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마추어들은 프로들과 같은 종류의 칼을 품고 싶어 하는걸까?
프로들의 칼을 보고 좋은 칼이라 탐내고 그것을 소유하고 싶은
아마추어의 순진한(?)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만일 PGA 프로들과 똑같은 스펙의 칼을 주면
그걸로 한 라운드 18홀을 정상적으로 플레이할 기량을 갖춘 아마추어는
지금 골프를 치는 대한민국 골퍼들 중 0.1%가 채 안될 것이다.
프로들의 클럽은 같은 상표 같은 모델이어도 스펙이 다르다.
특히 샤프트의 강도가 다르고 대부분 주문 제작이다.
우리가 시중에서 같은 모델을 손에 넣는다 해도
프로가 사용하는 것과는 다른 물건이라는 말이다.
왜 사람들은 프로들이 사용하는 칼에 환상을 품고 있는걸까?
프로들의 칼 보다는 그들의 스윙을 부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그것도 클럽에 관해 좋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클럽의 선택에 그릇된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걸 본다.
캐버티는 단조(forged)보다 하수의 클럽이라든가
그래파이트는 스틸보다 하수가 사용한다는 식의...
골프에서 고수와 하수, 즉 플레이의 퀄러티를 가름하는 기준은 점수다.
점수가 좋은 사람이 고수지 그 사람이 사용하는 클럽이 실력을 가름하는 척도는 아닌 것이다.
80근짜리 청룡언월도가 관우에게는 좋은 칼일 수 있지만
유비에게는 그저 쇳덩어리일 수 있고
쌍고검은 유비에게 좋은 칼이지만 관우에겐 인연이 아닐 수 있다.
청룡언월과 쌍고검중 어떤게 좋은 칼일까?
솔이 얇은 날렵한 칼과 솔이 두꺼운 투박한 칼은 어떤게 좋은 칼일까?
이런 모든 질문은 정답이 있는 질문일까?
정답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스스로 클럽에 대한 편견이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내 주위엔 C사의 옛날 구식 모델로 핸디캡 2를 치는 친구가 있고
빵빵한 MP 씨리즈, 헤드가 조그맣고 오프셋 거의 없는 프로용을 지니고
90개 치기 바쁘다가 종종 100 언저리를 헤매는 웃기는 친구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클럽이 가지고 있는 한계라는 것이 있어
어떤 클럽으로는 싱글핸디캡이 힘들다거나
고수면 당연히 이러이러한 클럽을 써야한다고 얘기하는것을 보는데
미안하지만 좀 웃긴다.
막대기에 밥주걱을 붙여 쳐도 잘 치면
그게 좋은 클럽이다.
프로들은 매일 공을 치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매일 공만 친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공 치는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체력단련에 쏟는다.
주로 하체운동과 손목 그리고 허리운동 이지만
헤드 스피드를 높이기 위한 끊임없는 육체적 단련을
매일 하고 있다.
그들만큼 매일 운동하는지?
그들만큼 몸이 유연한지?
그들만큼 헤드스피드를 낼 수 있는지?
그들만큼 체력에 자신 있는지?
프로들이 쓴다고 무조건 아마추어게도 좋은 클럽이 아니고
고수용 클럽, 하수용 클럽이 따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클럽의 선택은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 그들의 스윙과 체력또한 모두 다르다.
이러이러한 클럽이 좋은 것이라고 잘라서 말할 수 없다.
사람들은 좋은 스윙을 한가지 스윙으로 표본하여 소개하지만
천명이 스윙하면 천개의 스윙이 나오는 게 골프스윙이다.
클럽도 그만큼 많은 변이가 존재한다.
요즘 유행하는 무거운 샤프트에 스티프 플렉스를 매달고
쩔쩔매는 골퍼를 보았다.
아마 골프매장에서 몇 번 쳐보고 감이 좋아 바꾼게 분명한데
골프매장에서 잘 맞은 게 필드에서도 잘 맞으란 보장은 없다.
종종 클럽의 선택을 문의하는 골퍼를 보는데
제일 중요한 건 연습장이나 1번홀에서 잘 맞는 클럽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18번홀에서도 1번홀과 똑같은 스윙을 할 수 있는 클럽을 선택하는 것이다.
클럽은 첫 홀과 마지막 홀에서
동일한 스피드와 동일한 폼으로 휘두를 수 있어야 본인에게 맞는 클럽이다.
첫 홀에서 좀 맞는가 싶더니
후반들어 체력이 달리면서 계속되는 푸시와 슬라이스에
별의별 해괴한 샷을 다 보여주는 클럽은 비싸고, 유명하고, 프로가 쓴다해도
본인에게 좋은 클럽이 아니다.
주말골퍼를 기준으로 아마추어의 스윙스피드는
드라이버의 경우 그 날의 컨디션에 따라 최대 15-20 mph 차이가 난다고 한다.
1번홀과 18번홀의 헤드스피드 차이는 10 mph 가 넘는다.
프로는 고작해야 5 mph 정도.
골프실력의 향상이란 헤드스피드의 편차를 줄여가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골프를 잘 친다는 건 헤드스피드 편차가 작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정한 스피드를 가진 골퍼가 방향성도 일관성 있는 법이다.
스윙스피드의 편차가 20 mph 라면
이미 샤프트의 강도나 클럽의 스펙은 별 의미 없는 일이다.
아마추어에겐 어제 잘 맞던 드라이버가 오늘 안 맞을 수도 있고
오늘 안 맞던 클럽이 내일 잘 맞을 수도 있다.
심지어는 전반에 잘 맞아 놓고 후반에 배신 때리는 경우도 있다.
이 모든 게 클럽의 좋고 나쁨에 까닭이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프로와 일부 아마추어 고수는 클럽에 의해 playability를 지배당할 수 있지만
대부분 아마추어는 스윙에 의해 실력이 결판 난다.
이쯤돼서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어보자.
진정 명검은 존재하는가?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아마추어의 명검이란
첫째 생각보다 가벼워야 하고
둘째 강하지 않은 샤프트를 꼽는다.
가벼워야하는 이유는 골프란 게 체력소모가 만만치 않은 운동이므로
체력이 많이 소진된 후반에 가서도 어려움없이
일관된 스윙을 할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고
강하지 않은 샤프트라는 건 상대적인 표현인데
자기가 컨트롤 할 수 있는 플렉스 기준으로
강한 것 보다는 약간 약한게 좋다는 뜻이다.
즉, 체력적으로 지친 후에도 여전히 스윙을 지배할 수 있어야 한다.
종합해 보면 명검이란
브랜드나 모델로 가름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가격이나 외관 혹은 평판으로는 평가불능이다.
프로들이 사용하는 클럽이 잘 맞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가격이나 평판, 경험담, 체면등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으면
명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사람들이 다 좋다고 해도 본인에게는 죽어도 맞지 않는 클럽이면
그건 명검이 아니다.
외제든 국산이든, 가격이 싸든 비싸든, 평판이 좋든 나쁘든, 잘 생겼든 못 생겼든,
스틸이든 그래파이트든, 고수의 클럽이든 하수의 클럽이든 본인에게 잘 맞는 클럽이 명검이다.
클럽이 프로 혹은 고수클럽이어야 싱글 핸디캡을 할 수 있다는 건 거짓말이다.
간혹 그런 사람도 있지만 골프가 발전하지 않는 건 대개 스윙이 나쁜 탓이다.
20년전 모델 그래파이트 레귤러 샤프트로 전반 나인을
2 언더로 돌아나오던 한 친구의 명언으로 글을 맺는다.
그 친구 그 라운드를 1오버로 끝냈다.
골프클럽은 마누라 같은 거야.
천하제일의 미인도 나랑 안 맞으면 인연이 아닌거지.
뚱뚱하고 못생겨도 나와 잘 맞으면 그게 내 사람인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