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릉(貞곧을정陵언덕릉)
1. 정릉은 조선왕조를 창건한 태조(太組)의 계비(繼妃) 신덕왕후(神德王后) 강씨(康氏)의 능(陵)이다.
왕후는 상상부원군(象山府院君) 강윤성(康允成)의 딸로 태조가 왕위에 오른 뒤 현비(顯妃)가 되었고 방번(芳蕃),방석(芳碩) 두 왕자와 경순공주를 낳았다. 왕후가 태조 5년(1396년)에 돌아가시자 능을 꾸미고 그 이듬해 능 이름을 정릉으로 정했다. 이 능은 원래 중구 정동에 있었으나 태종 9년(1409) 2월에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이후 능을 돌보지 않아 처음의 모습을 앓었으나 현종(顯宗)대에 개축하여 다소 제 모습을 찾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신덕왕후의 신위도 태조묘(太祖廟)에 모시게 되었다.
2. 1409년(태종 9년) 중구 정동에 있던 능을 지금의 자리로 이장. 정동에 석물로 광동교(현재의 광교) 돌다리를 만듬. 목재, 석재는 태평관(명사신 숙소)을 짓는 데 사용.
태종은 "강씨는 내게 조금도 은의(恩義)가 없다" 함.
3. 1669년 현종 10년 정릉의로 복권 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재조성 됨.
4. 신덕왕후(? ~1396년) : 태조의 두번째 부인(서울 부인, 강씨), 1396년 8월 13일 판내시부사 이득분의 집에서 병환으로 사망, 첫째는 신의왕후(고향 시골 부인, 한씨)로 즉위전인 1391년(고려 공양왕 3년)에 죽음. 신덕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태조 흥천사(능의 동쪽에 세움,현재는 돈암2동 소재) 세움, 정치적 역량 탁월, 태조가 왕후를 극진히 사랑했다 함. 태종(이방원)의 계모. 총명하고 충실자 내조자이자 정치적 동지.이성계의 중앙정치 무대 길을 열어 줌 역할. "급히 먹은 물이 체일까봐 물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어 이성계에게 주었다 함.
방석(둘째 아들)을 세자로 책봉(1392년 8월 정도전, 조준 중심).
5. 이성계 가계도
- 신의황후 : 1. 방우(진안대군). 2. 방과(정종, 영안대군), 3. 방의(익안대군), 4. 방간(회안대군), 5. 방원(태종, 정안대군), 방연(덕안대군)
- 신덕왕후 : 1. 방번(무안대군), 2. 방석(세자. 의안대군), 3. 경순공주
- 성비 원씨
- 정경궁주 유씨
- 화위옹주 김씨 : 숙신옹주
- 무명씨 : 의령옹주
6. 왕자의 난
- 1차(1398년) : 방원이 신덕왕후 소생 방번, 방석, 정도전 일파를 제거한 난.
- 2차(1400년, 정종 2년, 방간의 난, 박포의 난, 개경에서 충돌) : 방간(이성계의 넷째 아들)과 박포가 옹아위를 탐해 바원을 제거하려고 일으킨 난. 방간 유배, 박포 처형. 난 이후 정종은 방원을 세자로 책봉. 곧이어 같은해 11월 왕위 양여. 조선 3대 태종으로 즉위함.
7. 정릉제향일 : 양력 9월 23일
8. 정릉 : 성북구 정릉동 산87-16
왕릉이라 하기에는 초라한 정릉의 정문 앞에서
정릉 안내문
정릉의 안내도
조선왕릉(정릉)은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에 따라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되었다.
세계유산 조선왕릉은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능(40기)으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담은 독특한 건축양식과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신성한 공간이며 지금까지도 제례가 이어져 오는 살아 있는 문화유산이다.
등록일 : 2009년 6월 30일
신덕왕후(1356 ~1396년) 강씨의 능
정자각 : 능 제향을 올리는 정(丁)자 모양으로 지은 집, 왕의 신주를 모심.
조선시대 능지기 옷/수복방 : 제사그릇 보관. 수릉관(능지기)과 수복(종)(청소를 하던 관노비)가 거처 하던 곳.
대한 신덕고왕후정릉/신덕왕후비각 * 비각 : 비석이나 신도비를 세워 둔 곳. 비석을 보호. 왕비의 일대기가 쓰여져 있음.
비 뒷면에는 순원현경 신덕고황후 강씨는 태조과황제 계후이며, 6월 14일에 태어나서 개국이 되던 해ㅠ 이묘신년(1392, 태조1)에 현비로 책봉되었다. 병자년(丙子年, 1396, 태조5) 8월 13일 스하하시어 정축년(丁넷째 천건정丑소축年, 1397, 태조 6) 1월에 한성 황화방(지금의 정동)에 장례를 치뤘으며, 기축년(己자기기丑소축,年, 1409, 태종 9) 2월 23일에 양주 남아사리 서쪽 언덕으로 이장 하였다.
기유년(己자기기酉닭유年, 1669, 현종 10)에 "순원현경" 이라는 휘호를 더하여 올리고 태묘(종묘)에 배향하였으며, 기해(己자기기亥年, 1899, 고종 36) 11월에 추존하여 시호를 "고황후" 로 올리고, 이에 예를 다하여 표석의 앞면과 뒷면에 음기를 새기어 소자의 작은 정성을 올립니다./광무(光武) 4년(고종 37년, 1900년)
정릉기념비안내문 : 신덕고황후정릉
왕실제례상 재현모습
정릉 홍살문(홍문=신문=홍전문) :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문. 영혼이 출입하는 문
* 참도(參道) : 홍삼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진 길박석을 까라 놓았으며 왼쪽의 약간 높은 길은 신(혼령)이 다니는 길이라 하여 신도(神道), 오른쪽 약간 낮은 길은 임금(왕)이 다니는 길이라해 어도(御어거할 어)道길도)라 함.
* 금천교(禁川橋) : 왕릉의 금처능 거너는 다리. 속세와 성역의 경계 역할.
* 능침(陵寢, 능상) : 능 주인이 잠들어 있는 곳. 왕비의 무덤, 봉분, 산소, 분상이라고도 함.
* 곡장 : 봉분을 보호하기 위해 봉분의 동서북 삼면에 둘러 놓은 담장.
* 문인석 : 장명등 좌우에 있으며 두손으로 홀(왕을 만날때 조복(朝아침조服옷복)에 갖추어 손에 쥐는 물건)을 쥐고 서 있다.
* 무인석 : 왕 호위. 두손으로 장검을 짚고 서 있다.
* 혼유석(魂넋혼遊놀유石) : 혼령이 나와 쉴 수 있도록 능상앞에 설치하는 직사각형 형태의 돌.
* 장명등(長긴장明밝을명燈등잔등) : 돌아가신 이의 명복을 빌기 위해 혼유석 앞에 세움.
* 망주석(望바랄망,柱기둥주,石) : 무덤 양면에 설치하는 돌기둥.(기능은 음양의 조화, 무덤의 위치 표시, 왕릉의 생기 보존 시설물 등등의 설이 있음)
* 석마(石馬말마) : 문무인석에 배치되어 설치되는 말.
* 석양(石羊양양),석호(石虎범호) : 능을 보호 의미로 설치된 동물(호랑이 ,양), 외부 침입을 경계하는 형태로 바깥쪽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설치됨. 양은 악귀를, 호랑이는 맹수를 내쫒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
* 신계(神귀신신階섬돌계) : 혼령이 오르내리는 계단.
* 동계(東階) : 왕,제관 등이 오르내리는 계단, 오른발을 먼저 내딛음.
* 서계(西서녘서階섬돌계) : 축관(祝질축官벼슬관)이 축문(祝질축文글월문)을 태우기 위해 오르내리는 계단. 왼발을 먼저 내딛음.
* 재실(齋室) : 능 제사와 관련한 전반적인 준비흫 하는 곳. 왕릉을 관리하던 능참봉이 상주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