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평화 고운울림 개인후기] 낯설지 않는 그 이름, 광주

[채송]

5월 17일 나무

아슬아슬하게 광주에 가는 버스에 탑승했다. 광주는 나에게 아주 친숙한 곳이다, 친할머니댁이 광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전야제를 보러 갔다. 

많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서 무대 거의 앞까지 왔다.

흰 천을 온몸에 감은 채 엎드려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무덤 모양같았다.

흰 무덤들 사이로 흰 옷을 입은 예술가가 춤을 추고 있었다.

몇 번 정도 붉은색 연기가 나왔는데 눈, 코가 매워서 마스크를 끼고 최대한 몸을 낮추어서 피해다녔다. 

수류탄과 비교도 할 수 없겠지만 '그땐 이랬었구나' 실감을 할 수 있었다.

전야제에서 가장 인상에 남은 건, 전일빌딩에서 천에 빨간 글씨로 독재타도- 등이 적혀있는 기다란 천을

창문에서 펼치면서 청년들이 구호를 외치는 장면이었다.  

꼭 그날 5월의 광주에 온 것 같았다. 

구수한 사투리의 사회자 분이 "강원도에서 오신 분~?" 하길래 약간 부끄럽지만 손을 들었다.

그러자 내 옆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아이구 잘 왔어, 고마워요" 라고 말해주셨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렇게 살갑게 대해주셔서 정말 고마웠다.

뒤에서 어떤 아저씨가 "앉자-!!!!!!" 이러니까, 사람들이 "앉자!!앉자!! 앉자!!" 를 외쳤다. 

서있다간 욕 먹을 기세라 냉큼 앉았는데 그 상황이 웃겼다. 

전야제는 전체적으로 즐거웠다. 지루할 틈 없이 좋은 무대가 계속 올라왔다. 

"5.18 전야제"는 광주에 사는 누구라면 즐길 수 있고 또 뜻깊은 축제인 것 같다. 

우리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머물렀는데 마당부터 집안 화장실까지 재밌는 곳이었다. 

빨간 카펫이 깔려있는 거실에 푹신한 쇼파가 있고, 무엇보다 참 쓸모없이 공간을 차지하는 장식품들, 가구들이 많았다. 

마치 <친구네 친척집에 놀러온 느낌> , 촌스럽지만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화장실에 들어가면 반듯한 네모 공간이 아니라 벽이 대각선으로 기울어져 있다. 

다락방 느낌이 조금 났는데 마녀 집의 화장실같았다. 새하랑 나만 이 집을 마음에 들어한 것 같다.

18일 쇠

계획 세우면서 설렜었던 자율일정! 새하, 성은언니랑 함께했다.

2018년 5월 18일은 광주민주항쟁이 일어난 몇 십 주년이기도 하며,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음원이 나오는 날이었다.

노래와 뮤직비디오가 어떨지 너-무 궁금했지만 순례 동안 그 마음을 꾹 참기로 했다.

하늘에선 맞아도 젖지 않을 비가 내렸다.

<5.18 민주화운동기록관>을 첫 스타트로 끊었다. 사전공부를 하고 가서인지 익숙한 내용들이 많이 보였다.

그럼에도,

남편을 기다리다 총에 맞은 임산부 - 계곡에서 놀다 죽은 중학생 - 헌혈하고 나오다 죽은 여고생 - 

계엄군에 의해 죽었지만 사진조차 없어 영정사진이 무궁화인 중학생 등 잊지 못할 것 같다. 

여기서 본 영정사진들은 다른 전시관에서도 계속 마주쳤다.

그래서 민주묘역을 둘러볼 때 낯잊은 얼굴들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 다음으로 둘러본 곳

-김병하 작가 그림 전시전 : 보고 있으면 시골 바람이 불어올 것 같은 상큼한 아기자기한 그림들

-<베트남에서 베를린까지> 전시전 : 아무것도 모르고 그림만 봤을 땐 어떤 그림인지 짐작도 안 갔다. 설명을 들은 게 정말 좋음! 

-전남도청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건물에 들어가 관람 

  아쉬웠던 점 : 리모델링 된 전남도청 안이 너무 아쉬웠다. 공사하기 전에는 벽에 총알 자국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젠 그냥 새 건물이 되어버렸다. 

                 오늘 여러 전시관을 돌면서 느낀 건, 광주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잘 보존되었지만, 

                 건물 안에 들어가 관람해보면 별 게 없다. 밖에 건물은 큰데 안엔 부실하단 느낌을 받았다.

                 우리나라가 세심하게 보존하거나 관리하는 작업을 잘 못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번에 역시 아쉽다는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오늘 일정의 하이라이트인 윤슬베이커리에 우여곡절로 도착했다만! 

개인적으로 빵은 한살림이랑 자연드림 빵이 최고인 것 같다.

19일 흙

<그대는 좀 아시나요?>

고려인 마을이라니..두근두근 바깥밥상으로 뭘 먹을지 기대됐다. 대부분의 음식에는 고추기름이 둥둥 떠있었고 맛있었다. 

근데 고려인들은 식사를 가볍게 하나? 레스토랑처럼 엄청 조금만 나와서 허기가 안졌다.

그 다음으로 고려인 마을 대표분을 만나 애기를 들었다. <믿거나~말거나> 특유의 말투가 재밌으셨던 분이었다.

앞으로 고려인 3,4 세대는 현재 법이 바뀌지 않는다면 한국에서 추방당한다고 한다. 

나랑 또래인 친구들이 이 땅에서 언제 떠나야할지 불안에 떨지 않고, 쭉-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 

문재인 정부가 바꿔야할 문제가 참 많은 것 같다..! 

대표님이 초스피드로 마을 구경을 시켜주시고 우리는 <작은소리 음악회>를 보러 전남도청으로 갔다.

↓아래는 음악회 보면서 끄적인 낙서들

♬믿고 듣는 해민언니가 랩도 해줬음 좋겠다,,...

 

정현오빠는 지금 기타를 치고 있습니다.

20일 해

<늘 아쉬움만 남는 연합예배>

말씀 나눔 때 정말 안 졸려고 노력했는데 말들이 귀 밖에서 튕겨나갔다. 

달팽이관이 애기를 거부하는 것 같았다.....

철호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는 자리라 최대한 눈을 부릅떴지만 결과는, 어떤 애기를 하셨는지 기억이 안난다. 

늘 다짐하는 거지만 다음번엔 끝까지 졸지않고 들어보고 싶다...

말씀 나눔 해주셨던 다른 목사님이 뜮금없이 "같이 아멘---- 해봅시다" 이러셨다. 

자기 말과 생각이 다르다면 "노멘--" 해도 된다고 하셨는데, 

정말 뭐지...... 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건데 교회에서 "믿습니까-",  "아멘"을 자주 쓴다고 한다. 

약간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순례 기도회를 하러 민주묘역으로 이동했다. 묘역 뒤에 가족들이 쓴 글을 보는데 가슴이 먹먹해졌다. 

묘들이 셀 수도 없이 정말 많았다. 

나는 이번 기도회에서 노래를 부를 때 서로의 목소리가 잘 들렸음 하는 바램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동그랗게 선 원도 크고, 사람도 많다보니 가까이 서있는 사람 목소리만 들렸다. 

그게 아쉬워서 계속 신경이 쓰였다.

갔다와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닥 신경쓸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다음번엔 기도하는 마음에 집중할 것!!

정은 선생님이 왕추천하셨던 "약초밥상"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알고보니 엄청 유명한 곳이었다. 

주인분의 설교를 들으면서 먹은 약초 비빔밥은 맛있었다. 

다만 귀엽게 생겼길래 무심코 밥그릇에 넣었던 <산초>라는 아이를 씹는 순간 머리가 띵-하면서 속이 울렁거렸다. 

다신 다신 다시는 절대로 만나지 말자, 산초야,,,,,

21일 달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천왕봉을 찍게 될 친구들이 먹을 수프를 끓였다. 

애들이 모두 떠난 다음, 잠든 해민언니 옆에서 9시까지 푹 잤다. 

대영, 지영, 해민 동료와 함께 바람이 정말 시원하게 부는 곳으로 가서 짧게 산책을 했다. 

그리고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했다. 

여기 밭들은 계단식 모양에 제 3대 마야 문명에 나올 것 같이 생겼다. 

이렇게 예쁜 시골 마을은 처음일 정도로 아름다웠던 곳

산 중간에 내려온 정은 선생님과 새하가 합류해서 자연드림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마침 춘향제를 하길래 잠깐 구경갔다. 입장료가 있어서 공연은 보지 않고 누구 이모(잘 모르는 분인데 누리이모?)분 언니분이 하시는 독립서점에 갔다. 독립서점을 정~말 좋아하는 나로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느리고 여유로운 소풍을 다녀온 달날이었다.

22일 불

<초록초록한 민들레>

찻집/온천 팀 중 나는 당근 온천!

냉탕에서 숨 참기도 하고~개수영도 치고~ 배영도 하고~ 물장난도 쳤다!

아주 오랜만에 아주머니들 눈치 안보고 실컷 놀았다.

전에 웹툰에서 봤던 <때밀이 기계>가 있었는데 약간 비위생적이라 시도는 하지 않았다만, 본 거 자체로 만족했다.

개운한 몸으로 민들레 학교에 가서 교장 선생님이 둘러다니며 소개를 해주셨다. 

만화책이 가득한 도서관, 귀여운 새끼 돼지와 염소들, 공구가 완벽히 정리된 창고가 부러웠다. 

홍천보다 더 시골 같은,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살면 어떨까. 

완벽한 시골인이 되게 만들어주는 환경인 것 같다.

강당에 들어가 학생들의 학교소개를 들었는데 애들끼리 똘똘 잘 뭉치고 잘 노는 분위기인 것 같았다. 

방에서 애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 우리방은 질문이 끊길때마다 어색한 침묵이 돌았다. 

약속한 시간이 될수록 난 얼른 여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질문하기 전에 '아 이걸 해? 말아?'  내적갈등을 심하게 하는데, 질문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임을 알게 됐다. 

여기 여자애들이 너무 부끄럼을 타서 계속 언니미소를 짓게 했다. 애들이 너무 귀여웠다.

땀 흘리면서 여러 가지 게임을 하다보니 어느새 떠나는 시간이 됐다. 그새 친해진 중학생 세린이랑 번호를 교환하고 꼭 전화하기로 약속했다. 이 만남이 여기서 끝이 아니었음 좋겠다.

23일 물

<기분 좋은 그 학교>

작년에 다녔던 학교에서 "작은 학교"에 교류 겸 모내기를 하러 갔는데 친해진 친구가 있었다. 

작은 학교에 가서 한 명씩 돌아가면서 자기 소개를 하는데 왠지 낯있는 친구 하나가 있어서 

계속 쳐다봤는데 그 친구가 맞았다!!!

그때가 마지막일줄 알았는데, 다시 만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정말 세상은 좁고 인생은 모르는 것 같다~

저녁에 애기 나누기 시간 때, 이 친구들을 보면서 좋은 영향을 받았다. 관계가 끈끈하고 남녀 구분없이 잘 섞인 모습이 부러운 점이었다. 

헤어질 땐 항상 말문이 터지는지 너무 아쉬워서 인사한 애랑 또 인사하고 또 안고 연락처를 공유했다.

친구들이 좋아서 작은 학교가 더 좋게 느껴진다. 

그 친구를 다시 만난 것처럼 언젠간 다른 친구들도 또 만날 날이 오겠지, 작은 학교는 계속 기분 좋게 마음속에 남을 것 같다.

24일 나무

홍천으로 돌아오면서 성은언니랑 우리 학교도 페미니즘 수업을 열자는 애기가 나왔다. 

작은 학교에선 페미니즘 붐이 일어나 모두 수업을 듣는다고 했다. 

여성의 관점으로만 보면 남자애들이 이해를 못 할 수 있으니까, 남자 관점의 책도 읽는다고 한다. 

다른 친구들이나 나나 페미니즘에 관심이 아주 많아서 자주 애기는 하는데 공부할 자리는 없었다.

없으면 만들라는 말이 있다, 여름학기 때 친구들 의견 들어보면서 구체적으로 수업 계획을 세워 볼거다.

그래서 가을학기 때 꼭 페미니즘을 만들거다.

아마 이 급진적인 계획은 작은 학교 친구들의 영향이 크다.

마치면서,----------------------------------------------------

한 달에 한 번 떠나는 순례는 나한테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될 것이다.

친구같은 순례와 더 성의있게 만나가고 싶다. 

                                         앞으로 순례에서 그림을 많이 끄적거려서 늘 올리겠습니다

[승화]

와.. 생생한 날적이.. 그림끄적이도 재미있어요! 첫번째 그림에서 노래부르는 아저씨는 누굴까? 음악회를 놓쳐서 모르겠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