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용기

[최명숙]

딸의 용기  /  (가온)최명숙

비록 내 몸으로 자식을 낳은 적은 없지만, 내게도 딸이 있다. 영적인 딸이다. 장애인 인식 개선 강사 중에서도 ‘일타강사’로 활동하는 그 아이는 어릴 때부터 내게는 딸이자 소통하는 친구였다.

그 아이가 어릴 때부터 내가 자주 해왔던 말이 있다.

“난 사회에 장애인 인식개선을 주장하기가 부끄러워질 때가 있단다. 그동안 수많은 장애인들이 인식이 바르지 못한 가정에서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지 않니? 먼저 가족의 인식이 개선되면 사회적 인식도 자연히 개선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게 당연한 순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를 포함해서 내 주변의 장애인들은 하나같이 사회에 대한 권리 주장은 당당하게 했지만, 가족에게는 그러지 못했다. 집안의 편의 시설만 해도 좀 더 적극적으로 강하게 요구했더라면 반영될 수도 있었겠지만, 자신의 존재가 가족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주연이 아닌 조연의 자리로 물러났는지도 모른다.

당시 선교회 활동에 열심히 참여했던 20대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하반신은 장애를 가졌지만, 상반신은 건강했기에 수동 휠체어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지역을 누비고 다녔다. 그런데 화장실이 양변기가 아니었기에 가족들은 그에게는 방에서 따로 요강을 사용하게 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분노했다. 건강한 부모 외에도 건장한 청년들이 가족으로 구성된 그 집에서 왜 양변기 하나 설치해 줄 수 없었을까. 비록 몸에 장애는 가졌지만, 한창 피어나는 청년의 정서를 가졌던 그는 오랜 세월, 자신의 뒤처리를 어머니가 해 줄 때마다 얼마나 무력하고 비참했을까.

그가 자신은 배변을 15일에 만에 한 번씩 한다고 했지만, 그게 생리적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인지, 아니면 상황에 맞도록 스스로 길들인 현상인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 후,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갖게 된 그는 이사할 때마다 집주인의 양해를 받아 좌식 변기를 직접 설치했다고 한다. 그러나 명절에 부모님이 계시는 집에 올 때면 계단이 있는 넓은 2층 방에서 가족이 모이기 때문에, 두 사람 모두 장애를 가진 그 부부는 어린 조카들이 보는 앞에서까지 기어서 계단을 오르내렸다고 하니 그럴 때마다 그들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얼마나 불편했을까.

그러한 현상은 가족들이 비정해서라기보다는 비정상적(?)인 신체조건이 정상적(?)인 생활공간과 맞지 않아서 어쩔 수 없다는 잘못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신체조건에 맞도록 생활공간을 개선하는 데에 이르지 못한 때문이다. 그러므로 ‘장애인 인식개선’은 반드시 당사자의 입장과 정서에서 시작되어야 할 일이다.

오늘날까지도 장애인을 그럴 수밖에 없는 존재로 구분하고 포기했다면, 그래서 여전히 2등 국민이나 조연쯤으로 여겼다면 ‘편의시설’이나 ‘인식개선’이라는 용어조차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약자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수준 높은 의식과 용기가 수준 높은 사회를 만들어 가게 된 것이다.

딸아이가 친정에서는 주연이었지만, 시댁에서는 조연이었을까. 가족 모임이 있을 때마다 미리 장소에 대해서 참고해 주기를 부탁했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고관절을 사용하지 못하는 그 아이의 여건이 배려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좌식탁자에 앉을 때마다 그 아이는 시댁 어른들 앞에서 휠체어에서 바닥으로 내려앉는 일과 다시 휠체어에 오르는, 남편과 마치 씨름이라도 하듯이 치루는 그 힘든 거사(巨事)를, 관람(?)이라도 시키듯이 거듭 확인시켜 줄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 참석을 거부하자 그때부터 장소를 정하는 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대단한 용기였다. 친정도 아닌 시댁에서의 그런 행동이야말로 혁명가다운 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 나은 상황을 만들어 간다는 것은 어쩌면 그렇게 모든 어려움과 불화를 각오하고라도 단호하게 행동으로 밀고 나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현상은 가족들이 비정해서라기보다는 비정상적(?)인 신체조건이 정상적(?)인 생활공간과 맞지 않아서 어쩔 수 없다는 잘못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신체조건에 맞도록 생활공간을 개선하는 데까지 이르지 못한 때문이다. 그러므로 ‘장애인 인식개선’은 반드시 당사자의 입장과 정서에서 시작되어야 할 일이다.

오늘날까지도 장애인을 그럴 수밖에 없는 존재로 구분하고 포기했다면, 그래서 여전히 2등 국민이나 조연쯤으로 여겼다면 ‘편의시설’이나 ‘인식개선’이라는 용어조차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약자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수준 높은 의식과 용기가 수준 높은 사회를 만들어 가게 된 것이다.

딸아이가 친정에서는 주연이었지만, 시댁에서는 조연이었을까. 가족 모임이 있을 때마다 미리 장소에 대해서 참고해 주기를 부탁했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고관절을 사용하지 못하는 그 아이의 여건이 배려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좌식탁자에 앉을 때마다 그 아이는 시댁 어른들 앞에서 휠체어에서 바닥으로 내려앉는 일과 다시 휠체어에 오르는, 남편과 마치 씨름이라도 하듯이 치루는 그 힘든 거사(巨事)를, 관람(?)이라도 시키듯이 거듭 확인시켜 줄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 참석을 거부하자 그때부터 장소를 정하는 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대단한 용기였다. 친정도 아닌 시댁에서의 그런 행동이야말로 혁명가다운 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 나은 상황을 만들어 간다는 것은 어쩌면 그렇게 모든 어려움과 불화를 각오하고라도 단호하게 행동으로 밀고 나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내 경우에도 가족 모임이 있을 때면 휠체어가 갈 수 없는 계단 등은 가족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힘들게 업히거나 물건처럼 들어서 옮겨질 때마다 초라한 몸이 더 구겨진 채 안쓰러운 눈길을 받게 되는 상황이 싫었지만, 열심히 도와주는 가족들을 생각해서 견딜 수밖에 없었다.

비록 불편한 몸이지만 자세가 당당하고 편하면 마음의 구김살도 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자신의 휠체어를 친구들의 키만큼 높였다는 오체불만족의 주인공 오토다케의 마음을 더욱 공감하게 된다. 장애가 있다고 해서 인간의 기본적인 자존심마저 없겠는가!

딸아이에게 말했다. “얘, 난 친정에서도 그러지 못하겠던데 어떻게 시댁에서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니? 참, 대단하구나.” 그러자 딸아이는 대답 대신 ‘늘 가족들의 인식개선이 먼저라고 하지 않으셨나요?’라는 눈빛으로 웃었다.

어느새 햇살이 봄빛을 닮아가고 있다.

[한수명]

미처 생각지 못한 생각을 일깨워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최명숙]

공감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