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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五十六回 蕭夫人登臺笑客 逄丑父易服免君
제56회: 소부인은 누대에 올라 사신들을 회롱하고, 방추보가 어의를 바꿔 입고 제후를 위험에서 구하다.
話說,荀林父用郤雍治盜,羊舌職度郤雍必不得其死,林父請問其說。羊舌職對曰:「周諺有云:『察見淵魚者不祥,智料隱慝者有殃。』恃郤雍一人之察,不可以盡群盜,而合群盜之力,反可以制郤雍,不死何為?」未及三日,郤雍偶行郊外,群盜數十人,合而攻之,割其頭以去。荀林父憂憤成疾而死。晉景公聞羊舌職之言,召而問曰:「子之料郤雍當矣!然弭盜何策?」羊舌職對曰:「夫以智禦智,如用石壓草,草必罅生。以暴禁暴,如用石擊石,石必兩碎。故弭盜之方,在乎化其心術,使知廉恥,非以多獲為能也。君如擇朝中之善人,顯榮之於民上,彼不善者將自化,何盜之足患哉?」
한편, 순림보가 극옹을 채용하여 도적을 잡는데, 양설직이 말하기를, 극옹은 반드시 바르게 죽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순림보가 까닭을 물으니, 양설직이 대답하기를, “주나라 속담에 ‘깊은 물 속에 사는 고기를 본 사람은 상서롭지 않고, 숨겨둔 일을 아는 사람은 재앙이 있게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극옹 한 사람만의 능력만을 믿고, 세상의 모든 도적을 잡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도적들이 힘을 합쳐 도리어 극옹을 제압하려 한다면 그가 죽지 않고 어떻게 하겠습니까?” 했다. 사흘이 되지 않아서 극옹이 우연히 교외에 나갔는데, 도적 떼 수십 명이 힘을 합쳐 공격하여 그 머리를 잘라서 가 버렸다. 순림보가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병이 나서 죽었다. 진경공은 양설직의 말을 전해 듣고 불러서 묻기를, “그대는 극옹이 당할 것을 미리 헤아렸으니, 그러면 도적을 없애는 대책은 무엇이오?” 하니, 양설직이 대답하기를, “대개 꾀로써 꾀를 막는 것은 마치 돌로써 풀을 눌러 두는 것과 같습니다. 풀은 반드시 돌 틈을 비집고 자라게 됩니다. 엄격한 법으로 무법자를 금하는 것은 마치 돌로써 돌을 치는 것과 같습니다. 두 개의 돌은 다 부서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도적을 없애는 방법은 그들의 마음을 교화하여 염치를 알게 하는 데 있습니다. 도적을 많이 잡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주군께서는 조정에서 어질고 착한 사람을 골라 높은 지위와 영화로움을 내려서 백성들이 다 알 수 있게 한다면, 마음이 착하지 않는 사람들도 스스로 감화될 것입니다. 어찌 도적을 근심하겠습니까?” 했다.
景公又問曰:「當今晉之善人,何者為最?卿試舉之。」羊舌職曰:「無如士會。其為人,言依於信,行依於義,和而不諂,廉而不矯,直而不亢,威而不猛。君必用之。」及士會定赤狄而還,晉景公獻狄俘於周,以士會之功,奏聞周定王。定王賜士會以黻冕之服,位為上卿。遂代林父之任,為中軍元帥,且加太傅之職,改封於范,是為范氏之始。士會將緝盜科條,盡行除削,專以教化勸民為善。於是奸民皆逃奔秦國,無一盜賊,晉國大治。景公復有圖伯之意。
진경공이 또 묻기를, “지금 진(晉)나라에서 가장 착한 사람은 누구인가? 경이 한번 천거해 보시오.” 하니, 양설직이 말하기를, “사회(士會)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 사람됨이 말은 신의에 의지하고, 행동은 의로움에 따르며, 화목하게 지내지만 아첨하지 않으며, 청렴하지만 교만하지 않고, 강직하지만 도도하지 않고, 위엄이 있지만 사납지 않습니다. 주군께서는 반드시 그를 쓰십시오.” 했다. 사회가 적적(赤狄)을 평정하고 돌아오니, 진경공이 적적의 포로를 주나라에 바치면서 사회의 공을 주정왕(周定王)에게 아뢰었다. 주정왕은 사회에게 무릎 가리개와 관(冠)을 하사하고 상경의 벼슬을 내렸다. 진경공은 사회를 중군 원수로 삼고 태부의 직을 더했다. 사회를 범(范) 땅에 고쳐 봉하여 그는 범씨의 시조가 되었다. 사회는 도둑을 잡기 위한 법 조항들을 모두 없애고 오로지 백성들을 교화하여 선행을 권장했다. 이에 간악한 백성들은 모두 진(秦)나라로 도망가고, 도적이 한 명도 없게 되어 진(晉)나라가 크게 다스려졌다. 진경공이 다시 제후의 우두머리가 될 뜻을 품게 되었다.
謀臣伯宗進曰:「先君文公,始盟踐土,列國景從。襄公之世,猶受盟新城,未敢貳也。自令狐失信,始絕秦懽。及齊宋弒逆,我不能討,山東諸國,遂輕晉而附楚。至救鄭無功,救宋不果,復失二國。晉之宇下,惟衛曹寥寥三四國耳。夫齊魯天下之望,君欲復盟主之業,莫如親齊魯。盍使人行聘於二國,以聯屬其情,而伺楚之間,可以得志。」晉景公以為然,乃遣上軍元帥郤克,使魯及齊,厚其禮幣。卻說,魯宣公以齊惠公定位之故,奉事惟謹,朝聘俱有常期。至頃公無野嗣立,猶循舊規,未曾缺禮。
모신 백종이 나와 말하기를, “선군 진문공께서 천토(踐土)에서 회맹하기 시작한 이래 열국(列國)은 그림자처럼 따랐습니다. 진양공 때에도 신성(新城)에서 맹약을 맺어 열국들은 감히 두 마음을 갖지 못했습니다. 영호(令狐)에서 신의를 잃은 뒤부터 비로소 진(秦)나라와는 우호 관계가 끊어졌고, 곧이어 제(齊)나라와 노(魯)나라에서 주군을 살해하는 일이 일어났어도 우리가 응징하지 못하여, 산동의 여러 나라는 마침내 진(晉)나라를 무시하고 초나라를 따랐습니다. 게다가 정나라를 구하려다가 실패하고, 송나라를 구출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두 나라를 잃어버렸습니다. 이제 진(晉)나라의 지배 아래에는 오직 위(衛)나라, 조(曹)나라 등 겨우 서너 개 나라가 있을 뿐입니다. 대개 제(齊)나라와 노(魯)나라는 천하에서 명망이 있는 나라입니다. 주군께서 다시 맹주의 업을 다시 일으키고 싶다면 제나라와 노나라에 친선을 도모하는 게 좋습니다. 두 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그들과 친선을 맺고 있다가 초나라와 틈이 생길 때를 엿보면 뜻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진경공이 그렇다고 생각하여, 이에 상군 원수 극극(郤克)을 사신으로 삼아 예물을 후하게 준비하여 노나라와 제나라에 보냈다. 한편, 노선공(魯宣公)은 제혜공(齊惠公)의 도움으로 군주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사신을 보내어 극진히 섬기고 있었다. 제경공(齊頃公) 무야(無野)가 자리를 이었어도 여전히 예전의 관례에 따라 아직 결례한 적이 없었다.
郤克至魯修聘,禮畢,辭欲往齊,魯宣公亦當聘齊之期,乃使上卿季孫行父,同郤克一齊啟行。方及齊郊,只見衛上卿孫良夫,曹大夫公子首,也為聘齊來到。四人相見,各道來由,不期而會,足見同志了。四位大夫下了客館。次日朝見,各致主君之意。禮畢,齊頃公看見四位大夫容貌,暗暗稱怪,道:「大夫請暫歸公館,即容設饗相待。」四位大夫,退出朝門。頃公入宮,見其母蕭太夫人,忍笑不住。太夫人乃蕭君之女,嫁於齊惠公。自惠公薨後,蕭夫人日夜悲泣。頃公事母至孝,每事求悅其意,即閭巷中有可笑之事,亦必形容稱述,博其一啟顏也。是日,頃公乾笑,不言其故。
극극(郤克)이 친선사절로 노나라에 이르러 노선공(魯宣公)에게 예를 마치고, 제나라에 가려고 하직 인사를 하니, 노선공도 또한 제나라에 사신을 보내야 할 때가 되었으므로, 상경 계손행보(季孫行父)로 하여금 사자로 삼아 극극과 함께 동행하도록 했다. 바야흐로 제나라 교외에 당도했을 때, 마침 위(衛)나라의 상경 손량부(孫良夫)와 조(曹)나라의 대부 공자수(公子首)도 역시 제나라에 사신으로 와서 만나게 되었다. 네 사람이 서로 만나 오게 된 내력을 말하니, 뜻밖에 같은 임무를 띠고 왔음을 알게 되었다. 네 사람의 대부가 객관에 같이 들었다. 다음 날 제나라 군주를 뵙고 각기 자기 나라 군주의 뜻을 전했다. 예를 끝낸 제경공은 네 대부의 용모를 살펴보고 마음속으로 기이하다고 생각했으나, 내색하지 않고 말하기를, “대부들은 잠깐 공관에 돌아가 계시면, 곧 연회를 준비하여 대접하겠습니다.” 했다. 네 대부는 궁궐문을 나왔다. 제경공이 입궁하여 그의 모친인 소태부인(蕭太夫人)을 뵙자 웃음을 터뜨렸다. 태부인은 소(蕭)나라 군주의 딸로 제혜공에게 시집을 왔다. 제혜공이 죽은 후에 소부인은 밤낮으로 슬퍼했다. 제경공은 모친을 지극한 효성으로 섬겨서 매사에 모친의 뜻을 기쁘게 하려고 했다. 항간에 우스운 일이 있으면 그것을 흉내내면서 자세히 이야기하여 두루 그 얼굴을 펴 주려고 했다. 그런데 이날은 건성으로 웃기만 할 뿐, 그 연유를 말하지 않았다.
蕭太夫人問曰:「外面有何樂事,而歡笑如此?」頃公對曰:「外面別無樂事,乃見一怪事耳!今有晉、魯、衛、曹四國,各遣大夫來聘。晉大夫郤克,是個瞎子,只有一隻眼光著看人。魯大夫季孫行父,是個禿子,沒一根毛髮。衛大夫孫良夫,是個跛子,兩腳高低的。曹公子首,是個駝背,兩眼觀地。吾想生人抱疾,五形四體,不全者有之。但四人各占一病,又同時至於吾國,堂上聚著一班鬼怪,豈不可笑?」蕭太夫人不信,曰:「吾欲一觀之可乎?」頃公曰:「使臣至國,公宴後,例有私享。來日兒命設宴於後苑,諸大夫赴宴,必從崇臺之下經過。母親登於臺上,張帷而竊觀之,有何難哉?」
소태부인이 묻기를, “밖에서 무슨 즐거운 일이 있어서 그렇게 웃기만 하는가?” 하니, 제경공이 대답하기를, “바깥에 특별히 즐거운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괴이한 일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진(晉)나라, 노(魯)나라, 위(衛)나라, 조(曹)나라 등의 네 나라에서 각기 대부들을 사신으로 보내왔는데, 진(晉)나라 대부 극극은 애꾸눈이라 단지 한 눈으로만 보는 사람이고, 노나라의 대부 계손행보는 대머리라 한 가닥의 머리카락도 없으며, 위나라의 대부 손량부는 절름발이라 두 다리가 높고 낮으며, 조나라의 공자수는 곱사등이라 두 눈이 땅을 쳐다봅니다. 저는 사람이 병을 앓고 나면 몸이 온전치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만 네 사람은 각기 한 가지씩의 질병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같은 시간에 우리나라에 이르러 당에 올라와, 모여서 기괴함을 이뤘으니 어찌 우습지 않겠습니까?” 했다. 소태부인이 믿지 않고 말하기를, “나도 한번 보고 싶은데 되겠는가?” 하니, 제경공이 말하기를, “사신이 도착하면 공식적인 연회가 있고, 관례에 따라 사적인 연회를 엽니다. 내일 제가 명을 내려 후원에다 잔치를 열도록 해서 여러 대부가 잔치에 참석하면, 그들은 반드시 숭대 밑을 지나가게 될 것입니다. 모친께서 숭대 위로 올라가 장막 사이로 몰래 보십시오. 그리 어려운 일이 있겠습니까?” 했다.
話中略過公宴不題,單說私宴。蕭太夫人已在崇臺之上了。舊例:使臣來到,凡車馬僕從,都是主國供應,以暫息客人之勞。頃公主意,專欲發其母之一笑,乃於國中密選眇者、禿者、跛者、駝者各一人,使分御四位大夫之車。郤克眇,即用眇者為御﹔行父禿,即用禿者為御﹔孫良夫跛,即用跛者為御﹔公子首駝,即用駝者為御。齊上卿國佐諫曰:「朝聘,國之大事。賓主主敬,敬以成禮,不可戲也。」頃公不聽。車中兩眇,兩禿,雙跛,雙駝,行過臺下,蕭夫人啟帷望見,不覺大笑,左右侍女,無不掩口,笑聲直達於外。
이야기 중에 공적인 연회에 대해서는 말할 게 없이 지났다. 각설하고 다음 날 사적인 연회가 열렸는데, 소태부인이 이미 숭대 위로 올라가 있었다. 옛날의 관례로는, 외국에서 사신이 오면 무릇 수레와 종들을 모두 잔치를 베푸는 나라에서 제공하여 손님들의 노고를 잠시 쉬게 해 주었다. 제경공은 오로지 그 모친에게 한번 웃게 해 줄 목적으로 나라 안에서 애꾸눈, 대머리, 절름발이, 곱사등이를 몰래 뽑아서 네 나라 사신들의 수레를 몰게 했다. 극극은 애꾸눈이라 애꾸눈이 수레를 몰고, 계손행보는 대머리라 대머리가 수레를 몰았으며, 손량부는 절름발이라 절름발이가 수레를 몰고, 공자수는 곱사등이라 곱사등이가 수레를 몰았다. 제나라 상경 국좌(國佐)가 간하기를, “나라에서 사신을 접대하는 일은 국가의 대사라 손님과 주인은 공경을 주로 하여 예의를 차려야 하는데, 장난을 치면 안 됩니다.” 했다. 제경공은 듣지 않았다, 수레에는 두 애꾸눈, 두 대머리, 두 절름발이, 두 곱사등이가 타고 숭대 밑을 지나갔다. 소부인이 숭대 위에서 휘장을 열고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크게 웃었고, 좌우의 시녀들도 입을 가리지 못해 웃음소리가 밖으로 퍼졌다.
郤克初見御者眇目,亦認為偶然,不以為怪。及聞臺上有婦女嬉笑之聲,心中大疑。草草數杯,即忙起身,回至館舍,使人詰問:「臺上何人?」「乃國母蕭太夫人也。」須臾,魯、衛、曹三國使臣,皆來告訴郤克,言:「齊國故意使執鞭之人,戲弄我等,以供婦人觀笑,是何道理?」郤克曰:「我等好意修聘,反被其辱﹔若不報此仇,非丈夫也!」行父等三人齊聲曰:「大夫若興師伐齊,我等奏過寡君,當傾國相助。」郤克曰:「眾大夫果有同心,便當歃血為盟。伐齊之日,有不竭力共事者,明神殛之!」四位大夫聚於一處,竟夜商量,直至天明,不辭齊侯,竟自登車,命御人星馳,各還本國而去。
극극이 처음에는 애꾸눈 마부를 보고 우연으로 생각하여 괴이하게 여기지 않았다. 숭대 위에서 부녀자들의 웃는 소리를 듣고 마음속으로 크게 의심하게 되었다. 그는 대충 술을 몇 잔 마시고 황급히 몸을 일으켜 객관으로 돌아와서 심부름꾼에게 따져 묻기를, “숭대 위에 있는 사람이 누구냐?” 하니, 그 사람이 말하기를, “경공의 모친 소태부인입니다.” 했다. 조금 있다가 노나라, 위나라, 조나라 등 세 나라의 사신들도 모두 와서 극극에게 호소하기를, “제나라가 고의로 마부를 시켜 우리들을 희롱하여 부인들의 웃음거리로 만들었으니, 이것이 무슨 도리입니까?” 했다. 극극이 말하기를, “우리는 좋은 뜻으로 수교를 위해 사신으로 왔는데 도리어 욕을 당했으니, 이 치욕을 갚지 못하면 대장부가 아니오!” 했다. 계손행보 등 대부 세 사람이 목소리를 함께 하여 말하기를, “대부께서 만약 군사를 일으켜 제나라를 토벌한다면 우리도 주군에게 상주하여 나라를 기울여 돕겠습니다.” 했다. 극극이 말하기를, “여러 대부들이 결국 한 마음이 됐으니 마땅히 피를 입술에 발라 맹세합시다. 제나라를 토벌하는 날에 함께 힘을 다하지 않는 자는 천지신명께서 죽일 것이오!” 했다. 네 대부가 한 곳에 모여 밤이 새도록 의논을 하고 날이 밝자, 제나라 군주에게 작별 인사도 없이 수레에 올라 마부에게 급히 달리게 명하여 각기 본국으로 돌아갔다.
國佐嘆曰:「齊患自此始矣!」史臣有詩云:「主賓相見敬為先,殘疾何當配執鞭?臺上笑聲猶未寂,四郊已報起烽煙。」是時魯卿東門仲遂,叔孫得臣俱卒。季孫行父為正卿,執政當權。自聘齊被笑而歸,誓欲報仇。聞郤克請兵於晉侯,因與太傅士會主意不合,故晉侯未許,行父心下躁急,乃奏知宣公,使人往楚借兵。值楚莊王旅病薨,世子審即位,時年纔十歲,是為共王。史臣有楚莊王讚云:「於赫莊王,干父之蠱﹔始不飛鳴,終能張楚。樊姬內助,孫叔外輔﹔戮舒播義,衂晉覿武。窺周圍宋,威聲如虎﹔蠢爾荊蠻,桓文為伍!」
국좌(國佐)가 탄식하며 말하기를, “제나라의 환란이 이 일로부터 시작되겠구나!” 했다. 사관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주인과 손님은 서로 공경을 우선하여 만나야 하거늘, 불구자들이 어찌하여 말채찍을 잡게 되었나? 숭대 위의 웃음소리가 나라의 고요함을 깨뜨리자, 제나라의 변경에는 전쟁을 알리는 봉화가 올랐네!” 했다. 그때 노나라에는 동문중수(東門仲遂)와 숙손득신(叔孫得臣)이 모두 죽었다. 계손행보(季孫行父)가 정경이 되어 정권을 맡았다. 그가 제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제나라로부터 웃음거리가 되어 돌아와서 치욕을 갚겠다고 맹세했다. 계손행보는 극극도 진경공에게 군사를 청했으나, 태부 사회와 뜻이 맞지 않아서 진경공이 허락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조급해져서 노선공에게 아뢰어 사신을 초나라에 보내 군사를 빌리려고 했다.마침 초나라에서는 초장왕이 여행 중에 병을 얻어 죽고, 세자 심(審)이 즉위했는데 그때 나이가 겨우 열 살이었다. 이가 초공왕(楚共王)이다. 사관이 초장왕을 찬양하여 이르기를, “아, 훌륭하다! 초장왕이여, 조상이 못다 한 일을 성취했다. 처음엔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더니, 마침내 초나라의 국세를 떨쳤도다. 번희가 궁 안에서 그를 도왔고, 손숙오는 밖에서 보좌했다. 하징서를 죽여 의를 세상에 세우고, 진(晉)나라 군사를 물리쳐 무력을 드날렸다. 주왕실을 엿보고 송나라를 포위했고, 위엄 있는 목소리는 호랑이 같았다. 꿈뜰 거리는 남쪽 오랑캐였지만, 제환공, 진문공과 같은 반열에 섰도다!” 했다.
楚共王方有新喪,辭不出師。行父正在憤懣之際,有人自晉國來述:「郤克日夜言伐齊之利,不伐齊難以圖伯,晉侯惑之。士會知郤克意不可回,乃告老讓之以政。今郤克為中軍元帥,主晉國之事,不日興師報齊矣。」行父大喜,乃使仲遂之子公孫歸父行聘於晉,一來答郤克之禮,二來訂伐齊之期。魯宣公因仲遂得國,故寵任歸父,異於群臣。時魯孟孫、叔孫、季孫三家,子孫眾盛,宣公每以為憂。知子孫必為三家所凌,乃於歸父臨行之日,握其手密囑之曰:「三桓日盛,公室日卑,子所知也。公孫此行,覷便與晉君臣密訴其情,倘能借彼兵力,為我逐去三家,情願歲輸幣帛,以報晉德,永不貳志。卿小心在意,不可洩漏!」
초공왕은 부왕의 상을 당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군사를 일으킬 수 없다고 거절했다. 계손행보는 초나라에서 돌아온 사자로부터 보고를 받고 분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진(晉)에서 돌아와 서술하기를, “극극은 밤낮으로 제나라를 토벌하는 이점을 말하고, 제나라를 토벌하지 않고는 패업을 이룰 수 없다고 하여 진나라 군주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사회는 극극의 생각을 돌릴 수 없음을 알고, 나이가 많다며 정권을 양보했습니다. 지금은 극극이 중군 원수가 되어 진(晉)나라의 정사를 주관하고 있어 머지않아 군사를 일으켜 제나라에 보복할 것입니다.” 했다. 계손행보가 크게 기뻐하여 노선공에게 동문중수(東門仲遂)의 아들 공손귀보(公孫歸父)를 진(晉)나라에 사신으로 보내는 것이, 첫째로는 극극에 대한 답례이고, 둘째로는 제나라를 토벌할 시기를 정하기 위해서라고 아뢰었다. 노선공은 동문중수의 도움으로 군주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중수의 아들 공손귀보를 다른 신하들과는 달리 총애하고 신임했다. 그때 노나라는 맹손씨(孟孫氏), 숙손씨(叔孫氏), 계손씨(季孫氏) 등 세 집안의 자손이 번성했으므로 노선공은 매양 근심하고 있었다. 자기 자손이 반드시 세 집안에게 능멸당할 것을 알고, 이에 공손귀보가 사신으로 떠날 때 손을 잡고 은밀히 부탁하기를, “삼환(三桓)은 날로 번창하고, 공실은 날로 쇠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대도 잘 알고 있는 것이오. 그대는 이번 행차에 기회를 엿보아 진나라 군주와 신하에게 은밀히 우리의 사정을 고한 후에 만약 군사를 빌려 세 집안을 축출해 주면 해마다 조공을 바쳐 진나라의 은덕에 보답하고 영원히 두 마음을 품지 않겠다고 하시오. 경은 조심해서 이 뜻을 간직하여 누설하지 마시오.” 했다.
歸父領命,齎重賂至晉,聞屠岸賈復以諛佞得寵於景公,官拜司寇。乃納賂於岸賈,告以主君欲逐三家之意。岸賈為得罪趙氏,立心結交欒郤二族,往來甚密。乃以歸父之言,告於欒書。書曰:「元帥方與季孫氏同仇,恐此謀未必協也。吾試探之。」欒書乘間言於郤克,克曰:「此人欲亂魯國,不可聽之。」遂寫密書一封,遣人星夜至魯,飛報季孫行父。行父大怒曰:「當年弒殺公子惡及公子視,皆是東門遂主謀,我欲圖國家安靖,隱忍其事,為之庇護。今其子乃欲見逐,豈非養虎留患耶?」乃以郤克密書,面致叔孫僑如看之。
공손귀보는 노선공의 명을 받들어 많은 재물을 가지고 진(晉)나라에 이르러. 도안고(屠岸賈)가 다시 아첨으로 진경공의 총애를 받아 사구(司寇)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도안고에게 뇌물을 바치고, 노나라 세 집안을 축출해 달라는 노선공의 뜻을 진나라 군주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도안고는 조씨 집안에 죄를 지어, 마음먹고 난씨(欒氏)와 극씨(郤氏)의 두 종족과 친분을 맺기 위해 긴밀히 왕래하고 있었다. 이에 공손귀보의 말을 난서(欒書)에게 고하니 난서가 말하기를, “극극 원수께서 지금 막 계손행보와 함께 제나라의 치욕을 씻고자 하는데 이 일은 아마도 협조를 얻기 힘들겠습니다. 제가 한번 원수의 의중을 떠보겠습니다.” 했다. 난서가 극극을 만나 기회를 보아 공손귀보의 일을 말하니, 극극이 말하기를, “이 사람이 노나라를 변란에 빠뜨리고자 하는데 들어줄 수가 없소.” 했다. 마침내 극극은 밀서 한 장을 써서 사람을 보내 밤낮으로 노나라에 달려가게 하여 계손행보에게 급히 전하게 했다. 계손행보가 편지를 보고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옛날에 공자오(公子惡)와 공자시(公子視)를 죽인 것은 모두 공손귀보의 아비인 동문중수(東門仲遂)가 모의한 짓이었다. 나는 나라의 안정을 위하여 그 일을 묻어두고 그들을 비호하고 있는데, 지금 그 아들이 나를 쫓아내려고 하니, 어찌 호랑이를 길러 후환을 만드는 일이 아니겠는가?” 하고, 즉시 극극의 밀서를 가지고 숙손교여를 만나 그것을 보여 주었다.
僑如曰:「主公不視朝,將一月矣。言有疾病,殆託詞也。吾等同往問疾,而造主公榻前請罪,看他如何?」亦使人邀仲孫蔑。蔑辭曰:「君臣無對質是非之理,蔑不敢往。」乃拉司寇臧孫許同行。三人行至宮門,聞宣公病篤,不及請見,但致問候而返。次日,宣公報薨矣。時周定王之十六年也。季孫行父等擁立世子黑肱,時年一十三歲,是為成公。成公年幼,凡事皆決於季氏。季孫行父集諸大夫於朝堂,議曰:「君幼國弱,非大明政刑不可。當初殺嫡立庶,專意媚齊,致失晉好,皆東門遂所為也。仲遂有誤國大罪,宜追治之。」
숙손교여가 말하기를, “주공이 조정에서 정사를 보지 않은지 한 달이 되었습니다. 말로는 병이라 하지만 아마도 핑계일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가서 병문안을 하고, 주공의 침상 앞에서 죄를 청하여 어떻게 나오나 살펴봅시다.” 했다. 계손행보는 또한 사람을 보내 중손멸(仲孫蔑)을 부르니, 중손멸이 사양하면서 말하기를, “군신 간에 대질하여 옳고 그름을 따지는 법은 없습니다. 저는 갈 수 없습니다.” 했다. 계손행보는 이에 사구(司寇) 장손허(臧孫許)를 불러 함께 갔다. 세 사람이 궁문에 이르렀으나 노선공의 병이 위독하다고 뵙지 못하여 다만 노선공의 병세만을 묻고 되돌아갔다. 다음날 노선공이 죽었다. 그때가 주정왕 16년(기원전 590년)이었다. 계손행보 등이 세자 흑굉(黑肱)을 노나라 군주로 옹립했다. 그때 나이가 13세였다. 이가 노성공(魯成公)이다. 노성공이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모든 정무는 계손행보가 전결했다. 계손행보가 여러 대부를 조당에 모아 놓고 의논해 말하기를, “임금은 어리고 나라는 허약합니다. 정치와 형벌을 크게 밝혀야만 합니다. 지난날 적자를 시해하고 서자를 임금으로 세워 제나라의 환심을 샀으나 진(晉)나라와 좋은 관계를 잃었습니다. 이것은 동문수가 저지른 짓으로 그는 나라를 그르친 큰 죄를 지었습니다. 마땅히 죄를 물어야 합니다.” 했다.
諸大夫皆唯唯聽命。行父遂使司寇臧孫許,逐東門氏之族。公孫歸父自晉歸魯,未及境,知宣公已薨,季氏方治其先人之罪,乃出奔於齊國,族人俱從之。後儒論仲遂躬行弒逆,援立宣公,身死未幾,子孫被逐,作惡者亦何益哉?髯翁有詩嘆云:「援宣富貴望千秋,誰料三桓作寇仇?楹折「東門」喬木萎,獨餘青簡惡名留。」魯成公即位二年,齊頃公聞魯與晉合謀伐齊,一面遣使結好於楚,以為齊緩急之助。一面整頓車徒,躬先伐魯,由平陰進兵,直至龍邑。齊侯之嬖人盧蒲就魁輕進,為北門軍士所獲。
여러 대부가 모두 ‘예, 예’하고 명령을 따랐다. 계손행보는 즉시 사구 장손허를 시켜 동문씨 종족들을 나라 밖으로 추방하도록 했다. 공손귀보가 진(晉)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오다가 국경에 미처 이르기 전에 노선공이 이미 죽고, 계손씨(季孫氏)들이 선친(先親)의 죄를 물었다는 것을 알고 제나라로 망명했다. 중손씨 종족들은 공손귀보의 뒤를 따라 모두 제나라로 들어갔다. 후에 유자(儒者)들이 논하기를 ‘중수(仲遂)가 직접 세자를 죽이고 노선공을 세웠으나 그가 죽은 지 오래지 않아 자손들이 나라 밖으로 쫓겨났다. 악행을 저지른 자가 무슨 이익을 보겠는가?’라고 했다. 염옹(髥翁)이 시를 지어 탄식하기를, “몹쓸 짓을 하며 천추만대로 부귀를 바랐는데, 삼환과 원수가 되어 쫓겨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동문(東門)의 기둥은 부러지고 큰 나무는 말라죽으니, 오로지 푸른 죽간에는 악명만 남았네!” 했다. 노성공 즉위 2년(기원전 589년)에 제경공은 노나라와 진나라가 힘을 합쳐 제나라를 토벌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편으로는 초나라와 친선관계를 맺기 위해 사신을 보내어 위급할 때 도움을 받고자 했고, 한편으로는 전차와 군사를 정돈하여 직접 노나라를 먼저 치기 위해서 평음(平陰)을 지나 용읍(龍邑)으로 진격했다. 제나라 군주의 총애를 받고 있던 노포취괴(盧蒲就魁)가 경솔하게 앞으로 나아갔다가 용읍의 북문 군사들에게 사로잡혔다.
頃公使人登車,呼城上人語之曰:「還我盧蒲將軍,即當退師。」龍人不信,殺就魁,磔其屍於城樓之上。頃公大怒,令三軍四面攻之,三日夜不息。城破,頃公將城北一角,不論軍民,盡皆殺死,以洩就魁之恨。正欲深入,哨馬探得衛國大將孫良夫,統兵將入齊境。頃公曰:「衛窺吾之虛,來犯吾界,合當反戈迎之。」乃留兵戍龍邑,班師而南。行至新築界口,恰遇衛兵前隊副將石稷已到,兩下各結營壘。石稷詣中軍告於孫良夫曰:「吾受命侵齊,乘其虛也。今齊師已歸,其君親在,不可輕敵。不如退兵,讓其歸路,俟晉魯合力並舉,可以萬全。」
제경공이 사람을 누거(樓車)에 올라가게 해서 성 위의 사람들을 불러 말하기를, “우리의 노포 장군을 돌려주면 즉시로 군사를 물리겠다.” 했다. 용읍 사람들이 믿지 않고 노포취괴를 죽여 시체를 찢어 성루에 늘어놓았다. 제경공이 크게 노하여 삼군에 명령하여 사방에서 공격하기를 사흘 밤낮을 쉬지 않았다. 성곽이 무너지자 제경공이 성곽 북쪽 귀퉁이로 들어가서 군민을 가리지 않고 모두 죽여서 취괴의 한을 풀었다. 바로 노나라로 깊이 들어가려는데, 정찰 기병이 돌아와 위(衛)나라의 대장 손량부가 군사를 이끌고 제나라 국경으로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전했다. 제경공이 말하기를, “위나라가 우리의 빈틈을 엿보고 우리의 경계를 침범해왔으니, 마땅히 군사를 되돌려 맞아 싸워야겠다.” 하고, 즉시 용읍에는 수비하는 군사만을 남겨 두고, 군사들을 남쪽으로 이동시켰다. 행군하여 신축성(新築城) 경계에 이르니. 마침 위나라 군사의 선봉인 부장 석직(石稷)이 이미 도착하여, 양군이 각각 영채를 세웠다. 석직이 중군에 나아가 손량부에게 고하기를, “우리가 주군의 명을 받아 제나라의 허를 찔러 쳐들어왔습니다. 지금 제나라 군사가 이미 되돌아오고, 그 군주가 친히 군사들을 이끌고 있으니 가볍게 대적할 수 없습니다. 군사를 물려서 제나라 군사가 돌아가는 길을 양보했다가, 진(晉)나라와 노(魯)나라 군사를 기다려 힘을 합쳐서 친다면 만전을 기할 수 있습니다.” 했다.
孫良夫曰:「本欲報齊君一笑之仇,今仇人在前,奈何避之?」遂不聽石稷之諫,是夜率中軍往劫齊寨。齊人也慮衛軍來襲,已有整備。良夫殺入營門,劫了空營。方欲回車,左有國佐,右有高固,兩員大將,圍裹將來。齊侯自率大軍掩至,大叫「跛夫!且留下頭顱!」良夫死命相持,沒抵當一頭處,正在危急。卻得寧相向禽兩隊車馬,前來接應,救出良夫北奔。衛軍大敗。齊侯招引二將從後追來,衛將石稷之兵亦至,迎著孫良夫叫道:「元帥只顧前行,吾當斷後。」良夫引軍急走,未及一里,只見前面塵頭起處,車聲如雷。
손량부가 말하기를, “원래 나는 옛날 제나라 군주가 비웃은 원한을 갚으려 했소. 이제 원수가 앞에 있거늘 어찌 피하겠는가?” 하고, 마침내 석직의 말을 듣지 않고 그날 밤 중군을 거느리고 제나라 진영을 습격하였다. 제나라 군사는 위나라 군사의 야습을 우려하여 이미 대비하고 있었다. 손량부가 제나라 진영에 쇄도해 들어가니 진영이 모두 비어 있었다. 회군하려고 하니, 좌측에는 국좌(國佐), 우측에는 고고(高固), 두 사람의 대장이 포위망을 치고 공격해 왔다. 제나라 군주도 직접 대군을 거느리고 엄습하며 크게 소리치기를, “절름발이 사내야, 너의 목을 내놓아라!” 했다. 손량부는 사력을 다하여 버텼으나 한 곳도 당해 내지 못하고 아주 위급하게 되었다. 그때 영상(寧相)과 상금(向禽)이 이끄는 두 부대의 전차가 앞에서 지원하여 손량부를 구해 북쪽으로 달아났다. 위나라 군사들이 대패했다. 제나라 군주는 두 대장을 이끌고 손량부의 뒤를 추격했다. 위나라 장수 석직의 군사들이 다시 이르러, 손량부를 맞아 외치기를, “원수께서는 앞만 보고 가십시오. 제가 뒤를 맡겠습니다.” 했다. 손량부가 군사를 이끌고 급히 달아나다가 1리도 미처 가기 전에 전면을 보니 먼지가 일어나는 곳에 전차 소리가 우레와 같았다.
良夫嘆曰:「齊更有伏兵,吾命休矣!」車馬看看近前,一員將在車中鞠躬言曰:「小將不知元帥交兵,救援遲誤,伏乞恕罪!」良夫問曰:「子何人也?」那員將答曰:「某乃守新築大夫,仲叔于奚是也。悉起本境之眾,有百餘乘在此,足以一戰,元帥勿憂。」良夫方纔放心,謂于奚曰:「石將軍在後,子可助之。」仲叔于奚應聲麾車而去。再說,齊兵遇石稷斷後之兵,正欲交戰,見北路車塵蔽天,探是仲叔于奚領兵來到。齊頃公身在衛地,恐兵力不繼,遂鳴金收軍,止掠取輜重而回。石稷和于奚亦不追趕。
손량부가 탄식하며 말하기를, “제나라가 다시 복병을 두었으니 내 목숨도 끝났구나!” 했다. 전차와 말이 점점 가까이 오는데, 한 장수가 전차 위에서 허리를 굽혀 예를 표하며 말하기를, “소장은 원수께서 교전하는지 알지 못하여 구원이 늦어 잘못되었습니다.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했다. 손량부가 묻기를, “그대는 누구인가?” 하니, 그 장수가 대답하기를, “소장은 신축성을 지키는 대부 중숙우해(仲叔于奚)입니다. 경내의 군사를 모두 모은 병력이 이처럼 전차 백여 대라 한번 싸워볼 만하니 원수께서는 염려 마십시오.” 했다. 손량부가 비로소 겨우 안심했다. 중숙우해에게 말하기를, “석직 장군이 뒤에 있으니 그대가 가서 도와주시오!” 했다. 중숙우해가 그 말에 응해 전차부대를 몰아 달려갔다. 한편 제나라 군사가 뒤를 맡은 석직의 군사를 만나서, 곧 교전하려 하는데, 보니 북쪽에 전차가 일으키는 먼지가 하늘을 가렸다. 탐지해 보니 중숙우해가 군사를 거느리고 온 것이었다. 제경공은 위나라 영토 안에서 병력이 이어지지 못할까 염려하여 마침내 징을 쳐서 군사들을 거두어들였다. 다만 위나라 군사가 버리고 간 치중을 거두어 돌아갔다. 석직과 중숙우해도 역시 제나라 군사를 추격하지 않았다.
後與晉人勝齊歸國,衛侯因于奚有救孫良夫之功,欲以邑賞之。于奚辭曰:「邑不願受,得賜『曲縣』『繁纓』,以光寵於縉紳之中,于願足矣。」按《周禮》:天子之樂,四面皆縣,謂之「宮縣」﹔諸侯之樂,止縣三面,獨缺南方,謂之「曲縣」,亦曰「軒縣」﹔大夫則左右縣耳。「繁纓」,乃諸侯所以飾馬者。二件皆諸侯之制,于奚自恃其功,以此為請。衛侯笑而從之。孔子修《春秋》,論此事,以為惟名器分別貴賤,不可假人。衛侯為失其賞矣!此是後話,表過不提。
뒤에 위나라가 진나라와 함께 제나라를 쳐서 이기고 돌아오니, 위나라 군주는 중숙우해가 손량부를 구한 공이 있다고, 상으로 한 고을을 주려고 했다. 중숙우해가 사양하며 말하기를, “고을은 받고 싶지 않습니다. 저에게 곡현(曲懸 ; 악기)과 번영(繁纓 ; 말 장식)을 내려 주셔서 대부의 광영을 누리게 해주시면 원이 없겠습니다.” 했다. <주례(周禮)>에 의하면 천자의 음악은 사면에 악기를 걸었는데 이를 궁현(宮懸)이라 했다. 제후의 음악은 삼면에만 걸고 남쪽에는 걸지 못했는데 이것을 곡현(曲懸) 또는 헌현(軒懸)이라 했다. 그리고 대부는 좌우 두 면에만 걸었을 뿐이다. 번영(繁纓)이라는 것은 제후들이 타는 말의 장식품을 일컫는다. 이 두 가지 의례는 모두 제후들만이 행할 수 있는 제도인데, 우해가 자기의 공을 믿고 이것을 행할 수 있도록 청했다. 위나라 군주가 웃으면서 허락했다. 공자(孔子)가 춘추를 편찬하면서 이 일을 논했다. 오직 작위(爵位)와 수레 및 의복은 그 신분의 귀천을 분별하기 위해서 마련한 것으로, 함부로 아무에게나 허락해서는 안 되는데, 위나라 군주는 그 상주는 법을 잊어버렸다. 그렇다 치고 이것은 뒷날의 이야기이다.
卻說,孫良夫收拾敗軍,入新築城中。歇息數日,諸將請示歸期,良夫曰:「吾本欲報齊,反為所敗,何面目歸見吾主?便當乞師晉國,生縛齊君,方出我胸中之氣!」乃留石稷等屯兵新築,自己親往晉國借兵。適值魯司寇臧宣叔亦在晉請師。二人先通了郤克,然後謁見晉景公,內外同心,彼唱此和,不由晉景公不從。郤克慮齊之強,請車八百乘,晉侯許之。郤克將中軍,解張為御,鄭邱緩為車右。士燮將上軍,欒書將下軍,韓厥為司馬。於周定王十八年夏六月,師出絳州城,望東路進發。
각설, 손량부가 패군을 수습하여 신축성으로 들어가서 며칠을 쉬었다. 여러 장수가 돌아갈 기한을 묻자, 손량부가 말하기를, “내가 본디 제나라에 원수를 갚으려고 했으나 도리어 싸움에서 패했으니 무슨 면목으로 돌아가 주군을 뵐 수 있겠는가? 마땅히 진(晉)나라에 군사를 청하여 제경공을 사로잡아 내 가슴속의 분한 기운을 풀어야겠다.” 했다. 이에 석직 등을 신축성에 머물게 하고 자기는 몸소 진나라에 가서 군사를 빌리려고 했다. 마침 노나라의 사구 장손선숙(臧孫宣叔 ; 장손허)도 진나라에 들어가서 군사를 청하려는 참이었다. 두 사람은 먼저 극극을 통한 다음에 진경공을 뵙고, 안과 밖이 한마음이 되어, 한쪽에서 주장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화답하여 진경공이 따르지 않을 수 없게 했다. 극극이 제나라의 강함을 염려하여 8백 대의 전차를 청하니 진경공이 허락했다. 극극은 중군을 거느리고, 해장(解張)을 어자(御者)로 삼았으며, 정구완(鄭丘緩)을 차우장군으로 삼았다. 사섭(士燮)이 상군을 거느리고, 난서(欒書)가 하군을 거느렸으며, 한궐(韓厥)은 사마가 되었다. 주정왕(周定王) 18년(기원전 589년) 여름 6월에, 진나라 군사가 강주성(絳州城)을 출발하여 동쪽을 향해 진군했다.
臧孫許先期歸報,季孫行父同叔孫僑如帥師來會,同至新築。孫良夫復約會曹公子首。各軍俱於新築取齊,擺成隊伍,次第前行,連接三十餘里,車聲不絕。齊頃公預先使人於魯境上覘探,已知臧司寇乞得晉兵消息。頃公曰:「若待晉師入境,百姓震驚,當以兵逆之於境上。」乃大閱車徒,挑選五百乘,三日三夜,行五百餘里,直至鞍地紮營。前哨報:「晉軍已屯於靡笄山下。」頃公遣使請戰,郤克許來日決戰。大將高固請於頃公曰:「齊晉從未交兵,未知晉人之勇怯,臣請探之。」乃駕單車,逕入晉壘挑戰。
장손허가 먼저 노나라에 돌아와서 진(晉)나라 군사의 출진을 알렸다. 계손행보는 숙손교여와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진나라 군사와 합류하려고 신축성에 이르렀다. 위나라 손량보도 다시 조나라의 공자수에게 연락하여 군사를 이끌고 만나기로 했다. 각 나라의 군사가 신축성으로 모두 모여서 대오를 짜고 순서를 정해 전진하는데 그 길이가 3십 리에 달하고 전차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제경공이 미리 사람을 시켜 노나라의 경계에서 염탐하게 하여, 노나라의 사구 장손허가 진(晉)나라 군사를 청해 오는 것을 이미 알았다. 제경공이 말하기를, “만약 진(晉)나라 군사가 국경에 들어오기를 기다린다면 백성들이 놀랄 것이니, 마땅히 국경에서 적군을 맞이해야겠다.” 하고, 전차와 군사를 크게 사열하여 전차 500대를 뽑아서 3일 밤낮으로 500여 리를 행군하여 안(鞍) 땅에 도착하여 진을 쳤다. 전초병이 보고하기를, “진(晉)나라 군사가 이미 미계산(靡笄山) 밑에 주둔하였습니다.” 했다. 제경공이 사자를 보내 전쟁을 청하자, 극극이 다음 날 결전하기로 약속하였다. 제나라 대장 고고(高固)가 제경공에게 청하기를, “제나라와 진(晉)나라는 아직 교전한 일이 없어서 진(晉)나라 군사들이 용감한지 겁이 많은지 알 수가 없습니다. 신이 시험해 보고자 합니다.” 하고, 홀로 전차를 몰아 진(晉)나라 보루로 달려가 싸움을 걸었다.
有末將亦乘車自營門而出,高固取巨石擲之,正中其腦,倒於車上,御人驚走。高固騰身一躍,早跳在晉車之上,腳踹晉囚,手挽轡索,馳還齊壘,周圍一轉,大呼曰:「出賣餘勇!」齊軍皆笑。晉軍中覺而逐之,已無及矣。高固謂頃公曰:「晉師雖眾,能戰者少,不足畏也。」次日,齊頃公親自披甲出陣,邴夏御車,逄丑父為車右。兩家各結陣於鞍。國佐率右軍以遏魯,高固帥左軍以遏衛曹,兩下相持,各不交鋒,專候中軍消息。齊侯自恃其勇,目無晉人,身穿錦袍繡甲,乘著金輿,令軍士俱控弓以俟,曰:「視吾馬足到處,萬矢俱發。」
진나라의 말직 장수 한 사람이 역시 전차를 타고 진영 문에서 나왔다. 고고가 큰 돌을 던져 그 장수의 뇌를 맞춰서 전차 위에 쓰러지자 마부가 놀라 달아났다. 고고가 훌쩍 뛰어 진나라 군의 전차 위로 뛰어올라가 그 장수를 발로 차서 떨어뜨리고, 말고삐를 잡아 전차를 몰아 제나라 보루로 돌아오다가 주위를 돌면서 크게 외치기를, “남아도는 용기를 부려보았다!” 했다. 제나라 군사들이 모두 웃었다. 진나라 진영에서 뒤늦게 이를 알고 고고를 쫓았으나 이미 미칠 수가 없었다. 고고가 제경공에게 말하기를, “진나라 군사가 비록 많으나 싸움에 능한 자가 적은 듯하니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했다. 다음날 제경공이 친히 갑옷을 임고 출진하여 병하(邴夏)가 전차를 몰고 방추보(逄醜父)가 차우(車右)가 되었다. 양쪽 군사는 각각 안(鞍) 땅에 진을 쳤다. 국좌(國佐)가 우군을 거느리고 노나라 군사를 막고, 고고는 좌군을 거느리고 위나라와 조나라 군사를 막아, 두 진영이 대치하면서 각각 교전을 미루고 중군의 동정을 살폈다. 제나라 군주는 자기의 용맹함을 믿고 진나라 군사를 얕보았다. 비단 전포를 입고 수놓은 갑옷에 금빛 전차를 타고 군사들에게 활을 당겨 기다리라고 명령하며 이르기를, “내 말이 가는 쪽으로 화살을 쏘아라!” 했다.
一聲鼓響,馳車直沖入晉陣。箭如飛蝗,晉兵死者極多。解張手肘,連中二箭,血流下及車輪,猶自忍痛,勉強執轡。郤克正擊鼓進軍,亦被箭傷左脅,摽血及屨,鼓聲頓緩。解張曰:「師之耳目,在於中軍之旗鼓,三軍因之以為進退。傷未及死,不可不勉力趨戰!」鄭邱緩曰:「張侯之言是也!死生命耳!」郤克乃援枹連擊,解張策馬,冒矢而進。鄭邱緩左手執笠,以衛郤克,右手奮戈殺敵。左右一齊擊鼓,鼓聲震天。晉軍只道本陣已得勝,爭先馳逐,勢如排山倒海,齊軍不能當,大敗而奔。
북소리가 한번 울리자 제경공은 전차를 몰아 진나라 진영으로 쳐들어갔다. 화살이 마치 황충이 나는 것 같아 진나라 군사가 아주 많이 죽었다. 진나라 어자(御者 ; 전차의 마부) 해장(解張)이 팔꿈치에 연이어 화살 두 대를 맞아 흘린 피가 전차 바퀴에 이르렀지만 아픔을 참으며 말고삐를 놓지 않았다. 극극이 군사들을 진격시키기 위해 북을 치다가 왼쪽 옆구리에 화살을 맞아 피가 신발까지 적시게 되어 북소리가 갑자기 느려졌다. 해장이 말하기를, “군사들의 이목이 중군의 기와 북에 쏠려 있어서 삼군은 이로 인해 진격과 퇴각을 합니다. 상처가 목숨을 잃을 정도는 아니니 있는 힘을 다하여 군사들을 독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차우(원수 오른쪽에 타는) 장군 정구완이 말하기를, “해장의 말이 옳습니다. 죽고 사는 것은 운명입니다.” 하니, 극극은 이에 북채를 잡아 연이어 치고, 해장이 말을 채찍질하여, 화살을 무릅쓰고 앞으로 진격했다. 정구완도 왼손으로 방패를 들어 극극을 호위하며 오른손으로 과를 휘둘러 적을 찔러 죽였다. 진나라 군사가 좌우에서 일제히 북을 치니 북소리가 하늘을 진동시켰다. 진나라 군사들은 본진이 이미 이겼다고 생각하고 상하 양군이 선두를 다투어 쫓으니 그 형세가 마치 산을 밀고 바다를 뒤집을 만했다. 제나라 군사들이 당할 수가 없어 크게 패하여 달아났다.
韓厥見郤克傷重,曰:「元帥且暫息,某當力追此賊!」言畢,招引本部驅車來趕,齊軍紛紛四散。頃公繞華不注山而走。韓厥遙望金輿,儘力逐之。逄丑父顧邴夏曰:「將軍急急出圍,以取救兵,某當代將軍執轡。」邴夏下車去了。晉兵到者益多,圍華不注山三匝。逄丑父謂頃公曰:「事急矣!主公快將錦袍繡甲脫下,與臣穿之,假作主公。主公可穿臣之衣,執轡於旁,以誤晉人之目。倘有不測,臣當以死代君,君可脫也。」頃公依其言。更換方畢,將及華泉,韓厥之車,已到馬首。
한궐이 극극의 상처가 중한 것을 보고 말하기를, “원수께서는 잠시 휴식을 취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힘을 다하여 이 적을 쫓겠습니다.” 하고, 말을 마치자, 본부군을 이끌고 전차를 몰아 제나라 군사를 추격하니, 제나라 군사들은 어지러이 흩어졌다. 제경공은 화부주산(華不注山)을 돌아 달아났다. 한궐이 멀리 금빛 수레를 발견하고 있는 힘을 다해 그 뒤를 쫓았다. 방추보가 병하를 돌아보면 말하기를, “장군은 빨리 포위망을 돌파하여 구원병을 데리고 오시오. 내가 대신 장군의 말고삐를 잡겠소.” 하니, 병하가 전차에서 내려 달려갔다. 진나라 대군이 더욱 많이 밀려들어 화주부산을 삼면에서 포위했다. 방추보가 제경공에게 말하기를, “사태가 급합니다! 주공께서 빨리 비단 전포와 갑옷을 벗으시면, 제가 대신 입고 주공 행세를 하겠습니다. 주공은 제 옷을 입고 곁에서 말고삐를 잡고 있다가 진나라 군사의 눈을 속이도록 하십시오. 만약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제가 주공을 대신해서 죽을 것이니, 주군은 탈출하십시오.” 했다. 제경공이 그 말을 쫓아 그 옷을 바꿔 입었다. 제경공의 전차가 화천(華泉)에 이르자 한궐의 전차가 이미 가까이 이르렀다.
韓厥見錦袍繡甲,認是齊侯,遂手攬其絆馬之索,再拜稽首曰:「寡君不能辭魯衛之請,使群臣詢其罪於上國。臣厥忝在戎行,願御君侯,以辱臨於敝邑!」丑父詐稱口渴不能答言,以瓢授齊侯曰:「丑父可為我取飲。」齊侯下車,假作華泉取飲,水至,又嫌其濁,更取清者。齊侯遂繞山左而遁,恰遇齊將鄭周父御副車而至,曰:「邴夏已陷於晉軍中矣!晉勢浩大,惟此路兵稀,主公可急乘之!」乃以轡授齊侯,齊侯登車走脫。韓厥先遣人報入晉軍曰:「已得齊侯矣!」郤克大喜。及韓厥以丑父獻,郤克見之曰:「此非齊侯也!」郤克曾使齊,認得齊侯。
한궐은 비단 전포에 수를 놓은 갑옷을 입고 있는 사람을 보자 그가 제경공이라고 생각했다. 제경공의 전차에서 말고삐를 뺏어 머리를 숙여 재배하면서 말하기를, “저희 군주께서 노나라와 위나라의 청을 거절하지 못해서 신 등으로 하여금 상국의 죄를 묻게 하였습니다. 외신 궐(厥)은 군문에 있는 사람이라 저희 군주의 명령을 받들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나라까지 가셔야겠습니다.” 했다. 방추보가 목이 말라 대답을 못하겠다면서 표주박을 제경공에게 주며 말하기를, “내가 목이 마르니 방추보는 물을 떠 오너라!” 했다. 제경공이 수레에서 내려서 화천의 샘물에서 물을 떠서 가져왔다. 그러나 방추보가 물이 더럽다며 다시 깨끗한 물을 떠오라고 했다. 제경공이 마침내 산 왼쪽으로 돌아 달아나다가, 마침 제나라 장수 정주보(鄭周父)가 여벌 수레를 끌고 오는 것을 만났다. 정주보가 말하기를, “병하는 이미 진나라 군사에게 포위되었습니다! 진나라 군세가 아주 크지만, 오직 이 길은 진나라 군사가 드뭅니다. 주공께서는 빨리 수레에 오르십시오.” 했다. 이에 말고삐를 제경공에게 넘겨주니 제경공이 수레를 몰아 포위망에서 벗어났다. 한궐은 먼저 사람을 보내 진나라 중군에 보고하기를, “이미 제경공을 사로잡았습니다.” 하니, 극극이 매우 기뻐했다. 한궐이 방추보를 바치자, 극극이 보고 말하기를, “이 자는 제경공이 아니다.” 했다. 극극은 일찍이 제나라 사신으로 갔기 때문에 제경공을 알고 있었다.
韓厥卻不認得,因此被他設計賺去。韓厥怒問丑父曰:「汝是何人?」對曰:「某乃車右將軍逄丑父。欲問吾君,方纔往華泉取飲者就是。」郤克亦怒曰:「軍法:『欺三軍者,罪應死!』汝冒認齊侯,以欺我軍,尚望活耶?」叱左右:「縛丑父去斬!」丑父大呼曰:「晉軍聽吾一言,自今無有代其君任患者。丑父免君於患,今且為戮矣!」郤克命解其縛,曰:「人盡忠於君,我殺之不祥。」使後車載之。潛淵居士有詩云:「遶山戈甲密如林,繡甲君王險被擒。千尺華泉源不竭,不如丑父計謀深。」後人名華不注山為金輿山,正以齊侯金輿駐此而得名也。
한궐은 제후를 알아보지 못해서 방추보의 계략에 속았음을 알고, 성을 내어 방추보에게 묻기를, “너는 누구냐?” 하니, 방추보가 대답하기를, “나는 제나라의 차우 장군 방추보다. 우리 주군은 바로 화천에서 물을 뜨러 간 사람이 다.” 했다. 극극이 화를 내며 말하기를, “군법에 삼군을 속인 자는 사형에 처하게 되어 있다. 너는 제나라 군주로 가장하여 아군을 속였으니, 어찌 살기를 바라겠느냐?” 하고, 좌우에 소리치기를, “방추보를 묶어다가 목을 쳐라.” 했다. 방추보가 크게 외치기를, “진나라 군사들은 내 말을 한번 들어보시오. 오늘 이후로는 환난에 주군을 대신할 자가 없을 것이다. 방추보는 주군을 환난에서 구하고 지금 죽음을 당한다.” 했다. 극극이 방추보의 결박을 풀어 주라고 명령하며 말하기를, “주군에게 충성을 다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상서롭지 않다.” 하고, 뒷 수레에 태우게 했다. 잠연거사(潛淵居士)가 시를 지어 이르기를, “산을 에워싼 창칼이 숲을 이루었는데, 비단 옷에 갑옷을 입은 군주가 포로가 될 처지였다. 천 척 화천(華泉)이야 마르지 않겠지만, 방추보의 계책만큼 깊기야 하겠는가?” 했다. 뒷사람이 화불주산을 금여산(金輿山)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제경공의 금빛 수레가 머물러서 얻은 이름이다.
頃公既脫歸本營,念丑父活命之恩,復乘輕車馳入晉軍,訪求丑父,出而復入者三次。國佐高固二將,聞中軍已敗,恐齊侯有失,各引軍來救駕,見齊侯從晉軍中出,大驚曰:「主公何輕千乘之尊,而自探虎穴耶?」頃公曰:「逄丑父代寡人陷於敵中,未知生死,寡人坐不安席,是以求之。」言未畢,哨馬報:「晉兵分五路殺來了!」國佐奏曰:「軍氣已挫,主公不可久留於此。且回國中堅守,以待楚救之至可也。」齊侯從其言,遂引大軍,回至臨淄去了。郤克引大軍,及魯、衛、曹三國之師,長驅直入,所過關隘,盡行燒毀,直抵國都,志在滅齊。
제경공이 진(晉)나라 군사의 포위망을 벗어나서 본영으로 돌아가, 방추보가 목숨을 살린 은덕을 생각하고 다시 가벼운 전차를 타고 진나라 진영을 세 번이나 드나들면서 방추보를 찾았다. 국좌와 고고 두 장수가 중군이 이미 패배했다는 소식을 듣고 제경공이 잘못될까 걱정하여 각기 군사들을 이끌고 제경공의 전차를 구하러 가서, 제경공이 진나라 진영 쪽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크게 놀라 말하기를, “주공은 어찌하여 천승(千乘)의 귀한 몸을 가볍게 여겨 친히 호랑이 굴을 드나드십니까?” 하니, 제경공이 말하기를, “방추보가 나를 대신하여 적진에 빠졌는데, 생사를 알 수 없소. 내가 편안히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어 그래서 그를 구하려고 이러는 거요!” 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찰 기병이 보고하기를, “진나라 군사가 다섯 갈래로 나누어 쳐들어옵니다.” 하니, 국좌가 아뢰기를, “군사의 사기가 이미 꺽여서 주공께서는 오래 여기에 머물 수 없습니다. 곧 본국으로 돌아가 굳게 지키면서 초나라의 구원병이 오기를 기다리는 편이 옳습니다.” 했다. 제후가 그 말을 쫓아 마침내 대군을 이끌고 임치(臨淄)로 되돌아갔다. 극극은 대군을 이끌고 노(魯)나라, 위(衛)나라, 조(曹)나라 3국의 연합군과 함께 거침없이 쳐들어가서 지나는 관문을 모두 불 사르고 제나라의 도성 임치(臨淄) 성에 이르러, 제나라를 멸망시킬 생각이었다.
不知齊國如何應敵,再看下回分解。
제나라가 어떻게 대적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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