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강성 역사적 시조 강여상(姜吕尙)
32대 667년 제나라 강성(姜姓) 열전<5> <출전 : 齊太公世家 및 기타>
조카의 반역
양공 12년(기원전 686년), 제나라 양공(襄公)이 연칭(连称)과 관지부(管至父)를 하남성 난고현과 산동성 조현 사이에 있는 규구(葵丘)에 주둔시켜 외적의 침략을 막게 했습니다. 참외가 익었을 때 가서 다음 해 참외가 익으면 다른 사람들로 교체했습니다. 연성과 관지부는 그곳에서 1년 동안 머물렀고 이듬해 참외가 익었을 때 양공은 그들을 교체할 사람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양공에게 자신을 대신할 사람으로 보내라고 요청했지만, 양공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두 사람은 크게 원망하여 죽은 희공의 조카 양공과 어릴 때부터 감정이 안 좋았습니다. 공손무지와 결탁하여 반란을 일으키려 했습니다. 연칭은 양공의 사촌 동생이 궁궐에서 총애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연칭은 사촌에게 양공의 행동을 비밀리에 감시해주면
“일이 끝난 후, 공손무지의 아내가 되게 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해 겨울 12월에 양공은 산동성 박흥현 고분(姑棼)으로 놀러 갔다가, 산동성 박흥현 패구(沛丘)로 사냥갔습니다. 양공은 멧돼지를 보았습니다. 수행원들은 ‘팽생(彭生)’이라고 말했습니다. 양공은 매우 기분이 좋았습니다. 화살을 쏘자 그 멧돼지는 일어서서 사람처럼 울었습니다. 양공은 매우 겁에 질려 차에서 떨어져 발을 다쳤고 신발을 잃었습니다. 양공이 돌아와서 신발을 신는데 시중을 드는 불(茀)이라는 시종을 화풀이로 300번이나 채찍질했습니다. 불은 절름거리며 궁을 나왔습니다. 공손무지, 연칭, 관지부 등이 양공이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부하들을 이끌고 양공의 궁궐을 공격했습니다. 때마침 양공의 신발을 신기던 시종 불을 만났습니다. 불이 말했습니다.
“일단 궁에 있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 마세요. 놀라게 하면 들어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무지는 불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불은 무지에게 자신의 몸에 있는 채찍질 흉터를 보여주자 무지는 비로소 믿게 되었습니다. 무지 일당은 궁 밖에서 기다리며 불을 먼저 들어가게 했습니다. 불은 먼저 궁에 들어가 양공을 문 뒤에 숨겼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불이 나오지 않자 무지의 일당은 일이 그르치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면서도 궁으로 쳐들어갔습니다. 궁중의 위사들과 양공이 총애하는 신첩들이 함께 무지 일당을 공격했지만, 승리하지 못하고 오히려 모두 죽었습니다. 무지가 양공을 찾아다녔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문 밑에 드러난 사람의 발을 발견하고 문을 밀치고 보니 과연 양공이었습니다. 무지는 그를 죽이고 스스로 제나라 왕으로 즉위했습니다. 공자 규가 노나라에 투항했습니다.
무지는 다음 해 봄, 하남시 신안현 북부 옹림(雍林)에 와서 놀았습니다. 옹림 사람들은 일찍이 무지에 원한을 품고 있었는데, 그가 옹림에 놀러 오자, 옹림의 대부가 그를 습격하여 죽였습니다. 제나라 관리들에게 말하기를,
“무지가 양공을 죽이고 스스로 군위에 올랐기에 우리가 그를 이미 처형했습니다. 대부님들이 공자들 중에서 마땅히 계승해야 할 사람을 다시 옹립하기를 바라며, 우리는 오로지 대부님들의 명령에 따르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처음에 제나라 양공은 술에 취해 노환공을 죽이고 노환공의 부인과 간통하여 여러 차례의 살벌을 잘못하고 여색에 탐닉하고 여러 차례 신하들을 괴롭혔는데, 그의 동생들 중 몇 명이 자신에게 화가 미칠까 봐 양공의 둘째 동생 공자는 도망쳐 노나라로 갔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노나라 군주의 딸로 관중과 소홀이 그를 보좌했습니다. 양공의 셋째 동생인 소백(小白)이 거나라로 도망쳤고, 포숙아가 그를 보좌했습니다. 소백의 어머니는 위나라 군주의 딸로 이공(厘公)의 총애를 받고 있습니다. 소백은 어려서부터 대부 고혜(高傒)와 우호적이었습니다.
옹림 사람들이 공손무지를 죽이고 대신들이 새로운 군주를 세우기로 합의했을 때, 공자 규를 보좌하는 관중과 그의 절친한 친구 포숙아는 공자 소백을 보좌하고 있었습니다. 포숙아가고씨와 국씨 두 집안의 대족이 먼저 거나라에 보내 공자 소백을 불러들여 군위를 계승코자했습니다. 노나라는 무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장공이 직접 공자 규(纠)를 호위하여 제나라에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관중이 장공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소백 공자는 제니라와 아주 가까운 거나라에 머물고 있습니다. 소백 공자가 먼저 제나라에 도착할 공산이 큽니다. 제가 군사를 데리고 가서 그 길을 막겠습니다.”
장공은 곧바로 관중에게 군사를 주어 거나라에서부터 길을 막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때 이미 소백이 거나라 군의 호위를 받으며 거의 제나라 국경까지 가고 있었습니다. 관중은 급한 나머지 큰길 위 마차를 타고 있던 소백을 향하여 화살을 쏘았습니다. 소백을 비명을 지르며 마차에서 쓰러졌습니다. 관중은 소백이 죽은 줄 알고 사람을 보내 노나라에 이 소식을 신속히 보고했습니다. 관중이 쏜 화살이 소백의 허리띠에 맞았지만, 소백은 죽은 척했습니다. 소백은 관중을 속이고 온거(溫車)를 타고 행군을 재촉하여 제나라로 향했습니다. 노나라는 제나라로 공자 규를 황급히 보냈습니다. 행렬이 더디게 가서 6일 만에 제나라에 도착했는데, 제나라 성 안에 있던 고혜와 국의중이 내응하여 소백을 성 안으로 맞아들여 제나라 왕으로 옹립된 후였습니다. 그가 바로 환공입니다. 군사를 동원하여 노나라 군사들을 막았습니다.