으로 세웠다. 작품 진척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는데 이 주인공으로는 작품을 더 진행할 수 없었다 한다. 도스토옙스키는 고심 끝에 매력적인 새 주인공 스타브로긴을 만들어 내고는 기뻐서 시인 마이코프에게 편지를 써 보냈다. 녜차예프 사건을 반영한 표면적 줄거리를 끌고 가는 인물은 표트르이고 주인공은 무대 뒤에 숨었다가 간간이 얼굴을 보이는 형국이다. 표트르와 샤토프, 키릴로프가 스타브로긴의 추종자라는 사실도 일반 독자는 명확하게 잡기 어려울 만큼 모호하다. 스타브로긴의 사상이 대화 속의 담론과 관념적인 사상으로 일관되어있어 주의 깊게 읽지 않으면 간과해버릴 만큼 난해하다.

  2) 스쩨판과 아들 표트르는 무신론적 자유주의자로 같은 사상을 가진다. 악령 중 신 없는 참상에 대해 참회하며 죽기 전 신에게 귀의하는 유일한 인물은 스쩨판이다. 중요한 서두에 많은 지면을 할애받고 결말에 깨달음을 얻어 성경으로 독자를 교화시키는 점에서 그냥 스쩨판이 아니다. 도스토옙스키가 스쩨판의 입을 빌어 러시아에 만연한 혁명의식의 맹점을 폭로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짐작해 본다. 스쩨판은 그 시대에 영감으로 불린 50대 남자로 두 번의 이혼 경력을 가지고 있다. 당시 도스토옙스키의 나이에 근접했다고 할 수 있다. 가장 선한 영의 소유자라면 스쩨판일지 모른다. 스쩨판은 꽤 지식이 있지만 그렇다할 지적 성과가 없는 다정다감하고 능력 있는 가정교사였다. 미망인 바르바라 부인의 아들 스타브로긴을 가르쳤고 20년간 부인을 사랑해 왔지만, 부인에게 갖은 멸시를 받으면서도 늘 구구절절 편지를 써 보낸다. 존경받는 인물이라 하면서도 계속 풍자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특징이 그렇듯 희극적으로 시작하여 비극적으로 결말을 내는 역할에 스쩨판은 적합한 인물 설정이라고 본다.

  3) 도스토옙스키 소설의 구조와 기법의 모든 특수성은 예술적 표현성의 원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

   ①주인공의 개성이 작품 구성의 중심축이 되어 이 축을 중심으로 등장인물이 분배되고 플롯이 구성된다. 악령은 소설 전체가 스타브로긴의 운명 그 자체이며 모든 것이 그를 위한 장치이다. 도입부는 주인공의 선생이자 사상의 아버지인 스쩨판의 이야기로 배분했고 그 옆에 20년 우정으로 식객 스쩨판을 후원하는 어머니 바르바라 부인이 있다. 주인공 주변에는 4명의 여자가 있다. 그는 소녀( 마트료샤)를 강간하고, 절름발이 소녀(마리야)와 결혼한다. 동시에 여자의 사랑(리자)을 통한 구원을 바라고, 죽음 앞에서는 한 여자의 모성애적인 동정으로 달려간다.(다샤) 사랑이 그의 마음속에서 꺼져버리자 (리자와의 이별) 그의 파멸은 불가피해진다. 주인공에게는 또 4명의 남자 인물이 배분되어있다. 그들은 주인공을 숭배하고 따른다. 정교적 민족주의자 샤토프, 인신(人神) 키릴로프, 혁명가 표트르, 광신자 쉬갈로프는 또 하나의 스타브로긴의 분신이다.

  ②도스또엡스키의 표현 예술의 두 번째 특징은 연극성이다. 악령은 비극적이고 희비극적인 가면의 무대다. 도입부 후 사건에 대한 짧은 설명과 인물들의 성격묘사 후 발단이 뒤따른다. 발단은 두 개의 극적 대화로 구성된다.

  ③인물들은 우연히 한 자리에서 만나는데 우연성의 극적 기법을 심리적 필연성으로 변화시킨다.

  ④ 역동적 구성방식을 쓰고 있다. 매 순간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폭발을 앞두고 속도를 지연시키며 독자를 괴롭히고 (흥미를 높이기 위해 진행을 늦추는 수법), 기대를 고조시키면서(점층법) 거짓 대단원으로 우리를 속이고(급변) 마침내 대파국으로 놀라게 한다.

  ⑤ 수수께끼는 도스또옙스키가 좋아하는 표현기법이다. 작가는 암시, 가정을 제시해놓고 불확실하게 유보하고 설명하기를 망설이다 예기치 못하는 사건으로 독자를 몰고 간다. 끊임없이 비밀을 파헤쳐도 여전히 '혼돈의 숲'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복잡한 사건들의 그물 속에 빠져 독자는 어쩔 수 없이 탐정이 된다. 악령이 안개 숲처럼 회삽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5. 역설을 위한 도스토옙스키 사상의 파편들

  1) 도스토옙스키가 만든 인물 중 가장 비현실적인 인물은 스타브로긴이다. 다른 인물 창조와 달리 작가의 관념 속에서 만든 인물이다. 작가는 복합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인물을 통해 그의 사상을 대담하고 자유분방하게 토로하려 했다. 스타브로긴 속에는 샤토프의 국민주의적 메시아 신앙 사상과 키릴로프의 인신(人神)사상과 포학한 혁명주의자 표트르의 극단적 행동 근성이 혼합되어 있다. 이런 각기 다른 인물이 신을 버리거나 신에 대한 잘못된 견해나 비인간적 인간의 극단성의 맹점을 모두 표현하기에는 단순하고 흑백논리적인 명확한 인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므로 주인공 스타브로긴은 자연적 2차적 인물의 배후에 숨어 이해하기 어렵고 수수께끼적일 수밖에 없는 인물로 창조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스타브로긴 혼자서 여러 인물의 복합적인 사상과 다중적 인격 모두를 갖고 이야기를 끌고 가기에는 한계가 따른다. 그래서 부득이 도스토옙스키는 관념과 사상을 인물의 대화를 통해서 주장하는 방법을 써야 했다.

  2) 인물들은 긴 지면 내내 자신의 신념을 장황하고 단정적으로 상대에게 주입시키듯 토론하고 반복적으로 주장했다. 자신의 사상을 피력하는 샤토트와 키릴로프의 대화를 대할 때의 첫 인상은 솔직히 억척스럽고 비약되고 과장스럽게 느껴졌다. 사상의 과장스런 비약에 공감하기에는 의구심이 너무 강하게 일어났다.

  3) 샤토프의 국민주의적 메시야 신앙사상에 공감되는지 살펴보자.

  “신들이 공통적인 것이 된다는 사실은 더할 나위 없이 국민성 소멸의 징조인 것이다. 자기의 신을 가지고 세계를 정복하고 그 밖의 신을 이 지상으로부터 추방할 수 있다고 믿는 동안만 참다운 국민이 될 수 있습니다. -이하 생략.”

  얼마나 미시적이고 편협한 신앙관인지 독자가 입을 삐죽거리게 만들 빌미를 한껏 주고 있는 도스토예스키의 의도는 독자의 분노 어린 비공감을 노린 것이라 믿어진다.

  4) 키릴로프의 인신(人神)사상을 살펴보자. 다음 대화문 A은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A. “현재의 삶이란 고통과 공포의 댓가로 주어진 것입니다. 더욱이 그 속에는 모든 기만이 있습니다. 현재의 인간은 진짜 인간이 아닙니다. 이제 행복과 자랑이 넘치는 새로운 인간이 출현할 겁니다. 누구든 고통과 공포를 정복하는 사람은 스스로 신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의 신은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쉽게 풀이하면 신이 없는 이상, 인간 자신이 신이 아니면 안 되겠다. 그러나 인간은 생의 공포와 죽음의 고통 때문에 불행하다. 공포와 고통을 극복하고 생사의 경지에 달한 인간이야말로 오만하고 행복한 신인(新人)이고 비로소 인간의 자의(自意)가 최고의 권위가 되며 그래서 사람도 신(人神)이 된다. 낡은 신인(神人)인 그리스도와 대치해야 할 인신(人神)이며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화문 B를 자세히 살펴보면 진실을 파악할 수 있다. 사실 우리에게 가장 비약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은 대화문 B이다. 도스토옙스키는 무엇을 의도했는가.

  B. “최고의 자유를 원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살할 만한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자살할 용기가 있는 사람은 신이 됩니다.”

  니체는 도스토예스키를 가리켜 ‘내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심리학자’라 말했다. 그의 초인 짜라투스트라는 바로 키릴로프가 선구였다.

  키릴로프와 도스토예스키는 간질 환자였는데 간질 발작 5초 동안의 시간을 영구조화(永久調和)의 순간이라 하며 그 이상의 시간은 생리적으로 변화하든가 죽는다고 했다. 자살의 순간 역시 영구조화의 순간으로서 신이 되는 순간이라는 허무맹랑한 이론을 펴고 키릴로프는 자살한다.

  5) 독자는 대화 속에 깊이 들어갈수록 믿기지 않는 요설과 궤변이 점점 그들의 열띤 주장에 빠지게 되며 의구심이 옅어짐을 느낀다. 끈덕지게 펼쳐가는 이론의 고리가 결국 완성된 하나의 사상을 구축한다. 독자는 그 사상을 수용하기에는 부담스럽지만 깜빡 속아 넘어갈 정도로 설득 당하며 그들에게 연민을 느끼게 된다.

사실은 파편에 불과한 사상이라는 역설을 주장하기 위해 도스토예스키는 과잉된 인간의 방만한 사상의 결과를 비극적으로 몰고 가, 종국에 그런 사상의 허점이 비극에 이르게 만들었다. 독자가 느끼는 사상의 의구심이야말로 역설적으로 도스토옙스키가 러시아 사회에 폭로하고 싶은 의도에 설득력을 보태주는 발판이 되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게 된다.

  심리의 심연을 깊이 파헤쳐 끈질기게 공감을 유도하는 요설은 최면에 걸린 듯 우리에게 무분별한 사상에 동조하는 오류와 혼돈에 빠질 만큼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그만큼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의 내면을 깊이 파헤치고 독자의 마음을 종횡무진 주무를 정도로 비범한 천재이다. 물고 늘어지는 관념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듯 고개를 끄떡이게 된다. 그러다 결말에 가서 급변을 일으키며 독자에게 충격요법을 쓴다. 도스토옙스키는 스쩨판의 입을 빌어 성경 구절로 진실을 갈파한다. 신을 버린 오만한 인간의 허망한 사상은 바로 악령이었다는 비극적 결말을 그린 것이다.

  6. 맺는 말

 어떤 사상이든 정치적인 목표를 갖는 조직으로 행동화될 때는 원래의 목적에서 이탈해 악의 작용만 남는다. 무신론적 혁명 사상이 비자연적 비인간적으로 확대하여 개인과 사회의 비극을 초래하는 것을 본 도스토옙스키는 악령의 스쩨판 뜨로피모비치 베르호벤스키의 입을 빌려 비극의 참상을 역설하며 이렇게 말했다.

스타브로긴도, 아들 표트르도, 5인조와 끼릴로프와 샤토프와 그 시대의 청년들도 모두 돼지 속으로 들어간 악령이며 악령이 들어간 돼지떼는 낭떠러지에서 거꾸로 떨어져 호수에 몰사하는 것이 당연한 결말이다.

  7. 참고도서

  도스토옙스키 전집 악령(해설), 정음사

  러시아 문학의 이해, 박형규 외 8인 공저. 건국대학교 출판부

  위대한 작가들 도스토예프스키2, 콘스탄틴 모출스키, 책세상

  허망과 진실1, 이병주, 생각의 나무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2-11 악령, 도스토예프스키, 범우사 (*)

[수나]

작마 가족 여러분 안녕하세요? 열심히 참석도 못하는 주제에 또 발제자가 발제문만 올리게 되었습니다.
제 불가피한 사정으로 외지로 출타하게 되어 미리 발제문을 올립니다. 오랫동안 붙들고 공부했습니다만 도움이 될지 걱정입니다.
부족한 역량으로 보시고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결실과 문운이 풍성한 가을되시길 빕니다.

[사륜구동]

상당히 잘 썼네요. 역시 한 칼 하시는 군요. 수고하셨습니다.

[수나]

선생님, 부끄럽습니다.

[요술펜]

와, 벌써!!!! 감사히 잘 읽겠습니다^^

[아침의 무늬]

언니, 애쓰셨네요. 잘 읽겠습니다.^^

[붓꽃]

발제문을 보고서야 호기심이 동해서 책을 구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수나]

그랬군요. 열공하세요~~^^

[둥글레]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어요.

[리버]

수나님^^ 잘 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