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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천둥번개를 치며 요란하게 내리던 장대비가 아침까지 이어진다.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 덕분에 선잠을 자서 그런지 몸이 찌뿌드드하다.
이른 아침, 호텔 2층 풀장 옆 벤치에서 바라보는 빗속의 메콩강변 풍경이
나그네의 마음을 축축하게 적신다.
비에 젖은 라오스와 태국 강변마을이 저만치 눈에 들어온다.
옅은 안개가 낀 빗속이라 그런지 멜랑콜리하면서도 아련하다.
바로 옆 식당에서 바케트 빵을 굽는지 향긋하면서도 고소한 냄새가
은은하게 코끝을 자극한다.
냄새가 침샘을 간질이며 몸이 따뜻해지고 가벼워진다.
이국적 풍경과 빗소리, 빵 굽는 냄새로 하루를 시작하는 행복한 아침이다.
한국인이 하는 반찬가게에서 배추김치와 오이소박이를 사고
우리의 1번 국도에 해당하는 방비엥 가는 도로로 접어든다.
시선을 붙드는 그림 같은 풍경으로는 방비엥이 라오스에서 으뜸이다.
때 묻지 않은 순수성에 중국의 계림을 연상케 하는 카르스트지형의
아름답고 기이한 풍광이 한 폭의 산수화 같다.
아무런 생각이나 걸리적거림 없이 자연에 묻히고 취해 지낼 수 있는 곳이다.
아름다운 산과 강에 덤으로 따뜻한 사람의 미소가 있어 장기여행자의
천국이라는 칭호가 붙을 정도다. 비엔티안서 루앙프라방 가는 길
중간에 있어 라오스 여행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한다.
많은 여행자들이 방비엥과 루앙프라방이 있어 라오스를 찾는다고 입을 모은다.
국토의 3분의 2이상이 산악지대라는데 시야를 가리지 않는 초록의 들판이
계속 이어진다. 사방이 사람의 손을 탄 인공구조물이 거의 없는 자연
그대로의 녹색천지다.
가끔 도로 변으로 꽃과 나무에 파묻힌 아담하고 예쁜 집들이 눈에 들어온다.
궁벽한 시골인데도 프랑스 식민지풍의 주황색 기와지붕 집이나
대나무와 목재로 지은 라오스의 전통가옥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얼핏 보면 별장촌이나 잘 가꿔진 전원주택 단지를 보는 느낌이다.
흔히 가난한 나라의 시골에서 접하는 가축과 함께 생활하는
쓰레기 오물 투성이의 거칠고 궁색한 모습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일부 산악지대의 소수민족마을은 예외이지만.
부드러운 곡선의 완만한 구릉 외에는 산하나 보이지 않는 드넓은 들판 길을
한 참 달리다 건어물 가게들이 빈틈없이 들어선 시장 같은 마을로 들어선다.
방비엥 가는 길에 있는 타흐아 젓갈 건어물 마을이다.
남늠호수 옆에 자리 잡고 있다. 남늠강에 댐이 건설되면서 마을이 강에 잠긴
소수민족 수몰민들이 이주해와 정착한 사연이 있는 마을이다.
전형적인 시골마을로 남늠호에서 직접 물고기를 잡아 훈연된 건어물이나
젓갈인 바텍을 만들어 팔면서 생계를 유지한다.
이 마을 젓갈이 종류도 다양한데다 맛이 좋고 생산량이 많아
라오스에서는 알아주는 시장이다.
흔히들 젓갈시장이라 말하는데 젓갈음식이 생소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 그런지 젓갈은 별로 없고 멸치, 마른 새우, 물소 육포,
각종 생선 말린 것 등 건어물 들이 대부분이다.
종류만 30여 가지가 넘을 정도로 다양하다.
꽤 넓은 도로 양 옆으로 200여m 가까이 건어물 가게들이 빈틈없이 들어서 있다.
크고 작은 갖가지 모양의 건어물과 비닐에 담은 젓갈, 대나무 밥통을 비롯한
죽공예품, 대나무 잎 찰밥 등 먹거리를 예쁘게 전시해 놓고 손님들을 기다린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낯선 풍경에 가게들을 둘러본다.
우기에 관광비수기여서 그런지 찾는 손님이 거의 없어 가게 주인들은
하릴없이 하품을 하며 파리만 쫒고 있다.
빈손으로 구경하기가 미안해 뭐라도 사주고 싶은데 살 만한 것이 없다.
음식 문화가 비슷한 태국 등 동남아 국가나 중국의 관광객들이
주요 고객으로 일부러 찾아와 사갈 정도란다.
꽤 알려진 관광명소 치고는 눈요기나 하며 잠시 쉬어가는
휴게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젓갈인 빠덱(padaek)은 라오스를 대표하는 전통음식으로
거의 모든 음식에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 샐러드나 각종 찌개, 간맞춤이나
조미용으로 라오스 음식에 안 들어가는 데가 없을 정도다.
우리의 김치격인 땀막훙(파파야 샐러드)이나 민물고기에 쌀을 넣어 삭힌
쏨빠 역시 라오스의 젓갈음식이다.
바다생선으로 만든 액젓인 남뿔라도 태국의 간판급 젓갈이다.
라오스 빠덱은 바다가 없다보니 민물고기로 젓갈을 담는다.
민물생선을 소금과 쌀겨를 섞어 단지에 넣어 최소 1년에서 3년을
절이고 삭혀 만든다.
각 나라, 지역마다 고유의 음식 문화를 가지고 있다.
기후, 풍토, 지형 등 자연환경에 따라 생산되는 먹거리가 다르고
조리나 보관 방법 등이 상이하기 때문이다.
젓갈음식은 역사가 깊고 먹는 나라도 폭넓다.
로마는 물론 인도, 동아시아 국가들의 고서에 젓갈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특히 무덥고 습한 날씨로 쉽게 부패해 신선도 유지가 어려운 라오스 등
인도차이나 반도지역에 젓갈음식이 발달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쉽게 상해 버려진 음식 중에 효소에 의해 자연적으로 발효가 돼
새롭고 독특한 맛을 지닌 또 다른 음식이 되는 것을 발견하면서
젓갈음식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도 동남아 못지않은 다양한 젓갈음식문화 보유국이다.
염장과 발효에 의해 숙성된 음식으로 된장, 고추장은 물론 조개, 생선 젓갈과
쌀밥을 넣어 삭힌 식혜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생선 젓갈만 해도 아가미, 뼈, 알, 내장, 껍질 등 거의 모든 부위로 젓갈을 만든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젓갈이 폐백음식으로 쓰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일본의 후나즈시(민물붕어에 쌀밥을 넣어 삭힌 젓갈)나 이태리의 앤초비(멸치 등
생선을 소금에 절인 서양식 젓갈) 등도 젓갈음식의 일종이다.
방비엥은 산과 강을 품고 있는 아담하면서도 예쁜 시골마을이다.
관광객들이 북적이는 관광지임에도 불구, 비수기라 그런지 의외로
조용하고 한적하다. 젓갈마을서 30여분 달려오는데 흐르는 물길 옆으로
여인의 젖무덤 같은 봉우리 들이 우뚝우뚝 솟아 강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떠날 때 아쉬워 몇 번씩 뒤돌아본다는 벵비엥.
강변 바로 옆 빌라형의 숙소(Thavonsouk Resort)로 들어서는데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숙소 발코니 앞으로 강과 마주한 잔디밭에는
흰색의 예쁜 그네와 벤치가 놓여있고 주위로는 이름 모를
열대 꽃나무들이 꽃 울타리를 치고 있다. 뜨거운 햇볕 영향인지
열대 꽃들은 꽃모양도 예쁘지만 색깔이 다양하고 강렬하다.
바로 아래 왼편 강변에는 날렵하게 생긴 카약보트들이 줄지어 매어있다.
방비엥서 아주 좋은 편에 드는 리조트도 아닌데 5성급 호텔이 저리 가라할
정도로 숙소도 정갈하고 조경이나 주변풍광도 아름답다.
50달러를 라오스 돈 39만5천 낍에 환전한다. 3일 동안 쓸 잡비인데 충분할 것 같다.
찰밥과 몇 가지 밑반찬을 사가지고 블루 라군(Blue Lagoon)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탐푸캄동굴(Tham Poukham Cave)로 달려간다.
전용차가 있다 보니 흥정할 일 없어 편하고 기동력이 좋아 시간낭비가 없다.
차 한 대 겨우 지나가는 두 개의 쇠줄다리를 건넌 후 산봉우리를 양 옆에 낀
비포장 황톳길의 들판을 20여분 달려간다.
저만치 아치형의 다리 밑에 옥색 물빛이 그림 같은 블루라군이 보인다.
물 옆 큰 나무 밑에 돗자리를 깔고 찰밥에 라면 까지 끓여 점심을 맛있게 먹는다.
소풍 나온 기분이다. 산에 나무그늘에 물이 있어 그런지 시원하다.
블루라군하면 먼저 부룩 쉴즈 주연의 영화가 떠오른다.
처음에는 영화 블루라군을 라오스 이곳서 찍어 생긴 지명인 줄 알았다.
그러면서 영화 속의 아름답고 순수한 태곳적 풍광과 선남선녀의 때 묻지 않은
사랑이 상상으로 펼쳐지면서 방비엥과 영화 블루라군이 오버랩
됐던 게 사실이다. 이런 연상작용 때문에 전 세계의 청춘남녀가 영화 속의
환상을 쫒아 블루라군을 찾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블루라군이라는 지명은 이 영화가 세계적으로 히트를 치면서
관광홍보차원에서 자연경관이 일부 비슷한 탐푸캄 동굴에 갖다 붙인 지명이다.
아직도 라오스 현지인 중 일부는 블루라군 하면 잘 모르고
탐푸캄이라 말해야 알아듣는다.
4~20m넓이의 깊은 냇가로 물빛이 오묘한 옥색이다.
젊은이들이 마음껏 끼를 발산하며 놀 수 있는 자연이 만든 천연 풀장이다.
다이빙과 수영에 타잔놀이도 할 수 있는 낭만적인 물놀이 터다.
원두막이나 풀밭에 앉아 티 없이 젊음을 즐기는 청춘남녀나 비키니 입은
서양처자들의 늘씬한 팔등신의 몸매를 감상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물 위로 늘어진 3~4m 높이의 나뭇가지 위에서 뛰어내리는 다이빙은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인기다.
나뭇가지에 매 달린 옥색 물 위의 그네에 앉거나 매달려 사랑을 속삭이는
선남선녀의 모습은 영화 블루라군의 한 장면 같다.
또 늘어진 줄을 잡고 날라 가 물속으로 뛰어드는 타잔놀이도 인기메뉴
중에 하나다. 물고기들도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떼 지어 몰려다닌다.
떠들고 웃고 비명을 지르며 즐거워하는 젊은이들의 몸짓과 표정은 바라만
보아도 기분이 좋다. 블루라군은 푸른 산호초 호수 혹은 푸른 석호로 번역이 된다.
계곡물 뒤로는 열대 우림이 빽빽이 우거진 제법 높은 가파른 바위산이
버티고 서있다. 급경사 7부 능선쯤에 있는 천연동굴에 가기위해
1만낍을 주고 입구에서 헤드랜턴을 빌린다.
대나무 난간을 붙잡고 가파른 바위 길을 오르는데 바닥이 물기로 미끄러워
위험하기 짝이 없다. 동굴이 제법 크고 넓다.
입구서 10여m 들어가면 왼쪽 넓은 공간 아래 부처님이 모셔져있고 오른쪽으로는
동굴이 계속 이어진다. 한국인 단체관광객도 간혹 눈에 띈다.
5시 쯤 방비엥으로 돌아오면서 시골의 목가적 풍경에 다시 한 번 매료된다.
초록의 들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소떼와 일하는 농부들, 봉긋봉긋한
봉우리 위에 떠있는 서 너 개의 열기구 풍선은 일상의 모습일 텐데
나에게는 아주 특별한 풍경으로 눈에 잡힌다.
자유여행자들은 대개 뚝뚝이나 자전거, 경주용 바이크를 대여해 방비엥
유람에 나선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데 1리터 당 1200원으로
물가에 비하면 무척 비싼 편이다.
리조트에 도착하니 어스름이다.
갑자기 검은 먹장구름이 몰려오더니 천둥번개와 함께 스콜(소나기)이
한바탕 쏟아진다. 비구름이 지나가자 해질 녘 서쪽 하늘이 황금빛이다.
건너편 외봉우리 산들이 석양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며 강 위에 멋진
반영을 그린다. 강 물에 잠긴 황금빛 산이 잔물결에 살랑살랑 흔들리며
파문을 일으킨다. 선경이 따로 없다.
너울처럼 겹겹이 이어진 카르스트지형의 봉우리들이 강에 울타리를 치고 있다.
이 봉우리의 띠가 베트남 하롱베이, 중국의 계림까지 장관을 이루며 이어져 있단다.
방비엥의 원래지명은 무앙송(MouangSong)이었다.
프랑스 식민 지배를 받던 1890년대에 현재의 지명으로 바뀐다.
현지인들은 왕위양이라고도 부른다. 라오스에는 지명이 두 개인 곳이 많다.
이는 프랑스인들이 라오스현지발음을 프랑스식으로 표기한 것을
영어식으로 읽다보니 생긴 현상이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었던 1964년부터 1973년까지 미국이 이곳에 공군 기지를
건설하고 도로와 활주로 등 기반 시설을 갖추면서 마을의 규모가 커졌다.
쏭강을 끼고 한쪽으로 리조트, 호텔, 음식점등 마을이 들어서 있다.
건너편은 열대우림에 수묵화 같은 카르스트지형 산들이 여행자들의
눈을 호사시킨다. 방비엥은 싼 물가에, 사람 착하지 거기에 액티비티한
쏭강 캬약킹과 동굴탐험, 열기구 타기 등 볼거리, 먹거리, 놀 거리가 다양하다.
돈이 충분치 않은 배낭여행자들에게는 인기 있는 휴양지이다.
숙소 잔디밭 그네에 앉아 계림을 닮은 산세와 쏭강을 붉게 물들인 노을을
마냥 바라본다. 참 오랜만에 맛보는 아늑한 자각의 외로움이다.
들리고 보이고 느끼는 모든 것이 흐르는 물처럼 편하고 좋다.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상선약수(上善若水) 무위자연(無爲自然)이 떠오른다.
내일은 벤치에 앉아 책을 읽으며 음악을 들어야지. 여기에 라오맥주 한잔을
곁들이면 더할 나위없을 것 같다.
긴 카약 한 척이 황금빛 물살을 가르며 달리는 모습이 꿈 속 같다.
시간이 멈춘 듯한 고즈넉한 분위기는 이렇게 방비엥의 어스름 속으로
잠겨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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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같은 불교권이라 해도 탁발하는 모습은 늘 불심을 일깨우는 힘이 있다.........!
정말이지 낙원이 따로 없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