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16:8~12
맥추감사절 설교
절기 중 첫 번째 절기인 유월절 절기 이후 50일 지난 뒤 드리는 맥추감사 절기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교훈이 있다.
1. 결코 잊지 마라. 는 의미다.
다른 절기는 숫자 얘기가 없는데 반해 "오순절," "세어라." 이렇게 숫자를 기입하고 세게 한 절기는 유일하게 맥추감사절 혹은 오순절이다. 왜 그랬을까? 그만큼 뜻이 있기 때문이다.
신16:9절을 같이 읽어보자.
“일곱 주를 셀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일곱 주를 세어” 숫자 세는 것은 셈하는 기술을 익히게 하는 것이 아닌 기억하게 하는데 초점을 두셨다.
그래서 3절에 “기억하라.” 12절에 “기억하라.”를 반복해서 언급하신 것이다.
이 말은 원래 “나열하다.”란 낱말에서 왔다고 지난 번 설교에서도 말씀드렸다.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오면서 하나님이 극적으로 너희를 돌보고, 지키고, 구원해 준 것을 쭉 나열해서 생각해 보라는 뜻이다.
ㄱ. 바로가 애굽을 나가지 못하게 얼마나 지독하게 방해 했나? 그럴 때 하나님의 개입으로 장자를 쳐 죽게 한 다음에 나가게 하셨다. 여기서 유월절이 나오게 된 것 아닌가? (그만큼 구원받는 걸 사탄이 싫어해서 가록막고 있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구원받은 것을 감사하자.)
ㄴ. 홍해를 어떻게 건넜나? 물길을 하루 종일 불어서 건너도록 하셨다. 나아가 ㄷ. 광야에서 아무것도 없이 죽을 뻔한 가운데서도 만나를 내리시고 메추라기를 보내주셔서 고기도 마음 놓고 먹도록 하셨다. ㄹ. 더욱 큰 문제는 절대로 광야 길을 못 간다. 다 죽게 되어 있다. 그런데도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보호하셔서 가게 하신다. 더군다나 ㅁ. 한 벌 옷이 40년 동안 헤어지지 않고 입고 다니게 하신 것은 그 어느 패션니스트도 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신 것 아닌가?
이 모든 것을 나열해 보고 숫자를 세어가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라는 것이다.
혹시 위험에서 건진 일이 있으신가?
극적으로 위험에서 건짐 받은 일 하나님의 은혜로 안 될 일이 된 일 등등을 세어보고 감사하자.
저 역시 목회하면서 긴장이 풀릴 때가 되면 종종 모레네 시장 쪽서 지금의 김 장로께서 사시는 남광 아파트 쪽을 향해 내려와 보곤 한다. 처음 개척하러 그 길을 올 때 정말 한숨이 나오고 무서웠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식 집사께서 사셨던 주공아파트 단지 쪽서 남동구청 쪽으로는 복개가 되지 않은 채 구정물이 고약한 채 그대로 흐르고 있었다.
아는 이도 거의 없고, 와 보니 불을 끄면 그야말로 지하실 교회가 고요하다 못해 어두워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라도 시계를 맞추지 않고 잠을 자면 낮인지 밤인지 몰라 어떤 때는 저녁에 깨어 밤을 꼬박 새는 일도 있었다.
많은 사람 속에서 살던 사람이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힘든지 전도지 들고 주변을 돌아다니며 미친 듯이 전도를 했다. 그래야 살 것 같았다. 수십 개 교회가 생겼다가 없어졌다. 성도도 한 300여명이 교회를 스쳐지나 간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우리 교회가 이 지역에 남아서 역사의 증인이 되어가고 있다. 자금은 다들 복을 받아 어엿하게 집, 땅을 마련하고들 사신다.
그러니 어찌 이 날을 잊을 수가 있는가?
잊지 말자. 놀라운 것은 기억하고 감사하며 사는 것이 삶의 질을 풍성하게 한다는 것이다. 감정이나 마음이 감사로 넘치니 바라보는 시각과 시선도 여유가 생기고 그러다 보니 행복해지는 비결이 된다.
2. 성령을 사모하고 충만함을 받으라는 의미다.
맥추절을 칠칠절 오순절이라고도 한다. 유월절 지난 뒤 10번의 순을 5번 지났다 해서 오순절이라고 하는데, 구약에서는 먹을 것으로 배를 채워 주셨다면 신약시대에 와서는 하나님이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 우리 영혼을 채워 주신 날이다.
그래서 반드시 맥추절을 지키며 과거에는 먹을 것을 주시고 광야에서 보호 해 주신 것이 감사하다면 이제 신약에 와서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영원히 배고프지 않는 성령님을 부어 주신 날이니 더욱 맥추감사절을 지키라는 것이다.
성령이 오시면 놀라운 현상, 결과가 온다는 것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다.
1) 고전2:9절 이하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좋은 것들은 오직 하나님의 영인 성령으로야 깨닫는다고 해 주셨다.”
2)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오는 것은 마음으로나 눈으로 볼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도록 오신다는 것을 행2:1절 이하에서 오순절 날 바람같이 불의 혀같이 오는 것을 통해 입증해 주셨다.
3) 나아가 장래 일까지 알게 하신다고 요16:13절에서 말씀했고,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해 주시겠다고 24절에 기도의 응답측면에서 말씀하셨다.
4) 성령님이 오시면 내적 변화가 얼마나 강하고 분명하게 임하는지 사람이 바뀐다. 갈5:22절은 9가지 형태의 현상들이 우리 안에 임재하시는 것을 성령의 열매로 설명하셨다.
성령 받은 자는 억울하고 누명을 쓰고 매를 맞으며 지하 옥에 갇혀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행16:25), 죽이려고 달려드는 광장에 나가 담대히 복음을 외침으로 칼과 창을 내려놓게 하였다.(행2:14~)
그러므로 마지막 시대 사탄이 세대 간의 대화를 단절시키고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과 더불어 행복을 논하고 성공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짐승과 기계와 정보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시대에 우리는 다시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가장 잘 아시는 성령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야 될 줄 믿는다.
사탄이 얼마나 교묘한지 MZ , ALPHA, 시대라는 명분하에 젊은이 이와 아이들을 어른에게서부터 분리시켜 계층 간의 소통을 단절시키려고 한다. 이게 교회 안에까지 들어오고 있다. 목사님의 말씀은 꼰대의 이야기 정도로, 듣기 싫은 잔소리로 들려지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원래 창조했던 때의 모습으로 회복되게 하는 것은 오직 성령 하나님의 능력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더욱 성령 충만 받기 위해 도전해야 할 것이다.
지난 철야 때도 성령님을 의지하고 기도할 때 우리 속에 얼마나 뜨겁게 은혜가 임하는가? 기도의 영이 우리를 감동하고 이끌도록 해야 될 줄 믿는다.
이렇게 뜨거워지면 예루살렘으로 전도의 현장으로 돌아갔던 엠마오의 두 제자같은 일이 반드시 일어날 것을 믿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순절이 오기 전 마가의 다락방으로 들어가기를 원했던 것이다.
거기는 사도와 비 사도인 사람들이 함께 했다. 남성과 여성이 같이 있었다. 유대교에서 사람을 차별하고 분리시켰던 것과는 천연지차이다.
왜 그랬을까?
성령이 역사하면 차별과 분리가 하나 되고 한 마음 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오직 성령하나님의 능력이다.
그 실제적인 사례는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을 태동시킨 1903년의 원산부흥운동에서 일어났다. 이 일은 선교사 하디라는 사람의 자기비움과 이를 통한 영적회심에 의한 것이었다.
토론도 대학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 하디는 1890년 9월 캐나다 YMCA 파송선교사로 한국에 왔다. 그 후 1901년부터 원산과 강원도 통천지방에서 개척 선교사로 3년간 선교활동을 하였다.
하디는 그의 사역의 어려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사역하면서 안절부절 못할 때 영적능력이 부족하다는 의식이 점점 저를 짓눌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라고 말씀하신 것이 사역에서 실패한 것에 대한 충분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하디는 자신의 사역의 실패가 자신의 교만과 성령 충만하지 못한데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한 기도회에서 자신의 죄악을 공개적으로 털어놓게 된다.
1903년 8월 남감리교의 화이트, 캐롤 그리고 캐나다 장로교의 매컬리등 원산의 여선교사들이 하디를 강사로 초청한 성경공부 겸 기도회에서, 하디는 자신의 교만함을 고백하고 눈물로 회개한 것이다.
하디는 다음과 같이 간증을 했다.
“나는 성신이 내 안에 충만하신 실증을 가지고서 나의 부끄러움과 혼미에 찬 얼굴로 나의 교만과 마음의 완악함과 신앙의 부족함과 또 그 상태가 빚어낸 모든 결과를 자복하니 회중은 강한 죄의식과 회개의 신앙생활 체험사의 작용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자복과 말씀을 통해 성령 충만함을 경험한 하디는 주일 날 한국 교인들 앞에서 자신의 죄악을 말한다.
“여러분들은 안 된다고 하는 한국인들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힌 패배의식이 저를 온전히 사로잡았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역시 나와 인종이 다르다고 하는 인종편견과 한국인에 대한 무의식적인 인종차별이 저를 지배해 왔습니다. 사실 저는 토론토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 백인 우월주의 의식, 학력 우월주의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사실 여러분에게 선교를 한다고 하면서 실제로 교만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실제로 나는 겸손하지도 않고 성령충만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디의 고백을 들은 원산의 회중들은 처음으로 참회와 회개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하디의 이러한 회심은 원산전역에 성령의 바람을 불게 한 촉매가 되었다. 교회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원산의 어린 여학생들이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고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였고, 원산의 선교사들도 자신들의 신앙을 점검하게 되었다.
이처럼 하디의 영적각성은 위기를 만난 한국 백성들에게 영적 대각성의 직접적인 불씨를 제공하게 되었던 것이다.
오늘 날 다시 교회가 사는 일, 우리 가족 구성원이 영이 살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일은 우리 모두가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고 우리의 연약함과 교만함을 내려놓고 회개하는 일인 줄 믿는다. 그것을 하게 하려고 하나님은 일 년에 한 번씩 맥추감사절을 지키게 하는 것이다.
이제 교회 하나 됨, 가족 구성원의 하나 됨을 위해 기도하며 성령님을 의지하자. 더욱 더 의지하자.
기도하자.
성령님 우리 속에 오셔서 우리의 지성 감성 의지를 주도해 주십시오.
우리 가족 교회 구성원이 모두 성령님의 감동으로 하나 되게 하소서.
첫댓글 목사님 귀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저도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