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다드 팝이 주류를 이루던 50년대 초반을 중반으로 접어들며 대중음악의 다변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56년 등장했던 엘비스 프레슬리는 그 특이한 제스처와 음색으로 비난과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흔히 50년대 스타를 엘비스라 지칭하고 있듯이 그가 대중음악에 미친 영향은 대단한데 하드 록의 생성에서도 결정적인 역활을 했다고 본다. 56년 여름에 발표된 로커빌리 스타일의 은 이후 수많은 후배들(특히 하드 록그룹의 멤버들)이 연습곡으로 다투어 연주했던 사실만 보아도 엘비스가 하드 록의 생성에 불을 당겼다고 봐야 타당할 것이다.
66년 여름 에릭 클랩턴, 잭 브루스, 진저 베이커의 세 사나이로 구성된 전설의 트리오 크림이 탄생했다. 클랩턴은 야드버즈와 블루스 브레이커즈에서, 브루스는 그래험 본드와 맨프레드 맨에서, 베이커 역시 그래험 본드에서 각각 빛을 발하던 영국 최고의 테크니션들이 었다. 에릭 클랩턴은 '기타의 신'으로 불리우며 신기의 핑거링을 구사했고 잭 브루스는 블루스와 재즈를 엮어 소위 헤비 리프라는 새로운 테크닉을 개발해냈다. 이것은 오늘날 헤비메틀 그룹의 연주 형식인 반복되는 코드 터치의 기원이 되었다. 또한 드럼의 마왕이라는 칭호를 보유하고 있는 진저 베이커 역시 종래의 리듬 악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드럼을 파격적으로 긴 시간을 할애하는 리드 악기로서의 헤비한 솔로 연주를 시도하여 존 본햄과 코지 파웰 같은 후배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또한, 생존해 있었다면 오늘날의 헤비메틀의 방향을 더욱 전위적으로 이끌어 나갔음에 틀림없을 귀재 지미 헨드릭스는 와와 페달, 퍼즈 박스 등의 악세서리와 피드백 주법, 테이프 딜레이의 녹음 방식을 비롯 사이키델릭한 의상 또는 이로 기타를 뜯는 등 당시로써는 전위적인 행동을 연출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의 이러한 스타일이 오늘날의 헤비메틀 그룹들이 즐겨 사용하는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크림과 헨드릭스에게서 바톤을 받은 딥 퍼플과 레드 제플린은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로 접어드는 소위 르네상스 시대에 등장해서 가장 치열한 경쟁 끝에 살아남은 헤비 사운드의 승리자 였다. 특히 60년대 말엽을 가리켜 헤비 메틀의 개화기로 잡는 이유는 퍼플과 제플린을 비롯하여 17분짜리 러닝 타임으로 모험을 건 LA 출신 아이언 버터플라이의 등장이라던지 미시건 출신으로 미국 헤비 사운드의 체면을 세워준 그랜드 펑크 레일 로드, 무겁고 중후한 연주로 크림의 재판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그룹 마운틴 등 카리스마적 그룹들이 다투어 등장했기 때문이다.
70년대로 접어들며 헤비 사운드는 더욱 다양한 패턴으로 확산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무려 13년간 불멸의 텍사스 트리오로 군림하고 있는 지지 탑은 72년 이란 곡으로 차트에 진입하여 헤비메틀 블루스이 장르를 열었으며, 레이저 광선을 이용한 스테이지로 뉴욕의 록 팬들을 열광시켰다. 또한 자신들에게 최초로 헤비메틀 그룹이라는 단어를 부여해 줬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갖고 있는 블루 오이스터 컬트, 뉴잉글랜드 출신의 5인조 하드 록 그룹 에어로스미스가 유명한 을 들고 나왔던 것도 73년 가을 이었다. 에어로스미스를 필두로 키스와 윈 등이 다투어 등장했던 73년의 그룹들은 오늘날 헤비메틀 그룹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첫댓글 음.... 키스. 울나라에도kiss라는 그룹이-.- 여성 몇인조그룹인디.ㅋ 거기에 스타토크인가; 어떤분이 KISS 그룹명따라한다고 도끼기타로 찍어버린다고 ㅋ 적어놔서 웃겨죽는줄; 한번 kiss검색해서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