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투를 빈다 - 김어준
행복할 수 있는 힘은 애초부터 자기 안에 내재되어 있다. 그러니 행복하자면 먼저 자신에 대한 공부부터 필요하다. 세상사 결국 다 행복하자는 수작 아니더냐.
스웨덴 교과서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인간에겐 소유욕과 존재욕이 있는데 소유욕은 경제적 욕망을, 존재욕은 인간과 인간이,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하는 의지를 뜻한다고. 그런데 그 존재욕을 희생해 소유욕을 충족시키는 건 병적사회라고. 공교육이 처음 가르치는 게 그런 거다. 사회 시스템 역시 그 가치관에 기초해 구축되고
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그 기본 태도에 관한 입장이어야 한다. 우린 그런 거 안 배운다. 대신 성공은 곧 돈이라는 거, 돈 없으면 무시당한다는 것, 그 경쟁에서의 낙오는 인생 실패를 의미한다는 거
이 땅에서 어떻게 살 건지는 스스로 깨치는 수밖에 없다. 그러자면 가장 먼저 필요한 게 자신이 무엇으로 만들어진 인간인지 부터 아는 거다. 언제 기쁘고 언제 슬픈지, 무엇에 감동하고 무엇에 분노하는지, 자신을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윤곽과 경계가 파악된 자신 중, 추하고 못나고 인정하기 싫은 부분까지, 나의 일부로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꿈이니 야망이니 거창한 단어에 주눅 들거나 현혹되거나 지배당하지 말고, 그저 자신이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들, 가보고 싶은 것들, 만나보고 싶은 자들 따위의 리스트를 만들라. 그리고 그 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가라. 사람이 왜 사느냐. 그 리스트를 지워가며 삶의 코너 코너에서 닥쳐오는 놀라움과 즐거움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최대한 만끽하려 산다. 최소한 나는 그렇다
행복에 이르는 방도의 가짓수가 적을수록 후진국이다. ‘747’과업을 못 이룬 나라가 아니라
라캉이란 자가 있다. 프랑스 작자다. 이 양반이 이런 소릴 했다. 아이는 엄마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아이는 엄마 만족시키려고, 엄마가 원한다 여기는 걸 자신도 원하게 된다는 거다. 이게 골 때리는 게, 내가 뭔가를 원하는 게 엄마가 원하니까 원하는 게 된 건지 아니면 내가 그냥 원하는 건지, 그 구분이 안 가는 거라. 그리고 이걸 일반화해,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했다
당신은 여태 부모를 비롯한 다른 누군가의 욕망을 위해 당신 인생 대부분을 소비하고 있었다는 거다. 그게 다 자신의 욕망인줄 알고. 사실 인간은 평생을 그렇게 누군가의 욕망에 호응하느라 부산하다. 삶 자체가 인정 투쟁이라고. 하지만 모든 건 결국 밸런스의 문제다. 우리나라엔 남의 욕망에 복무하는 데 삶 전체를 다 쓰고 마는 사람들, 자기 공간은 텅텅 빈 사람들, 너무나 많다.
당신만의 노선을 찾고 그리고 거기서 자존감, 되찾으라.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 쉽지도 않다. 하지만 그 길은 당신 스스로 찾는 수밖에 없다. 다만, 결코 친절해지진 말라는 거. 오히려 이제부턴 차근차근, 남의 기대를 저버리는 연습을 하라는 거. 자신의 욕망의 주인이 되시라.
사람이 나이 들어 가장 허망해질 땐, 하나도 이룬 게 없을 때가 아니라 이룬다고 이룬 것들이 자신이 원했던 게 아니란 걸 깨달았을 때다
자존감은 자신감과 다르다. 자신감이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라면 자존감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부족하고 결핍되고 미치지 못하는 것까지 모두 다 받아들인 후에도 여전히 스스로에 대한 온전한 신뢰를 굳건하게 유지하는 거.
난 이제 자신이 온전히 자기 욕망의 주인이 된다는 게 얼마나 힘이 드는 것인지 안다. 그래서 이제 누구나 기대를 저버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대를 저버리는 연습 없이는, 평생을, 남의 기대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쓰고 만다. 단 한번밖에 없는 삶에 그만한 낭비도 없다
자기 하고 싶은 것 좇으며 살면 되는 거냐. 그것만으로는 2프로 부족하다. 거기에 스타일이 있어야 한다. 복식이든 행동이든 삶의 패턴이든, 그 모든 게 멋대가리가 없으면 무슨 소용이랴. 다 멋지자고 하는 건데 말이다.
될성 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한 우물을 파라? 아니다. 떡잎만 봐선 모른다. 떡잎은커녕 나이 서른 넘어도 몰라. 우리 공교육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사유하고 각성할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엔 대학졸업하고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원하는 게 뭔지,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그런데 어떻게 한 우물을 파. 그러니 호기심 가고 궁금한 건 뭐든 닥치는 대로 덤벼들 보시라. 인생790년 못 산다. 하고 싶은 건 겁먹지 말고 다 해봐
모든 선택은 선택하지 않은 것들을 감당하는 거다. 사람들이 선택 앞에서 고민하는 진짜 이유는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선택으로 말미암은 비용을 치르기 싫어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우주 원리다. 뉴턴은 이걸 작용-반작용이라 했다
기선성이란 신학 용어가 있다. 인간 만사 하나님이 주도한다는 의미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라고 노래하며 인간의 걱정을 하나님의 뜻에 모두 맡긴다는 원리가 여기서 비롯됐다. 삶 자체가 신에 대한 예물인 것이다. 서구는 르네상스 이전까지 이 원리에 의해 사회의 제반 규범이 구동됐다.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냥 그 일을 하는 거다. 실패를 준비하며 핑계를 마련해두는 데 에너지를 쓸 게 아니라, 토 달지 말고, 그냥, 그 일을 하는 거. 그게 그 일을 가장 제대로 하는 법이다. 그런다고 하고 싶은 대로 다 되느냐.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겠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는 거지. 하지만 해보지도 않는 데 그걸 도대체 어떻게 알겠나. 하지도 않고 하고 싶은 대로 되길 바라는 건 멍청한 게 아니라 불쌍한 거다.
몇 년 전 (아도니스콤플렉스)란 책이 미국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아도니스-얘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꽃미남인데 어떤 넘인지는 직접 찾아보시고-는 자신의 외모를 가꿔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우울증까지 겪는 현대의 남성 군상을 상징함
자식이 부모에게 갖춰야 할 건, 효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예의 그리고 애틋한 연민이다
‘누군가의 자식’이 아니라 ‘누군가’가 되어야 한다
스스로 감당할 수 있다면 어떤 결정도 잘못된 게 아니다
우린 이기적인 건 죄악이라 믿도록 훈육되었다. 하지만 이기심은 모든 생명의 존재 원리다. 배타적으로 삼투압하지 않는 나무는 말라 죽는다. 여기까진 기본이다. 사실은 어느 누구도 ‘이기적이지 말라’는 계명을 범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기심은 우리 모두의 원죄가 된다. 우리 사회는 그렇게 돌아간다. 이건 정치의 음모다
이기적 권리가 충돌할 때 그 갈등을 해결하라고 있는 게, 정치다. 이기적 욕구는 당연히 기본이라 인정하고 그로 인한 갈등을 어떻게 조절해 질서를 조직하느냐가 중요하다
사람들이 선택을 못하는 진짜 이유는 답을 몰라서가 아니다. 그에 따르는 비용을 지불하기 싫어서다.
사람이 나이 들어 가장 후회될 땐 잘못된 선택을 되돌아볼 때가 아니라 그때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했다는 걸 알았을 때다
사랑은 복종이 아니다. 그걸 요구하는 순간 폭력이 된다
결혼에서 가장 먼저 할 질문은 ‘누구랑’이 아니라 ‘나는 언제 행복한 가’라고
배낭여행 커플의 열에 일곱 정도는 여행 후 헤어진다. 이건 수년간 수백의 커플을 통해 축적된 통계치요, 경험칙이다. 여행 중 난생 처음 겪는 심각한 상황에 봉착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각자 타고난 본연의 문제 해결능력이 그 바닥을 드러내게 된다. 그 바닥의 깊이와 넓이는 개인차가 엄청나다. 그저 한 마리 짐승이 위기에 처했을 때 본능적으로 타고난 동물적 능력으로 반응하는 것처럼 각자 지닌 본연의 문제 해결 능력이 드러나는 것이다
예산 부족하고 일정 자유로운 배낭여행에선 돌발 상황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문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문제를 처리해내는 ‘그 놈’들의 해결 능력이 문제가 되는, 그런 날들이 연속되는 과정에서 커플 중 열에 일곱은 ‘그 놈’들의 실체를 목격하게 되는 거다. 그걸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처자들이 아예 현지에서 헤어지게 되는 거고
결혼 생활과 배낭여행은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일상의 연애에선 결코 알 수 없었던 약점과 한계가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된다는 점이다. 해서 난 결혼의 자연이혼률을, 배낭여행의 커플 브레이크 비율인 70%대라 본다.
그러니 누군가와 심각하게 결혼을 생각한다면 그 전에 최소 보름 이상, 한 달 정도면 충분하고, 배낭여행 한번은 다녀오시라. ‘그 놈’이 누군지 알게 될테니까. 단, 반드시 타이트한 예산으로 가야 한다. 돈으로 모든 위기를 무마해버리면 ‘그 놈’바닥이 안드러난다. 그렇게 해서 최소한 ‘그놈’의 바닥은 파악하고 결혼을 하든 말든 해야할 것 아닌가.
변치 않는 사랑 따위는 영화 속에나 있는 거다. 혹은 아주 더럽게 운 좋은 작자들만이 아주 드물게 누리는 사치고. 애들은 보고 싶은 거만 보고, 어른은 보고 싶지 않은 것까지 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