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을 비운다는 것
우연한 기회라고 하기에는 필연적인 일들이 많다. 우리 인생은 그야말로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40년이 넘게 내 몸뚱아리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살아왔다면 과장이겠지만, 솔직히 마음 만큼이나 내 몸을 관리하는 일은 시간이 흐를수록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늘 불어나는 몸을 좀 가볍게 하기 위해 운동도 해보고, 음식 관리도 해보지만, 사회 생활에 지장이 되지 않는 한에서 살다보면 자연히 내 몸에 대한 애정을 쏟기가 쉽지 않다.
안식년 기간에 계획했던 일들 중의 하나는 내 몸과 마음을 좀 비우는 것이다.
정신 없이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내가 먹고 싶은 것, 누리고 싶은 것들을 편하게 즐기며 살아온 시간들 속에 어느 덧 중년을 훌쩍 넘어가면서 불어난 내 모습이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불어난 내 몸을 보면서도 그렇게 많이 찌지 않았다는 자기 암시나 주변에서 립서비스로 보기 좋다는 말에 동의하며 살아온 것이다. 그러다보니 문특 병원 종합검진 결과표의 종합 의견란이 가득 채워지는 수모를 당해야하니 말이다.
솔직히 우리 시대는 깨어 있지 않으면 너무 많은 것을 잃어 버리는 세상이다. 무엇 하나에도 관심을 쏟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돌보는 일은 물론, 내 주변과 내가 맡은 일들에 대한 충분한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TV는 수시로 몸짱 얼짱의 미학을 전하면서 사람들에게 마치 뚱뚱한 사람들은 이 시대에 뒤쳐진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외모 지상주의가 빚어낸 우리의 현실이 씁슬하면서도 막상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그다지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 때는 나도 모르게 세상의 가치들과 등지고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몸을 좀 비워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단순히 외모에 대한 자신감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몸이 불면 자연스럽게 건강에도 좋지 않다는 결론 때문이다. 여러가지 수치들이 나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내 생활 습관이나 식습관을 바꾸는 일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언제나 일상은 변함 없이 같은 리듬으로 지나가고, 내가 먹는 음식, 내가 즐기는 음식들은 늘 먹어서는 안 된다는 금기 식품들로 이루어져 있으니 말이다. 몸에 좋은 음식에는 손이 잘 안가고, 쉽게 먹고, 쉽게 즐기는 것들이 편해졌으니 더 그렇다.
그래서 생활 리듬은 물론 내 식생활의 대 혁명을 한 번쯤은 일으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우연한 기회였지만, 내게는 필연적인 기회가 왔다. 효소절식법을 통해서 내 몸을 비우고, 동시에 조용한 피정의 집에서 내 마음도 함께 비우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바오로딸 수녀회와 맺은 인연 덕분에 여주의 피정의 집을 찾게 된 것도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내게 필연적인 사건처럼 여겨지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솔직히 뒤돌아보면 내 생애 한 번도 스스로 음식을 중단하며 오랜 시간을 지내본 기억이 없다. 신학생 때 정의구현사제단의 단식에 동참해서 신학교에서 모두가 함께 하는 반강제적(?) 단식에 동참한 적은 있지만,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를 두고 단식하는 수행을 저질러본 적은 없다. 인천교구 신부들이 모두 4대강 반대를 위한 단식이나, 인권 운동을 위한 단식에 동참하는 일이 종종 있었지만, 솔직히 그런 도전에 동참할 용기는 별로 없었다.
안식년에 꼭 한 번은 해야할 일들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시작한 절식은 첫 날부터 힘들다. 몸을 비우는 일은 음식을 끊는 것이상으로 내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는 내 배가 고프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생기면 주저 없이 내 욕구가 찾는 음식을 쉽게 입에 넣을 수 있었지만, 의도적으로 그런 욕구를 끊는다는 것이 분명한 동기 부여 없이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에는 모순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중요한 점은 음식을 끊는 것이 아니었다. 수도원 성당에서 고요히 묵상하며 내 자신을 돌아본 순간 내 문제는 몸의 문제가 아닌 내 영의 문제였음을 깨달은 것이다. 솔직히 내 삶의 과제들과 수행해야할 목표들을 위해 정신 없이 뛰어온 삶 속에 얼마나 하느님과 충분한 시간을 만나왔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 몸의 문제는 내 영의 채워지지 않은 욕망의 흔적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욕구란 동물적 본능에서 시작되지만, 사실 인간에게는 채워지지 않은 중요한 욕구에 대한 대체적인 요소가 더 강하다. 하느님으로 채워질 공간이 텅 비어있을 때, 내 육신은 다른 세상의 것들로 그 빈 공간을 채우라고 유혹한다. 그것이 음식이든, 사람이든, 일이든. 비워진 내 자신의 공허감을 메꾸려는 몸부림은 우리 영혼의 슬픔처럼 나를 일깨우지만, 내 영혼을 위로하고, 다루는 일에는 소홀해왔다는 것이 못내 내 가슴 깊은 곳을 찔렀다.
그래서 몸을 비운다는 것은 결국 내 마음을 비우는 일이 되어야할 것 같다. 내 마음을 비우는 일은 몸이 요구하는 욕구들로 가득찬 마음의 일부를 다시 하느님께 되돌려드리는 일일 것이다. 그것이 기도를 통한 시간의 봉헌이든, 내가 해야할 일의 우선순위이든, 쉼의 방식이든 내 삶을 잠시 멈추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훈련에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어쩌면 이런 일들이 내 몸의 평화와 건강을 가져다주는 일이겠지만, 더 큰 은총은 그 일로 인해 정말 중요한 것을 잃지 않아야한다는 깨달음인지도 모르겠다.
2010.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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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버리고 비우는 일은 지혜로운 삶의 첫걸음입니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듯이 공간이나 여백은 그저 비어 있는 것이 아닌 본질과 실상을 떠 받혀주고 있음을~~ 신부님! 황금알을 낳을 것만 같았던 안식년에 하실 일과 급한 일들로 우선의 여지를 가름하기 힘드셔도 자신의 몸을 돌봄이 으뜸이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탁월한 선택에 박수를 드리며 절식에 적응하시어 결실 맺으시길 응원합니다. 기도와 명상, 주님과의 일치 안에 뜻깊은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솔직하고 정직한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 자기 판단, 남은 쉽게도 판단하고 도마위에 올리면서 막상 자신을 분별하는 일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신부님, 저도 응원합니다. 넘 무리는 마세요. 신부님, 그 편안한 인상은 남아있을 정도로 해 주세요. // 뱀다리= 전 무얼 잘 간수한다며 그만 감추는 때가 많아요. 어제도 그 무언가를 찾으려 여기 저기 뒤지는데 사진이 와르르~~~ 그 사진 중에 아이들이랑 신부님이랑 인천 카대 갔던 사진이 떨어졌어요. 참 편안하신데, 사실 다소 근량이 나가 보이긴 하셨어요. 만약 거기에 조금 더 불으셨다면 .........
진실하신 신부님의 글을 읽으면서 영적인 부분의 허술함때문에 알게 모르게 인식하고 있지만 어쩌지 못하는 부분들을 음식으로 대체 하려 했던 부분들을 성찰하고 있습니다. 신부님~ 영혼을 다스리고 위로하시는 일에 성령의 도우심과 더욱 성화되시는 축복있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
피정,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침묵이 성스러움보다 낫다.' 침묵으로 나를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욕심, 어리석음이 뿌리 깊게 들어 있음을 봅니다. 그래서 영성(지혜)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몸과 마음(나)을 비운다는 것 아니 비워야 한다는 것을... 궁사가 과녁을 응시하듯. "살찌는 것은 건강을 해친다."는 신부님 말씀.. 담고 갑니다. ^^
몸과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몸은 제가 스스로 비우려고 노력을 하면 잘 안될때도 있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관리는 됩니다. 저도 나이가 한해두해 먹어갈수록 예전보다 더 노력과힘을 기울여야지 결과가 나타나지만, 그래도 어느정도는 할수가 있는일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비운다는것은 머리로는 알고 생각을 하지만, 그것을 행'으로 옮기기란 쉽지않은 일입니다.그러나 어려워도 쉽지않은일이지만 끊임없이 노력을 하는것은 그분을 닮은 그분을 닮고자 하는 그분이 사랑하는 우리들이기 때문인것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
몸과 마음의 비움, 그 평화로 인하여서만 그리스도의 사랑, 하느님의 정의를 볼 수 있었습니다.
신부님 글 잘 읽었습니다. <몸의 상태보다 중요한것은 영의 상태가 아닌가>라는 말씀 공감가는 말씀이었어요. 버려야할것과 채워야할것을 잘 구분해야 겠지요. 아마도 바보가 되어야 할거예요? 주님이 원하는것을 채울려다보면 말이지요.
밝으신? 신부님의 모습 그려봅니다. 저는요 굶어도 살이 쪄요. 음식만으로 신부님의 기대하심에 못미칠수도 있어요. 운동요법이 어떨까요? 영성가의 체형이 몸짱만은 아니잖을까요?
신부님의 글에서 순수함과 영의문제라는 대목에서,,,동감하고 갑니다 신부님 건강하시길...
영의 채워지지않은 욕망의흔적들....,,,깊이반성하게되는 글입니다,,많이노력하고 많이 기도하게해주십니다...아멘.
건강검진에서 종합의견란이 가득채워지는 수난을 당하셨다고요~? 저도 솔직히 신부님께서 방송에 나오실때의 모습이 젤 예쁘셨던거 같아요~ㅋ 외모지상주의가 나쁘긴 하지만 몸을 무시하면 결국 정신도 무너져내리는거 같아요~ 신부님은 얼짱이시니까 체중만 쪼끔 신경쓰시면 보기도 좋고 건강에도 좋을것 같습니다~ㅎ 신부님~건강하셔서 우리 곁에 오래오래 계셔주세요~퐈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